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스타십 트루퍼스』는 예전에 1997년작 <폴 버호벤>감독의 영화로 처음 접해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크게 기억나는 것은...곤충같이 생긴 외계생물과의 전투씬이다. 신물나는 곤충들과의 한판을 그린 이 영화만을 보고...『스타십 트루퍼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아마 10%만을 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소설속에서의 전투장면이 10%정도 되니까..

그만큼 이 소설에서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약한 편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이 400여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는 대부분 무엇으로 채워져있을까? 단, 한단어가 떠오른다. 'propaganda'(프로파간다) 우리말로는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영화와 비슷하다. 다만.. 영화속에서는 시각적인 구성을 전투에 중점으로 뒀다는 것과 주인공(조니)의 친구들(칼과 카르멘으로 고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한다뿐이다. 참.. 영화속에서는 강화복(powered suit)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다. 이것은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왜냐하면...'하인라인'의 이 소설은 '강화복의, 강화복에 의한, 강화복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강화복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할까... 그 이유는 우리의 '조니'가 기동보병 소속이기 때문이다. 처음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기동보병이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치고 수료하기 까지의 과정이 어림잡아 책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영화속에서는 훈련과정이 아마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훈련과정에서의 내용은 완전무결한 군인정신 특히, 기동보병 정신을 쇠뇌받는데...바로 이 부분이 하인라인이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고, 훈련과정 자체가 선동인 것이다. 하인라인은 훈련소의 교관으로 혹은 군대의 장교로 선임 하사관으로 혹은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 윤리 철학'선생으로 등장한다. 이 모두가 조니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이 선동적인 이유이다.

이 이야기의 주된 선동은 시민권을 따라는 것이다. 자유(참정권 제외)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지 모르지만 이 시민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시민권이 없다고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의 고결한 시민이 되려면 시민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군대 경력이 필요하다. 그 뿐이다. 선거권, 피선거권을 따기 위한 군입대는 왠지 모를 뿌듯감으로 인해 정신건강에는 좋을 지 모르나, 절대로 육체적건강에는 좋지 않다. 특히, 기동보병으로 있는 한은 말이다. 그래서 이 인류를 사랑하고 위하는 시민권을 가진 고결한 사람을 만들기위해선 오로지 선동뿐이다. 누가 선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그런데 한가지 웃긴것은 소설속에서는 이 선거권, 피선거권 실체가 없다. 그냥..선거권 따기 위해..전쟁나가 죽는 것이다. 또한 군인신분으로는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다. 오직 제대를 해야한다는 말인데...이미 쇠뇌된 군인에게는 솔직히 시민권 자체가 필요없다. 단기 근무는 장기 근무로 가기위한 통행권같은 것이다.

이 훌륭한 시민권을 어렵게 따기 위해선 강력한 적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강력한 적이 나올 수록 시민권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래서 나온것이 거미같은 외계생물인데...이 생물의 강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강인함과 직접 맞서서 싸워야하는 군인들 또한 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화복을 입은 기동보병이 중요하며, 역시나 적과 바로 대면한다는 것 때문에 기동보병은 대단한 것이다. 즉, 군대의 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단함과 추켜세움때문에 전쟁은 이루어진다. 매우 정치적이다. 시민권을 쉽게 딴다면... 누가 군대를 갈 것인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와는 반대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이 『영원한 전쟁』에서도 강화복을 입고 또 외계 생물과 전투를 치룬다. 하지만, '조 홀드먼'은 인류와 싸우는 외계 생물을 강인한 것과는 다르게 묘사한다. 이 소설속에서는 따내려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강한 적도 만들 필요도 없지만, 전쟁은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닌 오해에서 시작된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전투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하지만 오히려 전투 장면은 『스타십 트루퍼스』보다 많이 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시각은 '하인라인'의 사상과는 반대편에 있는 좌파적 성격을 띠며(반전 사상이 다분하다), 오히려 『영원한 전쟁은』전쟁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는 그 시대상을 다룬다.(재밌게도 이 시대상은 시간적으로 3000년 이상의 시간을 가진다). 『스타십 트루퍼스』에는 시대상은 없다. 오로지 인류의 전쟁을 하기 위한 전쟁 윤리와 전쟁 철학만이 있을 뿐이다. 이 두 소설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계급의 진급이다. 전투를 위한 '하인라인'의 소설은 전투중 손실로 인하여 진급하는 경우가 제일 크다. 물론 따로 교육도 받지만 말이다. 어차피 상관이 죽어나가기에 계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 홀드먼'의 소설에선 계급의 진급은 크게 의미가 없다. 다른 우주로 전송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몇백년씩이나 훌쩍 지난다.(정지되어 있는 자의 시간기준으로) 물론 주인공에겐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만이 흐른다. 자연히 진급이 된다.

이 두 소설은 똑같은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었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전쟁을 위한 소설이고 바로 전쟁을 치루는 남성을 위한 소설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소설속에서도 여성은 등장하며, 여성 또한 군인으로 심지어 함장으로 까지도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의 여성은 전쟁을 치루기 위한 촉진제(?)이다. 조니가 꼭 입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입대지원을 받는 곳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외모가 예쁜 카르멘을 만난다. 카르멘은 진정한 사람이어야한다면 시민권이 있어야되고, 군대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조니는 입대원서를 냉큼 집어든다.

또, 기동보병들은 강화복을 입고 우주선에 있는 캡슐을 타고 적이 있는 행성으로 강하한다. 이때 전쟁의 나락,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긴장감과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보병들에겐 역시나 함선내 방송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꼭 살아돌아오라고...

이 소설에선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후 '사자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는 한가지 원인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낸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결코 평화로이 끝을 맺진 않는다.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릴 뿐이다(하인라인의 또 다른 소설 '프라이데이'에서의 결말은 좀 다르다.그래서..후기 하인라인의 작품은 초기 작품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이 끝나고 사랑이 찾아온다(비록 이 전쟁이 수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끝이 나지만 말이다...). 이것이 이 두 소설이 가지려는 주제이다.

막상 이렇게 쓰고보니 『스타십 트루퍼스』를 매우 부정적인 소설로 묘사를 하였는데, 그렇진 않다. 비록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묵시적인 소재가 들어가있지만, 읽어보면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1959년이니까 어느정도 사회상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 소설은 역시나 밀리터리SF의 원조로 불리운다. 지금의 밀리터리 SF는 군사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이 면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어차피 둘다 비슷하지만, 요즘의 SF는 확연히 정치적이다. 예전 초기의 SF면과는 달리 전투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외교라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스타트랙』, 『배틀스타 갈락티카』등을 보아도 확실히 넓은 의미의 정치,외교,군사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대통령과 함장, 그리고 언론과 군대등 수많은 갈등 요소를 품고 있다.

SF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장르는 아니다. 요즘의 시대상과 더불어 앞으로의 시대 혹은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 SF이다. 비록 자극적인 소재도 다분히 많이 끼어있지만, 무언가 영감을 주긴 주는 것 같다. 정치,외교 분야를 공부한다면 SF는 전공 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공 선택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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