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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약 한 달 전에 젊은날의 초상을 읽었다. 무척 오랜만에 읽는 우리나라 소설. '젊은날의 초상'이라는 유혹적인 제목 때문에...서둘러서 읽었다. 이십대의 '젊은' 나날도 반년 밖에 남지 않았기에...
동명의 영화도 오래전에 이미 나와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들었다. 하긴 이문열이라는 작가와 작품 자체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안 나오는 게 되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 여튼...포스터의 인물들이 흥미롭다. ㅋ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 옥소리...다들 앳된 얼굴의....
으~ 갑자기 숙연해진다. 지금은 중년이 된 저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니..그 이미지가 소설의 내용과 너무도 기막히게 오버랩된다.
영화를 안봐도 대충 알겠다. 정보석은 분명 남자주인공, 이혜숙은 정보석의 이종사촌 누나, 배종옥은 업소여자(ㅋ), 그리고 옥소리는 '하구'에서의 그늘진 여주인공.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서의 이미지 때문인지 옥소리는 언제나 가녀리고 수심에 가득한 그런 느낌으로 내게 남아있다. 이혜숙도...지적인 이미지가 있는게 그 역으로 딱이다. 배종옥을 업소 여자로 예상한 것은 나로서도 유감이다. 뭐 어디까지나 다 내 예상일 뿐이니...배종옥이 사촌 누나일수도 있지 뭐. ㅋ 중요한 건 내가 영화를 안봤고..어디까지나 저 포스터와 소설의 내용을 발판으로 혼자만의 공상을 해본 것 뿐이다.
이문열의 소설은..뭐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내 스타일에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탈이었던 걸까. 난 이 소설이 너무도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군사정권 시절 방황하는 젊은 대학생의 자화상...딱 이거다. 나머진 여기서 살붙이기일 뿐. 비밀스레 매설된 지뢰마냥 폐부를 찌르는 명문장들이 곳곳에 매설돼있어 대가로서의 필치는 여전하나...내용이 없다.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라면 할말은 없는데... 거 왜 미술에서도 구상이니 비구상이니 그러듯이 말이다.ㅎ
그냥 난..따분해도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다. 신곡, 삼국지, 쿼바디스...
'젊은날의 초상'은 막말로 그냥 일기장일 뿐이다. 그리고...솔직히 나 정도니까 이해하지 스물 두세살의 어리디 어린 중생들이 읽기엔 턱없이 현학적이다. 내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라...이 소설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되는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 인구 많다지만...미안하지만 난 우리나라 젊은 대학생들의 지적인 수준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물론 어딘가에 있기야 있겠지. 허나 그런 예외적인 수치는 전혀 의미가 없다. 문제는 '세대'로서의 젊음이지 '개인'으로서의 젊음이 아니니까. 소설은 시대를 대변하는 것. 이문열이 말하는 '젊음'이 진정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보다는 집단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다. 그래야...휴머니즘이 된다. 개인적으로 예술작품들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휴머니즘이라고 보기 때문에...
여튼 스케일이 없다는 건 좀 아쉬웠다. 이는 이문열 뿐 아니라 우리나라 소설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아직 황석영과 조정래를 접해보지 않아서일까? ㅋㅋ
누군가는 물론 코웃음을 칠거다. 뭐...천천히 읽어나가면 되지. 그래도 난..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따져보면 확실히 황석영보다는 이문열이다. 사물을 대하는 기본 인식 자체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니까. 황석영 역시 그런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현상의 핵심을 현실적인 것들로 은유해내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표현이 대부분 일상적이고..나쁘게는 세속적이다. 뭐 소설가로서 꼭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임에도..나는 이상하게 황석영의 이런 부분이 좀 거북스럽게 다가왔다. 그냥..말하지 않았음 하는데 막 말해버리는 그런 거...
보통 보수주의와 마초주의는 한 배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문열은 그렇지가 않다. 그는 보수주의자지만 섬세하고 차분하다. 이게...내가 그와 코드가 맞는 것 같다고 느낀 결정적인 이유다.
정치적인 보수주의는 분명히 싫어하는데...내 속에 다른 형태의 보수적 부분들이 많이 산재해있다는 것, 절대 부정 못하겠다. 파시즘에서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난 나름대로 각자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파시즘. 전체주의에도 좋은 건 있다. 내가 내 가족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존재감과 소속감을 느끼듯이 국가 역시 그런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한다. 물론, 여기서 끝나야 좋은거다. 획일적인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이런 측면에서는 또 아나키즘이 좋은 거다. 제기랄! 지네들(정치꾼들)이 싸움할거면서 왜 군대는 우리보고 가래는거야? 이걸 '조국을 지킨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둔갑시켜 기성세대들의 세뇌시켜왔던게...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펼쳐온 악랄한 농간이었던 것이다. 북한 인민들이 김정일과 북조선 노동당을 보이콧하고, 우리도 부시와 노무현을, 그리고 국방부를 보이콧하면 다 끝나는 일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다 마찬가지...
여튼...젊은날의 초상이라...
아쉬웠다. 소설의 내용 자체가 아쉽다기 보다...그런 극적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내 인생의 심심함 때문에. 물론 내 주위에는 나보다 더 심심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따지고 보면.
...다들... 인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ㅋ 둔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