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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뜩이나 인문학의 기반이 취약한 대한민국의 학문적인 풍토에서, 사회학과 인류학, 거기다 더 나아가 언론매체학까지 선진국의 수준과 비슷한 무엇을 기대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몰상식한 발상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온갖 조작으로 점철되는 각종 매체의 왜곡 때문에, 심지어 조그만 서점에서조차 책 한권한권의 옥석가리기는 쉽지가 않다. 그렇게 무분별한 기준하에서, 무분별하게 선정되는 각종 '베스트셀러'의 홍수 속에서도 이런 숨겨진 보석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는 것을 보면, 보석은 분명 보석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모양이다.
사대주의 일색인 대한민국의 출판문화에서, 진흙탕 속 한 송이의 연꽃처럼 피어난 저작이기에, 이 책에 대해서는 백점은 커녕 백만점을 줘도 그 찬사가 모자랄 지경이다.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한국의 사회상을, 그것도 세계사회의 변화양상과도 연동시켜 이렇게 잘 분석, 정리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물론 이런 올바른 소신과 철학을 가진 지식인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욕심을 내야한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물론 제목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에 대한 지면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막상 글을 읽고나면 기억에 남는 단어는 '대중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매개하는 '매체, 미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시적인 대중문화 현상을 컨트롤 하는 하나의 '거시적 코드'라고나 할까.
지난 50년간 한국의 사회와 경제는 오직 '압축성장'만을 해왔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경제는 선진국의 궤도에 올라섰고 정치와 사회 역시 많은 부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지난 50년간 압축시켜왔던 사회 제반분야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그 본체를, 여러 문제점과 함께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심각하고 지대한 것이 언론 매체였기에,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어느때보다도 이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학습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칼이나 불과 같은, 편리하지만 양면성을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매스 미디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대중문화의 위력에 대해서는 굳이 저자인 강준만씨의 언급을 듣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귀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그 '엄청난 덩치'를 컨트롤 하는 수단이며, 그것을 민주적으로 운용해야만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매체에 이렇게 진지하면서도 거부감 들지 않는 형식으로, 한국인의 머리에 의해 한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딱딱한 전공서에서 일반 교양서까지, 서점가를 차지하고 있는 성인용 도서는 온통 번역판 일색이다. 그러한 되먹지못한 번역자-통역자라고 불러줘야 더 정확할-들이 이 사회에서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세상. 뭔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다루었던 주제가 매스미디어라는 특성상 출간된 당시의 상황과 지금 현재의 상황이 달라 현재의 시각에서 책을 읽어내리면 얼마간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본 저작은 충분히 '클래식'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편하지 않은 조건, 주류 출판문화의 저질스런 풍토 속에서 꿋꿋이 프론티어로서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몇몇 지식인들의 분투에 고귀한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