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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볼 효과 - 우연적 사건의 연쇄가 세상을 움직인다
제임스 버크 지음, 장석봉 옮김 / 바다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 세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은 확률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인과율이라는 섭리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인과율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있는 가장 합리적인 말이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라는 이 말은 또한 우주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이다.
그런데 의미론적인 면에서 인과율은 한가지 모순이 있으니 모든 사건들의 처음은 과연 무엇 때문에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어떤 시초로 여겨질 법한 사건은 또한 그 사건 이전의 어떤 사건이 있음으로 해서 발생하게 되었으니 파도 파도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말은 또한 편리한 단어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건, 사물의 시초엔 신이 있으므로 해서 골치아픈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신 이전의 그 무엇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말 그대로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 말대로 한다면 신은 초기값만 던져줬을 뿐이게 된다.
아인슈타인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자론을 만들어낸 '보어'를 필두로 한 '코펜하겐 학파'이다.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인과율을 부정한다. 우주를 포함한 이 세상을 오로지 확률론적으로 보는데 이는 양자역학의 초기부분에 해당한다.(확률은 정보를 수량화하는 방식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은 확률론에 대한 설명이다. 이는 납으로 만들어진 상자안에 고양이가 있다고 했을때 이 고양이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하는 문제인데 몇가지 조건이 주어진다. 가령 방사성 핵과 그것의 반감기라든지, 계수기, 독가스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양이가 박스안에 있다고 했을때 박스안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인가, 죽어있는 상태인가를 알아보는 사고실험이라는 것만 상기하자. 인과율로 따진다면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있다'이다. 독가스가 방출되었다면 죽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살아있을 거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여기의 논리 게이트는 'OR' 개념이다. A이거나 B이거나 말이다.(이 OR 논리 게이트는 지금 현재의 비트를 말한다. 이를 과학에선 고전적 비트라한다.)
확률론적으로 본다면 고양이는 살아있고 죽어있다(혹은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라는 좀 애매모한 말이 된다. 다시말하면 살아있는 상태 반, 죽어있는 상태 반을 총칭한다. 여기의 논리 게이트는 'AND'이다. A이고 B라는 개념인데, 한마디로 두 상태가 같이 공존하는 '중첩'상태에 있게된다는 것이다.(이 AND 논리 게이트는 연구중에 있는 미래의 비트를 의미한다. 이를 과학에선 큐비트(qubit)라 한다.)
물론 이 사고실험의 답을 내리기는 뭐하다.
철수가 영화보러 극장에 갔다고 하자. 극장에 가면서 철수 곁을 스쳐지나간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 철수랑 같은 시간대의 영화를 보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익명들. 이들은 철수의 행동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된 사람들이다. 철수가 극장엘 가지 않았다면 철수는 얼핏 스쳐지나가며 얼굴을 본 많은 이들은 존재할 수 조차도 없게되는 것이다. 말이 이상하지만 그런대로 받아들이자. (더 쉬운 예는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된다. 관광지에 사람이 바글바글하여 어쩔수없이 의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봄으로써, 그 이름모를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의 관찰로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결국 철수도 또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관찰되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 그렇다면 (존재하기 위해서) 서로서로 관찰한다 했을때 이 세상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잘 돌아갈 수 있게 되는데, 이름모를 식물이며 알수 없는 동물, 곤충 혹은 미생물들은 어떠할까. 우리가 관찰한 순간 존재하게 된다고?
마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이미 결과를 내포하게 된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은 가정조차 하지 않는다. 말장난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들 위에는 모든것을 꿰뚫어보는 눈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른다한다. 왠지 정리가 된다는 느낌이다. 이 신이라는 존재는 과학적 행위를 하는데, 하나의 결과값만 놔두고 중첩 상태에 있는 모든 확률값들을 붕괴시켜버린다.(이에 대한 소설은 <쿼런틴>이라는 SF 소설이 있다. 신 대신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가 나온다. 또 하나의 값만 남겨두고 가능성있는 모든 값들을 붕괴시키는 예는 '빛의 직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튼 설렁설렁한 면도 있지만 확률이라는 우연과 인과율의 차이를 말하기 위함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얼마전에 책 한권을 읽었는데 <핀볼 효과>라는 책이다. 우연이라는 것과 인과율이라는 것이 적절히 섞여 있는 세상을 핀볼 기계로 보고 핀볼 게임 자체가 우리의 세상이 지금껏 진보하게된 원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은 철학적이지도 않고 물리적이지도 않다. 그러니까 깊은 뜻이 숨어있지도 않으며, 완벽한 논리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핀볼게임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며, 핀볼 기계를 물리적으로 분해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핀볼 게임이 갖는 성향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책속에 나열되어 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그냥 읽어내려가면 된다. (핀볼은 이 책 본문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런 것을 소위 '카오스'라 한다. 여러 사건들이 난립해있고 또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질서는 각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로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굉장히 무질서하게 보인다. 결국 이 무질서는 예측의 가능성을 낮춘다. '나비효과'는 카오스의 또 다른 하위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이런 복잡스런 인과 관계를 양자역학이라는 확률론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현재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시도가 곧 가동될 CERN의 LHC이다. 이 CERN에서 인터넷이 처음 탄생하였다. 인터넷의 아버지는 '팀 버너스 리'이다. CERN을 무대로 한 소설은 곧 개봉될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이다. 겉보기에는 종교와 과학과의 싸움을 테마로 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을 저술하려고 자료를 왕창 모은 댄 브라운은 남은(?) 자료가지고 책 하나를 또 하나 내놓는데 그게 <다빈치 코드>이다.)
재미난 예가 있다. 증기기관을 만들어낸 '제임스 와트'는 세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증기기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유츄할 수 있는 것들은 (직관적인 의미의) 인과율로 표현할 수 있으며, 증기기관가지고도 도저히 유추할 수 없는 것들은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엄연히 따진다면 인과율의 범주안에 포함되겠지만, 우연이라는 맥락이 더 잘 들어맞는다. 가령, 철수가 극장엘 가면서 아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 만난것을 우연이었다고 하지, 자연의 섭리요, 인과율에 따른 인연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이름모를 이쁜 아가씨를 보고 맘에 들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인과율로써 증기기관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가 많이 들었던바와 같이, 좀 더 효율적인 시대로의 진입이다. 본격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세상의 산업은 기계에 많은 부분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상품의 대량화와 자동 공정시대를 불러오게 만들었다. 이를 산업혁명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바다로는 더 많은 화물을 싣고 나갈 수 있으며 이는 식민지를 끼고 사는 제국시대를 여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육지로는 철도의 발전과 더불어 통신의 발전까지도 이루어내게 되었다. 이것이 큰 힘 들이지 않고 교과서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연이 불러온 증기기관에 의해 유발되는 결과는 뭐가 있을까.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책에는 없어도 또 다른 뭔가를 불러 왔을 수도 있다)는 비즈니스 세계의 또 다른 기반이다. 그 기반이란 것은 바로 서류이다.
정황은 이렇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잘나가는 상품이 되면서 무수히 많은 주문을 받게 되었다. 주문을 말(대화)로 받는 것도 아니고 주문장이라는 서류를 통해 받게 되는데, 그 당시엔 주문장이라는 명세서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일일이 모든것을 적어서 만드는 주문장은 하나 만들기에도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그 결과 일정한 형식을 갖춘 주문장 사본을 만들게 되었고, 이는 주문처리를 한결 쉽게 만들었다. 똑같은 서류를 여러장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카본지의 발명으로 연결되었다. 더욱 효율적인 비즈니스 세계의 문을 연것이다. 이것이 우연이 유발한 또 다른 결과이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한 두번째 결과는 카본지가 아닌 생물학의 발전이었다. 그런데 생물학 발전의 단계까지 설명하려면 지금까지 쓴 글의 5배이상은 언급을 해야한다. 책 자체 내용이 그정도 분량이 된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되는 카본지의 발견까지만 예시로 들었다.)
이 책에서 선보인 여러 사건들은 그 연결 고리가 불투명한 것들도 있다. 저자가 나름대로 연결고리를 이었지만 약간은 억지성도 보인다. 그렇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이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것들이 있어왔으며 어떤것은 필연적으로 어떤것은 우연적으로 만들어졌다.
책의 결론은 사실 허무하기도 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를 불러온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수백권의 책속에서 뿌리 역할을 하는 어떤 사건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연결성을 부여하여 이 세계는 여러가지의 거대한 조합으로 이루어져왔으며, 또 그렇게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있다. 그러니까 책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책 말미에 있는 <찾아보기> 즉, 'index'항목이 매우 중요하다. ㄱ,ㄴ, ㄷ, ㄹ... 순으로 나아가는 인덱스는 이 세상의 중요한 여러 지표를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하이퍼링크와 같은 편집도 있는데 이는 중복된 인덱스 혹은 키워드를 통해 새로운 사건들을 잇는 또하나의 고리 역할을 한다. 책의 단점인 링크걸기를 간단한 표현으로 완성한다. 뭐 그렇다고 편리할 것도 없다. 귀찮아서 링크된 곳을 펼치지 않는다. 기다리다보면 나오니까. 링크가 걸려있다는 것을 잊어도 상관없다. 나중에 <찾아보기>코너로 또 다른 탐색을 하면된다.
나에게는 괜찮은 책이었다. 특히 여러 챕터별로 따로 따로 기술하고 그것으로 그만인 역사서나 과학서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데(요즘은 경제학 관련책들도 이런식으로 많이 나온다..아래 -덧붙임 4번 참조 -), 내용이 매우 단편적이고 그 하나의 사건이 이 세상을 이루는데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는 가늠하기조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연결성은 쉽게 기억해낼 수 있으며, 역사의 이런 연결성을 의외의 조합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좋은 공부도 될 듯 싶다.
비록 단편적인 지식들의 모음이지만, 이런 지식들조차 찾아보기 힘들며(이 책은 수백권의 책을 뒤진 효과를 준다), 키워드를 알지 못한다면 영영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런것은 심한 의외성이다. 누가 IBM의 천공기를 여인들이 어깨에 두르는 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참, IBM은 원래 회사이름이 아니다. 기계이름이다. 그 이름하여 '국제 사업 기계(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다. 그 기계 앞자를 따 그냥 회사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이 책의 요점은 이렇다.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네트워크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다만 방향은 비가역적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숄에서 천공기가 탄생했지만, 천공기에서 숄로 역행할 수는 없다. 세상이라는 네트워크는 비가역적인 동시에 병렬적이다. 1대 다의 관계도 성립한다. 또 다대1의 관계도 성립된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면 계층이 없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매우 계층적인 네트워크이다. 상위 루트에서 계속 아래로 트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이 허무한것은 상위 루트와 맨 마지막 트리의 종단이 없다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뭔지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흙을 보고 생각한 관념을 흙이라는 물질로 끝맺음을 한다. 사실 글로 적기가 어려운 말인데, 흙을 보고 뭔가를 떠올리고 그 뭔가를 계속 이어내려가다보면 흙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로 결론을 낸다는 의미이다.(물론 실제로 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흙을 만든다는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겠다.) 챕터들이 이런식이다. 그래서 약간은 허무하다.
<덧붙임>
1. 글은 길지만 결론은 이거다. 세상은 뒤죽박죽 섞여있는 듯 하지만, 그럴듯한 순서에 의해 진행되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것. 이 뒤죽박죽을 네트워크(망)로 표현하였고, 그럴듯한 순서는 우연적 사건의 연쇄반응을 말한다. 하지만 우연적인것보다는 필연적인 혹은 인과적인 것들도 많아서 이런 조합들이 그리 부드럽지 못한 것들도 많다는 사실. 이는 하나의 흐름으로 표현하려는 욕심에 약간의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생각.
2. 기회되면 포스팅하겠지만, 이 모든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은 '정보'에 있다는 것. 이 정보는 우리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의 이동) 새 로운 인터넷이라는 관념적 네트워크안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다는 것. 여기서 관념적이라는 것은 전기적 작용에 의한 정보의 흐름은 비록 물질적이지만 결국 이런 물질의 흐름은 종단에서 멈추어지고 이는 레지스터에 '자화'의 상태로 저장되어지는데 이를 컴퓨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표현할때에는 전혀 다른 형태(하지만 실제는 아님...예로 워드프로세서로 된 문서...)로 발현한다. 물론 직접적인 정보의 상태가 모니터에 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실로스코프'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3. 우리가 휴대전화에 쓰이는 방식인 CDMA가 나오기까지의 우연적 사건의 연쇄는 무었일까? 이는 얼마전에 읽다가 우선은 한쪽에 밀어둔 <열정이 있는 지식기업 퀄컴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데, 그것은 '액스터시+피아노+어뢰'의 조합이다. 이것이 CDMA의 원류이다. 기회가 되면 이 책도 리뷰를 쓸 예정...
4. 이 책이 말하는 바대로 풀이해놓는다면, 우연적 사건의 연쇄는 소수의 사람들의 뜻하지 않는 발명이나 창조적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든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또 어떤식으로 빚어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는 '이용'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소비를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규모의 경제학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 싶다. 요즘 읽고 있는 또 다른 책은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의 그 두번째 책 <경제학 콘서트2>이다. 물론 모든것에 대한 답을 들려주진 않지만 읽다보면 뭔가 걸리는 것도 있을 듯 싶다. 이 책의 키워드는 원제이기도 한 'The Logic of Life'이다.
약간 곁들인다면, 삶의 논리는 무엇일까? 이는 인간위주의 논리이며, 지구적 시스템을 인간중심으로 본 다는 말일 수도 있다. 가령 환경을 예로 들 수 있다.. 환경보호를 하는 이유는 하지 않으면 앞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그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게 삶의 논리이다. 물론 책에서는 이런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나더, 우리는 왜 휘발유 자동차를 타고 다닐까? 즉, 전기 자동차는 누가 죽였는가?(이것은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이것도 또 하나의 삶의 논리이다. 답은 그때 당시엔 기름이 가격도 쌌으며 소수가 소비하기엔 충분히 많아서이다. 물론 여러 답들중에 하나이긴하다.
참고로 <경제학 콘서트>와 같은 독립적 챕터로 이루어진 책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라고 본문에서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가볍게 읽기에 좋을 듯 싶어 골랐다. 기회되면 이 책도 리뷰를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