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자판을 두드려본다. 사실은 가끔 들어와 두들겨보기도 하는데 곧 그러다 만다. 블로그의 맛을 잃었다고나 할까. 완결지을 수 없다는 생각속으로 나 자신이 함몰되어간다. 그럴 필요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완결 지을 필요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나귀님의 번역과 번역론에 대한 글 때문이다.
RSS 구독을 통해 글들을 즐겨보고 있는 알라딘 블로거들 중 콸리어(qualier)님과 나귀님이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을 놓고 의견 대립(아닌 대립)이 생겼다. 콸리어님의 글과 나귀님의 글을 따로 따로 읽으면 두 분의 각자 생각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데, 같이 엮어서 읽으면 뭔가 걸리적거린다. 두 분의 생각이 직접 부딪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살짝 어긋나있다고나 할까.
나귀님의 첫 글 : 부실한 미녀와 부정한 미녀
콸리어님의 답글 : 부실한 "미녀"는 커녕 부실한 "추녀"만도 못한 - 나귀 님 비판에 답한다
나귀님의 두번째 글 : "번역"과 "번역론" 사이...
사실, 두 분이 놓고 이야기하는 대상은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인 '전문 번역가' 이희재씨다. 나귀님은 이희재씨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고 했고, 콸리어님은 책도 읽어보질 않고 무슨 소리인가 라고 반응을 보인 상태다. 그런데 사실상 콸리어님이 말씀하신 나귀님의 어처구니 없는 리뷰는 리뷰가 아닌 그냥 단상쯤으로 보이는데, 콸리어님은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나귀님이 보인 이런 단상 조차도 용납할 수 없으신 모양이다. (실제로 이 글들은 리뷰 항목이 아닌, 마이 페이퍼 항목에 들어가 있다. )
그러니까 어제 나귀님이 새로 올리신 응답 비스무리한 글과 그 전의 콸리어님의 글, 그리고 그 이전, 두 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그러니까 어긋나서 완정탄성충돌이 아닌 각도가 삐끗하니 틀어져 버린) 논쟁의 시초가 된 나귀님의 글, 이 세 개의 글을 읽고 종합해보면 (물론 내 생각이다), 사실 각 글들이 관련지어져 있는 글은 아니다. 나귀님의 처음 글은 <번역의 탄생>이라는 신간을 보고 떠오른 번역가 이희재씨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가있고, 콸리어님의 글에는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이 나와 기대감에 차 있는 상황에서 나귀님의 글을 읽고 왠지 찬물로 끼얹짐을 당한 모양새가 느껴진다. 이 상황에 나귀님은 어제 새로이 장문의 글을 올리셨는데, 번역과 번역론에 대한 나귀님의 생각을 다시 짚어본 글로 보인다. 이 글속에는 번역가 이희재씨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새책 <번역의 탄생>의 직접적 언급도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두 분의 글에 추천을 눌렀다. 콸리어님은 "벌써 이런 엉터리 글을 여덟(8) 명씩이나 추천하지 않았는가! "라 고 본인의 글 속에서 나귀님의 글을 8명의 사람들이 추천한 것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셨는데, 예전 진짠지 가짠지 모를 하나의 설화가 떠오른다. 황희 정승이 싸우고 있는 머슴들의 말을 듣고, "듣고보니 니 말도 옳고 또 너의 말도 옳구나." 라고 대답했다던 그 설화말이다.
사실, 나귀님의 글은 번역론 이전에 번역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또 하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바로 '이지 맨(easy man)'일화다. 이것도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겠지만, 예전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났을 때,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냈던 단어들이다.
얼마나 쉬운 단어인가. 그럼에도 정계와 미디어에서는 좀 시끌시끌했었다. 이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다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편안한 사람'과 '만만한 사람'의 차이는 실로 높은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의 차이만큼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번역론에 대한 규칙이 세세히 정해져있다 하더라도 사람 마음을 알 수 없기에 완벽한 번역을 지향할 수는 없다. 다만, 이때에는 번역가는 두 가지 상황, 정치적 상황과 개인적인 친근함 정도의 차이에 대한 상황 설명을 독자에게 해 줘야 할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그 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키며 부시가 말한 'this man'이라는 단어까지도 곁들여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국가적 감상까지도 번역가는 설명하는 것이 최선일 듯 싶다. 'easy man'이라는 두 단어에 얼마나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이런 것을 번역론이라는 단순히 단어 고유의 의미론과 통사론적인 면만을 놓고 번역에 대해 이야기해놓고 있는 책의 목차를 본다면, 책을 읽지 않고서도 성실성으로 어느정도 뭉그러뜨려 불만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나귀님의 글에 추천마크를 누른 것이었고.
(물론 이 일화를 번역이라는 창조적 활동과 연계한다는 것은 약간은 무리가 있다. 이 일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당사자(대통령)들의 말이고, 번역은 작가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과 글, 그 바탕에는 문맥이라든지 그 순간의 정황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소개한 것이다. 나귀님은 문맥의 이해라든지 정황에 대한 소개가 곧 번역가의 성실성으로 표현한 것이겠고...작가의 성실성에 따라 결국은 문맥 혹은 정황을 선택하는 독자의 몫은 작아질듯 하다.)
하지만 콸리어님의 글에 또 동조를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들 또한 번역의 또 하나의 자세일 것이고, 또 무슨 무슨 론에 들어갈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자세 혹은 성실성이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 속에 언급이 되어있다면, 나귀님의 글 속에서 이희재씨를 언급한 것이 잘못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앞 뒤가 안 맞을 수 밖에. (<번역의 탄생> 미리보기를 보니 저자인 이희재씨는 직역과 의역에 대한 고민도 보이고, 직역을 선호한다라는 글도 있었다.) 더 군다나 나귀님의 글을 리뷰로 보았다면 더욱 콸리어님도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번역가라면 누구나 가지려 하고, 또 갖는다고 성에 차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성실성'에 대한 설명 부족을 이희재씨의 실력 부족으로 뒤집어 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귀님의 글속에 숨겨져 있는 가시에 대한 불편함으로 콸리어님께 추천표를 눌렀다.
그리고 나귀님의 글을 기다렸다. 읽지도 않은 <번역의 탄생>이나 이희재씨에 대한 감상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나귀님이 좀 더 보충설명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번역과 성실성에 대한 글을 말이다. 그리고 새로이 올라왔고, 읽고나서 또 추천을 눌렀다.
번역은 기술이기 이전에 번역가 스스로의 이해를 수반해야한다는 간단하면서도 또 쉽지 않을 그 말에 동조하면서 말이다. 물론 콸리어님과 나귀님의 실력에 비해 나의 영어실력은 아마 초등생 수준이겠지만, 영어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크게 차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블로거들도 종종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글 위주로 할 것인가, 영어 위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말이다. 한글 위주로 한다면, 독자들이 글에 대한 이해를 쉬이 접할 수는 있어도, 작가의 고유 언어의 참맛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영어 위주로 한다면 독자들이 애매모호한 읽기 상황에서 스스로 문맥 선택의 폭만을 넓히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이해이고, 그 다음이 작가가 선택한 단어의 이유를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 그나마 이상적이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야 많다면...
PS.
1. 두 분 글속의 가시는 아마 '일본식 한자를 대하는 번역가의 자세'쯤이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서 좀 삐끗한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책으로 나왔지만, 예전에 한겨레 칼럼에서 읽은 '공지영'작가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의 한 토막을 보면, 음식점에서 단무지가 아닌 다쿠앙(다꽝)을 더 줄 수 있냐는 요구에 음식점 아주머니께서 질색하시며, 다쿠앙이 아니라 단무지라고 언급하신 에피소드를 읽고 뭐랄까 스스로 우리 언어의 한글 고유성을 위해 개인의 자유로운 언어 선택권에 제한이 가해지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물론 깊게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은 모른다. 그냥 그렇다는 것. 다른 외래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면서 말이다.
(물론 모른다라고 언급은 했지만, 언어 순화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 또한 그렇게 쓰려고 노력도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고유어(특히, 의성어와 의태어쪽...)를 굉장히 아름답게 보는 듯 하다...뭉클뭉클, 초롱초롱, 방방, 암튼, 유성음과 결합된 단어들이 귀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2.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한국식 한자와 일본어식 한자를 구분하는 능력을 우리는 정규 교육과정속에서 배우고 있냐는거다. 나의 경우엔 배워본적이 없다. 이공계라 그런지, 아니면 배움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우질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일본어식 어투의 사용에 대해 불만을 보인다. 그러니까 완벽히 일본어식이든 중국식이든 국어식이든, 한자 사용 용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질 않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문장투도 그렇다. 요즘은 영어로 된 글들을 많이 보니까, 미국식 문장투(수동태라든지, 뭐 그런거..)도 많이 보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모두 피고인일뿐.
2. 두 분의 블로그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면, 콸리어님은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나귀님은 기대를 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정도이다. 무슨 의미냐면, 콸리어님은 과학쪽으로 여러 책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기대된다는 의미이고, 나귀님은 그냥 읽는다는 뜻이다. 얘기치않은 글을 기다리며...
3. 이 글은 두 분께 트랙백을 보내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단지 서로를 향해 너무 가시를 들어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그냥 생각난 것들을 지나치자니 아쉬운 점도 있고 해서 적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