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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한가지 감정으로만 구별되는 추억은 없다. 좋은 추억, 나쁜 추억, 딱 둘로 나눌 수는 없음은 분명하다. 그 속엔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과거의 일,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그렇다. 과거의 기억은 그저 일부일 뿐이라도 어떻게든 현재에 작용하고, 우리가 거쳐온 수많은 우연들은 끊어지지 않고 인생을 움직인다. 너무도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 음악의 주법 이외에도 예술은 종종 인생에 비유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매우 친숙한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권여선이 한다. 식상하거나 고루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작가의 문장을 만나 펄떡거리는 생명력을 갖는다.
냉혹했던 유신이 지나고 학생 운동이 열렬히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내의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 써클에서는 데모와 피쎄일 (전단 돌리기)로 뜨겁게 권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서툴렀고, 두려웠고, 때로는 불굴의 의지와 긍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던 청년들이었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인생을 걸었던 이들이었다. 이후 삼십 년이 지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동창들에게 어느 날 ‘정연’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언니의 과거를 알고 싶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로, 그들은 소식을 알 수 없이 실종된 정연의 과거를 다시 추억하게 된다. 각기 다른 관계이니만큼 그들의 기억 속 정연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 그들의 추억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된다.
철없고 서투른 청춘들의 이야기와 위트 넘치는 대화들,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들…… 다양한 인물들 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이다. 그러나 사건의 중심이 된 오정연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은 사실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선배 ‘박인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정연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복잡한 감정이었고 끊임없이 의문이 생겼다. 왜 당신은 숨어 살아야 했는가. 왜 당신은 제대로 된 화해조차 하지 못했는가. 이 물음은, 이어 등장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피쎄일을 하다가 사복경찰과 마주쳐 ‘무섭다’며 떨던 정연은, 광주에서 마치 각성하듯 발 벗고 일어나 총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남성과 선배라는 권력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 풀리지 않았던 분노는 또 다른 ‘권력’에 대한 크나큰 분노로 표출되었던 것일까.
‘앞선 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다음 음은 이미 시작되는, 그렇게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은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도 유효하다’. 책의 마지막 부분, 후기에서 권여선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변주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우려 섞인 말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걱정할 필요 없이 소설의 몰입감은 상당해서 물 흐르듯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장들은, ‘역시 권여선’이라는 탄성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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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말해 그는 다시 옛 기억에 깊이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늙은 인간이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럭저럭 꾸려나가다 모자라는 게 있으면 그때 그때 조금씩 조달하며 사는 데 익숙해져버린 존재인 것이다. 갑작스런 기억의 환기로 일상에 작은 혼란이나 번거로움이 초래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게 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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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정연의 얼굴에 단단한 결기가 서렸다. 그녀는 그날 흘린 한 티스푼의 피를 생각했다. 그러자 한 티스푼만큼의 힘이 났다. 처녀도 뭣도 아니면서 베개를 눈물로 흠뻑 적시거나 툭하면 한숨짓고 입술을 깨무는 일 따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쇠떡심처럼 질기고 염소처럼 힘이 세져야 하며 화전보다 기름지고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신발끈보다 매섭게 동여져야 한다. 망자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듯,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까딱까딱 양쪽으로 흔들어 자기 속의 죽은 처녀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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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는 손바닥 모서리로 눈가를 누르다 말고 양손으로 바지춤을 잡았다. 흥분했다가도 이 자세로 몇발짝만 걸으며 피가 싸늘히 식으면서 감각이 바위처럼 무뎌지곤 했다. 가장 끔찍한 과거와의 대면을 망각하고 가는 인생도 있지만, 그것을 굳이 환기함으로써 나아갈 힘을 얻는 인생도 있다. 그는 바지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정연에게 천 겹의 고통과 슬픔과 능욕을 안겨준 자신을 기억함으로써 퍼펙트한 자술서로 동지들을 팔아먹고 번번이 어머니의 치마폭에 감싸여 사지를 빠져나온 자신을 기억함으로써 그는 또 한번 삶에 단단한 옹이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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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누가 귀에 속삭이기라도 한 듯 그녀는, 지금은 못 간다,고 생각했다. 인하형은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오난이도, 재현이도, 진태도, 경애와 명식이도, 주춤거리면서라도 끝끝내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녀는 문득 울고 싶었다. 그녀만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들이 곧 싸워야 할 이유였다. 해산을 마치고 회복된 몸처럼 헝클어지고 혼란에 빠졌던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 스며나오는 섬뜩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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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운동권이 되고 안되는 것이 전적으로 우연에 달려 있었다는,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한때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신입생 헌터의 역할을 맡은 선배들은 한달 안에 낙점을 끝냈고, 낙점된 신입생들은 대개 한 학기 안에 마음의 결정을 끝냈다. 운동권에 몸담고 지낸 십수년의 기간에 비해 한달과 반년은 얼마나 짧은가. 그 짧은 동안 일어난 몇가지 단편적인 사건들의 우연성이 그후의 기나긴 청장년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에 그는 당황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나 싶엇다. 하룻밤의 방황이 창녀와 부랑아를 만들고, 한번 발각된 도둑질이 전과로 점철된 인생을 부른다. 편재하는 우연이 새처럼 날아들면 그 순간 인생은 단박에 뒤틀린다. 그런 의미에서 스무살 청춘에게 허여된 한달 또는 반년의 말미는 필연의 첨탑을 쌓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