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10년) 추석에는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 손님들을 본 것은 삼 주 정도 되어가는 듯. 그런데 추석 음식장만 때문에 냄새가 멀리까지 솔솔 퍼졌나보다. 잠시 지나쳐가는 손님들이 아니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5분 대기조 마냥 기다린다. 보통은 늦은 밤 잠시 보는 것 정도. 그러면 집에 있는 몇 가지 먹을거리를 내놓곤 했다. 이 손님들은 길고양이들이다.

내 얼굴도 익혔나보다. 내가 마당에 나오면 자기들 왔다는 듯 얼굴만 쏙 내밀고 저쪽 구석에 가서 자리 잡는다. 어서 음식 내놓으라는 압박.

뭐 먹고 있으면 5센티미터까지 접근해도 그리 상관하지 않는 듯. 하지만 음식이 없다면 1미터 정도만 접근해도 슬그머니 일어나 뒷걸음친다. 나 도망가는 거 아냐. 그냥 뒷 자리가 더 편해 보여.라는 듯이 군다. 슬그머니 능글맞게 뒤로 물러난다. 내가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면 끄~~악@@. 온 털이 곧추 서고 눈은 뚱그런 해지고, 몸은 각목처럼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듯하지만, 여전히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면 별 일 아니다는 듯이 다른데 쳐다본다. 뭔 일 있었는감ㅡㅡ; . . .

첫 만남은 랑이였다. 마당 한 켠, 쓰레기 봉투 있는 곳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길고양이였다. 흰 바탕에 노랑털로 감싸있는 노란 고양이. 아직 성묘는 아닌 듯 했다. 어린티가 났고, 나 배고파요 라는 애처로운 눈망울에 매혹당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마른 포가 있기에 가위로 잘라주었다. 그것을 노랑이는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먹을것에 관심은 가지만 나 때문에 오지 않는 듯 하여 저 멀리 한 7~8미터 떨어져서 쭈그리고 앉았더니 그제야 나와서 온 사방을 경계하며 아작아작 씹는다. 쫑긋한 두 귀는 여전히 레이더 가동 중. 두 귀는 서로 다른 방향의 음파를 경쟁하듯이 잡아내려는 듯, 휙 돌아갔다 멈추고 다시 다른 곳을 향해 쫑긋거렸다.

          

그래 가끔 와라. 가끔 와서 들렀다고 알리면 내 먹을 것을 주마. 하지만 개미들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줄 수는 없다. 이렇게 나름 노랑이와 계약을 맺었다. 뭐 노랑이는 내 목소리에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다음날. 오라는 노랑이는 안 오고 더 어려 보이는 검은 색 무늬가 들어간 고양이가 찾아왔다. 오 이런...너무 어리고 말똥말똥 거리는 그 녀석의 눈빛에 또 홀렸다. 그래 너도 챙겨주마. 먹을 것을 내왔다. 이 녀석은 노랑이보다 더 순해보였다. 어느 늦은 밤 담배 피러 마당에 나갔더니 인기척이 났다. 이 녀석 검은 고양이가 저쪽에서 흘끔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아...부끄럽고만...다시 먹을 것을 주었다. 이번에는 한 3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놓았다. 나와 마른 포 사이가 한 3미터, 녀석과 마른 포 사이가 한 2미터 도합 우리 사이의 거리는 5미터쯤. 그렇게 모기에 피 바쳐가며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야 슬금슬금 먹을 것을 향해 온다. 10여분 되었을 듯. 처음엔 나도 쪼그리고 앉았는데 다리가 저려 그냥 맨 바닥에 철푸덕하고 앉아버렸다.

            

한동안 오질 않았다. 물론 왔을 수도 있다. 녀석들이 온지 어떤지 나만 모를 뿐. 어느날 저녁 두번째 고양이인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먹을 것을 1미터쯤 떨어쳐 놓았다. 5분 정도 지나니 낮은 포복으로 오다가 잠시 멈추고 그러고 1~2분 얼음장처럼 멈추었다 다시 오기를 몇 번 반복하였다. 결국 나와 1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그 녀석 게걸스럽게 오독오독 씹는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가려워, 내가 뒤척이면 모든 동작이 올 스톱. 눈은 커진 상태로 나를 주시. 귀는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해 레이더마냥 쫑긋 쫑긋.

후딱 먹어치우더니 휙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저쪽 마당 구석 나무들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 호.. 거기에 있었군. 플래시를 비쳐보니 어딘가 묘하다. 검은 고양이이긴 한데 표정이 왠지 낯설다.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옆에 방금 그 검은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그럼 이 고양이는 무엇? 앗!! @.@ 검은 고양이 두 마리다.

            

다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 역시나 쭈그리고 앉았다. 두번째로 만났던 고양이가 먹을 것 있는 곳으로 오더니 잠시 멈추고 그 옆에 후미진 곳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세번째 검은 고양이는 나와 두번째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지켜보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당연히 그릇은 비어 있었다. 옆에 물그릇도 상당량 줄어있었다. 짜식들~~

             

또 며칠후에 검은 고양이가 찾아왔다. 세번째 고양이였다. 이제는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었다. 처음 본 노란 고양이는 처음엔 그냥 길고양이로 불렀다. 그러다 두번째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자마자 노랑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냥 검은 고양이였다. 세번째로 또 다른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자 두번째 검은 고양이 이름이 애매했다. 그래서 이름을 다시 바꿔 주었다. 두번째 만난 검은 고양이는 눈 한쪽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하록이로 부르기로 했다. 세번째 고양이는 세번째로 만났다하여 단순하지만 정감어린 그리고 엘레강스한 삼식이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은 첫째 노랑이는 노자를 빼버리고 랑이라 부른다.

             

그 뒤, 가끔 이 고양이들은 우리집을 스쳐 지나갔다. 나와 만나면 먹을 것도 좀 얻어먹고 갔다.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갔다. 내 상상...지금은? 왔다간 표시 확실하게 한다. 마당에 있는 물건들 지네들 취향대로 제정비하고 간다. 나는 밤에 와서 다시 내 취향대로 해놓고. 뭐.. 그렇다고 심하게 어질르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역시나 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누워 있을 뿐.

이렇게 해서 추석날이 왔다. 아니, 녀석들 입장에서는 냄새 풍만한 그런 날이 왔다. 얼마나 냄새가 났는지 바람 통하라고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방에 있다 거실로 나갔더니 꺄~~~악...하며 우당탕 묵직하게 소리내며 마당으로 쏜살같이 날랐다. 삼식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방에서 인터넷하고 있는데 뭔가 뒷목이 써늘한 적이 있었다. 모니터보다가 웬지 섬뜩했다고 할까? 그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랑이가 당당하게 침대위에까지 올라갔다 막 내려오는 참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머리속이 비었다. 그냥 순간 멍했다. 랑이는? 마찬가지였다. 똥그란 눈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1초 후, 상황파악을 한 뒤에 일어서자마자 안녕~~하시고 자시고도 없이 온 몸의 털을 날리며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밖에 나가보니 어느 틈에 저 담장 위에서 망보고 있었다. 아무튼 친하지도 않을 때 그런 적도 있었다.

            

요즘 삼식이가 제일 많이 들른다. 다음으로 랑이. 하록이는 거의 못본다. 가끔 셋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도 보긴 하지만 그런 장면은 좀체 보기 힘들다. 그런데 추석때는 하루종일 거의 셋이 붙어 다녔다. 냄새가 그들을 묶어준 듯. 처음엔 음식 먹을때 순서가 있는지 차례차례 먹었다. 불고기도 줘보고, 오징어도 줘봤다. 이제는 지들끼리 펀치 날려가며 먹는다. 오..미안... 너희들의 그 얇은 우정을 내가 만들어줬구나.

            

그래도 랑이가 제일 큰 애고, 다음은 삼식이, 막내가 하록이인 듯하다. 그런데 랑이와 삼식이는 한 형제같고, 참... 나는 그들이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모른다, 하록이는 그냥 동네 꼬마인 듯. 어울릴때 보면 잘 어울리지만 왠지 하록이는 왕따같이 한 쪽 구석에 혼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애는 잘 오지도 않는다. 와도 늦은 밤에서 새벽쯤에 들리는 듯. 먹을 것을 잘게 쪼개어 그릇에 놓지 않고 손에 쥐고 있다가 녀석들이 다가오게끔 앞에 하나씩 던져주면 랑이와 삼식이는 슬금슬금 내 앞으로 전진하는데, 하록이는 멀거니 뒤에서 지켜만본다. 그러다 내가 하록이쪽으로 먹이를 던져주면 랑이는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여 하록이꺼를 빼앗아 먹는다. 불고기의 경우 하록이가 열받았는지 랑이에게 주먹을 날린다. 물론 삼식이도 랑이에게 주먹 날린 것도 봤다.

            

암튼...그렇게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한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것이 인간인 나의 생각이다.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떨어지는 낙엽들좀 운동삼아 모아놨으면 좋겠다. 마당에서 낙엽쓸면 이것들이 슬슬 기어나와 구경만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 지켜본다. 음...

          

ps...

아.. 이것을 포스팅 하기 전에 애들이 있나 하고 마당에 나가봤더니...처음 본 턱시도 고양이가 한마리 있고, 랑이가 몸을 한껏 부풀린채 그 놈 앞에서 하악질 하고 있다. 더 이상은 안돼..... 하록이는 여전히 숨어있고, 삼식이는 고개만 빼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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