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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개정판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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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부류는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두 종류뿐이지만 그들의 화학적 반응은 일년 365일 어느 순간에나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 오랜시간의 진화와 한정된 소재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그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

제목이 너무 장렬해서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만큼 대놓고 슬프게 만드는게 작가의 의도라면 얼마나 지루할까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더이상 최루성 소설을 읽으며 눈물, 콧물을 흘릴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의 유명세는 무시할 것이 못 되는가 보다. 참으로 자주 눈에 띄더니 결국 이게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두면 되지 않은가 라는 핑계를 만들어 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열다섯살에 같은 반에서 학급위원을 맡으며 알게 된 아키와 사쿠. 그들은 같은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 진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건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다. 서로 고백을 하거나 교제를 하자고 제안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사이가 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나날은 아키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끝이 난다. 무균실 커튼 사이로 나날이 야위어 가는 아키의 모습에서 사쿠는 무심코 죽음을 예감한다.

현실과 회상이 교차되면서 사쿠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그들의 사랑은 어찌나 담백하고 청량한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의 입맞춤은 마치 순결한 서약같은 느낌이다. 사쿠는 아키의 죽음에 대한 그의 감정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그녀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이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가는 아키의 죽음과 사쿠의 절망을 극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사랑이 오히려 구차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넘나 들며 묘사되는 사쿠의 혼란스런 감정들, 아키의 죽음으로 인해 뒤죽박죽 되어버린 감정의 실타래를 그는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책의 말미에서 시간적 배경은 아키의 죽음에서부터 한참을 이동한 미래이자 동시에 사쿠가 존재하는 현재가 된다. 사쿠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키를 처음 만났던 중학교 교정으로 향한다. 교정에는 예전엔 있는지도 몰랐던 벚꽃 나무들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다. 벚꽃 나무를 각인한 순간 유리병에 담긴채 뼛가루로만 존재했던 아키의 모습이 현실처럼 되살아 난다. 사쿠는 그들이 처음 만난 그 장소에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벚꽃 눈 사이로 그녀의 뼛가루를 날려 보내기로 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간직했던 아키와의 사랑에 대한 예의이자 동시에 그녀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의 극복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비로소 그는 엉켜 있던 실타래의 끝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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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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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손꼽히는 일류 작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 정도 수준의 작가라면 조금은 우아하고 과장되게 포장해도 될 텐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유명 작가의 사생활을 훔쳐 본다는 호기심에 슬쩍 김이 샌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줄테니 말이다. 그녀가 유명 작가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녀의 결혼 생활은 보통 사람과 별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처럼 남편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 했어도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백만가지도 더 되는 서로 다른 객체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끝도 없이 보낸 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선 결혼이라는게, 남녀가 만나 이루는 가장 완벽한 합체인 것 처럼 묘사되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 하는 왕자님 과 공주님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녀처럼 결혼 생활이란 약간의 의심과 약간의 갈등이 내재된 불완전한 모양새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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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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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대한민국에 대한 향수로 읽힌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 곳을 떠나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작가의 글이 내 몸뚱아리 어딘가에 묻혀있던 본질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십년도 더 된 어느해 여름, 양평땅 어딘가에서 보낸 여름 휴가이기도 하고 영화관이 몰려 있던 종로 일대를 친구들과 함께 쏘다니던 추억이기도 하며 너무 오래되서 잊고 있던 남대문 근처에서의 직장생활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향수라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것이어서 무뎌졌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불쑥 나타나는데 세대로 치면 할머니와 손녀만큼의 차이가 나는 작가의 글을 읽다가도 이렇게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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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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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작가는 나의 부모보다도 앞선 세대이니 아무리 유명한 분이라 하더라도 글은 구식일거라고 생각했다. 도서관 선반에서 그분의 책을 몇 권 발견했을때 호기심은 생겼으나 망설였다. 다음번에 갔을때도 그 다음번에 갔을때도 그것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마치, 자 이제 그만 재고 한 권 읽어 보라고 권하는 듯이 말이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한 권을 빼어 들었다. 단편소설 여섯 편이 묶인 소설집이었다. 그 중 뒤에 몇 편은 다른이들의 글과 함께 엮여 있었다. 그것을 다 읽고나서 쥐뿔도 모르는 내가 참 오만했구나 라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글은 세대니 시대니 라는 시간적인 개념과 무관한 것을...

누구는 우리의 어머니같고 누구는 우리의 이모같은 그런 평범한 이들이 화자로 나선다. 그러나 그들의 세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겪어 낸 불행한 한국 현대사의 희생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 속엔 깊숙히 감춰 놓은 불안의 씨앗이 있다. 행여나 그것이 싹을 틔워 온 몸을 휘감아 버릴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상처받은 인간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 나간다. 가끔 뜻모를 한자어가 등장하지만 그마저 문장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아 생경한 느낌은 어느새 감탄이 된다.

서울대에 입학했던 재원이라지만 전쟁통에 학교를 중퇴하고 학업을 이어가지도 못하였을 뿐더러 마흔이 될때까지 가정주부였다는 사람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자마자 첫 작품으로 공모전에 당선될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터이다. 말같지도 않은 오만을 팽개치고 그 분의 글을 읽기 시작하였으니 다시는 망설이는 일없이 그 분의 작품을 맘껏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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