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 만들어진 낙원
레이철 콘 지음, 황소연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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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는 꽤 매혹적이다. 표지를 보자마자 나는 빨리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책이 도착하기 무섭게 책을들었다. 외모에 관한한 한치의 흠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녀의 이름은 엘리지아, 나이는 열여섯. 금발에 완벽한 몸매와 매끄러운 피부, 복숭아와 크림 빛깔을 섞은 듯한 안색과 아몬드 모양의 눈, 그리고 길고 풍성한 갈색 속눈썹을 가졌다. 그런데 엘리지아는 태어난지 얼마 안된다. 아니 더 정확히는 불과 몇 주 전에 출시되었다.

 

 

그러니까 엘리지아는 인간이 아니다. 모체가 죽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복제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시험판 청소년 제품인 베타 클론이다. 모체를 기반으로 태어났지만 클론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런데도 엘리지아는 베타 친구와 헤어질 때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옴을 느꼈다. 엘리지아가 팔려 간 곳은 드메인 섬의 총독네 집이다. 총독 부인 브래턴은 자신의 큰딸 애스트리드를 대신하길 원해 십대 베타인 엘리지아를 사왔다.

 

‘나는 네 거야, 지.’

 

내 시조와 그 물의 신에게 소유란 다른 개념이었을 것이다. 여기 드메인에서 클론 일꾼을 소유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나도 그들이 느낀 열정을 느끼고 싶다. 재생된 남의 기억이 아니라 내 경험을 갖고 싶다. 재생된 그 기억은 지의 것이다.

 

원래 대로라면 엘리지아는 별다른 맛도, 감정도 느끼지 못해야 했다. 그런데 초콜렛이 달콤하는 걸 알았고, 총독이 자신의 몸을 더듬을 때 걱정이란 감정을 알게 됐다. 엘리지아는 자신에게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엘리지아는 인간들이 우려하는 고장난 클론 디펙트인 것이다. 디펙트가 되면 클론은 폐기된다. 엘리지아는 자신과 같은 디펙트인 잰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그 즈음 엘리지아가 마음을 주고 있던 타힐의 부모가 일 주일간 엘리지아를 대여해 간다. 서핑 사고로 몸을 크게 다쳤다던 타힐 또한 클론이었다. 타힐의 부모는 같은 베타끼리 있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엘리지아를 데려온 것이다. 타힐과 시간을 함께 하던 중 엘리지아는 베타의 수명이 짧다는 말을 듣고 분노한다. 엘리지아와 타힐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유를 찾기 위해 섬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기 위해선 엘리지아가 총독네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총독이 주최하는 무도회에서 엘리지아는 총독 부인이 패션 리더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눈요깃거리가 된다. 그곳에서 타힐은 시조가 일으켰던 말썽과 연관돼 싸움을 벌이게 되고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타힐의 부모는 부랴부랴 섬을 떠나고 엘리지아는 타힐을 만나기 위해 아이반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이반은 타힐과 엘리지아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엘리지아를 성폭행한다. 엘리지아는 애스트리드가 왜 이 집을 나갔는지, 왜 총독 부인이 아이반이 리젤을 재우지 못하게 했는지를 알게된다. 엘리지아는 총독 부인에게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리게 되고 디펙트임이 발각된다. 이 사실을 알고 흥분한 아이반이 엘리지아를 죽이려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엘리지아를 누군가 구해냈다. 시조의 연인 아퀸, 알렉산더 블랙번이다. 엘리지아는 현재 임신중이란다. 엘리지아는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엘리지아의 시조 즈하라의 연인이었던 알렉산더는 엘리지아와 짝을 이루려한다. 알렉산더는 클론 노예 반대 운동에 관여하고 있고 즈하라의 아버지 또한 가담하고 있다. 엘리지아와 알렉산더가 사랑을 키워가고 있을 무렵 한 소녀가 나타난다. 엘리지아와 똑같이 생긴 소녀다. 그러니까 즈하라는 죽은 적이 없었고, 엘리지아에겐 영혼이 있다.

 

무척이나 충격적인 마무리다. 상상도 못했던 반전이었다.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려고 결말을 이리 지었는지 작가의 의중이 궁금하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대리라면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이 이 책의 핵심이다. 누군가로부터 파생되어진 클론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냐를 선행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다. 인간들보다 더 순박하고 더 진지한 클론을 통해 작가는 다시금 인간이란 어떤 존재여만 하는지를 묻고 있다. 청소년용 SF로맨스물이라는 부담없고 사랑스러운 장르속에서 묻어나는 진지한 물음은 그랬기 때문에 좀 슬펐고 더 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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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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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요시모토 바나나의 '안녕 시모키타자와'를 읽고 그 서정적인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애태웠던 적이 있다. 어찌어찌 쓰긴 했지만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고 관조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그 느낌을 내 얼마 안되는 언어로 표현하자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 뿐 아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죽음을 전면에 배치하는 대담함까지 선보였다. 서두에서부터 정점을 찍고는 죽음을 일상처럼 수용하는 그녀의 배포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외에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리는 죽음은 좀 특별했다. 그녀는 끝이며 단절이라 하지 않았다. 죽음이 마지막이라 선고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죽음을 끌어앉을 용기를 얻었다. 이는 도피가 아니었다. 비록 사람은 가고 없지만 언제든 회상할 수 있기에, 그녀가 그리는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추억이 되었다. 그 추억을 반추할 때 부재는 실재보다 생생해졌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을 말하지 않고 힐링이나 치유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에는 죽음이 주된 배경이자 장치가 된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도 예외는 아니었다. 5편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장소와 사건, 인물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들에게도 죽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죽음과 방불한 극도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인물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침울하거나 눅진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눈이 언제나 생명을 지향하고 있어서였다.

 

'유령의 집'가업을 이어야 되는 대학 동창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지 이성 친구에 불과했던 그들이 연인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노부부의 유령 때문이었다. 비록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어야 했고, 한때 스쳐가는 인연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노부부의 유령과 함께 했던 시간은 그들에게 일체감을 선사했다. 우리와 너무도 다른 정서적 특징과 습속, 사생관으로 쉽게 와닿진 않았지만 우연 또한 생이 준비한 필연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생과 사, 만남과 이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연결돼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해피 엔딩까지 있어서 더 따뜻했다. 따뜻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힐링이었다.

 

'엄마'는 사내 식당에서 독극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쓰러진 여직원에 대한 이야기다. 목숨은 건졌지만 몸이 상한 여자는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자신의 상태가 심상치않음을 절감하고 휴가를 낸다. 시골집에 가서 조부모를 만나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이 잊고 지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자신을 학대했던 엄마에 대한 것이었고, 자신 또한 엄마처럼 될까봐 여자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해준 조부모와 남자친구를 떠올리고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기로 마음 먹는다. 할수만 있다면 관계가 이그러진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싶다며.

 

'따뜻하지 않아'는 불행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꼽 친구를 그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나이에 맞지 않게 늘 의젓하고 얌전했던 남자 아이는 아이의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아이였다. 집안 사람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아이에겐 그늘이 있었고, 여자 친구네 집에서만 아이는 편안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의 친엄마가 나타나 아이의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는, 아이와 함께 탄 차를 벼랑으로 몰아 죽는다. 여자는 지금도 소꼽 친구가 집에 가기 싫어했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내게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다. 내가 자랄 때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는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일가족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리였다. 누군가 했더니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였다. 갸름하게 생긴데다 얌전하니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쳤던 아이였다. 당시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난 꽤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 그 아이와 몇 번이나 말을 했을까만 난 아직도 그 아이를 잊지 못한다.

 

'도모 짱의 행복' 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시각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도 인생에서 스쳐지나가는 일들의 하나로 본다. 중학생 때 남자 친구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아버지의 외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그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처를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다. 이는 그녀가 무심해서가 아닌 생을 소중히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상처에 짓눌리는 것은 생을 방기할 수 있기에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꿈꾼다. 행복은 꿈꾸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이니까.

 

‘막다른 골목’은 사랑하는 사람의 바닥을 보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다. 사람의 막다른 곳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특히나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이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것을 대면하는 것은 여자에게 깊은 상처가 될 터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용기를 낸다. 이제 여자에게 남은 것은 쓰디쓴 추억과 남자에게 떼인 돈 밖에 없다. 여자는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삼촌이 차린 '막다른 골목'이란 가게를 찾는다. 그곳에서 여자는 다시 삶을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출구가 없어야 길이 열리고, 바닥을 쳐야 올라갈 수 있는 생의 아이러니가 꽤 흥미있다.

 

부재할 때 존재는 뚜렷해지며 고통의 소리가 높을 때 치유의 힘은 강하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래서 죽음이란 커다란 슬픔을 우리 곁으로 불러온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지 않고 성장할 수 없으며,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을 수용하지 않고 우리의 생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막다른 곳에서 추억을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다시 설 수 있다. 그 힘은 고통을 감내하고 소화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곳에서 나는 오늘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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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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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없었을 때, 나는 나이를 먹으면 세상사가 쉬워질 줄 알았다. 지금은 어리고 미숙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일도 잘하고 생각도 깊어질 줄 알았다. 또 마음이 다쳐도 아무 일 없던 듯 잘 소화하고,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중년이 된 지금, 슬프게도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아니 오히려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더 잘 다치며, 세상은 더 어려워졌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어리니 기대라도 있었다. 이제는 희망을 말하기에 부담스런 나이가 되었고, 한때 내가 꿈꾸었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 가를 새삼 깨닫을 뿐이다.

 

이럴 때 누군가 내게 따뜻한 말로 삶의 지침이 되는 말을 전해줬으면 싶었다. 단지 좋은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낸 말을 말이다. 나직하지만 자신있게 건내는 말, 자주 들었던 말인데 전과는 달리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열리는 말을 말이다. 그런 말들이 가득한 책을 얼마전 만났다. 시인 정호승의 책이 그랬다. 제목 하나하나가 마치 한 편의 시 같고, 제목만 곱씹어도 힘이 되는 그런 얘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인생을 이렇게 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호승은 주창하지 않았다. 다만 금언을 던지고 자신의 삶을 말하며 생각케 할 뿐이었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면 변화를 부르지 못한다. 또 아무리 정확한 판단이라도 당사자가 직접 고민하고 내리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유익하다.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강권과 대리로 되는 판단이 책임 회피에 쓰여지는 것을 나는 적잖이 보아왔다. 자신이 내린 판단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다. 그런 좋은 기회를 놓쳐 아직도 어른아이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언은 잘 생각하도록 기회를 주고 좋은 판단을 내리도록 격려하며 이끌어야 한다. 정호승의 글은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생각케 할 뿐 아니라 조급한 마음에 여유까지 불어넣어 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마음이 조급할 때 내리는 결정과 행동은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 한번 쯤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이는 단지 마음의 여유만 주는 게 아니다. 무섭도록 질주하는 시대에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채 떠내려가는 우리를 붙잡아는 주는 동아줄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소유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다시금 자신을 점검하는 일이란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해본다.

 

같은 말도 누가 말하고,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스승이 사라진 시대에 정호승의 얘기는 인생길을 안내하는 인도자로서 손색 없어 보인다. 그의 글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성찰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투명하게, 때론 무섭도록 주시하는 자만이 누군가의 스승이 될 자격을 구비한다. 사람들은 좋은 말이 없어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 말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이 적어 방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정호승의 얘기는 되새기며 마음에 담아둘 만하다. 일흔 여섯 개의 글을 각 인생으로 만들기 위해 7년이 걸린 그의 우직함 때문이다. 그 우직함에 내 신뢰를 걸어본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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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에서 살게 되었을까? - 인류가 탄생하게 된 12가지 우연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8
신 줌페이 지음, 이수경 옮김, 이덕환 감수 / 비룡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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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는 하늘만 보면 감탄이 나왔다. 노을이 질 무렵의 하늘은 대여섯 살 밖에 안된 내가 입을 벌리고 볼 만큼 매혹적이었다. 귤색과 주황색을 섞은듯한 그 매력적인 색깔이 주는 느낌은 유혹에 가까웠다. 그리고는 정지 화면처럼 하늘을 잊고 살았다. 그후로 고등학교 때 우리집 옥상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 적이 있다. 그때도 참 오랜만에 하늘을 본다고 생각했다. 옥색과 파랑색을 섞은 듯한 말 그대로의 하늘색, 하얀 구름이 떠 있는 그 청명한 하늘을 보자니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누워 하늘 보고 날 보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또 일상에 묻혀 하늘을 기억에서 지우고 지냈다. 지금은 힘에 부쳐 접으셨지만 우리 이모는 서울 근교에서 목장을 하셨었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서 쳐다보는 하늘은 그간 서울에서 봤던 하늘과는 차원이 달랐다. 올려다 볼 것도 없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하늘은 윤기가 나듯 고왔다. 그 하늘에 주근깨처럼 박힌 별들은 별이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무지무지하게 많았다. 그렇게 하늘은 여러 색깔을 가진 신비한 공간이었고 바로 곁에 있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공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 만에 하늘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하늘은 감상적 공간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천문학이나 물리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천체로서의 하늘이고 공간이었다. 우주를 다루는 책은 어릴 때 백과사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기에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배우긴 했지만 스치고 지나갔던 내용들이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그런 내용들로 포진된 책을 읽는다는 건 글만 읽고 말 확률이 있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잡게 됐는데 생각보다 잘 읽혀졌다. 1장이 조금 어려웠지 다른 장들은 술술 읽혔다. 작가가 서문에서 말했던,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평이하게 읽히도록 노력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구에 인류가 생기고 문명을 이루기까지의 137억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말이 쉬워 137억년이지 상상도 못할 시간이고 다 담을 수도 없는 시간의 궤적들이다. 그런 시간들을 저자 신 줌페이는 신중하게 선별하고, 촘촘히 담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은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 분야라고 한다. 그래서 부제를 '인류가 탄생하게된 12가지 우연'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장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다룬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암흑에너지와 빅뱅, 우주를 지배하는 4가지 힘, 별의 탄생과 최후, 그리고 우주의 모습을 결정하는 자연상수에 이르기까지 난해한 내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개된다.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지만 그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돼 있다.

 

 

2장은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보다 109배나 큰 태양과, 태양계의 행성들이 소개돼 있다. 태양에 대한 갖가지 설명과, 지구보다 지름이 11배나 크고 질량이 320배나 무겁고 자그마치 위성이 60개가 넘는다는 목성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태양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행성으로서의 목성의 위용과 그 밖의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및 얼음행성인 천왕성과 해왕성의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나열돼있음에도 재미있기만 하다.

 

 

3장은 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달이 지구를 돌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 한다. 무엇보다 달이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말이 새롭다. 4장은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확인된 유일한 행성으로서의 지구가 소개된다. 지구의 적정한 크기와 이산화탄소의 조절 시스템, 지구 자기의 존재, 오존층의 탄생은 인간이 지구에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인류가 탄생되기 위해 지구에서 나타난 일들은 경이롭기만 하다.

 

 

 

5장은 물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 부르는데, 실제 지표면에 존재하는 물의 비율은 지구 전체 질량중 0.02퍼센트에 불과하고, 강물은 지구 전체의 물 중 0.000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단다. 또한 물이 액체 기체 고체로 존재하는 것이 지구의 가장 큰 특징이라한다. 물이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신비롭고 신기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롭게 아는 것 투성이다.

 

 

6장은 지구 생명체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 열수의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났고, 그 생명체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구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생명체의 멸종은 왜 일어났는지를 다루고 있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멸종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생물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멸종과 같은 비극이 있지 않았다면 인류가 탄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7장은 문명이 탄생하는데 기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직립보행과 언어 사용이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며 문명의 발생까지 소개하고 있다. 온난하고 안정된 기후가 인류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새롭다.

 

 

8장은 앞으로의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언급하는데, 이 장에서 쇼킹했던 점은 우리가 지구를 지킨다는 말의 어쭙잖음이었다. 저자는 지구가 인류가 지켜줘야할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라며 인간을 대신할 생물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놀라움은 천체를 말하며 오늘을 말했고, 물리학에서 시작해 윤리학으로 끝났다는 점이었다. 이뿐 아니라 그 많고 어렵고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 쉽게 말하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수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 점이었다. 지식으로 접근하면 재미없어도 스토리로 접근하면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과학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학생들이나 어떤 이유에선지 과학에 흥미를 잃은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겠지만 알면 지식의 균형을 잡아주니 말이다. 지식의 균형은 알게 모르게 삶에도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지식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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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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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일상을 특별함으로 환치하는 매력이 있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분명 우리 땅임에도 공항이 전하는 이국정서는 사람들의 여행이 이미 시작됐음을 전해준다. 사람들로 북적대도 예민해지지 않는 건 공항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들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의 기대를 반영한다. 일상과 휴식, 만남과 이별, 출발과 귀환이 교차하는 공항은 이곳이 남다른 공간임을 알려준다. 공항은 또한 각기 다른 사정과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을 아울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 그림엔 다른 곳에서는 결코 전해지지 않을 느낌이 담겨있다.  

       

 

2009년 알랭 드 보통은 영국 히드로 공항의 초청을 받아, 공항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 문화의 중심지이자 현대 문명의 상징처로서 공항을 늘 주시해 왔다. 그런 그가 히드로 공항의 첫 상주작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공항을 둘러본 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것은 공항에서의 일상이다. 만나고 헤어지며 복귀해야 하는 일상이 공항에선 한 편의 드라마처럼 압축돼 있다. 아무리 반가워도 감정은 오래 가지 않으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픈 이별도 결국 담담히 받아들여야 함을 공항은 무언으로 가르친다. 공항이 단순한 터미널에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 알랭 드 보통은 한 사람의 생을 대하듯 공항을 대한다. 책의 목차는 그가 공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전한다.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

 

 

알랭 드 보통은 일 주일 동안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공항에 있으나 없는 것처럼 존재하여 공항을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수하물 담당자에서부터 청소부와 보안 요원, 비행기 조종사와 공항 교회의 목사, 그리고 자신을 초대한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알랭 드 보통이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는 그들의 숙여진 고개와 스스로 볼 수 없는 등판을 주목하며 현대 문명의 오늘을 지켜본다.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의 초대를 통해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 그 자각은 자기 비하나 우월감이 아니며 이 시대에 글을 쓰는 자로서의 자각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만이 보고 느끼며 나눌 수 있는 것들을 가슴에 담아놓는다. 여행이 가지는 지극히 얕거나 깊은 의미를 포착해내고 더하여 현대 문명의 집결처로서의 공항의 기능을 되짚어본다.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전체 인류사의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한 백여년을 무서우리만큼 혁신했고 사람들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공항은 현대 문명의 이면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자본의 논리가 공항만큼 치밀하게 배어있는 곳을 찾긴 쉽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실상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곳에서 인간을 보고 그려냈다. 세련의 외피를 입고 있으나 지극히 건조한 공간인 공항에서 알랭 드 보통이 찾고자 한 것은 결국 공항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 산문집이 단순한 공항 체류기가 아닌 아포리즘의 역할을 성실히 소화해 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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