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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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한줄기 새지 않는 캄캄한 밤을 묘사하는 데에는 글로 나타내는 것이 최적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손짓, 발짓해가며 밤을 표현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어둠을 표현하기로는 글에 견줄 만한 것이 없다. 단어의 궤적으로 어둠 안을 비춰가며 샅샅이 훑어내기에 그렇다. 빛도 색깔도 형체도 무엇 하나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은 에두르는 언어 묘사로 충만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글이라는 것은 결국 작가가 지닌 단어의 나열이다. 즉 단어야말로 작가가 고심하여 고른, 최전선에 투입되는 무기이다. 종종 강력한 단어가 장착된 책을 만나면 뭔가를 발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글보다는 문장, 문장보다는 언어조각(=단어)에 힘을 쏟아내는 책이다.

  작가는 독재시대라는 어둠을 나른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그럼에도 이야기라는 통으로 읽었다기보다는 언어의 조각 엮음으로 읽었다. '헤르타 뮐러'는 자신이 겪었던 어둠의 실체를 보이기 위해, 어둠안에 퍼져있는 공포의 냄새를 알리기 위해 보편적 언어에 숨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언어조각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의 조각 조각을 엮은 글이
「마음짐승」이고
「숨그네」이다(물론 그녀의 다른 작품도 그럴 것이다). 「숨그네」는 몇 달 전에 읽었고,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보질 않았다.
 

'마음짐승' 첫 페이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에드가가 말했다."
<p. 7>
그리고 글의 끝, 마지막 페이지의 끝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에드가가 말했다."
<p. 309>
 
  마치 고리처럼 처음과 끝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읽고 처음으로 되돌아가 또 한번 읽었다. 다시 읽어야만 첫 페이지의 첫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읽을때에는 무슨 의미인지 새길 필요없이 지나쳤지만, 다시 읽어보니 확연히 작가의 심정이 들어온다.
머릿속에 풀이 자란다. 말을 하면 풀이 잘린다. 침묵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제멋대로 두번째, 세번째 풀이 계속 자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운이 좋다.
<p. 8>
  여기에서 풀이란 누구나 자유롭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나 사상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을 무성히 자라나는 풀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말을 하면 김매는 것이고, 누군가 사상을 통제하면 그런 풀들이 무참히 짓밣힌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운이 좋다." 이 의미는 자신이 받은 죽음의 번호를 내팽겨쳤다는 뜻이다. 운좋게 망명함으로써 말이다. 그럼에도 지난 과거의 일을 함부로 떠들수 없음을 은연히 내비친다. 그래서 '헤르타 뮐러'는 머릿속 김을 매기 위해 이 소설을 썼나 보다.

  다시 읽음으로써 미안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다시 한번 고통을 받는다. 몇몇은 죽
음을 향해, 몇몇은 망명을 향해 내달린다. 다시 읽어낸 문장 속에선 죽음이, 새로운 삶이 중요하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응축된 감정, 싸늘한 공간, 생생한 인물이 중요했다. 난 그녀가 이 소설을 쓰면서 공포스러웠던 당시 상황에 몸을 움찔거렸다기보다는 아찔한 추억을 더듬어 내려오며 주변 인물들이 그리워 눈물지었을 거로 생각한다.

  「마음짐승」안에 묘사된 독재체제가 공포스러웠냐 하면 솔직히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내가 방금 뱉은 '솔직히'라는 단어는 작가의 의도와 상반될 때야만 그 의미가 유효할 것이다. 따라서, 바로 전에 언급한 문장안에서 '솔직히'라는 단어를 지운다. 재차 언급해본다면, 「마음짐승」 안 에 묘사된 독재국가가 공포스러웠냐 하면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체제와 관련하여 공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체제의 치사함과 얍삽함, 그리고 더러움만을 내비친다. 치사한 놈들이 조종하는 사회를 담담히 써 내려갈 뿐이며, 주인공은 말려 죽이려드는 통제에 순순히 따르지 않을 뿐이다. 기숙사 동료 롤라가 자살하자 국가는 죽은 이의 당원 자격을 박탈하였고,  더불어 대학에서도 제적시켰다. 이 얼마나 치사한 짓인가. 롤라는 성폭행 당하였는데도 말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도구일 뿐. 이런 세상은 공포스러운 세상이 아니라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다. 공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국가 시스템이 사적인 부분을 침범하면서까지 권한을 행사하는 더럽고 치사한 세상 말이다. 한마디로 사적 생활은 없는 세상. 언어유희를 부리자면 정말 '투명한 세상'인 것이다.

  공포스러운 세상은 동시다발적 죽음이 만연한 세상이다. 혐오와 증오의 세계는 주위 사람들의 순차적 죽음이 대기하고 있는 세상이다. 죽음이 누적되어가듯이, 감정의 찌꺼기 또한 가슴 한 켠에 응어리지며 쌓여만 간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시대를 기억하고, 그 사람들 중 누구는 당시대 사람들의 숨소리를 기록한다. 숨멎음까지도. 이 슬픈 기록은 작가 마음속 짐승을 해소시키려는 작용일 수 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마음속에서 짐승이 자라고 있다는 그 절묘한 표현은 독재시대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답답하지만 슬픈 침묵의 시대를 대표한다. 속에선 짐승이 울부 짖지만 겉으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상을 보내야만 하는 침묵과 무덤덤의 시대.

           
<표지를 벗긴 책이 예뻐서 사진을 찍어봤음...>

  작가는 침묵의 시대를 언어의 미끈거림과 아름다움으로 포장한다. 역설적이다. 하지만 침묵을 강요 당할 수록 생각은 복잡해진다.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심리적으로 복잡했던 경험과 관계있다. 스스로에게 무수히 많은 말을 하였지만 밖으로 내뱉는 말은 몇 없다. 그래서 소설「마음짐승」에서는 대화는 있지만 대화체로 표현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러니까 큰 따옴표가 없다. 또 생각을 나타내는 작은 따옴표도 없다. 대화와 생각 모두 같은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이 모든것은 하나의 문장안에 고스란히 숨겨져있다. 읽다보면 대화이고 생각이다. 독재시대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중인 듯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최소한의 챕터를 구분하는 숫자 표시마저 없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통짜로 하나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모양새다. 마치 날짜 없는 일기 모음과 같다. 그만큼 소설에서 벗어나 사실적 글쓰기로 보이지만 표현의 유려함으로 인해 사건의 객관적 진술보다는 주관적 색체가 강하다. 그만큼 사물을, 사건을, 인물을 보는 콘트라스트(대비)의 차이가 나타난다. 사실과 은유가 섞여있어 주인공은 마음에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비관적 삶과 그에 대한 저항과 순응이 카드패 섞여 있듯이 교차되어 진행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마음짐승이 커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마음짐승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콘트라스트이다. 나를 기준으로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 그 콘트라스트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마음속에서 키우는 짐승도 자라난다. 그럼에도 외부로 분출시킬 수 없음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내면의 세계에서는 결코 마음짐승을 죽여낼 수 없다. 머릿속에서 자라는 풀과 가슴 언저리에서 자라는 마음짐승, 이 또한 당시에 견뎌내야만 했던 인생의 무게였으리라.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서 떠오른 또 다른 소설이 하나 있다. 국내 소설이다. 바로 윤대녕의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이다. 여기서 '호랑이'는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과 닮아있다. 두 책의 큰 차이점은 윤대녕의 소설 속 주인공은 '호랑이'를 낚기 위해 낚시질을 하지만, 헤르타 뮐러는 아예 망명의 이름으로 자신의 세계를 떠난다. 시대가 두 소설 속 주인공을 나락으로 몬 것은 분명하지만 윤대녕의 주인공은 여전히 공간 속을 활보하며 (마지막엔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내면에 입은 상처를 어느 순간 치유하지만, 헤르타 뮐러의 주인공은 망명이라는 수동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일탈한다. 따라서 상처는 여전히 내면에 남아 있고, 사실상 극복하기엔 벽이 너무 높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은 운이 좋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광고와는 달리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정말로 시대의 공포가 만였했을 망정 헤르타 뮐러는 자신의 언어로 중화시켰기 때문일 듯. 지금은 작가에게 한낱 기억 일부로써, 추억의 단편으로써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짐승이 할퀸 가슴의 상처는 그녀를 때때로 당시 독재시대로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그녀는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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