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스쿨 4 : 정리 정돈은 어려워! - 정리 습관이 착~ 달라붙는 책 마인드 스쿨 4
남지은 글, 김인호 그림, 천근아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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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정 교육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이가 한둘밖에 없다보니 아이들 몫까지 엄마가 해주게 되고, 그래선지 정작 집안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아이들이 제때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꽤 되는 것 같다.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은 엄마 자신을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고, 아이에게도 알아서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엄마가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되고 아이는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스로 자신의 옷가지나 책장 정도는 정리 정돈하도록 습관을 잡아줘야 하는데, 초등 중학년이 되어도 엄마에게 미루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맞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이런 엄마들의 고민을 담은 마인드 스쿨 시리즈 4편이 나왔다. 연대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가 기획하고, 부부작가 남지은과 김인호의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 눈높이게 맞게 꾸며졌다. 자존감과 학교폭력, 왕따를 다룬 1, 2, 3편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희안하게도 사람 심리는 집안이 깨끗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너저분하면 기분이 언짢아진다. 아이들도 무언가를 펴놓고 재미있게는 놀아도, 그 상태로 계속 널려 있는 집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지럽히기는 쉬워도 치우기는 힘들다는 데 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엄마라도 한계가 있다. 꾸짖는 것도 한두번이지 아이가 달라지지 않으면 엄마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에게도 그런 습관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이런 학습만화를 슬쩍 던져 두는 것도 좋운 방법일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지르기 대장 오서준이다. 서준이는 집을 어지럽히기만 하고 도대체 치우질 않는다. 준비물도 학교 가기 직전에서야 허둥지둥 준비하고, 자신의 바르지 못한 습관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집열쇠를 찾지 못해 결국 잠그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도둑이 들어 엄마아빠의 결혼식 예물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않아 서준이네는 새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서준이는 집정리는 나몰라라 하고 게임만 한다.

 

 

게임을 하던 중 서준이는 건너편에 블록으로 지은 집을 보게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누루와 비루라는 개구쟁이 형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아이들은 서준이보다 더한 게으름뱅이다. 치우며 놀자고 서준이가 몇 번을 말해도 괜찮다는 아이들을 보며 서준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한바탕 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꿈속에서 서준이는 지저분한 일상이 얼마나 겁나는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면 책의 맨 뒷부분에 천근아 교수의 임상경험을 만화로 소개한 지침이 들어있다. 서준이와 같은 아이들은 처음부터 알아서 하기에 쉽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부모가 도와주워야 한단다. 그리고 '넌 항상 이런 식이지?' '대체 누나랑 넌 왜 이렇게 다르니?'와 같은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되며, 대신 '너도 잘할 수 있어.'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와 같은 말을 하란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만화책' 이라는 문구대로 이 책이 우리의 미래이자 기쁨인 아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 해법을 찾는 멋진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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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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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과 결혼할 줄 알았다면, 지난 시간을 쓸데 없는 데 쓰지 않고 나 자신을 좀더 갈고 닦는데 썼을거라고. 내가 보냈던 시간의 총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모든 시간이 다 의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생각이 많았고,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내실을 기하기보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에만 신경을 썼다. 그렇다 보니 결과물이 좋아도 불안했고, 좌절감이 찾아올 때는 금새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자신감이 없어서일까 대개는 예민했고 감정의 기복도 심했다.

 

당시의 내게 천천히 꾸준히 가기만 해도 괜찮다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잘 살았을까? 글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실수하고 헤메고, 때론 상처를 받더라도 그 시간이 의미있다는 것만큼은 알았을 것 같다. 삶의 어떤 지침도 가지지 못한채 사람들 속의 섬이길 바랐던 내 추웠던 젊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짠하다. 그 때의 내게 큰 흐름 속에서 인생을 보게했다면 불안을 해소하는 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미련했던 나는 인문학이 내 삶의 구체적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내 현실이 대입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인문학이란 프리즘 통해 상황을 차분히 바라보기만 했어도 스스로에게 좀 더 여유있고 긍정적인 답을 줄 수 있었을텐데, 속단하거나 부정적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도 적잖은 세월이 흐른 후, 좋은 인문학 책을 소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니 해석이 달랐고 이해의 진폭도 컸다. 또한 구체적이면서 실질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인문학을 나는, 사람답게 살고픈 인류의 총체적 노력의 집적물이라 생각한다. 예전엔 문학·역사· 철학만을 범주에 넣었다는데 오늘날 인문학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단다. 그래서 600 페이지 가까운 이 책이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이란 부제를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여섯 분야로 나뉘어 전하는 이야기들은 책의 분량이 주는 부담은 있을지언정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 저자 주현성은 심리학을 필두로 회화와 신화, 역사와 철학, 글로벌 이슈로 나누어 인문 지식을 전한다.

 

1장은 프로이트와 융으로 시작해 인지심리학과 뇌과학, 경제심리학을 포함, 심리학의 출발부터 최근의 경향까지를 다룬다. 오늘날 연계 학문의 참여로 인해 인지심리학의 연구와 성과는 인지과학혁명으로 불릴만큼 대단하단다. 2장은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 화가인 모네로부터 출발한다. 마네와 세잔, 고갱과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을 소개한 후, 입체주의의 출발점에 있었던 피카소와 야수파의 마티스를 다룬다. 그리곤 빈 분리파의 클림트와 그의 애제자인 애콘 실레를 거쳐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의 팝 아트를 이야기한 후, 현대미술의 경향까지를 가볍게 안내한다.

 

 

 

3장은 그리스 신화다. 어릴 적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수많은 신들의 이름 때문에 진땀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의 분량이 예상 외로 많지 않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데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신화를 통해 인간사를 비추려는 그리스인들의 기지가 능청스레 전해져 살짝 웃었다. 4장은 그리스 문화에서 발원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사를 소개한다. 역사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하는 머리말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우리는 대입 수능에 한국사를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으로 지정해 놓았다.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추천받는 교양서는 『그리스 로마신화다. 그만큼 서양 문화에서 그리스의 영향은 지대하다. 로마가 거대 제국을 이루며 서양 문화의 골격을 제공했다면, 그리스는 서양 문화의 뿌리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씨앗과 같다. 이 씨앗이 거대한 로마의 영토에 뿌려지고, 여기에 기독교가 합쳐지면서 유럽의 정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 문화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문화가 중세 말부터 다시 그 힘을 발휘하여 중세를 무너뜨리고, 오늘과 같은 근현대를 만들어내는 정신적· 문화적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p 203

 

5, 6장 철학편은 저자의 욕심과 기대가 마음껏 들어간 장이다. 이는 200 페이지 가량의 분량이 할애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철학 관련 텍스트를 읽으며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몇 번 없는데, 숨겨두고 읽고 싶을만큼 흡인력이 컸다. 어떤 식품첨가물도 넣지 않은, 게다가 딱딱하기까지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왠지 모를 감칠맛이 느껴졌다. 5장 전반부는 탈레스에서 시작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을 거쳐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철학까지를 다룬다.

 

'돌이켜보면 대화법을 시작으로 엄밀한 언어의 정제 과정을 추구했던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철학은 플라톤에 이르러 보편이라는 실재론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결국 유명론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려버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당연한 것으로 형성된 신과 이성을 하나로 보는 관점이 그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그래서일까? 신을, 그리고 신의 교리를 애써 증명해 보이려던 중세의 철학은 어떤 면에서 왠지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 중세철학은 무엇을 남긴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좀 더 촘촘해진 논리와 형식, 다양한 인식론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 신앙과 이성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들을 알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p 326

 

후반부는 대륙에서 자리잡은 합리론과 영국에서 자리잡은 경험론을 필두로, 독일관념론의 칸트와 칸트의 이원론을 변증법을 통해 극복하려했던 헤겔, 이를 의지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쇼펜하우어를 다룬다. 이후 한 개인의 실존을 중요시했던 키에르케고르와 생철학과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니체까지 소개된다.

 

6장이야말로 이 책이 숨겨놓은 비장의 카드로, 현대철학의 관심과 방향을 난삽하지않게 공들여 소개해 놓았다. 저자는 마르크스로부터 시작해 루카치와 그람시를 거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와 분석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이어 논리실증주의까지를 전반부에 등장시킨다. 그리곤 미국으로 눈을 돌려 프래그머티즘의 제임스와 듀이를 소개한 후 로티를 언급한다.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현상학의 후설과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소쉬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연잇는다. 바르트와 라캉, 푸코와 데리다, 우리나라에서 핫한 들뢰즈도 각 두세 페이지씩 할애된다. 현대철학의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알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마지막 7장은 이 시대의 시급한 현안인 글로벌 이슈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 환경과 종교, 인종 갈등등이 소개된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예나 지금이나 젊음은 버겁다. 희망과 절망, 성취와 좌절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하고 불안했던 내 20대를 떠올렸던 건, 그 시절의 나와 만날 수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이다. 눈 앞에 닥친 고민거리를 인문학이 당장 해결해 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 떨어져서 자신과 세상을 볼 수 있는 여유는 줄 수 있을 거라고. 어쩌면 세월이 흐른 후 네 기대만큼 괜찮은 자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혹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 때는 네 존재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책을 그 때의 내게 권한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의 내게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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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년 전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부인인 김영애 권사의 '갈대상자'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감동에 젖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세우고 이끌기 위해 보내야했던 이분들의 시간은, 고통이라는 말 외에 그 어떤 표현도 적당하지 않지 싶었다.

 

 

 

김영길 장로는 한동대로 오기전 카이스트의 교수로, 또 한국창조과학회의 회장으로 학문과 신앙 생활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충실하게 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불러 지역적 연고도, 아는 이도 없는 포항에 대학을 세우게 한 후 하나님은 환경을 열어주기는 커녕 갖은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집어 넣으셨다. 일을 시키면 고생은 면하게 해주셔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성정이 어떠한지를 너무 잘 아셨기 때문이리라.

 

학교 설립부터 개교,그리고 2004년 현재에 이르는 10 년의 시간을 '갈대상자'는 그리고 있다. 현직 대학총장의 법정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부를 정도로 한동대는 늘 위기 속에 처해 있었고, 산 넘어 산인 순간들로 점철돼 있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람이나 방식이 아닌 당신의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고 이끄셨다. 탁월하거나 유능한 경영자도 많았으련만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연구실에만 살아 세상 물정도 모르고 딱히 사업적 능력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 한 사람을 선택해 이끌게 하셨던 이야기가 '갈대상자'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김영애 권사가 '구름기둥(가제)'이라는 제목으로 '갈대상자'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후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지만 그보다는 감동과 감격이 더 많았던 듯 이 책은 학생들과 교직원, 교수들의 간증으로 풍성하다. 19 년의 세월 속에는 김영길 총장의 이임도 들어가있다. 지난 2월 4일 총장 이취임식이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한동대와의 작별은 김영길 총장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세상적인 성공과 경제적 성취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전부라 여기는 크리스천에게 이 책은 고통과 고난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얕고도 피상적인 이해와 인도하심에 대한 오해를 자연스럽게 교정한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것은 김총장 부부의 삶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지는 않아도 두렵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광야가 두려워 '믿음 좋은 당신이나 그렇게 사세요' 라고 하기 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아보도록 할게요'라는 고백으로 이끄니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한동대 이야기가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써보지 않겠냐는 하나님의 조용한 초대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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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타 신지의 완벽한 가족 보림문학선 5
구사노 다키 지음, 지만 그림, 고향옥 옮김 / 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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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혹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채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닐 걸 상상하면,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측은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리 좋은 엄마는 못되지만, 아이가 학교 갈 때 손 흔들어주고 집에 왔을 때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를 썼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든든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 어릴 적을 되돌아봐도 세상에 엄마만큼 좋은 건 없었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만 못했고,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냥 좋았다. 무서웠지만 어린 내게 엄마는 전부였고 늘 그리운 대상이었다. 그런 엄마 없이 살아야하는 아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구사노 다키는 미야마 신지라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를 통해 엄마 없는 가정의 일상을 진지하지만 코믹하게 보여준다.

 

 

앞서 신지에게 엄마가 없다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사람이 아니라서 문제지 신지에게도 엄마가 없는 건 아니니까. 신지의 엄마는 요코라는 이름의 갈색 털이 함초롬한 암캐다. 오래 전 회사 앞에 버려진 개를 아빠가 데려와 같이 살았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신지라고 아빠는 늘상 말한다. 신지는 사람들 앞에서도 요코를 아내라 하는 아빠 때문에 걱정이다. 그런 신지네 집에 간간이 먼 친척 고모가 들른다. 올 때마다 고모는 아빠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며 다구치듯 말한 다음, 아빠와 신지를 늘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우리 가족의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 물론 더 행복하게 살아도 좋다. 기대도 하고 있다. 가령 가족이 또 한 사람 늘어난다든가……. 그것이 진짜 우리 엄마라면 딱 좋을 텐데. 나는 그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살고 있다.'

 

아빠와 고모 앞에서 철없는 아이처럼 굴지만, 신지의 마음 속엔 늘 엄마에 대한 갈망이 있다. 요코를 데리고 산책 나갈 때마다 신지는 엄마 같은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 거린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요코가 사라졌다. 아빠에게 요코는 진짜 아내였다. 아빠는 회사도 나가지 않은 채 요코를 찾으러 다닌다. 최근 요코는 산책을 다녀온 후 몇 번이나 집을 지나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요코는 돌아오지 않고, 시름에 젖은 아빠는 밥도 먹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진 신지는 아빠와 다투고, 자신에게 주눅 들어있다고 말하는 미우라와도 한바탕 말 싸움을 벌인다. 이제 개를 향해 엄마라 부르라는 아빠에게 더이상 자신을 맞추지 않겠다 마음 먹고, 신지는 친엄마에 대해 알아보려 고모네로 향한다. 그러나 신지의 바람과는 달리 고모가 들려준 얘기는 충격적이다. 나이 어린 엄마가 신지를 키울 자신이 없다며 고모네 집앞에 자신을 두고 나갔다는 것이다.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신지는 요코만도 못한 엄마에게 깊은 실망을 한다.

 

 

당시 엄마의 가출로 큰 상처를 입은 아빠에게 유기견 요코는 엄마가 돌아온 것과 다름 없었다. 개에게 정을 주는 걸 통해 아빠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신지도 아빠가 없는 시간을 쓸쓸하지 않게 보냈던 것이다.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 신지는 자신의 처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코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애완동물 탐정에 의하면 요코는 집을 나간 게 아니라 길을 잃었던 거란다. 하지만 돌아온지 이틀 만에 숨을 거두고 이제 아빠와 신지 단둘만 남게 된다.

 

엄마의 부재로 생긴 그늘을 구사노 다키는 개가 엄마라는 다소 엉뚱하고 황당한 상황 속에서 풀어낸다. 우리네 정서와는 차이가 있지만 엄마의 빈 자리를 채우려는 아빠와 신지의 노력은 눈물겹기만 하다. 현실이 버거워 외면이라는 도피처를 택한 아빠와 신지의 대응을 현명하다 할 순 없지만, 살기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폄하할 수 없는 건 그 어떤 당위보다 현실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엄마가 돌아오거나 요코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엄마의 부재라는 벽 앞에 그들을 다시 서게 한다. 록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완벽한 가족이 될 수 있으며, 엄마의 부재가 불완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책을 덮고 나서도 내가 없는 아이, 나아가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진다. 그러나 큰 걱정을 덜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부재가 결핍이며 커다란 상처일지언정, 가족의 불완전과 등치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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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비룡소 창작그림책 47
이기훈 지음 / 비룡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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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흡입력을 가진 그림책이다. 책의 자장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엄청난 힘으로 끌어들인다. 긴장과 갈증을 동시에 일으키는 책이 드문데 오랜만에 수작을 만났다. 그림의 구성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았고, 스케일은 압도적이었다. 스토리의 묵직함 때문인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봐야했다. 

 

우리 어린이 책을 읽으며 감탄한 적이 서너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고, 그림책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어린이 그림책이라 하지만 어른들과 함께 봐야할 책이라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 듯하다. 스토리는 구약성경의 '노아의 방주'와 피노키오의 모티브가 되었던 '요나의 큰 물고기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며 진행된다.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고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원시 부족이 살고 있는 어느 곳이다. 우물에서조차 물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뭄의 그늘은 짙다. 기우제도 지내보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마을의 원로가 사람들을 앞에 중대 발표를 한다. 부족원들이 모인 가운데 남자 넷이 뽑히고 앞장선 원로를 따라 그들은 동굴 깊숙이 들어간다. 오랜 시간 동안 숨겨놓았던 듯 싶은 동굴 벽화엔 가뭄을 해결할 비책이 있는 듯 하다. 

 

 

이제 벽화 속의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고,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한참을 간 후에야 마침내 벽화의 그림과 똑같은 곳에 도달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찾아왔건만 물고기를 잡아야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전설 속의 물고기가 쉽게 잡힐 리 없다.

 

 

긴 사투 끝에 드디어 손에 넣었다. 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동물들이 몰려든다.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를 뺏길 수는 없다. 하지만 목마른 고통은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물고기가 크니 나누어 마셔도 좋으련만 인간의 욕심은 나누기를 허락치 않는다. 고기 속의 물이 남아돌아 입만 벌려도 사람이 떠내려갈 정도이건만, 버리더라도 나눠 줄 수는 없는가 보다. 한 모금의 물을 찾아 끝도 없이 동물들의 행렬이 이어지지만 방어막을 치고는 야박하게 돌려보낸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토록 집요하게 달려들던 동물들이 발길을 돌린다. 이제 마음 편히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걱정거리도 사라졌겠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지치도록 즐긴 후 모두 잠에 취해 있을 무렵, 웬일인지 물고기의 배가 무섭도록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설사 알았다 한들 누구도 손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이 물고기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순식간에 물은 땅을 덮어버린다. 

 

 

그 모든 것을 휩쓸고도 모자라는지 하늘에서도 비가 내린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 사람의 눈에 자신들을 구해주고도 남을 커다란 배가 보인다. 살았다. 그들이 우리를 건져주리라. 그러나 배 위에는 동물들만이 가득하고, 동물들의 눈에도 안돼 보였는지 어쩔 줄 몰라한다. 구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물을 나누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같은 목숨이건만 동물이라고 업신여기고 야멸차게 대하더니 하찮게 여겼던 동물들은 살았고, 지혜로워 보였던 인간은 목숨을 잃었다.

 

 

좋은 책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한번 볼 때와 두번 볼 때가 다르며 아는 만큼 보이게 한다. 또한 독자의 생각을 넣어 다양하게 채색케 하며, 풍성히 즐길 수 있도록 재창조의 매력도 선사한다. 호평을 받는 책도 두번 보기 쉽잖은데, 이기훈의 이 책은 반복해 보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그림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림책의 스펙트럼을 넓힌 수작을 만난 기쁨이 자못 크다. 어쩌면 우리 그림책은 앞으로 이기훈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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