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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최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어렸을 때 읽었던 탈무드의 한 꼭지가 생각난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유람선에 한 랍비가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랍비를 알아본 어느 여행객이 랍비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정말로 신은 존재하는겁니까? 나는 신을 봐야만 믿겠소."
랍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 여행객을 데리고 유람선 객실 밖으로 나왔다.
"저기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여행객은 랍비의 말대로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아니, 저렇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어떻게 쳐다볼 수 있습니까. 너무 눈부시지 않습니까?"
랍비는 여행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소. 신께서 만드신 태양조차도 잠시나마 쳐다볼 수 없는데, 어찌 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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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토막의 글을 보고 정말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랍비의 재치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 논증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제목에 달려있는 '변호사'라는 단어에서 '필승'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지만,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쟁점마저도 마치 타인의 변호사가 된 것 마냥 중간자의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함을 이른다. 이것을 저자는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으로 이끌어냈고, 더불어 '역지사지의 원칙'과 한데 묶어 '변호사 논증의 네 가지 원칙' 중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이 원칙은 논쟁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논쟁을 합리적으로 이끌어가는 바탕이다.
논쟁은 번듯한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운용과도 같다. 아무리 변칙적인
(거칠거나 뜸을 들이는) 운전을 하여도 철로 위를 벗어나면 안된다. 철로 위를 벗어나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끔찍한 사고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안전 운행이나
(목적지를 가기 위한) 네비게이션 기능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기기 위한 논쟁의 최종 목적지는 자신의 주장이 상대에게 먹히는 것이다. 자신만의 논증으로 이루어진 '주장'이라는 기차를 운행하여야 하지만, 엉뚱한 곳에 도착했다고 논쟁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기는 논쟁'에서 '이기다'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논쟁꾼들이 건네는 대화의 맥락은 '주장'이라는 기차가 달릴 철로를 의미하는데, 어쨌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바는
'오직 철로 위를 달리는 것만 생각하자'이다. 같은 의미로, 어떻게 하면 철로를 벗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궁리이기도 하다.
저자는 논쟁에 이기기 위한 방법을 네 가지로 압축해 놓았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이고,
둘째는 '근거 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이며,
셋째는 '입증의 책임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이고,
넷째는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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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가지의 원칙들은 사실 합리적 논쟁을 이루는 뼈대이다. 결국 '이기기 위한' 논쟁은 이들 뼈대에 어떤 논증을 통해 살점을 붙여가느냐가 요점이다. 반대로 논증이 잘못되었다면, 그러니까 엉뚱한 살점이 뼈대에 붙어있다면, 이는 '논리적 오류'로써 결국 위 네 가지 원칙 중 최소 하나의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논쟁을 하다
'논리적 오류(Logical Fallacy)'를 발견했다면 논리적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 무슨 원칙에 위배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해당 원칙에 위배되지 않게 바꾸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저자가 책에서 쉬운 예제들을 통해 줄곧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기차는 자신이 설파할 주장이며, 기차에 딸린 칸들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증이고, 기차가 달리고 있는 철로는 자신의 주장을 이끄는 맥락이며, 논쟁은 이 모든 것을 조합한 기차의 운행과도 같다. 즉, 어느 것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논쟁이든, 설득이든, 대화든 허공속에서 부서진다. 물론 재건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처음에 언급했던 탈무드의 한 꼭지를 살펴보자. 여담이지만 어렸을 때 읽은 아동용 탈무드에서 생각나는 이야기는 이 꼭지 뿐이다. 그만큼 어린 나에게 강렬했던 듯하다. 위에서 랍비는 신을 보여주라는 여행객의 물음에 신이 아닌 태양을 언급하였다. 그 뒤에 여행객의 반론이 없기에 랍비의 현명함과 재치를 드러내며, 교훈적인 인상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사실 여행객은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즉, 기차가 철로를 이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맥락이 무너졌으며, 그 결과 랍비는 논리적 오류를 드러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논리적 오류는 '논점 일탈의 오류'이다. 논점 일탈에는 주제 관련성과 증거 관련성이 있는데 특히 증거 관련성 논점 일탈로 볼 수 있다. 다시금 랍비는 태양을 신이 만들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적으로 저자가 언급한 네 가지 원칙 중, 신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근거 제시의 원칙'을 위배하였으며, 태양과 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근거 확인의 원칙'을 위배함으로 말미암아, 여행객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과 '역지사지의 원칙'을 위배하였다. 또한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되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지적할 수 있다. 여행객이 신에 대해 입증하라고 한 것부터가 '역지사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냐고 말이다. 그 말에도 일단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논쟁이라는 것이 일단 받고 치는 것이므로 여행객이 던졌던 난처한 질문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신의 존재와 관련하여 여행객에게 메뉴얼 성격을 띤 답변을 할 수도 없다. 메뉴얼적인 답변은 이미 대중에 공개되었을테고, 그 답변을 깰 수 있는 논리가 이미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메뉴얼적인 답변을 일단 내놓고 반응을 살필 수는 있다. 어쨌든, 이 이야기에는 랍비의 답변에 대한 여행객의 반론이나 반응이 없다. 그래서 여행객은 오류를 저지를 여지조차 가지질 못했다. 그래서 여행객은 무례하게 물어보지 않은 이상 특별히 오류를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논쟁에서 과연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교화시켜 자기편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할까? 논쟁에서 졌다고 자신의 의견을 쉽게 바꿀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논쟁을 할까. 타깃은 구경꾼이다. 중간자적 입장에 서있거나, 상대쪽 깃발 아래 서 있긴 하지만 농도가 옅은 이들이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논쟁이 절차적으로 논리적으로 문제없이 잘 이루어져서 한쪽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논쟁에서 진쪽의 진영에서 우리가 졌으니 그쪽 의견을 백분 수렴하겠다, 전향하겠다, 이렇게 말할까. 물론 장기적으로는 그럴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따라서 토론 프로그램 시청자나 참여하기 위해 들린 시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토론을 하는 것이다. 결국 단 둘이서 하는 토론은 별 의미도 없다.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냥 대화로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너무나 목맬 필요 없다는 것이다. 즉, 논증에 대한 과정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이 과정에 오류가 없다면 논쟁에서 이기는 확률이 커진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반복되는 공격과 방어만이 있다. 공격 루트는 다양하며, 방어는 이 루트를 봉쇄하는 데에 있다. 공격자가 다른 루트로 바꾸게끔 하고, 봉쇄를 하여 또 바꾸게 하고 더 이상 바꿀 루트가 없을때까지 방어해야 한다. 물론 공격자가 도중에 허점을 보이면 자신이 방어자에서 공격자로 돌아설 수 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공격자에서 방어자로 입장이 변화된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자고 하는 것은 뭔가. 수많은 오류에 대해 공부해서 철두철미하게 상대의 오류를 잡아내거나 나의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에 앞서 위에서 언급한 '
따라서 '이기는 논쟁'에서 '이기다'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부분을 다시 꺼내 든다. 변호사가 이긴다는 것은 변호사 의뢰인이 진실을 말했다는 뜻일까. 이것은 희망사항이다. 변호사의 논증이 먹혔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 된다. 진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변호사가 이기기 위해서 논리학을 완벽하게 깨우치고 있을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그는 의뢰받은 사건의 해당 분야 혹은 연관 분야에 대한 공부를 꼼꼼히 했을 것이다. 즉, 논증은 논리학속에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 분야를 연구하는데서 탄탄해진다. 다만 논리는 연구했던 것을 강렬하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관련 분야의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을 우선 꼽는다. 그리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 두 번째다. 상대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며, 또 상대의 말을 우선 경청함으로써 자신이 논쟁해야 할 방향을 설정해 준다. 효과적인 논증이 가능해진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 이는 저자의 원칙 중 첫 번째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과도 상통한다. 즉, 자비로움이나 역지사지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열린 마음을 제공한다. 결국 '이긴다'는 것은 논쟁에서 승리한다는 것도 있지만, 논쟁에서 지더라도 남는 게 있고, 배운 것이 분명 있다는 의미이다. 변호사도 그렇지 않은가. 변호에 졌다고 바로 문닫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수수료가 적어질 뿐이다. 물론 계속 지면 심각해지겠지만.
이 책은 일반인 교양서적으로써 훌륭하다. 논리학은 그 개념이 어렵게 생각되어지기도 하고, 또 접해보기 쉽지 않은 분야인데 좋은 예들로 풀어 설명하니 개념이 쉽게 이해된다. 꼭 논리학의 개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재미로 쉬엄쉬엄 읽어나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