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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목이 활(弓)이 아니라 활(活)인 이유는 '지켜 낸다'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부여했기 때문인듯 하다. 그렇다고 철학이 녹아있는 영화는 아니고, 다만 마지막에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뱉으면서 영화처럼 끝냈다. 사실 나는 이 말이 맘에 든다.
활(活)
활(活)을 '지켜 낸다'로 풀이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원초적인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이 전제는 '잴 수 없는 기량'이다. 이 잴 수 없는 기량은 상대에 맞추어 발휘된다.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고나 할까. 상대가 그릇이라면 주인공은 물이다. 상대의 기량에 맞추어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발산한다. 월등한 기량이 받춰줘야지만 지켜내든, 공격하든 할 수 있다. 이런 기량이 없다면 자뻑이 된다.
영화는 아쉬운점이 있다. 당연하다. 완벽한 영화는 있을 수 없다. 대신 그 모자람을 어떻게 채워넣는지에 따라 완성도는 올라간다. 이 영화는 초반의 모자람이 후반에 채워진다. 일단 영화 초반,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던 철학의 부재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제목은 'Zen in the art of Archery (번역서 : 활쏘기의 선)'. 언젠가 'art'에 꽂힌 적이 있었는데, art라는 것은 굉장히 유연하다. 우리말로 하자면 예술은 곧 미학이 될 수 있지만 본래 의미적으로는 기예이고, 재능이다. 또 숙달이다. 그러니까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보편적인 방법이 곧 art이다. 물론 이것은 art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이고, 우리 시대의 art는 유형을 무형으로 보듬어 내는 가치를 뜻한다. 그림이나 조각 등 이런 것은 유형이지만, 그것이 뿜어내는 무형의 것에 가치를 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art가 부족하다. 즉, 주인공 남이가 활을 익히는 과정, 노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더하여 활(活)을 푸는 스토리가 부족하다. 단순히 여동생 자인(문채원 분)을 구하려는 것이 활(活)은 아니고, 무자비한 살생을 지양하는 것이 활(活)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활 쏘는 경지에 오른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지만, 관객인 나로서는 art에 접근하는 태도가 상상했던 것 만큼 모자랐다. 그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그렇다치더라도, 그의 정신적인 완성도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제목에서 풍겨대는 것은 자비심을 뿜으며 활인궁(활인검에 비유해서)을 쏘아댈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실용주의를 쫓는다. 목표가 정해지면 바로 계획을 세우고, 곧 최선을 다하며 실천한다. 이 선에서 옆으로 새지도 않고, 더 나아가지도 않는다. 제목과 맞질 않는다. 물론 딱 한 번 활을 거두는 장면이 있긴 하다.
최종병기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듯한 '최종병기'라는 단어가 장난스레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활(活)' 보다는 '최종병기'라는 타이틀이 영화를 대변하는데 더욱 적합하게 느껴졌다.
최종병기의 의미는 국가의 기능 상실이다. 군대라는 집단이 해야만 하는 역할과 기능은 눈녹듯 사라진 대신, 이 모든 것을 개인에게 일임한다. 물론 영화속에서 말이다. 즉, 국가가 해 줄 수 없는 것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해내야 한다. 그 손에 들린 것이 당시 항복을 했던 조선이 묵인하는 최후의 병기가 된다. 한마디로 다윗의 돌이라 부를 수 있을 듯.
이 최종병기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중의미가 있다. 즉, 이미 항복해서 기능이 상실된 군대 대신 개인이 스스로 손에 든 다윗의 돌이라는 점과 마지막 최종적 한 발이라는 복선.
이 마지막 한 발을 쏘는 장면에 들어서야 영화 제목과 부합된다. 말 그대로 '최종병기 활(活)'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활(活)은 자비가 아니라 희생이다. 즉,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살린다는 의미가 된다. 지켜 낼 것은 끝까지 지켜낸다는 의미 또한 살린다.
기타
사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혼례 장면이다. 전반적으로 위화감이 흘렀다고나 할까. 이 혼례 장면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서막이 시작되는데, 혼례에 이은 청나라 병사들의 침략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지게 하는데 꽤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혼례를 준비하는 과정도 의외로 길게 느껴진다.
혼례를 치르는 와중에 청나라 병사들이 말 타고 쳐들어 와 조선 군대와 벌이는 전투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성곽에서 전투 장면에서는 성곽이라는 이미지보다는 관광지 이미지가 컸다. 관광지에서의 전투라니...관광지 답게 너무나도 깔끔한 곳이었다. 차라리 야밤의 전투가 나을 뻔 했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이 이후 장면부터 사소한 위화감을 덮는다. 이제부터는 영화속으로 빨려 든다.
위에 올린 사진이 쥬신타역의 류승룡인 이유는 말 그대로 류승룡이 영화를 이끌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편인 남이의 박해일보다는 적인 류승룡이 나올 때 긴장감이 돌았다. 연기는 류승룡에게 한 손 들어주고 싶다.
전쟁을 담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매우 소박하다. 전쟁 속 전투, 그것도 게릴라 전투를 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소박함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더 부각된다. 수풀과 절벽, 그리고 벌판. 중국영화였다면 아름다운 색채를 더해 원색의 화면으로 칠해 놓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거칠다. 거친만큼 소박하다.
요즘 볼 영화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종병기 활'은 확실한 2시간을 보장한다.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같이 긴장감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겠다.
PS.
7광구 나오자마자, 아니 하지원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7광구가 정말 보고 싶었다. 왠지 스케일도 있을 듯 싶었고. 그런데 너무나도 평이 좋지 않아 퀵을 선택했다. '퀵'은 '해운대'와 '7광구'를 연출한 '윤제균'감독의 영화이다. '퀵'에 대한 감상도 올리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나는 것도 없고, 또 기억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이 좋은 소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쯤? 재미는 그런대로 있었지만 이 역시 좀 많이 안타까운 영화였다는 생각. 그러고 일주일 후, 평은 안좋지만 7광구를 한 번 봐볼까 했는데 '최종병기 활'이 재밌다는 소식을 듣고 '7광구'에서 다시 '활'로 방향을 바꾸었다. 7광구는 이제 생각이 없다. 갈수록 평점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