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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줄 베끼려고 한 권을 읽는다"고 말한 이는 누구였던가. 인용(quote)은 익숙한 글쓰기 수법 중 하나다. 글세계에서 이 '지적 절도'는 쉽게 용인되고, 때론 장려된다. 인용은 지식 축적도를 재는 방편이다. 물론 그 분량은 수정과에 띄운 잣 몇 알 정도면 족하다. 지나치면 이런 말이 나온다. "대체 네 생각은 뭐야. 당신 얘기를 하란 말이야."
여기 책 한 권이 있고, 거기 이런 문장이 있다.
"종교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를 모르는 사람이다(1). 절대 권력이 절대로 부패한다는 명제에서 하나님인들 자유로울까(2). 종교는 서민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탁월한 도구다. 종교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살해하지 않도록 지켜준다(3)."
종교에 대해 꽤나 시니컬한 태도다. 돈을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돈이 없다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4).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위선이다(5). 돈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이 같은 종교를 믿는다(6)."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인용문과 저자(엘리엇 부)가 쓴 문장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는가.
번호가 붙은 문장의 주인은 1 간디, 2 조지 디컨, 3 나폴레옹, 4 마크 트웨인, 5 알베르 카뮈, 6 볼테르. 저자의 말은 하나도 없다. 생전 마주친 일이 없던 6명의 말을 따서 저자는 아주 인상적인 문장을 만들었다.
저자는 돈·인생·신·예술·국정운영·불안 6가지 주제를 272명의 말을 인용해 풀어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이란 챕터에는 공자·괴테·간디·뒤샹 등 익숙한 이름부터 레게 가수 밥 말리,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인 요다까지 등장한다. 저자는 한 번에 책 스무 권을 동시에 읽는 기이한 독서법을 친구의 입을 빌려 '비선형적 독서(non-linear reading)'라 명명했다.
각기 다른 개성이 쏟아낸 언어가 ▲선별 ▲조합 ▲배치의 과정을 통해 독특한 개성을 가진 '화자'의 언어로 재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자기 말을 한 줄도 쓰지 않고 (책 제목도 알베르 카뮈 것이다) 멍청한 정부와 탐욕스러운 종교, 돈에 대한 이율배반, 허무한 예술지상주의를 씹고, 조롱한다. 침 튀겨 이런 주제에 대해 말하고, 쓰는 '순진한 필자들'에게 한 방 먹이는 태도다. 그런데 이런 '지적 피학'이 즐겁다.
식료품을 사러 갔는데 2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마트에서 1만원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면 기꺼이 발품을 팔 것인가. 그렇다면 20분
거리에 있는 백화점에서 145만원 짜리 양복을 144만원에 판다고 가정해보자. 양복을 사러 백화점을 옮겨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럽 출신 지식인 단체인 ’취리히 마인즈’ 설립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롤프 도벨리는 신간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내린 결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때가 잦은지 낱낱이 찾아냈다. 식료품과 양복 구매 실험이 대표적 사례.
책
에 따르면 걸어가야 하는 거리도 같고, 할인해주는 금액도 동일한데 양복을 사러 백화점을 옮겨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
145만원에 비해 1만원이 사소해 보이는 ’대비 효과’ 때문에 이러한 비합리적인 소비 경향이 되풀이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첨
단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번번이 어리석어 보이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수렵과 채집 활동이 전부인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정보가 넘쳐나고 취사선택해야 할 상황도 급증하면서 ’생각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로또 번호를 직접 선택하려고 하는 ’통제의 환상’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 결정 50여 가지가 사례별로 소개한다.
공금횡령은 비난하면서 회사 물품은 쉽게 갖다 쓰는 사람, 아이의 거짓말은 나무라면서 사고보험금은 실제 피해보다 높게 청구하는
사람, 수임료나 치료비에 불필요한 비용을 얹는 사람…. 많은 이들이 '사소한' 부정의 파도 속에 헤엄치며 살아간다. 저자는 우리
안의 부정직이 일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 꿈틀대는지, 그 '이무기'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우
리 내면엔 늘 두 동기가 싸운다. 남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회적 욕구와 속여서라도 이득을 얻으려는 이기적 욕심. 이
둘 사이에서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은 균형을 잡느라 애쓴다.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준선은 무엇인지 파악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일종의 '모럴
다이어트'다. 점심·저녁에 적게 먹었으니 간식은 잘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의 부정과는 타협한다.
부정행위에는 심리적 거리도 한몫한다. 자신과 부정행위 사이에 단계가 많을수록
타협이 쉬워진다. MIT 기숙사에서 실험을 해봤다. 냉장고에 절반은 콜라 6개들이 팩을, 다른 절반은 현금을 접시에 담아두었다.
콜라는 72시간 안에 모두 없어진 반면, 지폐는 그대로였다. 복도에는 콜라 자판기가 있었다. 콜라가 목적이라면 지폐로 빼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돈은 꺼리고 만만한 콜라만 쉽게 집어갔다.
오늘날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융 비리가 쉽게 일어나는 것도 실물과의 연관성이 멀어져 양심에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정의 대상이 심리적으로 멀고 추상적이며, 규정이 모호할수록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로
마제국에는 '메멘토 모리' 관행이 있었다.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개선장군이 거리 행진을 할 때 노예 한
명이 이 말을 반복해서 귓가에 속삭였다.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그 비슷한 도덕적 각성 기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MIT와 예일대에 '명예수칙' 준수 서명을 시켰더니 부정행위가 없었다. 무신론자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게 하면 거짓말 확률이 떨어진다. 심지어 무인판매대 앞에 사람 눈 이미지 사진만 둬도 결손액이 줄었다. 유혹의 순간에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정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참회나 기도, 고해성사 같은 종교적 장치들이
사회의 부패를 막는 기능을 해왔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유혹의 순간에 개입하는 작은 각성 장치 하나가 장황하고 거창한 설교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상식 밖의 경제학' '경제 심리학' 등의 저서로 경제 생활 속의 '비이성'을
헤쳐보였던 저자의 최신작. 이번엔 경제 분야를 넘어 일상 속의 도덕적 가식과 허세를 들춰냈다. 무겁고 심각할 수도 있을 주제를
고치 삼아 경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철없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가 한 말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이는 당시 프랑스 혁명군들이 퍼뜨린 루머(소문)였던
것이다.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있는 앙투아네트도 바로 이 점에선 루머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사실 루머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확산 속도와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대사회에서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루
머에 관해 수십 편의 논문과 보고서, 연구자료 등을 발표한 세계 최고 루머 전문가인 저자(미 로체스터 기술대 심리학 교수)는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며 루머의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소문이 만들어진 뒤 퍼지고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되는
과정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루머를 둘러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여준다. 소문에 대한 시비판단을 보류하고
본질과 위력을 중립적으로 분석한 책은 루머공화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에 따르면 커피 자판기 주변과 회사의 흡연실, 학교 화장실, 인터넷 채팅방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루머가 존재한다.
소
문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루머라는 자연스러운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비정상적인 힘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러한 소문의 영향력을 ▲사람의 눈을 가린다 ▲위험을 경고한다 ▲미래를 예측한다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한다 등 4가지로 정리해
설명한다.
소문이 생기고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루머의 속성을 알면 어느 정도 통제는 가능하다.
소
문과 뒷담화, 도시괴담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불명확함·애매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루머를 통제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는 책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루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대사회의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남고, 아깝고, 원하는…’ 자기 일상의 시시콜콜한 불편함과 욕구에 주목해 이를 자기만의 작은 기업으로 발전시킨 이들이 있다.
평범한 아줌마를 ‘셰프’로 만든 4000원짜리 주먹밥 프로젝트 ‘집밥’, 집에 쌓인 책을 대신 보관해주며 대여도 하는 ‘국민도서관
책꽂이’, 퇴화된 ‘작업 본능’을 깨우려는 일반인을 위해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과 전문 공구를 비치한 공동작업실 ‘테크숍’….
책
의 부제는 ‘인터넷과 공유경제가 만들어낸 백만 개의 작은 성공’이다. 제목처럼 일상의 작은 공간,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성공들을 소개한다. 이 주인공들은 요즘 누구나 향유하는 인터넷과 작은 정보기술(IT)의 도움으로 이전 시대에 상상할 수 없던
결과물을 내놓았다. ‘커다란 작음이란 역설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 당신도 빨리 움직이라. 변화는 시작됐다’고 책은 말한다. 매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포털 사이트를 대하며 단순한 ‘유저’로 살 것인가, 이를 이용해 인생을 바꾸고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은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 중에서 선택하기를 직설 아닌 예증을 통해 권한다.
IT와 기업이라는 딱딱한 이야기에 얹은, 소설을 마주하듯 촘촘한 현장성과 디테일, 저자의 감성이 읽는 맛을 더한다. 본문만 치면 200쪽이 채 안되는 가벼운 분량과 명료한 디자인도 책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