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혜원세계문학 83
장 폴 사르트르 / 혜원출판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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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멀더는 엑스파일에서 항상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에요'. 이 친구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는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와, 나의 모든 감각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과연 진실인지. 이러한 명제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저기 저 책, 김치냄새, 시계바늘 소리, 손끝 상처의 통증, 밥맛, 그리고 마음의 감정. 이 모든 감각이, 과연 '내'가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메트릭스의 한 부분처럼 누군가가 입력시킨 신호를 나의 뇌가 센서역할을 할 뿐인 것인지...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주위의 사물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엔 그저 평범해 보이던 부모님의 방이, 당신들의 사후에는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고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움은 다시 메스꺼움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구역질을 한다.

이상이 본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너무나도 획일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람이 읽은 만큼 이 소설에 접근하는 독자들의 시각도 다양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떠올랐다. 만약 나의 모든 감각들이 메트릭스에 의한 것이거나, 절대신-이것을 메트릭스라 표현해도 좋으리라-에 의한 것이라면, 결론은 하나에 귀착된다. '내 존재의 의미는?' 전혀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다. 그래서 부조리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처음부터 해답(이 세상에 '정답' 혹은 '해답'이 있을까?)을 찾으려는 의도로 이 책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영원한 의문점(존재의 의미)에 대한 조그마한 참고점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애초에 뭔가 구체적인 답안지를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이 친구의 글이 맞을지도 모른다. 본질에 접근하려고 언저리만 뺑뺑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을 뿐이다. 느낀 것이 있다면 '없다'가 아니라 '모르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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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7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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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이 서양 고전소설들은 왜 하나같이 확실한 결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해지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더 정확히 말해서 전체의 3/4까지는 아주 재미있었지만, 나는 마슬로바가 네흘류도프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시몬손을 선택하든지 어떻게든 결말이 났으면 했다. 이런 바램이 과연 깊이없는, 유치하기만 한 발상일까...

톨스토이는 글 내용중에서 마슬로바가 '부활'하고 있었다고 적었지만, 분명히 그 '부활'의 촛점은 주인공 네흘류도프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나는 과거의 불행을 딛고 다시 새 삶을 힘차게 시작하는 마슬로바의 모습을 작가가 좀 자세히 묘사해 주었으면 했다. 어디까지나 동정이 가는 존재는 드미트리가 아닌 카츄샤였다. 처음부터 톨스토이는 소설의 주인공, 그러니까 부활의 주체를 남자로 잡았던 것이다. 이건 분명히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특히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사랑하기에 서로를 포기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독자들로부터 깊이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의견에 대해 별로 찬성하지 않지만, 사랑을 논함에 있어서 '희생'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점에 대해서는 대폭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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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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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품을 읽고 난 다음 감상문을 쓰려하면 여러가지 말들이 한꺼번에 몰려 쉽게 형용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본작도 그러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스토리는 4대에 걸친 한 상인가문의 몰락과정이다. 증조 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할아버지 요한(장) 부덴브로크, 아버지 토마스 부덴브로크, 아들 하노 부덴브로크. 이 가문은 독일의 한 소도시인 뤼벡에서 <부덴브로크 상사>라는 회사를 경영하는데, 대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른바 '시민성'과 '예술성'이 갈등을 일으켜 결국엔 가문전체가 종말을 맞게 되고 만다.

위에서 말한 시민성과 예술성의 갈등이란 간단히 말해서 현실과 감성 사이의 갈등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이 너무 예술에만 몰두하고 현실을 등한시하면 경제적으로 파탄을 하게되고 몰락을 면치 못하게 된다. 증조 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는 감성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철저히 돈으로만 모든것을 판단하는 사람. 즉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오는 사람이다. 큰아들(고트홀트 부덴브로크)과의 갈등또한 오로지 금전적인 문제로만 치부해버릴 정도로 그의 마음에 인간적인 감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는 매우 견실하게 운영된다.

그의 대를 이어받은 장 부덴브로크 또한 그 큰 회사를 현상유지는 잘 할정도로 수완있는 사업가가 된다. 그러나 현상유지는 잘 했으나 말년에는 종교에 지나치게 기대는 모습을 보여 부덴브로크 가문의 '시민성(=현실적 태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다시 그를 이어받은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서른이 채 되기전에 아버지를 여의지만 엄청난 수완과 능력을 발휘에 가문을 단숨에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려 놓는다. 그러나 그의 항열에 있는 다른 형제들은 모두 이 '시민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되며, 가문의 기둥은 토마스 혼자서 붙잡게 되는, 힘겨운 상황이 지속된다. 사실 토마스 자신도 시민성이 아닌, 예술성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었으나 그는 가문의 영광과 현상유지를 위해 자기 본연의 예술성을 짓누르고 억지로 시민성을 꾀한다.

결과적으로 토마스는 '시민성'에 있어서 성공을 하게된다. 회사도 발전했고, 자기 자신도 시의원에 당선되는 등 윗대의 어떤 조상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위치를 획득한다. 그러나 억지로 억눌렀던 자신의 본성-예술성-이 말년에 그가 이루어 놓았던 시민성적 성공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요절을 하고 만다. 토마스는 예술을 좋아했고, 그것을 포기할 수 없어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게르다 아놀트선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하노 부덴브로크는 시민성의 수위가 바닥이었다. 토마스의 죽음으로 부덴브로크 가는 실질적으로 몰락하게 되며, 하노가 열다섯에 티푸스에 걸려 요절하고 그의 어머니 게르다가 고향으로 돌아감으로써 가문의 몰락은 끔찍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난 항상 예술을 사랑했다. 물론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현실이 힘들어진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본작은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성과 광기의 갈등...물론 작가는 양쪽의 갈등을 혼란스럽게 그린것이지 둘 중 어떤것이 좋다고 획일적으로 써내려간건 아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킨다. 발작 니체 쇼펜하우어 헤겔 바그너...너무많은 소스로 결합되어 있는것이다. 그러나 발작의 작품처럼 중간중간에 가슴에 와닿는 문구또한 적지 않았다. 정말...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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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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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해탈을 하고자 하는가? 데미안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동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것을 찾고, 심신이 지치면 어머니를 찾게 되고, 힘센 이에게 두들겨 맞으면 복수해줄 형을 찾으며, 성욕이 생기면 이성을 찾게된다. 그러나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모두 얻을수는 없다. 더군다나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백에 하나조차도 찾아내기 힘들때가 많다. 그럴경우 사람들은 지치며 고독해지고, 나보다 훨씬 나은 누군가에게,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대신해주기를 바란다. '수호신'은 모든 인간들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무엇일 것이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수호신'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하고 방황하며, 사색을 한다. 그러나 잡힐듯 잡히지 않는 수호신의 모습에 싱클레어는 굉장히 갑갑해 한다....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키스를 해본적이 있는가?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 당신이 필요로 하던 그 모든것이 당신 내부에 있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을 이끄는 것은 당신이며, 당신의 지친 영혼을 감싸주는 것도 당신 자신인 것이다. 이것이 해탈이다. 의지처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의 느낌을 당신은 알고 있나?

해탈이란 무엇일까? 그렇다. 자기자신의 존재에 눈을 뜨는것.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보지 못한다. 훨씬 더 천재적이고 우수한 모습의 자기자신이 원래 존재하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자신의 모습이라고는 믿지를 못한다. 이것은 눈을 뜨지 못한, 즉 해탈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직같은건 존재하지 않아. 니 자신의 모습만이 존재할 뿐이지.' - 데미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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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0
에밀리 브론테 지음, 안동민 옮김 / 범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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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직까지는 장편소설, 아니 고전소설을 읽으면 언제 끝나나 하고 따분한 느낌이 많이든다. 거의 절반이상은 억지로 읽는다고 해야 할것이다. 솔직한 표현으로. 무협지나 3류 연애소설에 비하면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느리기 그지없어 따분함보다는 오히려 내가 지금 이걸 왜 읽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읽는 것은 - 참 이상한 것이 고전소설은 다 읽고나면 여러가지 심상이 복합되어 머릿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서평을 읽고 이해력에 가속도를 붙이게 되면 그 느낌은 백배 배가된다.

지금도 나는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이해를 못하겠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 그것이 영국인들의 공통된 정서인지 아니면 작가의 환경이 투영된 특수한 상황에서의 사고방식인지 나로서는 정말 알 길이 없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애들처럼 울기를 밥먹듯이 하고 부자간에 서로 욕지꺼리를 하지않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래도 이건 굉장히 나은 축이다. 적어도 서양문학의 고질적 병폐인 풍경묘사의 비중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풍경묘사라는 것도 이 작가가 하는 것은 굉장히 수준이 있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톤으로 내용을 전개시키면서도 부분부분 등장하는 자연의 화사한 색채감. 불협화음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거지만 때때로 불협화음은 엄청난 감동의 서정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것이 문학으로 구현된 작품, 이것이 바로 폭풍의 언덕이다.

관찰자의 서술과 대화로 글이 진행되어 좀 무난한 구성이긴 했지만 의외로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구석구석 시적인 문구가 들어있어 몇 번 곱씹어 본적은 있지만 그렇게 철학적이고 난해한 부분이 있는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는가는 지금도 의문이다.

몇 년 전에 더 유명한 언니라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시간때우기 삼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 자라난 환경이 비슷해서인지 두 작품의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있었다. 아니, 작품 자체가 닮았다기보다 두 작가의 서술 스타일, 배경(소설속의) 그리고 그들 사고의 근저를 이루는 여러가지 정서 - 이것들이 비슷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시, 내가 보기엔 - 동생의 작품이 훨씬 다채로운 느낌이다. 사색, 정열, 광기, 순수, 고독 이 다섯가지 색상이.. 광활한 자연위에 덧씌워져 있다. 자연이라는 그 이름 하나로.

늘 그랬지만 다 읽고나니 가슴 한켠에 어떤 만족감..동시에 묘한 감정이 뒤섞여 든다. 하여간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하고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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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4-11-2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소설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고생하면서 겨우 읽어냈어요 거의 의무감으로 읽었죠 그렇지만 님의 말처럼 읽을 때는 힘들어도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상문 쓸 때 할 말이 많아지고 나름대로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기억에 오래 남게 됩니다 저도 히드클리프란 인물을 잊기 힘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