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Me
Sixpence None The Richer 노래 / 워너뮤직(WEA)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파스텔톤의 차분한 감성을 센스있게 풀어내 많은 팬들을 아스한 설레임의 세계로 초대했던 Sixpence None The Richer 는 이제 더 이상 락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형의 밴드가 되었다.
여전히 상투적이고 억지춘향으로만 들리는 현재의 이모코어 씬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꿈결같은 느낌 가득했던 90년대 모던 락에 대한 향수가 자연스레 생겨난다.
SNTR...그들의 애수어린 기타선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지금의 기분을 살려 로맨틱했던 90년대의 감성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싶다.


음악은 청각적인 이미지로 소개를 해야하는 것인데 글자라는 활자매체를 통해 소개할수 밖에 없도록 처음부터 한계가 그어져 있으니 다른 청자들에게 본 앨범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음반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평론가들은 보다 쉽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여러가지 상징적인 아이콘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80대의 헤비사운드는 메탈리카, 90년대는 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무한대로 뻗어나가려는 욕망의 속성을 지닌 예술품을 하나의 틀로써 제한하는 행위는 분명히 온당치 못한 처사지만 어차피 그것이 일장일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행위가 썩 지탄받을 일만은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틀과 아이콘을 쓰는 것은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미학강의를 하는 시사논객 진 모 교수처럼 여러 회화작품을 곁들여가며 '시각이미지'로 전달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이러 상황에 있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Kiss Me' 와 'There She Goes'로 익히 잘 알려져있는 밴드이지만 감칠맛나는 그들의 사운드를 깊이있게 음미하는데 있어서 이 두 곡만으로는 분명히 무리일 것이기 때문에 나는 컬렉티브 소울이라는 90년대의 거대한 아이콘을 설정하고 싶다.
10대의 중후반, 그리고 20대 초반의 시기를 90년대에 보낸 사람이라면 컬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것이다. 재치넘치고 개성있는 락 넘버들로 많은 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던 컬쏘였지만 팬들이 실제로 더 감동했던 부분은 그들 음악의 저변에 깔린 잔잔한 감수성이었다. 남부지방 특유의 온기넘치는 사운드가 그 핵심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SNTR은 이것을 매우 극적으로 재현해내는 밴드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98년 말미에 공개된 본작은 그들의 풀렝쓰 데뷔작이다.
기타와 첼로선율이 지배적인 가운데 곱디고운 음색의 보컬이 곡 하나하나를 안정감있게 완성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흙냄새 가득한, 소박한 기타연주를 들려주는 Matt Slocum 이라는 인물이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는데, 힘있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 덕분이지 전체적인 곡 구성이 매우 탄탄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We Have Forgotten'은 본작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로, 차분하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잘 그려진 곡이다. 절제된 미드템포에 감각적인 기타연주와 보이시한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인데, 청자의 긴장감을 푸는데 있어서 이만한 곡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애수어린 기타솔로가 스트링 세션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Anything'을 지나 메가톤 히트송 'Kiss Me'에 이르면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업템포의 생기넘치는 곡임에는 틀림없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전혀 벗어남이 없는, 절제된 스타일의 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곡은 데뷔앨범이 발매되기 이전인 98년에 이미 싱글로 공개가 되었으나, 지금의 인기를 얻은 것은 한 청춘영화에 삽입된 이후이다.
앨범과 곡 자체만으로 순수하게 감상해나가는 태도가 뮤지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되는 바, 영화삽입이니 뭐니 하는 시끄러운 요소들은 과감히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

'Easy To Ignore'도 앨범 전체적인 색깔에서 크게 벗어남 없는 차분한 사운드를 담고 있지만 컨트리풍의 바이올린 연주가 입혀진 덕택에 제법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다.
다소 격정적인 톤으로 읊조리는 'Puedo Esribir', 절제된 피아노와 트럼펫 연주가 잘 어우러지는 'The Lines Of My Earth'도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다가오는 트랙들이다.

단순하지만 몽롱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잘 드리워지는 'Sister, Mother'도 추천하고픈 트랙인데, 퍼즈톤의 기타음색에 귀를 귀울여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맥시멈한 스트링 협연이 돋보이는 'Moving On'은 템포체인지를 했으면 굉장히 멋졌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이는 곡이다.
둥글둥글한 베이스 인트로로 시작하는 Love는 에코가 잔뜩걸린 기타연주로 얼마간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특한 트랙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There She Goes'는 앨범의 피날레에 위치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차분한 분위기가 앨범 전체의 특징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긴장감이 떨어지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축 늘어졌던 어깨를 주무르며 탁한 공기를 환기시키는 듯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끝이 좋으면 앞부분의 실수가 다 커버된다고 했던가. 본 트랙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도 남을 정도로 위력이 있는 넘버이다.
위력있는 곡일수록 리메이크 횟수가 많은 것은 그때문일까...

지금의 이들을 있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특정 영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Sixpence None The Richer는 본작을 통해 한편의 잔잔한 러브스토리를 훨씬 더 감미롭게 그려낸다.
자연스레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이는 이 달콤한 사운드...사운드트랙의 진정한 역할은 이런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수많은 모던 락 밴드들이 명멸한 가운데 이모코어라는...단어자체에서부터 벌써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다가오는 신종 장르가 현재 주류 락씬을 점하고 있다. ...의문스럽다. 감성과 코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90년대식 귀로 2000년대의 음악을 단편적으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한 아쉬움이 드러워지는 건 역시 어쩔 수가 없다.
2000년대의 음악 트렌드는 멜로디보다는 리듬이 강조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누군가의 언급이 떠오른다. 최근 일련의 경향들을 통해 그 말이 절실히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절망감은 더해진다.

하나의 씬이 다시 부활하는데는 정확히 20년의 주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1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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