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 쾌락으로서의 역사 읽기 코기타툼 2
버트런드 러셀 지음, 박상익 옮김 / 푸른역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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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란 일종의 서사적 감상이다. 들여다보면 때와 장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삼박자가 갖추어지면, 여러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본다. 그런데 역사를 맞추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상관없어 보이는 퍼즐 조각이 서로 꿰맞추어 진다는 것이다. 마치 대륙간의 이음새가 얼추 맞추어지는 것처럼.

러셀은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에서 쾌락의 역사를 한마디로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명시한다. 일단 역사에서 배움은 배제하고, 호기심과 흥미라는 시동을 걸면 된다. 시동이 걸리면 또 다른 형태의 일상의 여가라는 목적지로 출발할 수 있다. 일상의 여가야말로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다. 러셀에 따르면 그렇다.

역사는 방대하다. 그렇게 방대한 역사의 가짓수 역시나 방대하다. 우주의 역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제외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역사를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역사를 엮음으로써 역사에서 과학을 끄집어낼 수 있으며, 인류의 역사에서 반목의 역사를 꺼냄으로써 전쟁의 역사를 뽑아낼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역사를 뽑아냄으로써, 좁게는 인과적 영역부터 넓게는 상관적 영역까지 역사라는 시선으로 우주를, 인간을, 삶을 읽을 수 있다.

앞서 역사는 방대하다 말했지만, 이 방대한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댈 수 있다. 거시적 역사속에서 미시적 역사만을 따로 걸러 세상사를 읽어낼 수 있다. 미시적 역사는 개인의 역사일 수 있고, 한정된 뭔가의 역사만을 다룰 수 있다. 인생의 여가를 한정된 분야에 쏟음으로써 지적 희열은 앎의 쾌락으로, 호기심의 충족으로 여가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물론 대략적인 거시적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개인의 맘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역사를 어떻게 읽었을까. 이 책은 두껍지 않다. 100페이지도 채 안된다. 따라서 거시적 역사를 읊어댄다. 역사속에 휘말린 인물과  소용돌이의 역사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써댔던 인물들 위주로 풀어낸다. 시간과 장소를 선점했던 인물들 중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책에 기술된 몇가지 역사적 소재들은 러셀이 전하고 싶은 내용의 근거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뚜렷한 구분이 된 것은 아니지만, 비스듬히 보면,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구분은 역사 읽기의 한 예시로 제공되었다 뿐이지 역사 그 자체를 열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읽는 방법과 서로 다른 사건 또는 인물의 엮임에서 전혀 다른 시각을 꺼낼 수 있음을  일종의 에세이 형식으로 선보였다는 것이 이 얇은 책의 가치인 듯 하다.

우리가 역사를 읽어낸다는 의미는 일종의 보편적인 프레임을 선택하고 그 액자속에 그려진 역사를 보고 외우는 일종의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러셀은 제안한다. 우리가 자신 마음대로 프레임을 선택하고, 여러 다른 퍼즐들을 이리 저리 끼워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밝혀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고 말이다. 물론 자신의 시각에 책임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닌가.(자신의 시각에 책임질 필요 없다는 의미는 다른 의견 역시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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