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난 이 책이 나왔을때, SF소설인 줄 알았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타이틀에서 보듯이... 시간 여행자라는 어감이 아내라는 어감보다 꽤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시나 아내(혹은 한 여인)가 중심에 있다. 시간 여행자는 이 아내를 돋보이게 하는 절묘한 수식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너무나 새롭고, 독창적이다. 시간 여행자라는 말 속엔 무궁무진한 상상이 들어가 있다. 이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상상을 절묘하게 녹인 다음 사랑이라는 틀에 부어 만든 것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이다.

헨리(남자 주인공)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그가 수족(手足)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 일탈이라는 특이한 유전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작가의 생각을 읽어 볼 순 없지만, 왠지 '시간 일탈 장애'라는 것을 '기면병'에서 가져 오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이 '시간 일탈 장애'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때고 또 어디서든 과거로 미래로 불쑥 불쑥 옮겨다니기 때문이다. 또 '기면병'도 그렇듯이 무슨 큰 병 걸린 사람처럼 보이거나 그 장애가 확실히 분간되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헨리는 클레어를 만난다. 처음 이들이 만났을 때는(처음 만났다는 것은 헨리 기준이 아닌 클레어의 기준이다.) 1977년으로 헨리는 36세, 클레어는 6세때다. 30살 차이가 있는 이들의 만남이었지만, 사실 이들의 나이차는 8살 차이에 불과하다. 이게 바로 시간 여행의 묘미이다. 헨리는 30세때 어느 순간에 과거로 훌쩍 돌어가 6살의 클레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클레어는 이때 헨리를 처음 만났고, 헨리는 이미 클레어를 몇차례 만난적이 있다. 어쨌든..클레어는 이때부터 헨리라는 이상한 아저씨의 존재를 인식했으며, 이들의 운명도 함께 시작되었다.

이 소설은 그 구조가 특이하다. 먼저, 시간 여행을 한다는 소재이다 보니... 단순히 시간 진행에 따라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때는 과거에서, 어느때는 미래에서, 어느떄는 현재에서...그만큼 이 소설 역시 시간축이 뒤틀려있지만, 그러나 큰 하나의 이야기는 일관되게 나아간다. 이 이야기 자체는 시간 순서가 아닌, 사건들의 연관성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시 헨리와 클레어이며, 이 둘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간다. 한마디로 1인칭 시점이 2개가 있다는 이야기다. 헨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될때는 클레어는 제3자에 불과하며, 마찬가지로 클레어 시점으로 진행될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이것이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헨리의 경우 과거(혹은 미래)의 헨리와 현재의 헨리가 서로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24살의 헨리가 5살의 헨리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럼 역시 사건의 일관성에 따라 그에 알맞는 시점을 갖게된다. 꼬마시절의 헨리가 사건의 중심에 있을땐...성인인 헨리는 같은 1인칭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타인의 관점으로도 보여지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시점의 변화가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굉장한 중심축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존 시간 여행하면 떠오르는 상상에 더욱 더 힘을 보태준다.

가령...40대의 헨리와 30대의 헨리는 똑같은 헨리(헨리입장에서는 '나'의 시점)이다. 그런데 30대의 헨리는 40대의 헨리를 질투도 한다. 왜냐하면..클레어는 어느 시간대나 한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비약에 따라서는 몇명까지도 (이야기 구조에 상관없다면 수십명..아니 수백명의 헨리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와 또다른 내가 주는 갈등이 이 소설에는 담겨져 있다.

이 소설은 역시나 로맨스 소설이다. 좀 진부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항상 새롭다. 왜냐하면...헨리는 항상 사라지고 클레어는 항상 걱정을 하며, 사라진 헨리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사건을 엮어들어오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만약...이 공간안에 나와 똑같은 내가(정말 또다른 나) 있다면...나는 또다른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찰떡궁합이 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성격과 외모는 똑같지만..결국 그때 그때 순간의 생각은 서로 다르기에 결코 똑같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암튼...헨리는 또 다른 헨리를 이해하고 이런 헨리들(복수형)을 클레어는 이해를 한다.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지만은 이래야만 이 러브 스토리는 돌아가고...또 정말 감동을 주기 때문에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정말 특이한 소설이다. 그리고 독자가 생각하는 오묘한 상상을 잘 이용한다. 이런 상상을 독자로 하여금 의도에 맞도록 유도도 시킨다. 그래서 처음 단순했던 플랫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내면이 더욱 더 실감나게 그려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애틋한(여기서는 애틋한 의미의 사랑) 감정을 풀어나가지만, 또 다른 한편엔 사랑을 지지해주고 유지해주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가족이라는 소재가 소설 전반에 에둘러있다.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며 이룩하는 것은 사랑의 절정인 가족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가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지나친 소재로 보일 법도 하지만, 남용하지 않고 적절히 사용되어있다. 절제도 해가면서...그래서 이 책이 산뜻한 것이다.(시간의 패러독스는 크게 의미없다. 이 둘의 이야기에 논리고 뭐고 들이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참...이 소설은 최근 '라스트 데이즈'로 우리 곁에 돌아온 <구스 반 산트>감독이 현재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자 주인공 클레어의 역할은 '기네스 펠트로'가 맡는다고 한다. 음...왠지..클레어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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