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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를 피해가려 노력은 했지만 사소한 몇가지는 드러난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책의 표지에 설명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은 분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 싶기도 한데, 물론 결말의 대한 스포일러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쓰인다면 무조건 넘어가길 권고합니다.
얼마전에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접한 이 뉴스에서 슬프지만 흥미롭기도 한 부분이 살인자의 성장과 관련한 보도였다. 그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차츰차츰 네트워크의 링크를 끊어버리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또 이번 범죄의 다른 속성으론 예고 살인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일본 미디어는 가정문제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까지 그의 하나하나를 분석하였다. 이런 행위는 잘못된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오작동 감지에 대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일어난 것은 또 일어나기 마련이다.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 혹은 객체는 다른 것들과 실타래같이 연결되어있다. 문제는 오작동을 일으킨 부분의 네트워크를 고쳐야는데 완벽히 고칠 수 없다는데 모든 이가 동의할 것이다. 오직 링크를 끊어버리는 역할뿐이 할 수 없다. 리셋이란 사실 우리의 군집에서 일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하지만 비슷한 의미로 갱생 혹은 개화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면 격리뿐이라는 소리인데.. 이는 또 다른 메커니즘의 시작일 수 있다.
주말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두권으로 되어있는 『검은 선』이라는 작품이다.
내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을 읽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소설속 주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스토리로 전개되느냐가 아니라 스토리가 보여주는 재미이다. 재미가 없다면 사실 책읽기는 곤혹스럽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가 주는 재미위주의 독서 또한 또 다시 작가의 의미부여라는 소설속 주제로 회귀되는 경향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재능이 바탕이 깔려있지 않고서야 꺼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르물을 애독하는 독자에게 좋은 작가는 우리에게 교훈이 아니라 재미를 주는 작가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재밌냐?"라는 질문이 장르물에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하고 중요하고 무서운 질문이다.
"볼만해" 나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정말 볼만하다.
"그러니까 재밌냐고?" 이렇게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장르물에서 재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듯 싶지만 어떤 양념이 첨가되었느냐에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다. 따라서 쉽게 답할 성질은 아니다. 암튼 "볼만했다."
이 속에 쓰인 양념을 한번 살펴보자. 물론 무의미한 나의 해석이기도 하다.
『惡』작가가 바라보는 이 한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전에 '악'에도 역사가 있을까? 물론 여기에서의 역사는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계승적인 '악'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역사는 원인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악의 원인이다. 원인이 있는 '악'은 '순정의 악'이 아니다. 어떤 '악'의 원인을 알았다면 '악'은 고칠 수 있는가?
가령, 정상적인 동작을 하는 기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부품이 빠지거나 고장난 것이라면 그 기계는 '순기능'을 잃고 만다. 물론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는 상태까지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이는 마비라 부를 수 있겠다), 어떤 기계는 오동작을 할 것이고 이 기계는 속해있는 전체적인 메커니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한 네트워크를 구동시키는 시스템적 능력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이 능력은 네트워크의 효율을 의미한다.
부품과 기계와 연관되어 있는 네트워크는 효율이 떨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이상 감지를 느낄것이다. 어떤식으로 처리를 할까. 소프트웨어적이라면 버그를 잡아야하고, 하드웨어적이라면 장비를 고치든, 교체하든 이런 기계적 수단을 써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잘못된 부품이 범죄자라면. 이 '악'에 대한 처방을 우리 사회는 어떤 식으로 내려야 할 것인가? 당연히 리셋은 할 수도 없고, 부품 교체도 없다. 엄밀히 말해서 부품 수리도 없다. 범죄자의 개화는 수리가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의 본능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억제는 수리라 할 수 없겠다. 사회는 교육을 통해 억제를 가르친다. 사람들은 억제를 학습할 뿐, 본능을 버리지는 못한다.
『검은 선』에서 악의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원인을 찾기위한 그의 탐구는 이 책 뿐만 아니라 세번째 시리즈까지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만 본다면 단편적이고 부분적일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한가지를 말하는 듯 싶다.
악의 이력(hysteresis).
이력(hysteresis)은 간단히 말해서 외부적인 힘에 의한 어떤 물질의 성질 변화가 변화의 원인이 제거되었는데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주로 물리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전자기학에서 나온다. 물론 공학이라든지 경제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쓰이기도 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한가지는 나왔다. 앞서 말한 이력(hysteresis)이 그것이다. 이 소설에 대입해보자. 범죄자(이 소설의 주인공중의 한명이라 할 수 있겠다)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 악의 성질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원인이 고쳐졌든 어쨌든 이 성질은 그가 죽을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상태는 항상 악한 상태로 머물러있다.
두번째, 작가의 삼부작 중 그 첫번째는 이력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력에 쓰이는 소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인 '검은 선'이다. 그 중에서 '검다(black)'라는 것.
일반적으로 '검다(black)'라는 의미는 모든 색이 혼합되어져 있는 색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색이 섞이면 섞일 수록 더욱 짙어진다. 물론 이 색들중에는 흰색은 제외다. 흰색은 명도를 높인다. 그러니까 검은색은 한마디로 잡스런 모든 색들이 섞인 상태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통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혼잡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생물에게 엔트로피가 증가되면 공통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인간에게 피는 생명이다. 붉은피는 어느 한가지를 잃으면 색깔이 짙어진다. 그러니까 검게 변한다. 붉은 피를 유지하게 하는 한가지 것은 산소이다. 피가 산소를 가짐으로써 이 피는 신선한 피이고 피는 산소의 운반을 통해 여러 기관과 세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검은 피는 통제되지 않은 죽은 피이다. 소설 속 범죄자는 피해자의 피를 빼앗음으로써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정황을 통제하려 한다.
이러한 통제 방식의 습득은 그의 어린시절의 정신적 학대에서 기원하며, 이 정신적 학대에서 피하는 방법을 그는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깨우친다.
결국, 그는 후에 어른이 되어 몸속으로 산소의 공급을 일시적이긴 하지만 꽤 길게 차단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시켜 무호흡 잠수 챔피언으로까지 성장한다. 그의 모든것은 산소의 통제이다.
세번째, '선(line)'은 무엇인가? 사실 선(line) 자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의 선은 역시 검은 이라는 형용사와 어울려야 하는데, 검은 선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이 책에서 살인마로 나오는 '르베르디'의 직업과 관련되어 있다. 숨참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선. 그것은 무호흡 잠수부가 최고로 내려갈 수 있는 한계이다.(사실 이 한계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계산된 추정값이다. 바다속의 이 한계선까지 잠수하였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말 그대로 산소가 없는 피의 걸쭉한 향연. 즉, 뿜어져 나오는 죽은 피의 줄기를 말한다. 참고로, 이 소설속에서 범죄를 추적하는 기자인 주인공 '마르크'가 사건들을 종합하여 낸 책이 <검은 피>라는 제목이다.
책에선 숨어있지만, 의미있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통제이다. 통제는 드러나지 않는 키워드이다. 이야기속에서 통제는 곧 산소와 관련되어 있다. 숨을 참는다는 것. 이것이 곧 통제이다. 소설속에서 '사스(SARS)'라는 질병이 나온다. 이 질병의 정식 명칭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이다. 산소가 개인간의(혹은 개인의) 통제의 의미로 쓰였다면, 사스는 거대 집단의 통제의 의미로 쓰인다. 바로 국가와 사회라는 집단이다.
'르베르디'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는 말레이시아에 있는데, 소설 속 배경은 한창 중국과 홍콩, 대만을 위주로 하여 동남아시아에 '사스'가 한창 맹위를 떨던 때이다. 그때의 '사스'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악과는 또 다른 성질의 소재이다. 이 질병이 교도소에도 위세를 떨쳤는데 수감되어있는 범죄자들도 질병의 무서움을 톡톡히 인식하고 있었다. '악인'들도 공포에 떨게한 것이 바로 '사스'이다. 사스는 거대하며 근원적인 악이다. 원인도 없는 악이다. 물론 악당 주인공인 '르베르디'는 이 사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몇가지 할말은 있는데, 이는 스포일러와 직접 연관되어 있어서 이 포스팅에는 쓸 수 없을 듯 싶다.
스포일러와 관계없는 한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과연 산소가 통제니 뭐니 그랬는데 과연 산소는 무슨 의미일까. 산소는 바로 '독(毒)'을 의미한다. 산 소가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서운 산화제이다. 생명체는 양초와 같다. 양초는 자신의 몸을 태워서 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산소를 호흡해서 피를 통해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그 찌꺼기는 우리에게 독이된다. 이와같은 산소의 이중성을소설에서는 진실과 거짓이라고 내포하였다. 산소를 마시면 살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거짓이다. 바로 영원성에 대한 거짓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산소가 가지는 이중성과 통제의 의미. 그리고 검은 선을 추구하려는 범죄자 '르베르디', 그리고 악에서 구원받은 또 다른 여자 주인공. 그리고 이들을 맺어주는 기자인 '마르크'. 이 모두가 하나씩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과 관련하여...
<덧붙임>
1. 작가에 관하여....
작가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르포를 썼던 저널리스트였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쓰기 위해 불러들이는 그만의 소재는 다양하다. 범주를 크게 잡으면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으로 나눌수 있으며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과학'분야이다.
그가 인기를 얻어 이름을 떨치게 한 소설 『크림슨 리버』는 ' 우생학'과 관련된 생명공학을 소재를 불러들였다. 『크림슨 리버』도 재미있는 의미를 가진다. 리버는 강을 뜻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은 바로 유전적 형질을 의미하며, '크림슨'이라는 뜻과 합쳐져 '피'를 뜻하게 된다. '크림슨 crimson' 은 다름아닌 붉은 계통의 색을 뜻한다. 진홍색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유명한 잠수함 영화『크림슨 타이드』의 '크림슨'이라는 단어도 이 단어이다. 붉은 색이라는 뜻. 연관되어 하나 덧붙이자면 이 영화보다 더욱 갈채를 받는 유명한 잠수함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붉은 10월』이라는 영화로 '존 맥티어난'이 연출하였으며 , '숀 코너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때의 '붉은'은 원제에서는 'red'이다.
『크림슨 리버』는 영화로 봐서 소설로 읽진 않았지만 영화보다 소설이 더욱 강렬할 듯 싶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또 다른 소설은 『돌 의 집회』와 『늑대들의 제국』이 있다. 『돌의 집회』는 핵융합과 관련된 소재가 쓰였다. 그리고 『늑대들의 제국』은 뇌과학, 특히 기억의 조작이라는 과학기술이 사용되었다. 아무튼 그만큼 이 작가는 여러 분야, 특히 과학과 관련된 소재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