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에 따라서(정말 애매한 말...)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셨거나..책을 아예 읽지 않으실 분만..보세요...
 
이 소설은 커피를 소재로 한 거대한 음모론에관한 이야기이다. 커피를 가지고 어떠한 음모론을 펼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기전에 가졌던 짧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니 문화사적인 이야기들이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니까 커피가 가지는 역사적 전통을 현대 사회를 겨냥한 음모론에 부드럽게 섞어넣었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긴박감이 흐르는 추리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커피의 주된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각성제'가 가지는 효과일 것이다. 문화사적으로 봤을때(그러니까...커피가 가지는 전통적 관념에 견주어) 커피의 상반되는 음료는 '맥주'이다. 왜냐하면...이 '맥주'라는 것은 커피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맥주는 알코올 음료이며, 다른말로는 '흥분제'라 말 할 수 있다.
 
커피는 인류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우리가 얻은 선물이다. 커피라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하던지, 못된 역할을 하던지 이제는 현대 사회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이 소설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고 다른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됐든 커피 마시는 행위는 성인남녀라면 의례적으로 마시는 하나의 양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이 책은 커피로 인한 습관적 중독이 만들어내는 습관적 망상으로 시작한다. (이 망상이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고, 구체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볼 일 만은 아니라는 뜻)
 
크리스마스를 9일 앞둔 12월 16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등지의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들 250명이 독극물에 중독된다.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때는 독일 정부의 대개혁법안 또한 며칠 앞둔 시점이다.
 
음모론을 설정하고 그것을 풀어내려는소설속 인물은 독극물에 중독된 250명중의 한명인 한 소년의 아버지이자, 보수적 커피 로스터(커피 생두를 열을 가해 볶아내는 기계 혹은 그런 기계를 다루는 사람...그리고 여기에서 생두를 볶아낸것이 바로 원두이다.)인 한 남자이다. 그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을 연상하면 좋을 듯 하다. 그는 이 세계의 문화사의 한 위상을 차지하는 커피의 지식과 애정으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접근한다. 그리고 방송사의 인턴기자와 함께 점차적으로 퍼즐을 맞추어간다. 커피 로스터의 집요한 추적은 결국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의혹까지 불러오고 경찰에 쫒기기까지 하는데...
 
이 책의 제목...'커피 향기'는 단순히 이 소설이 커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해 주지만... 커피 향기는 바로 '계몽'을 뜻한다. 그러니까 닫혀있는 지식인의 지각을 열어놓음을 뜻한다.
 
"선동가들이 어디에서 만났겠습니까?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커피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역사가 커피하우스에서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커피하우스에는 열렬한 웅변이 있고 열띤 토론이 있었어요. 커피는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요. 사람들은 밤마다 논쟁을 벌이고 회의를 열고 계획을 짰습니다. ....(중략).... 그런 카페들은 그림자정부(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와 이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집합소였지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계몽의 전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격하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
...(중략)...
 
"계몽의 시작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의 냄새입니다. 바로 '커피 향기'지요!"
 
p. 229 ~ 230
 
문화사에서 커피는 닫혀있는 세상들의 교류를 만들어준 매개물중 하나이다. 그리고 커피를 통한 교류는 이 세상의 시간을 좀더 빠르게 돌아가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깨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사회의 빠른 흐름은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제의 효과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반대급부를 설정해 놓았다. '시간 늦추기 협회'가 바로 그것인데...주인공은 이 협회에 모든 의혹을 쏟아부으며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유사이래 '시간이 없다(Keine Zeit)'는 말처럼 무의미한 표현은 없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갈수록 점점 많은 동시대인들이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 불필요하게. 요즘 사람들은 전레 없이 긴 수명을 누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여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p. 90 ~ 91 '시간 늦추기 협회'의 '동기'라는 항목 中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빠름에 대한 모든 이유를 커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설속 커피가 가지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미시사적인 의미를 통해 현대사회의 조급함과 커피에 속박당한 이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됨으로써 멍해져버린 사회와 의욕을 잃어버린 좀비같은 현대인들을 조롱한다. 항상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깨어있음을 당연시하고, 그래야만 사회의 구성원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들 사람들의 풍자를 그린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자 말자'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커피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보스러운 행위는 경계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싶다. 그러니까 작가의 인물설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커피 로스터와 인턴 방송 기자이다. 비록 커피 로스터의 시각으로 커피를 풀어내고 이 사회의 병폐를 보지만 결국엔 이 로스터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부심만 부여하는 인물일 뿐이다. 하나의 현상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인 커피 로스터도 커피 마시는 것을 하나의 의식같이 치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커피 로스터는 항상 커피를 마셔대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어느정도 침착하게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인턴 기자는 커피를 마시면 몸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커피와는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커피를 마셔대는 인물과 마시지 못하는 인물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항상 깨어있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정부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좀비들에게 한마디 하는 소설이다. 물론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긴 하지만, 이들 정부는 바로 현대 좀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비판은 나를 포함하여 현대적 좀비일 수 있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통해야만 이 소설의 완성된 퍼즐을 보지 않을까 한다. 결국 커피 로스터의 입장에서 풀린 의혹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설령 의혹을 풀었다고 해서 어떠한 해법을 발견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 사회의 현상만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커피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의욕을 통제하려는 정부. 비록 한시적이지만 이는 정부의 역사를 통해 배운 고단수의 머리쓰기이다.(근대적 계몽과 혁명은 커피와 같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정부이기에 대개혁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머리쓰기) 
 
갈수록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률적인 통제를 하기 위한.
 
그렇다면 과연 커피의 향기를 풍기는 이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계몽적인 선동을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예전 역사속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고 계획과 선동을 준비했다면, 이 소설은 한시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동과 도발을 억제하려는 정부이다. 선동을 억제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선동을 이용하는.
 
웃기게도 소설속 사건과 연관된 정부 관리 또한 커피를 마시는 자이다. 그들도 항상 깨어있다.(그래서 이런 머리쓰기가 가능하다. 우리모두 좀비가 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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