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Your Dim Light Shine
소니뮤직(SonyMusic) / 1995년 6월
평점 :
품절


자조적이고 사색적인 정서가 의외로 힘찬 사운드로 표출되는 본작 'Let Your Dim Light Shine'은 90년대식 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갖은 형태의 음악들이 난무했던 당시의 씬에서 음악적으로 뭔가 공통적인 코드를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어불성설로 들릴지 모르나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일관된 코드가 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누적되어온 경제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청년실업이 증가하였고, 명분없는 걸프전쟁에 대한 반대여론 때문에 미디어는 연일 어수선했으며 때맞춰 유행한 문화계의 허무주의 사조는 90년대의 대중문화를 하나의 코드로 엮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런 공통적인 분위기는 Nirvana라는 그룹에 의해 심지가 폭발되었고 Green Day, Beck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소울 어사일럼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역시 적지 않다.
이제 20년을 훌쩍 넘긴, 연륜으로 치자면 메틀리카와 동년배라 할 수 있을 고참밴드를 두고 너바나의 허무주의를 계승했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몰상식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그것은 결국 커트의 죽음이라는 씬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얼터너티브의 인기를 연장시키는 데 일조하였던 것이다.

R.E.M.에 비하면 인지도가 턱없이 떨어지고, Pixes나 Pavement에 비하면 턱없이 팝적인, 다소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도 소울 어사일럼은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10년이 넘는 연륜의 위력이 압축적으로 스며있는 본작을 소개함에 있어서 'Runaway Train'을 언급한다는 건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다. 멀어져가는 기차는 그냥 멀어져가게 놔두자. 이 앨범은 이 앨범대로 떠나갈 방향이 따로 있으니...


최소한의 악기편성으로 소탈한 사운드를 들려주던 대부분의 얼터밴드들과 달리 소울 어사일럼은 빈틈없는 꽉찬 연주 스타일로 항상 어느정도의 차별성을 유지해왔다.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 것이 본작 'Let Your Dim Light Shine'이다.
일반 주류 팝 앨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효과음이나 샘플링을 곡 구석구석에 배치시킨 점이 그것인데, 이런 시도에 익숙해져서인지 매우 자연스럽고 센스있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모던 록 차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Misery'는 부드러움과 활기가 넘치는 전형적인 업템포 얼터송이다. 강렬한 디스토션 사운드와 청량감있는 아르페지오 선율, 안정감있는 기타솔로가 무리 없어 어우리지는, 그들만의 연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베스트 트랙이라 할 수 있다.

블루지한 기타솔로를 들려주는 'Shut Down'에 이어 'To My Own Device'에서는 소박한 감성을 군더더기 없는 연주로 잘 그려낸다. 나를 그냥 좀 놔두라는 곡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나에게 관심을 좀 쏟아달라며 애처롭게 외쳐댄다.

'Hopes Up'에서는 데이브 나바로를 연상케하는 현란하고 맥시멈한 솔로 플레이가 등장하는데, 당대 주류 얼터 음악들이 기타 솔로에 무지했던 점에 비춰보면 굉장히 시원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팝튠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Promises Broken'은 포근한 분위기의 발라드 송이다. 이어지는 업템포의 'Bittersweetheart'와 함께 앨범 내에서 가장 팝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팝송에서 자주 사용되는 효과음을 센스있게 가미한 'String Of Pearls'은 어딘가 관조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역시 코러스가 돋보이는 넘버이다.

'Crawl'은 곡 제목과 어울리게 가장 현란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역시 강력하면서도 특색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 'Caged Rat'과 함께 앨범 내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child'라는 단어때문에 어딘지 추악한 마이클 잭슨이 연상되는 'Eyse Of Child'은 제목처럼 잔잔한 애수가 녹아있는 발라드이다. 물론 마이클 잭슨의 곡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부담없는 느낌임은 말할 것도 없다.

'Just Like Anyone'과 'Tell Me When'에서는 다시 하드한 방향으로 선회하여 그들만의 팝적 감각을 잘 만들어낸다. 바이올린 소리를 연상케하는 라이트 핸드 주법의 프레이즈가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는 두 곡이다. ...얼터앨범 치고는 굉장히 감상하는 맛이 나는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다.

'Nothing To Wright Home About'을 통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 다음 자조적인 분위기의 'I Did My Best'로 데이빗 퍼너는 앨범을 마무리짓는다. 이 곡은 기승전결식 컨셉에 잘 어울리는 넘버로 밴드가 마지막까지 앨범의 완성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Suede를 연상케하는 우수어린 솔로연주가 작별의 아쉬움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한 장의 얼터앨범에서 이 정도의 파워와 현란함을 만끽...정말 뜻밖의 수확이다. '솔직한 감성'에는 감동했지만 감상용으로서의 한 음악으로는 항상 불만 투성일 수 밖에 없었던 90년대의 얼터너티브. 소울 어사일럼은 그것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단점은 퍼펙트하게 커버해낸 유일무이한 밴드다. 누군가 사운드가든이나 앨리스 인 체인스를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그들은 어디까지나 헤비메틀 밴드 아니었던가...


빌 클린턴의 집권이후 미국 경제는 '신경제'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경제사정이 바뀌면 사람들의 정서도 바뀐다는 말이 틀린게 아닌지 주류 록음악의 사조도 덩달아 큰 폭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잘 살게 되었고, 그런 만큼 이전보다 더 자극적인 사운드를 원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헤비한 음악들이 판치게 된 것 아닐까.

밴드도 해산한 것 같고, 얼터음악도 이제는 분명히 역사속의 화석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청춘을 보냈던 우리세대로서는 얼터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온갖 굉음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락 음악 속에서......잠시 지난날의 우수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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