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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Me
Sixpence None The Richer 노래 / 워너뮤직(WEA)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파스텔톤의 차분한 감성을 센스있게 풀어내 많은 팬들을 아스한 설레임의 세계로 초대했던 Sixpence None The Richer 는 이제 더 이상 락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형의 밴드가 되었다.
여전히 상투적이고 억지춘향으로만 들리는 현재의 이모코어 씬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꿈결같은 느낌 가득했던 90년대 모던 락에 대한 향수가 자연스레 생겨난다.
SNTR...그들의 애수어린 기타선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지금의 기분을 살려 로맨틱했던 90년대의 감성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싶다.


음악은 청각적인 이미지로 소개를 해야하는 것인데 글자라는 활자매체를 통해 소개할수 밖에 없도록 처음부터 한계가 그어져 있으니 다른 청자들에게 본 앨범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음반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평론가들은 보다 쉽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여러가지 상징적인 아이콘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80대의 헤비사운드는 메탈리카, 90년대는 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무한대로 뻗어나가려는 욕망의 속성을 지닌 예술품을 하나의 틀로써 제한하는 행위는 분명히 온당치 못한 처사지만 어차피 그것이 일장일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행위가 썩 지탄받을 일만은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틀과 아이콘을 쓰는 것은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미학강의를 하는 시사논객 진 모 교수처럼 여러 회화작품을 곁들여가며 '시각이미지'로 전달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이러 상황에 있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Kiss Me' 와 'There She Goes'로 익히 잘 알려져있는 밴드이지만 감칠맛나는 그들의 사운드를 깊이있게 음미하는데 있어서 이 두 곡만으로는 분명히 무리일 것이기 때문에 나는 컬렉티브 소울이라는 90년대의 거대한 아이콘을 설정하고 싶다.
10대의 중후반, 그리고 20대 초반의 시기를 90년대에 보낸 사람이라면 컬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것이다. 재치넘치고 개성있는 락 넘버들로 많은 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던 컬쏘였지만 팬들이 실제로 더 감동했던 부분은 그들 음악의 저변에 깔린 잔잔한 감수성이었다. 남부지방 특유의 온기넘치는 사운드가 그 핵심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SNTR은 이것을 매우 극적으로 재현해내는 밴드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98년 말미에 공개된 본작은 그들의 풀렝쓰 데뷔작이다.
기타와 첼로선율이 지배적인 가운데 곱디고운 음색의 보컬이 곡 하나하나를 안정감있게 완성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흙냄새 가득한, 소박한 기타연주를 들려주는 Matt Slocum 이라는 인물이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는데, 힘있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 덕분이지 전체적인 곡 구성이 매우 탄탄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We Have Forgotten'은 본작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로, 차분하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잘 그려진 곡이다. 절제된 미드템포에 감각적인 기타연주와 보이시한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인데, 청자의 긴장감을 푸는데 있어서 이만한 곡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애수어린 기타솔로가 스트링 세션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Anything'을 지나 메가톤 히트송 'Kiss Me'에 이르면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업템포의 생기넘치는 곡임에는 틀림없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전혀 벗어남이 없는, 절제된 스타일의 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곡은 데뷔앨범이 발매되기 이전인 98년에 이미 싱글로 공개가 되었으나, 지금의 인기를 얻은 것은 한 청춘영화에 삽입된 이후이다.
앨범과 곡 자체만으로 순수하게 감상해나가는 태도가 뮤지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되는 바, 영화삽입이니 뭐니 하는 시끄러운 요소들은 과감히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

'Easy To Ignore'도 앨범 전체적인 색깔에서 크게 벗어남 없는 차분한 사운드를 담고 있지만 컨트리풍의 바이올린 연주가 입혀진 덕택에 제법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다.
다소 격정적인 톤으로 읊조리는 'Puedo Esribir', 절제된 피아노와 트럼펫 연주가 잘 어우러지는 'The Lines Of My Earth'도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다가오는 트랙들이다.

단순하지만 몽롱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잘 드리워지는 'Sister, Mother'도 추천하고픈 트랙인데, 퍼즈톤의 기타음색에 귀를 귀울여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맥시멈한 스트링 협연이 돋보이는 'Moving On'은 템포체인지를 했으면 굉장히 멋졌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이는 곡이다.
둥글둥글한 베이스 인트로로 시작하는 Love는 에코가 잔뜩걸린 기타연주로 얼마간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특한 트랙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There She Goes'는 앨범의 피날레에 위치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차분한 분위기가 앨범 전체의 특징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긴장감이 떨어지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축 늘어졌던 어깨를 주무르며 탁한 공기를 환기시키는 듯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끝이 좋으면 앞부분의 실수가 다 커버된다고 했던가. 본 트랙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도 남을 정도로 위력이 있는 넘버이다.
위력있는 곡일수록 리메이크 횟수가 많은 것은 그때문일까...

지금의 이들을 있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특정 영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Sixpence None The Richer는 본작을 통해 한편의 잔잔한 러브스토리를 훨씬 더 감미롭게 그려낸다.
자연스레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이는 이 달콤한 사운드...사운드트랙의 진정한 역할은 이런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수많은 모던 락 밴드들이 명멸한 가운데 이모코어라는...단어자체에서부터 벌써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다가오는 신종 장르가 현재 주류 락씬을 점하고 있다. ...의문스럽다. 감성과 코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90년대식 귀로 2000년대의 음악을 단편적으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한 아쉬움이 드러워지는 건 역시 어쩔 수가 없다.
2000년대의 음악 트렌드는 멜로디보다는 리듬이 강조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누군가의 언급이 떠오른다. 최근 일련의 경향들을 통해 그 말이 절실히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절망감은 더해진다.

하나의 씬이 다시 부활하는데는 정확히 20년의 주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1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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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anufacture
피어 팩토리(Fear Factory) 노래 / 지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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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뉴메틀이라는 단어만큼 모호한 의미를 지닌 것도 없다. 물론 록음악과 관련된 대부분의 용어들이 정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왔던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뉴메틀의 경우 십년 전의 얼터너티브와 마찬가지로 해석의 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항상 논란의 소지를 끌고 다닌다.
메틀이라는 단어 앞에다 'new'라는 접두사를 붙인데는 분명 그것이 전자와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양상은 지금의 그것이 과거의 것보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좀 더 심플해지고 무게감을 더한 것 이외에는 별달리 차이가 없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때문에 'new'라는 말머리를 붙이는 것은 분명한 억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팀들에게는 아낌없이 그에 어울리는 대접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기존의 헤비메틀에서 분명히 한단계 나아간, 진보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피어 팩토리는 그런 의미에서 [New-metal] 이라는 본연의 의미에 더없이 충실한 밴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두번째 정규반인 본작 'Demanufacture'은 전작에서 끝내 떨쳐내지 못했던 데스메틀적 색채를 과감히 제거하고 현대적 작법을 멋지게 구사하면서 사운드의 통일성과 곡 구성의 짜임새를 한층 진보시킨, 퀼리티 만점의 [New-metal]이라 할 수 있다.

헤비함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메탈씬은 판테라와 미니스트리라는 두 모델을 선정하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판테라의 경우 좀 더 정통성에 기반을 둔 형태의 변화를 꾀하는 뮤지션들에게 어필했고, 미니스트리의 경우는 보다 더 극단적인 방법론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피어팩토리는 이 후자의 케이스가 성공적으로 발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데스/스래쉬 메탈 밴드들이 디지털 프로그래밍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항상 '가능성'에 그칠 뿐이었다. 피어 팩토리의 데뷔작 'Soul Of A New Machine' 역시 그렇게 전형적인 절차를 밟았으나, 3년간의 절차탁마를 통해 그 시행착오를 완벽하게 커버해내었다.

데스메탈 기타연주와 디지털 효과음이 물리적으로만 '섞여있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서는 물과 기름같았던 이 두가지 요소가 마치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완벽한 하나의 형태로 거듭나있다.
건조한 투베이스 드러밍과 전기톱같은 기타연주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첫 곡 'Demanufacture'에서부터 기존 메탈음악과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곡의 흐름에 따라 완급조절을 분명히 해주는 드럼플레이 덕택에 사운드는 한층 세련미를 더한다.

SF적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Self Bias Resistor'는 보컬을 담당하는 버튼 C. 벨의 감성이 잘 녹아있는 곡이다. 이 곡을 통해서도 피어팩토리의 노선은 분명히 드러난다. 데스메틀 특유의 너저분한 기타리프를 심플한 스타일로 대폭 수정하여 베이스드럼과의 유니즌을 강조한 형태로 표현했는데, 이 역시 밴드 자신들만의 색깔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메탈릭한 파열음이 두드러진 히트넘버 'Zero Signal'는 디노 카자레스의 긴장감넘치는 기타연주가 압권인 곡으로 후반부의 장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특히 엔딩은 피아노 연주로, 아주 극적인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이제 어떤 악기로도 자신들의 감성을 구체화시킬수 있다는 자신감이 짙게 배여있는 것 같다.
최고의 힛트싱글인 'Replica'는 후반부의 투베이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심플한 구조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곡에서도 역시 진행을 리드하는 것은 레이몬드 에레라이다. 데이브 롬바르도 이후 실력과 센스 모두를 겸비한 천재 플레이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전형적인 피어팩토리 스타일로 들리는 'Dog Day Sunrise'는 실제로는 데이빗 보위의 커버곡이라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며 'Flashpoint'는 부루털한 전반부와 멜로딕한 후반부가 색다르게 대비되는 곡이다. 이 외에도 서슬퍼런 칼날늘 잔뜩 세운 'Demanufacture Pisschist', 장엄한 끝 곡 'Theraphy For Pain' 역시 기대이상의 노력이 담겨있는 명트랙이다. 특히 'Theraphy For Pain'은 앞서 등장했던 곡들을 변주해서 만든 곡으로, 무려 9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통해 앨범 전체의 컨셉에 통일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 비록 핵심 멤버였던 디노 카자레스는 없었지만 피어팩토리가 콘과 함께 대한민국을 찾았다. 별다른 샘플링이나 효과음없이도, 브레인인 디노없이도 그들은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많은 이들이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폄하하면서 그 예로 라이브에서의 연출력 부재를 꼽는다. 그러나 피어팩토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소리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조잡한 샘플링과 효과음으로 '인더스트리얼'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여타밴드와는 분명히 다른, 라이브를 최우선으로 하는 진정한 '헤비메틀밴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디지탈 사운드, 그에 어울리는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컨셉...그러나 라이브에 있어서는 정통 헤비메틀식의 자세를 보여주는 피어팩토리. 그들은 진정한 뉴메틀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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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Your Dim Light Shine
소니뮤직(SonyMusic)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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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적이고 사색적인 정서가 의외로 힘찬 사운드로 표출되는 본작 'Let Your Dim Light Shine'은 90년대식 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갖은 형태의 음악들이 난무했던 당시의 씬에서 음악적으로 뭔가 공통적인 코드를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어불성설로 들릴지 모르나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일관된 코드가 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누적되어온 경제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청년실업이 증가하였고, 명분없는 걸프전쟁에 대한 반대여론 때문에 미디어는 연일 어수선했으며 때맞춰 유행한 문화계의 허무주의 사조는 90년대의 대중문화를 하나의 코드로 엮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런 공통적인 분위기는 Nirvana라는 그룹에 의해 심지가 폭발되었고 Green Day, Beck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소울 어사일럼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역시 적지 않다.
이제 20년을 훌쩍 넘긴, 연륜으로 치자면 메틀리카와 동년배라 할 수 있을 고참밴드를 두고 너바나의 허무주의를 계승했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몰상식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그것은 결국 커트의 죽음이라는 씬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얼터너티브의 인기를 연장시키는 데 일조하였던 것이다.

R.E.M.에 비하면 인지도가 턱없이 떨어지고, Pixes나 Pavement에 비하면 턱없이 팝적인, 다소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도 소울 어사일럼은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10년이 넘는 연륜의 위력이 압축적으로 스며있는 본작을 소개함에 있어서 'Runaway Train'을 언급한다는 건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다. 멀어져가는 기차는 그냥 멀어져가게 놔두자. 이 앨범은 이 앨범대로 떠나갈 방향이 따로 있으니...


최소한의 악기편성으로 소탈한 사운드를 들려주던 대부분의 얼터밴드들과 달리 소울 어사일럼은 빈틈없는 꽉찬 연주 스타일로 항상 어느정도의 차별성을 유지해왔다.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 것이 본작 'Let Your Dim Light Shine'이다.
일반 주류 팝 앨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효과음이나 샘플링을 곡 구석구석에 배치시킨 점이 그것인데, 이런 시도에 익숙해져서인지 매우 자연스럽고 센스있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모던 록 차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Misery'는 부드러움과 활기가 넘치는 전형적인 업템포 얼터송이다. 강렬한 디스토션 사운드와 청량감있는 아르페지오 선율, 안정감있는 기타솔로가 무리 없어 어우리지는, 그들만의 연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베스트 트랙이라 할 수 있다.

블루지한 기타솔로를 들려주는 'Shut Down'에 이어 'To My Own Device'에서는 소박한 감성을 군더더기 없는 연주로 잘 그려낸다. 나를 그냥 좀 놔두라는 곡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나에게 관심을 좀 쏟아달라며 애처롭게 외쳐댄다.

'Hopes Up'에서는 데이브 나바로를 연상케하는 현란하고 맥시멈한 솔로 플레이가 등장하는데, 당대 주류 얼터 음악들이 기타 솔로에 무지했던 점에 비춰보면 굉장히 시원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팝튠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Promises Broken'은 포근한 분위기의 발라드 송이다. 이어지는 업템포의 'Bittersweetheart'와 함께 앨범 내에서 가장 팝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팝송에서 자주 사용되는 효과음을 센스있게 가미한 'String Of Pearls'은 어딘가 관조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역시 코러스가 돋보이는 넘버이다.

'Crawl'은 곡 제목과 어울리게 가장 현란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역시 강력하면서도 특색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 'Caged Rat'과 함께 앨범 내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child'라는 단어때문에 어딘지 추악한 마이클 잭슨이 연상되는 'Eyse Of Child'은 제목처럼 잔잔한 애수가 녹아있는 발라드이다. 물론 마이클 잭슨의 곡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부담없는 느낌임은 말할 것도 없다.

'Just Like Anyone'과 'Tell Me When'에서는 다시 하드한 방향으로 선회하여 그들만의 팝적 감각을 잘 만들어낸다. 바이올린 소리를 연상케하는 라이트 핸드 주법의 프레이즈가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는 두 곡이다. ...얼터앨범 치고는 굉장히 감상하는 맛이 나는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다.

'Nothing To Wright Home About'을 통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 다음 자조적인 분위기의 'I Did My Best'로 데이빗 퍼너는 앨범을 마무리짓는다. 이 곡은 기승전결식 컨셉에 잘 어울리는 넘버로 밴드가 마지막까지 앨범의 완성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Suede를 연상케하는 우수어린 솔로연주가 작별의 아쉬움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한 장의 얼터앨범에서 이 정도의 파워와 현란함을 만끽...정말 뜻밖의 수확이다. '솔직한 감성'에는 감동했지만 감상용으로서의 한 음악으로는 항상 불만 투성일 수 밖에 없었던 90년대의 얼터너티브. 소울 어사일럼은 그것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단점은 퍼펙트하게 커버해낸 유일무이한 밴드다. 누군가 사운드가든이나 앨리스 인 체인스를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그들은 어디까지나 헤비메틀 밴드 아니었던가...


빌 클린턴의 집권이후 미국 경제는 '신경제'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경제사정이 바뀌면 사람들의 정서도 바뀐다는 말이 틀린게 아닌지 주류 록음악의 사조도 덩달아 큰 폭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잘 살게 되었고, 그런 만큼 이전보다 더 자극적인 사운드를 원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헤비한 음악들이 판치게 된 것 아닐까.

밴드도 해산한 것 같고, 얼터음악도 이제는 분명히 역사속의 화석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청춘을 보냈던 우리세대로서는 얼터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온갖 굉음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락 음악 속에서......잠시 지난날의 우수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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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stomp
실버체어(Silverchair)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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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rrow'가 불러일으킨 반향이 어떠했는지, 그때 그 시기를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것이다. 정말이지 호들갑도 아니었다.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의 사운드에 에디베더 풍의 창법, 페이지 해밀튼의 목소리, 커트 코베인의 얼굴을 한 열 여섯살의 소년 락커"
과연 이따위 캐치프레이즈가 락음반 리뷰에 등장할 자격이 있는 문구인가. 그것도 이제 막 '알짤없는' 락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솜털쟁이들한테 말이다.
본작은 충분히 명반이다. 좀 더 재미나고 새로운 맛깔을 느껴보기 위해, 잠시 잡지기사는 쌩까도록 하자.


리더인 대니얼 존스는 자기 최고의 우상이 헬멧의 페이지 헤밀튼이라며 시간이 날때마다 기자들에게 세뇌를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버체어의 음악이 소개됨에 있어서 헬멧의 이름이 회자된 예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이부분이 몹시 의문스러운데, 본작은 90년대 얼터너티브의 모양새보다는 현재의 코어뮤직과 더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코어음악을 선보였던 헬멧의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는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대니얼이 그렇게 귀에 에고 다녔던 것처럼.

물론, 앨범 어디에도 헬멧이 보여주는 '끊어치기'는 없다. 그렇지만 95년 당시에 등장했던 주류 록 앨범에 비하면 그 헤비니스가 상상이상이다.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이런 부분 때문일 것이다. 첫 곡 'Israel's Son'에서는 어느정도 그런말이 타당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히트넘버 'Pure Masscare'에서는 90년대 후반 혹은 현 시점에서나 등장할법한, 매우 현대적인 사운드가 시도된다. 보컬라인의 멜로디는 분명하지만 헤비함에 대한 집착이 엄청난...이것은 분명히 최근의 조류-이모코어라 통칭되는-인 것이다.

본작의 발매시기가 95년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들이 적어도 3, 4년은 앞선 사운드를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95년 당시의 어떤 미디어에서도, 실버체어 자체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빅 4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는 껀덕지를 줏어내기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그래야만 장사가 되었던게 당시 음반사의 처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속에서 실버체어는 '아류'라는 누명을 쓰고 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혐의를 제대로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Madman'에서의 헤비메틀은 정말 멋지다. 당시의 뮤직씬에서는 절대 맛볼수 없던 질주감.
우습다. 이런 곡이 있는데 왜 메탈리카의 아류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까?

그래도 역시 모든 논란의 포커스는 "Tomorrow" 이 한 곡으로 모아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쿨한 곡이었지만, 평론가들에게는 너무나도 어정쩡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Hard to drink 의 외침과 함께 전율스럽게 깔리는 전자기타음은 누가봐도 시애틀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어딘가 절규하는 듯한 창법에서 에디베더의 그림자를 느꼈는지 음반사는 곧장 이들에게 축복어린 세례를 내려버린다.
세례명 '성 시애틀'.

'Shade'에서 보여주는 분위기있는 블루스, 'Leave Me Out'에서의 묵직함, 자조적인 목소리의 'Suicidal Dream' 등등 앨범 후반부 역시 따분함을 느끼기 힘든 다채로운 형태의 곡들로 채워져있다. 특히 'Cicada'와 끝곡 'Findaway'에서 보여주는 뉴메틀적 어프로치는 분명히 그 전위성을 인정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프로듀싱과정에서 얼마간의 볼륨업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정말 열 여섯 친구들이 빚어낸 사운드라고는 믿을 수 없다. 설령 서른이 넘는 베테랑 뮤지션이 이 앨범의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인정받았을 것이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희귀한 병으로 죽다 깨어난 우리의 주인공에게, 이제 과거의 누더기는 벗겨주는게 좋을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씬만큼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도 없는데 병때문에 제대로된 투어한 번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음반업자들은 음반을 팔아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팬들은 그렇지 않다.
팬들은 정서적 욕구충족을 최우선으로 한다. 뻔히 목적이 다른데, 음반업자들의 시각에 종속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류'라 불리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다시 한 번, 음반업자가 아닌 팬의 시각에서 온기있는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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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shing Pumpkins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선정한 100대 음반 시리즈 86]
스매싱 펌프킨스 (Smashing Pumpkins) 노래 / 이엠아이(EMI) / 1984년 5월
평점 :
품절


...제아무리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만은 않은 논리다. 아니, 오히려 틀릴 수도 있는 논리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대중음악을 잠식하고 있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다. 모두 미국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그들 자신들만의 세계를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오히려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다.


희대의 살인마인 조지 W. 부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이브 머스테인, 그리고 이라크를 박살내는 것만이 인류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자신의 무식을 한껏 뽐내는 잭 와일드...
미친 개처럼 재잘거리며 쥐어뜯고 싸워대던 건스와 너바나도 미국의 국기(성조기라는 표현은 안쓰겠다)만큼은 공통적으로, 가장 자랑스런 패션으로 애용할 정도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곳의 락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그곳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경의의 대상이 되는, 아주 성스럽기까지 한 존재다.

이렇게 미국이라는 국가의 경외감이 국민 한명한명의 머리속 뿌리까지 각인되어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그들의 사상이 녹아있지 않다는 논리가 타당한 것일까. 과연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는 소리가 냉정한 판단에서 나온 소리일까.


우리의 위대한 공자님부터 시작해서 유럽친구들 자칭 최고의 철학자라는 장 폴 사르트르까지...좀 유명하다 싶은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윤리는 바로 '행동하는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라는 것이 여지껏 관념적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 것은 '행동'이라는 것보다 '정신'이 선행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실천이 중요한들 잘못된 생각을 행동에 옮겨버리면 그러지 않음만 못하다. 그러다보니 학자들조차, 철학 최후의 단계는 '실천'임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정신'보다 잘 강조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옳은 정신과 적극적인 행동이 결합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락 뮤지션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미국인 그들만의 음악을 내가 왜듣고 있나 하는 자책감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탐 모렐로나 빌리 코건같은 예외가 있었다.


많은 미국의 락스타들이 잡지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커트니 러브같은 천하의 걸레만도 못한 쓰레기가 사회의 저명인사로 취급되는 미국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은 정말 건강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토크쇼에 나와서 애들만도 못한 온갖 상소리를 자랑스러운듯 쏟아내는 헐리웃 스타들...
우리 한국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국인들이 얼마나 무식한가를.

그런 와중에서 마치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있는 빌리 코건이라는 뮤지션을 보면 얼마간의 질투심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마치...전쟁에서 반드시 제거해야할 적장-개인적으로는 더없이 훌륭하지만-을 보는 것 처럼.

빌리 코건은 해산직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국에서 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내한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그의 지적인 캐릭터는 빛을 발했다. 신변잡기식의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았고 거의가 시사적인 문제에만 자신의 관심을 표명하는 매우 인텔렉추얼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여타 다른 무식쟁이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주한미군 문제부터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 미국내 한국인들의 특수한 상황 등등 빌리로부터 인터뷰어가 들은 대답은 하나같이 기대 이상으로 세세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올곧은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스매슁 펌킨스는 락 히스토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너바나와 스매슁 펌킨스 중 어떤 팀이 더 음악성이 뛰어난가에 대해 아직도 고민하는 얼간이가 있을까.


본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에서 스매슁 펌킨스가 보여주는 음악적 지평은 동시대의 어떤 락 뮤지션도 감히 범접치 못할, 그야말로 언터처블한 수준이다. 마치 한편의 장대한 현대판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처럼 짜릿함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90년대 최고의 판타스틱 에니메이션... 감히 누가 이런 대작을 구상할 수 있겠는가.

전작 [Siamese Dream]역시 연주력, 작곡력, 통일성 모두가 골고루 빛을 발한 명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의 가치는 그것을 몇배나 뛰어넘고도 남는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많이 소프트해졌고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최면적인 느낌보다는 밝고 서정적인 감성을 부각시켰다. 악기편성 역시 이전과는 달리 피아노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효과음 및 샘플링도 무시못할 수준으로 '이용'하였다.(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샘플링도 엄연한 '악기'이리라) 어설픈 3류 뮤지션이라면 이런 시도들이 조잡하게 조립되어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왔겠지만 역시 빌리는 1류 뮤지션 답게 정반대의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수록곡들은 모두 동화적이고 로맨틱한 앨범의 컨셉에 잘 어울리게끔 하나같이 영롱한 색깔을 띠고 있다. 심지어 'Bullet With Butterfly Wings', 'Zero', 'Jelly Belly'등에서 나타나는 시끄러운 시도들조차도 전체적인 컨셉에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수록곡 하나하나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
'Tonight Tonight', 'Galapagos', '1979' 는 본작의 컨셉을 전형적으로 그려내는 트랙들로 어린시절을 연상케하는 향수어린 곡조가 감동적이다.
한없이 길고 다사다난했지만 결국 하룻밤의 꿈으로 마무리되는 피터팬과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처럼, 펌킨스의 본작 역시 그에 어울리는 한편의 자장가로 끝을 맺는다.

팝/락은 물론이요 뉴에이지의 방법론과 스케일마저도 초월하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음악성때문에 본작에 대한 평가는 그 위력을 아는 사람일수록 분명히 언급을 꺼리게 될 것이다.
...빌리 코건이라는 뮤지션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초인적인 작품은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열린자세로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것을 발판삼아 자기자신의 직관력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자세를 가져야만이 보다 폭넓고 수준있는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늘 미국의 음악이 가장 우월하다고 외쳐대는 무식쟁이들이 득실대는 한 미국의 대중음악은 분명히 자멸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빌리 코건이 인터뷰에서 분명히 경고한 대목이었다.

스매슁 펌킨스는 음악을 통해서 어떠한 정치적 견해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건강한 자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모범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잭 와일드가 진정 뮤지션으로서의 철학이 있다면 보다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죽이는데 찬성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음악과 예술은 휴머니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빗나간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될때, 그것은 무언의 폭력이 된다.
모든 상황은 간단하다. 내가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만큼, 남의 행복도 배려해주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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