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일간의 남극 체류기 - 세종과학기지 24시
홍종원 지음 / 눈빛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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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모든 땅들이 모여있던 그곳.

인간이 첫발을 내디딜때까지 헤아릴 수 없는 남십자성이 뜨고 지고, 해와 달이 끝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었던 그곳.

감당할 수 없는 세월이 흐른 지금, 그곳만은 여전하지만, 다른 땅들은 저 위로 올려보내진 그곳.

무슨 죄를 지었는지, 살을 에는 추위에 표정마저 사라진, 더구나 눈과 얼음으로 자신의 모습마저도 잃어버린 그곳.

우리는 그곳을 '남극'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antarctic'이라 하는데, 짓궂게도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는'북극(arctic)과는 정반대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이름붙이기엔 낯선, 역사적으로는 잊혀져 있던 땅이다.'arctic(북극)'이라는 단어는 '곰(bear)'을 뜻하는 그리스어 'arktos' 로부터 유래했다하니, 얼핏북극곰(polar bear)이 머릿속을 맴돌듯 하지만,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bear는 Ursa Major(큰곰자리 thegreat bear)에서의 곰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 큰곰자리는 북두칠성을 포함하는 별자리인데, 북쪽지방의 대표적 별자리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극에도 사람이 상주했다면, 글쎄...남쪽지방의 대표 별자리이름을 가져다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펭귄의땅'이라 불렀을지도 모를일이다. 찾아보니, 남극은 그리스어로도 'antarktikos'라 하여, 이 역시 '북극과는 정반대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한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보자. 아주 오래전, 그리스의 철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시대에는 지구의 대부분의 대륙이 북반구에모여있는 것을 보고, 분명히 남쪽(남반구)에도 거대한 대륙이 있어 지구의 균형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한다.이를 총체적으로 'Terra Australis [incognita]'라 불렀는데, 이 의미는 '알려지지 않은 남쪽땅'이라 한다.우리가 잘 아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역시 라틴어인 'Australi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남쪽의 of the south'를 뜻한다.

이쯤해서 슬슬 책이야기를 해야겠다. (혹, 궁금하시다면, 이쪽을 더 찾아보세요...)

저자는 2004년 1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책 제목대로 400일간을 의무대원 자격으로 남극 세종기지에 상주하였다. 사실, 의무대원이긴 하지만 공중보건의로서 근무한 것이므로, 군생활중 1년을 정말 대단한 곳에서 보낸것이다. 이 책이 460여 페이지정도 되는데 의외로 재미없을 듯한 그 작은 동네(세종기지)에서 일어났던 - 심지어 조용한 것까지 이야기가 되어 -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가장 신났던 것이 크고 작은 다양한 남극의 표정들을 사진으로 만난 일이다. 귀여운 펭귄 사진이너무 좋았다. 참고로 세종과학기지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상주하는데, 저자의 위치가 책을 낼 수 있는여건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의무대원이기에 누가 다치기 전까진 특별난 직무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저자는 부업으로 주방보조와 비공식적인 홍보(사진찍는일) 일들을 겸직했다한다. 특히, 사진 찍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그런지, 다행스럽게도 서너페이지마다 크기가 다양한 사진들이 꼭 하나씩은 등장해준다(두페이지짜리, 그러니까 마주보고 있는 페이지를 꽉 채운 사진도 있다). 글만 읽고 상상을 해야하는 독자에겐 어느정도 부담을 덜어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책에서는 세종과학기지를 관리하고 운영하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여러 대원들의 이야기가 무게있게 실려 있기에, 남극의냄새보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뼛속까지 시릴법한 남극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읽다보면, 따뜻한 세종기지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그 커피의 김 모양새로 절실히 피어오른다. 또, 12월에 남극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지구의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아닌, 여름이었기 때문에 작가가맞이하는 남극의 첫인상은 눈과 얼음에 뒤덮힌 동화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너무나도 매서운, 그리고 살벌한 바람에 실린 삭막한남극이었다. 남극에 내딛은 첫발은 저자나 독자나 여지없이 그렇게 같이 무너진다.




(*** 세종과학기지 : 기지가 눈에 잘 뜨이도록 건물들을 빨간색으로 도색햇다고 함. 저 멀리 유빙이 보인다. 바로 앞은 맥스웰만)

사실, 진정한, 날것의, 순도100%의 남극이야기는 아니지만 나 자신도 남극보다는 세종과학기지를 느껴보고 싶어서 읽어본 책이므로 실망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남극의 다양한 환경, 기후, 생명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마 이 책보다는 다른 과학교양서를 권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사실,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앞서 말했던 것들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소재이며, 작가의 시점으로, 18차 월동대원의 시점으로 재밌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각 차기는 1년마다 교대되며, 지금은 20차가 상주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차수는  남극에 가기 1년전부터 준비를 하는 듯 하다 -- 도착에 맞추어 짐을 먼저 보낸다).

앞서 순도 100%의 남극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 이 말이 맞다. 그러니까 장님이 코끼리 다리 한번 만져보고, 코끼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 바와 다를바가 없다. 사실, 세종과학기지는 남극대륙 깊숙히 있는 곳이 아니라, 남극점에서 가장멀리 떨어진 남극반도, 그 반도의 끝도 아니고 작은 바다를 다시 한번 건너야 있는 킹조지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라도에 갔다와서 한국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니, 한국뿐이랴, 북한, 중국, 러시아까지도 다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윗 그림 두장의 출처는 이곳, 2002년 겨울의 상황을 토대로 한 그림
-- 남극대륙의 여러 나라들의 기지들 위치를 표시-- )
 
하지만, 작가가 진정한 남극 대륙 제대로 다녀보지도 않고 책을 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세종과학기지와 주변 몇개의 외국기지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뜻이며, 또 남극은 기후가 너무 대단하여 킹조지섬 부근을 돌아다니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남극대륙안을 탐험하고 책을 썼다면, 그 책은 낭만적인 남극의 환경이나 생활이야기를 넘어선 오직 본능만을 탑재한 생존기로 불러도 무방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킹조지섬의 세종기지에서도 충분히 남극의 정취와 무서움을 맛볼 수 있기에 남극에 다녀왔다해도 넘칠 정도로 납득할 수 있다. 펭귄, 탁상형 빙하(특히나 무너지거나 떨어져나가는 것이 멋진 빙하이다), 스쿠아(도둑 갈매기), 해표들은 남극대륙 깊숙한 곳보다도 남극대륙 해안가에서 볼 수 있기에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이 오히려 더 남극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비록 1년이라는 (사실, 저자가 포함된 18차 월동대는 남극을 떠나는 일자가 연기되어 1달정도를 더 머물러 있었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좀 애매모호한 기간이긴 하지만, 세종과학기지와 남극의 정취 그리고 주변 몇몇 외국기지들의 모습들을 어느정도 상세히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 책을 읽고 극지 연구소 홈페이지에 가보았더니, 제2남극기지를 세우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말로 세우게될지, 어떨지는 알 수는 없지만, 세종기지가 본 Base가되어 제2의 기지가 세워지면 더욱 좋겠다는 바램이다. 더불어 국내 최초의 쇄빙선도 건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만약 남극대륙 안쪽(그래봐야 해안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겠지만)에 세워진다면, 그곳은 좀 더 혹독한 남극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책이 두꺼워서 좋았다. 그만큼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끝나가면서,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저자는 이제 남극을 떠날때였고, 독자인 나는 그에게 남은 이야기가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면, 이젠 북극에 있는 다산기지를 다녀온 누군가에게서 책이 나오기를 목내어놓고 기다릴 수 밖에 없겠다.

비록 책 한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덩달아 나 또한 남극을, 세종기지를 다녀온 느낌이다. 작가나 독자나 다녀오느라 고생했다.


<덧붙임>

1. 올해와 내년은 '국제 극지의 해(IPY 2007 ~ 2008 ; International Polar Year)' -- 링크는 '사이언스 타임즈'

2. 이 책은 나에게 새로움에 대한 재미를 충분히 선사하긴 했지만, 잊을만 하면 뛰쳐나오는 오타라든지, 책 내용에서는 정말 아름다운 일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였음에도, 사진은 엉뚱한 사진이 자리하고 있어서 놀라움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유독 이 사진이 잘못 기재될 수 있는가(책에서는 일출장면에 대한 탄성이 쓰여있으며, 기재된 사진은 단순히 눈쌓인 기지 사진이고, 사진 아래에 들어있는 설명은 일출과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 설명이 사진과 맞질 않는다. p. 442쪽에 실려있음)와 그 사진이 책 두페이지를 차지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아쉽다. 그리고 심하게 펴면 책이 쩍쩍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3. 『400일간의 남극 체류기』의 저자인 '홍종원'씨의 또 다른 책. 이 책 역시 남극 관련 책인데, 단순한 책은 아니고 사진집이다. 사진집 이름은『하얀숨결, 남극』.1만여점의 사진중에 200점을 뽑았다함.








4. 정말 북극의 다산기지와 관련된 책이 나왔으면 한다.

5.남극의 세종기지 관련 책을 찾던중, 『남극산책』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인 '고경남'씨는 『400일간의 남극체류기』의 저자인 '홍종원'씨와 친구 관계이다. 그러니까 '고경남'씨는 '홍종원'씨의 다음 차수인19차로 남극을 밟았다. '고경남' 씨 이분도 의무대원으로 합류했다. (그러니까 의사양반들만 책을 내는군...)









6. 2004년에 세종과학기지에서 사고가 한건 일어났다. '지질'쪽을 연구하던 '고 전재규'대원이 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7. 세종기지와 다산기지에 관련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극지 연구소 홈페이지
(이곳에 가면 세종기지와 다산기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지 외부 캠이 있는데, 사실 볼 것은 정말 없음. 움직이지 않는 화면이라처음엔 캠이 아니라 그냥 사진인줄 알았음. 낮과 저녁에 한번씩 들어가보고서야 밤과 낮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

8. 그리고 극지 연구소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클럽인 눈사람 클럽(--네이버 클럽 -- 다양한 사진과 이야기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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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6학년인데 세종기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쿼크 2007-10-1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어떻게 세종기지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 물론 저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답니다. 하지만, 뭐라 한두마디 하자면, 세종기지에만 무게를 두어선 안된답니다. 세종기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세종기지에는 얼마동안 일할 수 있는가를 먼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을 연구하느냐는 물론, 과학입니다. 남극의 지질, 기후, 그리고 여러 남극 생물들을 연구하지요. 그리고 그외의 분야, 통신분야와 해양학도 포함되어질 거에요. 그러니까 님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를 먼저 알아야겠지요. 또 세종기지에서 오랫동안 상주하며 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대 체류기간이 1년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1년후에는 남극에서 나와야 하고, 다음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또 살펴야 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고요..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시다면, '극지 연구소'(http://www.kopri.re.kr/index.aspx)에 물어봐야한답니다. 6학년이면,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 우선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을 어린 학생이 스스로 찾아야 할 듯 합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구요..꿈을 찾으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