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nnonade
레모네이드 (Lemonade) 노래 / 록레코드 (Rock Records)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음반은 계속 발매되는데 광고를 위한 미사여구는 한정되어 있어서, 괜찮은 음반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제 전문 어문학자가 되어야 할 상황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귀에 꽤 익숙한 이름인데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날카로운 몇몇 매니아들에 의해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긴하나 이는 대부분 극소수이며, 이점이 나를 굉장히 안타깝게 하는 대목이다.
레모네이드는 99년 한 장의 데뷔앨범을 남기고 증발한 남녀 혼성 트리오다. 멤버구성은 서태지처럼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리더 요한, 백보컬을 담당하는 모델출신 여성멤버 재경, 아무 하는 일이 없는 Dail이라는 사람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모네이드는 4줄 이상의 정보를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희귀한 팀이 되었다. 99년 데뷔당시 락레코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잠시 메인스트림에서 머물기도 했으나, 타겟설정을 잘못한 관계로 그 세계에서 완전히 사장되었다. 10대 댄스그룹들과 같이 섞여서 어울린 것이 결정적인 과오였던 것이다. 만약 조금만이라도 락적인 이미지로 어필을 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정말 괜찮은 대중음악가 한 사람을..대성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본 앨범은 신인이 갖는 미숙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다. 여기엔 전곡을 작사 작곡, 레코딩, 프로듀싱한 리더의 역할도 컸지만 이근형, 신현권 등 국내 정상급의 세션맨들 참여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듯 보인다.
앨범의 전체적인 색깔은 역시 영국의 여운이 강하다. 하지만 '정직하게' 음악을 만든 의도가 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될만큼 특정 밴드의 그림자가 진하지는 않으며, 데뷔앨범치고는 아이덴티티도 뚜렷한 편이다.
잠시 공중파를 타기도 했었던 '곰인형'을 제외하더라도 본 앨범은 여러곳에서 빛을 발한다. 개인적으로 '푸른천사'와 '자주색'이 베스트 트랙이라 생각되는데, 이 곡들은 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어떤 곡에서도 비슷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실험성과 작품성 대중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더욱 더 눈길을 끄는것은 작곡 스타일에 있어서 방법론의 차이이다. 여러 매체에서는 모던록이라는 둥그스레한 표현으로 이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명히 구미권의 모던락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특히 보컬라인의 멜로디는 가사가 한글이 아니더라도, 청자가 한국인이면 자연스레 몰입될만큼 '한국인'에 대해 흡인력이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이 팀의 리더인 요한이 서태지와 프로젝트를 해보았으면 하는 상상을 자주 해보았다. 왜냐면 서태지는 팝송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한데, 요한은 그 팝적 센스를 서태지의 상상 이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의 송라이팅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정석을 달리나 군데군데 변칙적인 시도들이 소스역할을 해주어 곡의 전체적인 윤곽이 상당히 참신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순정파 음악의 선구자 큐어가 이들의 영웅인만큼, 이들 또한 음악에의 순정을 버리지 말고 조속히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