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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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간이치로...

한 낭사가 있었다. 그는 난부의 번사이었고, 또 난부의 탈번자이었다. 그리고 그는 메이지 유신의 격변기를 피와 눈물로 맞이한 신센구미(신선조)였다.

이 책은 '아시다 지로'가 20여년 만에 완성한 한 무사의 이야기이자, 그의 아내,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피가 흩뿌리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전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매우 거친이야기이지만, 그 속은 한 없이 따뜻하다. 

각 450여페이지나 되는 두권의 책이 주는 무게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책속에 들어있는 뜨거운 전우애의 이야기이자,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주는 이 소설은 수많은 글이 주는 무거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소설을 읽는 즉시, 한 무사에 동화되고, 이 무사의 족적이 궁금해져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예전에 무사꿈을 키워왔고, 애틋한 사랑때문에 탈번했던...오사카의 난부 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 시작부분이 그의 끝부분이다. 

과연... 이 사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권의 소설은 이 사내를 추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소설의 화자들을 통해 결국 도쿠가와 막부가 내리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를 연 그 전쟁 후 50년이 지나 어느 신문기자(이 소설에선 이 기자의 말 한마디 조차 없다.)가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문무를 겸한 한 남자를 추적하고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요시무라와 조금이라도 옷깃이 스쳤던 여러 무사들과 주변인들(바로 이들이 '화자'이다)의 탐문으로 이 남자의 생애, 그리고 그 과정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초반부에는 요시무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인물들은 그리 사건 중심적인 이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잠깐 스쳤던 인물들이 내놓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정확히 이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인지, 무술이 뛰어난 사람인지..도대체...이 남자는 무슨 공적을 세웠는지 말이다.

그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수많은 다른 무사들을 베어넘긴 이 남자는 이 남자에게 마지막 전투라 할 수 있는 '도바 후시미'전투에서 엄청 큰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할복하거나(이 시대의 이 상황에서는 가만 앉아 죽느니 할복이 가장 큰 명예였다..)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터를 떠난다. 그리고 정신을 놓지 않고, 오사카의 남부 번에 들어간다. 제발 살려달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말이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살기위해'라는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들어간 이 오사카 난부 번에서 그는 할복을 한다.

보이지 않는 화자는 이 남자의 죽음으로 향한 이 과정을 캐어낸다.

갈수록 이야기를 풀어놓는 인물들은 일개 무사에서 점점 더 계급이 올라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남자는 전설이 되어간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 구조라 시간축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 남자의 슬픔이 그려지는 가 하면, 어느 순간에 이 남자의 극도의 활약이 그려지기도 하며, 더불어 이 남자의 행복도 그려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 사랑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웃음이 있다.

이 책에 관한 리뷰를 다른 곳에서도 봤다면, 이런 문구를 한번쯤은 봤을 법도 할 것이다.

"절대로 공공장소에서는 이 책을 읽지 마라... 눈물 흘리는 당신이 매우 난처할 수 있다."라는 문구말이다.

이 '칼에지다' 상(上)권은 크게 동요할 만 한 것이 나와있진 않다. 하지만, 1권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이르고 2권에 이르러서는 그 격함이 밀려온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새벽탓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읽으니..감정이 몰입되어 눈물이 흐른다고 혼자 자탄하면서...

이 소설의 가장 객관적인 소재는 바로 사무라이이며, 무사도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이다. 이 무사도를 멋드러지게 묘사를 한 것은 무사도를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인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충의'보다도 더 본이 되어야 하는 '인의'.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바로 '충의'와 '인의'를 똑같이 보지 않고, 이 두개의 '의'가 교묘히 부딪혔을 때,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충의'대신 '인의'를 선택하는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그리고 감동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높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말단 무사에게 죽어라 죽어라 다그치는 것은

        스스로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어야말로 무사의 영예라니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시작했단 말인가

        내 나름대로 사서오경을 배우며 뼈에 사무치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공자님은 그런 말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군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하셨어도

        충효를 위해 죽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 p .237

그는 무예 뿐만이 아니라 문예 또한 출중하여...그는 그 자신의 고집을 '충의'가 아닌 '인의'에 묻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전장이든 비밀임무를 행하든 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신은 죽어서는 안되기에 그렇게 다른 이들을 베고 또 베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매우 소박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의'의 중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행할 수가 없었다. 소박했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선 인터뷰를 통해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보여주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 반대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부분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지금도 어렵다. 어떻게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들어가 화자가 주인공으로 될 수 있을지...그래서 감동이 더 클 순 있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것이 어쩌면..각기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을 짜 맞추는 과정의 또 다른 연장선이 될 수 있다고도 느껴진다. 기억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들 이기 떄문이다. '기억의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여러 인물들이 생각했던 사건들의 겹침이다. 어떤 이는 한 사건에 대해 짧게 말하는 반면에 다른 이는 그 짧은 사건속에서 궁국의 감동을 이끌기도 한다. 이것이 기억의 단편들이 주는 묘미이다.

그렇게...요시무라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립되어가고, 다시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전설로 끄집어 나오게 된다.

'요시무라'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또한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다. 이는 그 사람의 성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시대가 정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이 사내는 매우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남자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이 책은 역시나 사무라이 이야기이므로 전투내지 칼싸움에 대한 묘사가 매우 진지하며, 흥미롭다. 감동을 잘 못느끼는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책에 쏙 빠져들것이다.

이렇게 책을 통해...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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