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anufacture
피어 팩토리(Fear Factory) 노래 / 지구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사실 뉴메틀이라는 단어만큼 모호한 의미를 지닌 것도 없다. 물론 록음악과 관련된 대부분의 용어들이 정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왔던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뉴메틀의 경우 십년 전의 얼터너티브와 마찬가지로 해석의 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항상 논란의 소지를 끌고 다닌다.
메틀이라는 단어 앞에다 'new'라는 접두사를 붙인데는 분명 그것이 전자와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양상은 지금의 그것이 과거의 것보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좀 더 심플해지고 무게감을 더한 것 이외에는 별달리 차이가 없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때문에 'new'라는 말머리를 붙이는 것은 분명한 억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팀들에게는 아낌없이 그에 어울리는 대접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기존의 헤비메틀에서 분명히 한단계 나아간, 진보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피어 팩토리는 그런 의미에서 [New-metal] 이라는 본연의 의미에 더없이 충실한 밴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두번째 정규반인 본작 'Demanufacture'은 전작에서 끝내 떨쳐내지 못했던 데스메틀적 색채를 과감히 제거하고 현대적 작법을 멋지게 구사하면서 사운드의 통일성과 곡 구성의 짜임새를 한층 진보시킨, 퀼리티 만점의 [New-metal]이라 할 수 있다.

헤비함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메탈씬은 판테라와 미니스트리라는 두 모델을 선정하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판테라의 경우 좀 더 정통성에 기반을 둔 형태의 변화를 꾀하는 뮤지션들에게 어필했고, 미니스트리의 경우는 보다 더 극단적인 방법론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피어팩토리는 이 후자의 케이스가 성공적으로 발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데스/스래쉬 메탈 밴드들이 디지털 프로그래밍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항상 '가능성'에 그칠 뿐이었다. 피어 팩토리의 데뷔작 'Soul Of A New Machine' 역시 그렇게 전형적인 절차를 밟았으나, 3년간의 절차탁마를 통해 그 시행착오를 완벽하게 커버해내었다.

데스메탈 기타연주와 디지털 효과음이 물리적으로만 '섞여있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서는 물과 기름같았던 이 두가지 요소가 마치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완벽한 하나의 형태로 거듭나있다.
건조한 투베이스 드러밍과 전기톱같은 기타연주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첫 곡 'Demanufacture'에서부터 기존 메탈음악과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곡의 흐름에 따라 완급조절을 분명히 해주는 드럼플레이 덕택에 사운드는 한층 세련미를 더한다.

SF적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Self Bias Resistor'는 보컬을 담당하는 버튼 C. 벨의 감성이 잘 녹아있는 곡이다. 이 곡을 통해서도 피어팩토리의 노선은 분명히 드러난다. 데스메틀 특유의 너저분한 기타리프를 심플한 스타일로 대폭 수정하여 베이스드럼과의 유니즌을 강조한 형태로 표현했는데, 이 역시 밴드 자신들만의 색깔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메탈릭한 파열음이 두드러진 히트넘버 'Zero Signal'는 디노 카자레스의 긴장감넘치는 기타연주가 압권인 곡으로 후반부의 장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특히 엔딩은 피아노 연주로, 아주 극적인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이제 어떤 악기로도 자신들의 감성을 구체화시킬수 있다는 자신감이 짙게 배여있는 것 같다.
최고의 힛트싱글인 'Replica'는 후반부의 투베이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심플한 구조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곡에서도 역시 진행을 리드하는 것은 레이몬드 에레라이다. 데이브 롬바르도 이후 실력과 센스 모두를 겸비한 천재 플레이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전형적인 피어팩토리 스타일로 들리는 'Dog Day Sunrise'는 실제로는 데이빗 보위의 커버곡이라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며 'Flashpoint'는 부루털한 전반부와 멜로딕한 후반부가 색다르게 대비되는 곡이다. 이 외에도 서슬퍼런 칼날늘 잔뜩 세운 'Demanufacture Pisschist', 장엄한 끝 곡 'Theraphy For Pain' 역시 기대이상의 노력이 담겨있는 명트랙이다. 특히 'Theraphy For Pain'은 앞서 등장했던 곡들을 변주해서 만든 곡으로, 무려 9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통해 앨범 전체의 컨셉에 통일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 비록 핵심 멤버였던 디노 카자레스는 없었지만 피어팩토리가 콘과 함께 대한민국을 찾았다. 별다른 샘플링이나 효과음없이도, 브레인인 디노없이도 그들은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많은 이들이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폄하하면서 그 예로 라이브에서의 연출력 부재를 꼽는다. 그러나 피어팩토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소리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조잡한 샘플링과 효과음으로 '인더스트리얼'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여타밴드와는 분명히 다른, 라이브를 최우선으로 하는 진정한 '헤비메틀밴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디지탈 사운드, 그에 어울리는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컨셉...그러나 라이브에 있어서는 정통 헤비메틀식의 자세를 보여주는 피어팩토리. 그들은 진정한 뉴메틀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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