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왠만하면 읽지 마세요!!


인셉션 미니멀리즘 포스터 : http://www.slashfilm.com


'팽이는 돈다. 약간 비틀비틀. 그래도 돈다.'

오래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가 과연 레플리컨트(합성인간)인지 아닌지 딱 그 모양새다. 감독이 맞다라고 한다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한다면 아닌 것이다. 그 뿐이다. 물론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처음 상영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고 밝혔지만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인셉션』은 플롯이 완벽할수록 재미가 반감되어지는 구조이다. 따라서 싹둑싹둑 화면에 가위질을 할 때 마다 논리적 구성에 대한 비논리적 상황이 증폭되어지고 관객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비어있는 구멍을 메꾸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영화 시나리오의 가장 큰 줄기는 과연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 수 있느냐이다. 물론 어떤 정신이 이 사람 머리속에 숙주처럼 기생하여 마음을 정복하거나 상시적으로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씨앗만 무의식속에 몰래 뿌려놓으면 된다. 의도된 행동을 하기 전에 무의식 속의 그 씨앗에 스위치가 켜지기만 하면 된다.

아주 멋진 아이디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을 어떤 식으로 뿌려놓느냐이다. 다른말로 하면 기억의 조각이 어떻게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지이다.

영화상 무의식속으로 잠복해 들어가 벌이는 활동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무의식속에 잠재되어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의 파편을 무의식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현상이 꿈이라는 작용이다. 무작정 머리속으로 들어가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꿈이라는 프로토콜을 가동하여 그 안에서 나름의 브라우징을 한다. 하지만 꿈으로 들어가며 보여줘야만 하는 일련의 철학적 과정이나 물리적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몇가지 과정들에 대한 것들을 내 방식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공간 계층(layer)과 무의식 계층의 혼잡이다. 더우기 한 사람이 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또 다른 사람의 꿈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혼잡하긴 하지만 나름 순서가 있다. 공간 계층은 시간을 창조하며, 무의식의 계층은 물질을 창조한다. 공간만 만들어지면 의식이 시간을 만들어 일종의 가상현실이 된다. 또 무의식에 파편화되어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물질로 재현된다.

흥미로운점은 논리가 필요없는 아니 비논리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무의식의 세계를 조정함으로써 현실의 인과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환원적 논리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꿈에서 나타나는 공간비약시간비약은 감독의 의도대로 앞서 말한 계층으로 분할하여 황당한 개꿈이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깨고 싶지 않은 꿈으로 바꾸어 놓았다.


Inception Maze by ~jcm-amorim


꿈속에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또 시간으로의 비약은 빈번하다. 일례로 집의 현관문을 열었더니 공동묘지가 보인다는 것은 공간이 수직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나뉘어짐을 의미한다. 시간비약도 마찬가지이다. 더 깊은 과거에서 얕은 과거로 흘러오기 다반사다. 다시금 또 다른 깊이의 과거로도 도약한다.

감독은 이런 비약들을 수직적으로 단계적으로 분할함으로써 산뜻하게 선보였다. 그런데 시간의 분할에서는 일종의 프로토콜이 수행된다. 그것은 바로 현실 시간의 분주(demultiply)이다. 다시말해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무의식의 세계조차 시간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계층화시켜버린다. 분주[각주:된 현실의 시간을 무의식 세계의 시간으로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이런 환원론에 대한 이야기는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와 상관없이 현실속 다른 프레임으로 얼마든지 변환할 수 있다. 현실의 프로토콜은 무의식 세계와 맞닿아 있는 톱니바퀴이자 하늘에서 내려뜨린 동아줄이다.

가령 우리는 밥과 국을 먹고, 또 반찬을 먹지만 우리안에 있는 또 다른 우리들 그렇지만 나와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본질들인 세포의 레벨에서는 당분을 먹는다든지, 비타민을 흡수한다든지, 탄수화물, 단백질을 섭취한다. 심지어 원초적 세포 단계에서는 전자 한 개, 나트륨 원자, 칼륨 원자 한 개들이 들락날락한다. 그것들만의 타임라인에서 말이다. 우리는 그 전자나 원자를 다루기 위해 고기도 먹고, 빵도 먹고, 술도 먹는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현실의 시간에 의존한다. 현실의 시간을 분주함으로써 말이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조차도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클럭이며, 전원이다. 시간으로써 공간을 제어한다.

무의식 세계에 걸친 프로토콜의 끈을 잡는 순간, 현실과 가상세계에 맞물린 톱니바퀴들을 돌아가게 만들고  이런 프로토콜의 작용으로 인해 그 이전의 계층으로 복귀된다는 프레임은 실로 즐거운 이야기이지만 신선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눈 먼 시계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 뜬 시계공의 이야기이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치자마자 멋진 글이 나온다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숙련된 소설가가 나름의 지식으로 타자기를 쳐야만 멋진 글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불확실성에 의존하며 카오스적인 상황이 수반되는 <쥬라기 공원>[각주: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교묘한 트릭을 이용한 <오션스 일레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영화의 플롯(구성)은 내가 상상했던 것이 아니다. SF적이기라기 보다는 단순 액션물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꿈 설계자(아키텍처)이다. 하지만 영화속 역할 설명은 불친절하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기 보다는 너무나 잘라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무의식과 꿈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백지의 세상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세상에서 꿈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에 퍼져있는 기억이라는 씨앗(감정이나 느낌)을 불러(load)와 비어있는 공간에서 꿈이라는 프로토콜을 통해 그 씨앗을 이미지화 시키고 물질화시킨다. 무의식이 공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꿈이라는 프로토콜이 의식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낸다. 즉, 무의식은 파편화된 기억들의 씨앗이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는 조각모음 되지 않은 혼잡한 상태이다.

꿈 설계자는 조각모음을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 더 치밀한 물질화된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물론 그 세상은 여전히 가상이다. 그러니까 꿈 설계자는 일단 표적이 되는 사람의 뇌 속의 비어있는 다른 영역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의식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표적이 일단 경험하게 함으로써 무의식속에 표적 스스로가 씨앗을 심는다.

그러니까 꿈 설계자는 무의식으로 들어가게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인 것이다. 표적이 활보할 수 있는 논리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다만 영화속에서는 이러한 것 보다는 이전 계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귀 프로토콜, 일명 '킥'을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서 분주된 혹은 제1단계 꿈에서 분주된 시간의 동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상에서는 약물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로 점프하고, 설계 프로토콜에 의해 꿈 주인의 기억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불러온다. 이렇게 함으로써 꿈에 접속한다.

그런데 두번째 점프와 세번째 점프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걸까. 그때도 당연히 약물을 주입한다. 그런데 문제는 꿈에서의 약물은 실제 약물이 아니다. 꿈속에서의 물질은 그 공간에서는 실제로 느껴지지만 결국 외부 관찰자 시각에서는 그 약물마저 가상이 된다.. 모든 것이 허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약물은 처음 제조할 때 이미 시간 간격까지 생각하고 만들어낸 것일까? 그러니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프로토콜의 또 다른 작용으로, 킥을 준비할 인원(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시금 다음 단계의 꿈으로 접속하는 듯 하다. 즉, 꿈이 주는 랜덤한 시공간을 꿈 설계자가 준비한 고정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동일한 시공간으로 바꾸기 위해(혹은 랜덤한 꿈으로의 진입을 막기위해) 그들은 다시금 프로토콜에 접근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 프로토콜은 여전히 현실에서 준비했을 공산이 크다.

내 생각은 이렇다. 원래 꿈의 단계는 1단계 밖에 없다. 더 깊숙한 공간으로의 침투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뭐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다시말해 랜덤한 공간으로 점프한다던지 조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봉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설계된 꿈이란 이런 카오스적인 상황을 미리 막고 또 변수를 확실히 줄여주는 것, 그래서 꿈에서 다른 꿈으로 예정된 점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게 내 상상이다. 최대한 계획된 그리고 고정된 액자식 꿈의 완성이 바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꿈의 단계별 설정이 되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감독은 이러한 꿈 설계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해주지 않는다. 다만 공간을 창조하고 가상의 물질을 창조한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꿈 설계자가 만든 공간은 심지어 차원마저도 만들어낸다. 앞쪽의 건물과 도로들이 일어나서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라든지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꿈 설계자가 이미 신과 같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권한(authoirity)을 얻었다고 보면 무방하다. 4차원 속에서 3차원을 볼 수 있지만 3차원에 속해있으면서 4차원을 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럼에도 영화속 꿈 설계자의 활동은 미미하다.

따라서 완벽한 꿈 설계자일 수록 완벽한 공간을 창조하며 <다크시티>에서처럼 건물이 불쑥불쑥 생긴다든지, 또 건물과 공간이 사르르 사라지게 할 순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이미 꿈 설계자로서는 부적격자니까 말이다. 따라서 영화속 꿈 설계자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영화상에서 볼거리가 밋밋해진다. 최소한 인셉션의 프로세싱 과정을 시각적으로 어떤식으로든 표현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꿈 설계자 다음으로 중요한 꿈의 방어기재의 역할이 미미하다. 방어기재야 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백미이다. 하지만 방어기재의 표현은 사실 너무나 평범하다. 총들고 쏘는 일차원적인 방어만 할 뿐이다. 먼저 이 방어기재들이 있는 공간은 논리가 필요하지 않는 가상공간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 말은 방어기재들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로 활용해야한다. 방어기재들은 이미 꿈 자체이기 때문이다. 가령 땅이 꺼지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공간을 뒤틀리게 한다든지 말이다.


타임라인 http://www.slashfilm.com/2010/07/27/infographic-inception-timeline/


우리가 흔히 아는 꿈에서의 비논리적 상황은 꿈 속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깬 후에 안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꿈 설계자는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최대한의 노력으로 완벽한 논리적 공간을 창출해야 하며, 꿈속 방어기재는 설계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역시나 최대한의 노력으로 비논리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즉, 이 영화는 논리적 공간과 비논리적 공간의 충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속 플롯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큰 틀은 꿈이지만 표적이 최대한 그 상황을 현실적 그리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꿈을 깨도 꿈을 꿨는지 몰라야된다. 단지 무의식속에 가지고 있는 정보만 뺐길 뿐이다. 그런데 꿈을 깬 후에 꿈이라고 느끼면 말이 안되기에 최대한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적이 꿈에서 느끼게 해야한다. 아무튼 현실로 돌아왔을때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평화로와야하고 나중에 인과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스위치만 동작하면 되기에 영화가 쉽지는 않다.

영화는 SF이지만 영화 플롯은 <오션스 일레븐>과 별 다를바 없다. 얼마나 정교하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들어내면 들어낼수록 현실적 장치로 회귀될 뿐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본다.

사실 아쉬운점을 길게 적어내려가긴 했지만, 괜찮은 영화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논리적이지만 비논리적인 어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딱 말이되게끔만) 관객들의 머리를 계속 쥐어짜기 때문이다. 어떤 글에서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인셉션이라고도 표현한 것을 보았다.

이 영화의 한계는 <매트릭스>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아무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감독이나 배우들의 권위가 올라가도 매트릭스를 넘을 순 없다. 아니 매트릭스, 그 아래 단계까지만 가도 대단한 성공이다. 매트릭스가 대단한 것은 영화 자체(그러니까 컨셉트)를 넘어 하나의 플랫폼으로까지 진화해 버린 점이다. 기독교, 불교, 네트워크, 과학, 가상현실, 정보통신, 양자역학, 심리학 등등 어떤 카테고리를 넣어도 왠만큼 설명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절주절 길게 떠들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줄이다.

"매트릭스가 각성이라면, 인셉션은 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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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d montreal 2010-08-0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군여

쿼크 2010-08-01 23:45   좋아요 0 | URL
사실 영상보다는 대화에 집중해야하는 영화같아요... 물론..저는 자막에 집중... 사실 제 글은 잡설이라 뭐 영화 내용하고는 별로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