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부르는 숲』을 보건데 '빌 브라이슨'은 에둘러 말하길 좋아한다. 그게 그러니까 심각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낙관적인 자태(?)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독자인 나에게 선하다. 확실히 그에게 성급함은 손해를 불러온다. 그의 행동은 미래의 어느때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가 유머와 위트를 지닌 채 어떤 위급함을 넘겼다면, 후에 나올 그의 책에선 좋은 소재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의 익살맞은 행동은 경제적 가치를 불러온다. 마치 DNA에 새겨진 것 같다. 유머가 있어라. 너에게 지폐 몇 장을 내려보내줄 테이니.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책들중에 『나를 부르는 숲』은  리스트 제일 위쪽에서 나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젠 내가 읽은 책 리스트의 제일 아래에 위치한다. 이번 여름은 나에게 '빌 브라이슨'을 느낄 때이다. 재미도 없는 세상, 어디서 키득거리며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항상 읽어야지 하는 책이었지만 그 내용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숲에 들어가서 야영하고, 등산하면서 새삼 자연의 위대함과 변덕사이를 왕복하는 그런 책인줄 알았다. 방금 적은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이 책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냥 숲'이라니. 도시 한쪽에 밀려나 있는 작은 '그냥 숲'도  보이지 않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가령 나의 먼 먼 조상들이 재난을 피해 몸을 숨겼다든지, 아니면 보릿고개를 이겨낼 수 있는 작은 풀뿌리라도 대접을 해주었던지 말이다.

'숲'의 정체를 알고나서 사실 소름이 돋았다. "이봐. 어느 누가 3,400Km가 넘는 산맥을 숲이라 불러~~." 책 몇 장 펴들고 든 생각이다. 이 산맥이름은 '애팔래치아 산맥'이다. 중학교땐가 고등학교때 어느 수업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사실 이건 무슨 '오호츠크 해 기단'만큼이나 나에게 거리(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 거리감도 느끼지 못할때지만...)가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뇌세포 몇개를 할당해가며 저장해놓은 걸 보니 단순한 세포의 낭비는 아닌 듯 싶다. 마치 목말라 죽어가는 뇌세포에 물 몇방울  떨어뜨린 기분이다. 책을 읽고 재밌어서 친구에게 책 이야길 해 주었는데, 이 친구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모르더라. 뭐 모를 수도 있지.

책속에 등장하는 재밌는 사람이 또 있다. 이 책의 저자 '빌 브라이슨'과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같이 종주한 친구이자 잠시동안 동반자였던 '카츠'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이 이 책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냐면 이 책의 '장르'를 바꾸게하는 거룩한 힘을 지닌 존재라 봐도 무방하다. '빌 브라이슨'도 유머스러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카츠'가 옆에서 '빌'에게 자신을 관찰당하게 하고, 때로는 빈정거리게도 해주고, 때로는 '빌'을 성자로도 만들어주고, 떄로는 '빌'을 공황상태로도 빠지게 해주고, 때로는 '빌'에게 친구이자 동반자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일깨워주는데 있어서 한 몫 톡톡히 하는 친구라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종주 도중 둘이 잠시 헤어지고 저자인 '빌' 혼자 등산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때 책의 장르가 잠시 바뀐다. 무척 교훈을 준다. 물론 잠시 교양서적을 보고 있는 착각도 들며. 그렇다고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부분은 이것대로 흥미있다.

암튼, 책 머리에 저자가 '당연히 카츠에게 바친다'라는 땡스투 문구는 이 책을 읽어가며 절감한다. '카츠'는 숲을 돌아다니며 혹 만날지도 모를 '곰'만큼이나 긴장감을 준다. 곰이 할일을 이 친구가 대신 해준다.

이 책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배낭을 싸서 떠나!!'라는 강력한 환청을 들려준다. 또 환청만큼이나 강력한 추억을 꺼내준다.

' 아.. 그때 그 겨울 지리산의 햇살은 정말 달콤했지. 날씨는 추워서 모든 것을 얼려버렸지만, 그 때 그 햇살만큼 감미로운 것도 없었지. 또 어느 해 겨울 한라산은 어땠어. 눈속에 푹푹 파묻히며 걷는 그 길. 조금 걷고서야 알았지. 발 아래에 채이는 것이 눈 속에 묻혀버린 길 안내하는 봉이라는 사실을. 또 어느 해 여름 지독한 가뭄이 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피고 꿈쩍도 하지 않을 그 무렵, 곳곳의 샘이 말라버려 분명 지도에 있을 샘이 증발했을때 그 당혹감이란 정말. 또 예기치 않게 도중에 만난 한방울씩 떨어지는 샘을 만난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대충 이런 추억속 기쁨과 고난을 증폭시켜 되살려준다. 더불어 등산 당시 스쳐지나간 모든 동,식물 예를들어 잠자리, 까마귀, 개나리(맞나?) 등등 이 모든것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부여해주는 관대했던 당시의 나로 돌아보게도 만든다. 저자인 '빌'의 경우 만나지 못했던, 하지만 종주 당시 꽤나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들러붙어 공포감을 선사해준 곰에게 오히려 살아서 숲을 나가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부여받긴 하였지만.

이렇듯 이 책은 저자의 추억+ 나의 추억을 섞어준다. 산에서 만나서 눈인사하고 몇마디 건냈던 같은 시간대 산 속에 있던 얼굴 모르고 이름 모르는 사람들한테 마저도 야릇한 그리움과 궁금증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저자의 경우엔 예의없는 산사람들도 있었고,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올 여름에는 '빌 브라이슨'의 또 다른 책들도 들어야겠다. 다른 책속엔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한마디 더, 삶의 기운이 메말라가거나 세상의 혼란속에서 길을 잃어 배회하고 있을 영혼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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