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에너지, 식량 자급률, 지구 온난화 등을 비롯한 눈앞에 산적한 온갖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꼭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비웃는 냉소와 삐딱한 자세는 필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대안이 뭐예요?" 만약 그 대화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진다면 이런 얘기도 덧붙여진다.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사람에게는 "전기 없이 살아보시죠?" 식량 자급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먹을거리 수입을 안 하면 만날 쌀만 먹고 살게요?" 등….

누군가의 입에서 '대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활기를 띠었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먼저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항변을 하지만 이미 이완된 분위기는 회복 불능이다. 결국 대화는 흐지부지되고, '대안신공(神功)'으로 좌중을 압도한 이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도 시민단체도 '대안 강박증'에 걸렸다. 대안을 말하지 못하면 정당한 문제제기도 못할 상황에 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툭하면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딱지가 붙여지면 생떼만 쓰는 집단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대안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말해야 하는가?

폭력을 독점하고, 세금을 거둬들일 권한을 행사하도록 시민이 용인한 정부야말로 온갖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도 내놓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닌가? 문제를 제기한 측이 대안도 내놓아야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無정부!)을 도대체 언제까지 용납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서해문집 펴냄)를 읽었다. 한 시민운동가가 10년 이상 혼신의 힘을 다해 꼼꼼히 조사하고 치열하게 연구한 온갖 대안을 줄을 그어가며 읽다 보니 갑자기 분통이 터졌다. '아니, 도대체 이 정부는 어디까지 알려줘야 한다는 말이야!'

희망의 도시 vs 절망의 도시


▲ <꾸리찌바 에필로그>(박용남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박용남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1년 1월, <꿈의 도시 꾸리찌바>(녹색평론사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의 덩치 큰 빈국으로만 알고 있었던 브라질에 '도시의 미래'를 예고하는 '희망의 도시' 꾸리찌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도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 버스 교통 개혁의 모델로 삼으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등이 이 도시를 다녀왔다. 꾸리찌바 시도 "지난 10년 동안 한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시찰단을 맞았다"고 밝힐 정도다. 그러나 정작 이 도시를 국내에 소개한 박용남은 이런 관심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일부 사람들은 꾸리찌바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 즉 도시 관리 철학과 행정의 원칙은 배우지 않고, 단순히 꾸리찌바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거나 맹목적인 비판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불과 이틀에서 닷새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현지를 방문하고 마치 꾸리찌바 전문가가 된 것처럼 행동했죠." (89쪽)

꾸리찌바가 소개된 지 10년이 된 지금 한국 도시의 모습을 보면,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꾸리찌바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낳는 도시 대중교통 모델을 제시했음에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은 물론이고 용인, 의정부 등 전국의 도시에서 지하철, 경전철 등과 같은 감당할 수 없는 도시 철도 사업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하도 참담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총 7236억 원을 들여서 2009년 6월 개통한 인천지하철 1호선 송도국제도시 연장선의 상황을 들어보자.

"6개 역사 중 국제업무지구역과 센트럴파크역 등 일부 역의 경우 이용객 수가 시골 버스 정거장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루 평균 160~245명이 이용한 국제업무지구역은 개통 후 7개월간 하루 평균 8만3000원의 운송 수입을 올렸고, 2010년 들어서도 16만 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에요.

(…) 저도 작년 10월 중순경에 이 역사를 방문하고 아주 깜짝 놀랐어요.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제가 지금까지 본 지하 역사 중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후 3시경의 낮 시간대이기는 하지만 이용자가 그렇게 적은 역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죠." (99쪽)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서 '대안' 타령을 하는 이들이 무슨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 시민운동가가 지구 반대편까지 쫓아가서 대안을 마련해 와서 10년간 국토해양부, 환경부,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500회 이상의 강연을 했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움직이는 정치인, 공무원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희망의 리더십 vs 허망의 리더십

박용남이 '도시 혁명'의 조건으로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꾸리찌바의 변화를 이끈 자이메 레르네르, 콜롬비아 보고타 시장을 지낸 엔리케 페냐로사 등을 소개하면서 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도시를 창조할 리더십을 요청한다. 그런 리더십은 지방자치단체장을 꿈꾸는 한국의 리더십과는 천지차이다.

"자이메 레르네르는 우리나라의 단체장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는 문제가 아니고, 문제의 해결책이다"라고 믿는 레르네르는 예산에서 뒷자리 0을 하나 뺄 때 창의성이 시작되고, 0을 두 개 빼면 더욱 좋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리고 도시 문제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므로, 예산도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103~104쪽)

실제로 레르네르는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전역을 둘러보고 나서 "당시 환율로 약 3000억 원만 있으면 서울 전역의 교통 체계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레르네르의 확신을 보자면, 지금 한국의 리더들에게 없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풀 대안이 아니라, 의지가 아닐까?

당장 박용남이 이 책에서 꾸리찌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등의 예를 들며 소개하는 온갖 대안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대전, 대구, 부산, 광주와 같은 대도시 더 나아가 전주, 목포, 진주 등과 같은 중소 도시에서 곧바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를 놓고 "선진국은 역시 달라" 하는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한국의 대도시, 소도시와는 규모가 다르잖아!" 이런 핑계도 궁색하다. 꾸리찌바는 인구 약 185만 명의 대전(약 150만 명)보다 다소 큰 대도시이다. (꾸리찌바의 위성 도시까지 염두에 두면 인구는 약 326만명이다!) 또 생태 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는 인구 약 22만 명의 전형적인 중소 도시이다.

지금, 구명정을 준비하자!

박용남은 이 책에서 경제 위기, 기후 변화, 석유 부족 등의 3중고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 혁명의 시급함을 역설한다. 혁명의 수단은 여러 가지다.

외부로부터의 경제 위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지역에 뿌리를 박은 경제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의 일상생활을 생활협동조합이 지탱하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나 시민의 상호부조에 기반을 둔 '지역 화폐'가 활성화된 영국의 레스터는 경제 위기가 닥쳐도 시민의 삶이 해체되는 일은 겪지 않았다.

태양 에너지와 같은 지역 에너지에 기반을 둔 프라이부르크는 설사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나더라도 전기를 제한 공급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것이다. 또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구조가 마련된 곳이라면 외부 충격으로 먹을거리 공급이 제한되더라도 최소한 배를 곯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삶이 자동차 대신 저렴하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에 맞춰져 있는 도시라면 설사 석유 부족 사태가 오더라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자전거인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독일의 뮌스터, 덴마크의 코펜하겐 같은 도시와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슈퍼마켓도 갈 수 없는 미국의 도시에 동시에 석유가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향후 25년 내에 석유, 천연가스 소비량을 50%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미국의 포틀랜드도 한 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포틀랜드 시민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의 관섭 없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연료 사용량을 줄여서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10쪽)

이제 대안 타령에 주눅 들지 말자. 대신 이 책을 읽고서 조용히 위기의 순간을 대비하자. 배가 침몰할 때, 미리 구명정을 챙겨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의 목숨까지 구하는 법이니까. 설사 그 이웃이 얄밉게 "대안이나 내놓으시지!" 하고 지청구를 놓았던 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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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책은 큰 해악이다(μέγα βιβλίον, μέγα κακόν)'라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초반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관장을 맡았던 칼리마코스(기원전 310/305~240년)가 남긴 말이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앙드레 보나르(1888~1959년)의 <그리스인 이야기>(김희균·양영란 옮김, 책과함께 펴냄)는 1400쪽이 훌쩍 넘는 상당히 '큰 책'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책만큼은 칼리마코스의 비난에서 빼 주어도 될 것 같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2000년쯤부터 완전히 몰락한 기원후 2세기까지, 2000여 년 동안 계속된 그리스 문명의 역사를 세세하게 다루다 보니 이 정도로 큰 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방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며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대가의 솜씨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이 정도의 분량이 적당했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양영란 지음,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역사 이야기를 인물 중심으로 엮었다는 데 있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각 시대를 그리스 문명의 여명기에 활동했던 서사시의 대가 호메로스로부터 시작하여 헬레니즘 시기의 마지막 시인인 알렉산드리아의 헤론다스까지 그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30여 명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우리에게 그리스 문명은 무엇인가? 지난 한 세기 이상, 우리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알게 모르게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위대한 인류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고, 지금까지도 자유와 평등, 정의는 우리 사회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또 야구와 축구, 농구와 같은 스포츠를 즐기며 하루라도 경기가 없는 날이면 공연히 안절부절못하는 금단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연속극과 영화를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또 소설과 시를 읽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의 올림픽 제전을 통해 스포츠를 만들어 놓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비극과 희극을 비롯한 연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또 자유도 모르고 평등과 정의라는 개념도 없는 사회에 산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무의미할 것인가? 그런 삶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바로 그리스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들은 인류의 선생이란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직접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스 문명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적 가치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머나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 도달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이런 사상과 개념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은 피상적이고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은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조선보다는 그리스의 후예다. 다산 정약용보다도 소크라테스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보다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도 적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학'이란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교양 필수로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학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런 입문서로서 이상적인 책이다. 물론 영국의 그리스 학자 키토의 책이 몇 년 전에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박재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내용이 훨씬 간단해서 보다 깊은 지식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이 책은 한 평생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은퇴한 뒤에 심혈을 기울여 쓴 노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장이 아니고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심오함과 평이함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쉽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깊은 전공 지식을 설명하면서도 문장이 난삽하지 않고 명쾌하다. 분량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많지만 이 정도의 넓이와 깊이를 얻으려면 그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 백과사전적 지식을 다루고 있기에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 둘 책은 아니다. 인문학자라면, 아니 교양인이라면 책상머리 한 구석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책장을 뒤적여야 할 책이다. 한 마디로 참으로 좋은 책이다.

번역자들의 문장도 좋은 편이다. 다만 제1권과 제2, 3권의 번역자가 달라 조금 혼란스러운 점이 아쉽다. 또 그리스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가끔 초점이 안 맞는 부분들의 눈에 띈다. 드물기는 하지만 오타와 오자도 적잖이 책의 위신을 깎아 내린다. 이 정도의 역작을 번역하여 소개할 때에는 좀 더 철저한 교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스어의 음역에서 υ을 'ㅟ'로 표기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국립국어원이 공표한 그리스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ㅣ'로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저자가 모든 독재와 독선, 폭력과 압제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항상 앞장서서 저항과 투쟁을 한 지식인임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은 책의 여러 군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의 몰락, 아니 그리스 문명 전체의 몰락이 바로 이런 빈부 격차에 따른 소외 계층의 양산에서 비롯되었음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싼 임금에 의존하면서 빈부 격차를 벌여 나가는 현실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런 문명은 망하게 마련이다. 한 문명의 쇠퇴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리스학에 평생을 바친 대가답게 자신의 학문을 행동으로까지 옮긴 그의 정신이 이 수상한 시절에 새삼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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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李滉)과 율곡 이이(李珥)는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다. 1000원 권과 5000원 권 지폐의 초상으로 매양 접하기 때문이다. 허나 막상 두 사람의 정치적 이력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둘 다 성리학자요, 그 가운데 이황은 주리론, 이이는 주기론을 주장한 사상가라는 정도에서 그친다.

본시 퇴계와 율곡은 정치가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책이 상재되었다.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퇴계 vs. 율곡"이다. 이어지는 부제,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라는 문장이 그 대결 구도를 강조한다. 저자는 수년전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소나무 펴냄)를 출간했던 역사학자 김영두.

조선은 유교,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국가였다. 성리학은 철학이나 역사이기 전에, 실제 삶을 구성하고 규정하는 정치적 가치요 이념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정부에 출사한 퇴계와 율곡은 기본적으로 현실 정치가였다. <퇴계 vs. 율곡>(역사의아침 펴냄)은 그동안 철학적 측면에 치우쳤던 성리학 연구의 경향에 정치적 특성을 부각함으로써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신선하다. 또 추상적이고 고답적인 개념들 이를테면 이와 기, 사단칠정 같은 표현들을 억제하고, 평이하고 손쉽게 해설함으로써 퇴계와 율곡의 정치적 비전과 역사적 고민을 현대 독자들에게 잘 소개하고 있는 점도 미덕이다.

1

저자는 정치가로서 퇴계와 율곡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하려면 소재부터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즉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를 판정할 대상으로서, 퇴계의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와 율곡의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두 상소문을 택했다. 저자는 "이 상소문들을 통해 그들이 시대적 과제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두 사람의 해결책이 어떤 면에서 같고 또 어떤 면에서는 다른지 비교해보려고 했다"고 술회한다.

'무진육조소'란 무진년(1568)에 정치 현안에 대해 여섯 조목으로 간추려 새로 등극한 젊은 군주(선조)에게 올린 글이다. 퇴계의 나이 이미 69세였으니 무르익은 정치적 사유가 여기 응축되어 있다고 저자는 판단한 듯하다. 한편, 율곡의 '만언봉사'는 한자로 1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임금만 보도록 밀봉한 상태로 올린 비밀 상소문이라는 뜻이다. 때는 선조 7년(1574)으로서, 율곡의 상소문들 가운데 그의 속뜻이 잘 드러나 있고 또 퇴계의 상소문과 시기적으로 가까워서 두 사상가의 정치적 식견을 비교하는데 적당한 텍스트로 보았던 것 같다.


▲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김영두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역사의아침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제1부는 퇴계와 율곡에 대한 소개 부분이다. 제2부는 퇴계의 '무진육조소' 전문을 문단을 나눠서 번역하고 또 그 맥락의 의미를 해설한다. 제3부는 율곡의 '만언봉사'에 대해서도 2부와 똑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여 해설한다. 제목에 표현된 강렬한 대결 구도와는 달리, 내용 구성은 두 사상가의 관계에 대한 소개와 각각의 텍스트 해설로 이뤄져 있다. 제목과 내용 간의 괴리가 커 보인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라도 부제에서 밝힌 바,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에 대한 저자의 판정이 제시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용을 해설하는 가운데 퇴계보다는 율곡을 '진정한 정치가'로 보는 저자의 인식이 간혹 서술되어있기는 하다.

예컨대, "퇴계는 법률과 제도의 개혁은 중요하지 않으며, 임금이 올바른 도를 몸에 익혀 그 덕을 실천한다면 그런 것들은 저절로 바로잡힐 것이라고 판단했다. (…) 율곡 또한 '제도와 법령을 바꿀 수 있으나 왕도와 인정(仁政), 삼강오륜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율곡의 주장에서 강조점이 찍히는 부분은 제도와 법령의 변통, 시대에 따른 변화였다."(158쪽)라는 서술 속에 율곡 쪽에 기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 두 상소문을 비교하는 가운데 퇴계의 것을 두고서, "노년에 고향에 돌아가 학문을 높이고 제자를 키우는 데 푹 빠져 산 퇴계와 매일 임금을 만나 국정을 논하고 정치를 이끌어간 율곡의 눈높이가 같을 수 있겠는가?"(219쪽)라고 평한 데서도 율곡을 '진정한 정치가'로 판정하는 저자의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치적 비전을 정면으로 대조하며 비교하는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앞당겨서 독후감을 요약한다면, 이 책은 퇴계와 율곡의 상소문에 대한 소개와 해설이지, 두 사상가의 정치학에 대한 본격적인 저술이 아니다. 또 두 정치가의 비전을 비교함으로써 유교 정치학의 뒷면을 드러내는 책은 아니다. 도발적인 제목에서 기대함직한, 팽팽하고 입체적인 대결은 실제 서술 속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

한국 사상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져봄직한 매력적인 질문, '퇴계 대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라는 화두를 야심차게 걸어놓고서는, 끝내 입체적인 대결 구도를 펼치지 못하고 평면적인 서술로 그치고 만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동일한 소재(상소문)로써 두 정치가를 비교하려는 기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듯싶다.

저자도 지적했듯, 율곡이 평생에 걸쳐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은 59건에 달하지만, 퇴계의 것은 겨우 5건에 지나지 않았다. 또 그 대부분이 임명을 거부하거나 물러나겠다는 '사직소'다. 이것은 곧 율곡의 정치적 사유가 잘 드러나는 소재는 상소문이지만, 퇴계의 정치적 비전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상소문을 통해 우리는 율곡의 정치학을 잘 살펴볼 수 있지만, 퇴계에게 상소문은 그의 정치학을 드러내는 데 좋은 텍스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퇴계는 율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편지글을 남겨놓고 있다. (저자의 앞선 저술인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에서 그런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나는 퇴계가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글 속에서 그의 정치학이 잘 드러나 있다고 본다. 그 가운데서 퇴계가 율곡을 언급한 부분을 한번 찾아보자. 명종의 장례식을 앞두고 우연히 서울에 올라와 있던 퇴계는 장례식에 참여하기는커녕 황급히 낙향해 버린다. 이런 퇴계의 처신에 대해 '산새(山禽)'라느니 '이단(異端)'이라느니 조정의 비난이 물 끓듯했다. 퇴계는 이런 비난에 대해, 자기가 도교풍의 은둔자가 아니라 낙향하는 행동 자체가 성리학에서 권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그 속내를 고봉 기대승에게 술회하는 가운데 율곡의 이름이 거명된다.

"내가 이번에 고향에 돌아와 버린 것에 대해 온 세상이 비웃고 욕을 합니다. 어떤 이는 저를 산새(山禽)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단(異端)이라 배척하기도 하면서 다시는 그들 사이에서 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뜻을 보였습니다. (나의 낙향의 의미를 이해할 만한) 박화숙, 이중구, 정자중, 이숙헌(곧 율곡) 같은 사람들조차 더욱 소리 높여 비난하고 내가 떠난 사실을 더욱 의심하니, 다른 사람들에게서야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첫째, 퇴계가 보기에 율곡은 자신의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물러남(退)이 정계에서 은퇴하여 학문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러남이라는 행동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항변이다.

한편, 율곡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퇴계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요지는 시급히 서울로 올라와 조정에서 정사에 임하라는 촉구다. 율곡의 생각으로는 정치의 현장은 서울(조정)이며, 유학자라면 마땅히 이 정치적 현장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퇴계와 같은 중진이 해결할 정치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으므로 유학자라면 이 정치적 임무를 결코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반면 퇴계는 정치적 현장을 조정(서울)에만 국한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자기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정치의 공간이라고 본다. 즉, 농민에게는 농촌의 삶이 정치요, 학생에게는 학교가 정치적 마당이다. 요컨대 안동(지방)에서의 사회적 활동도 정치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퇴계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정치 문제는 '물러나는 길을 뚫는 것'(퇴로의 개척)으로 보았다. 이점이 그의 정치적 행동의 한 핵심이다. 그가 물러남을 뜻하는 퇴(退)자로서 이름을 삼은 까닭도 이것이다.

퇴계가 먼젓번 정변(기묘사화)에서 조광조 등 혁신파 정치인들이 몰살당한 근본적 이유는 "물러나고자 하여도 퇴로가 봉쇄된 조선의 정치 구조 때문"이라고 결론내린 편지글을 주목해야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은 신하가 벼슬을 버리고 물러날 수 있는 길이 영영 막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물러나기를 청하는 이가 있으면 허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뭇 사람들의 분노와 시기를 사게 되어 갖은 핍박을 받고, 다시는 물러나 피하지 못하고 그들과 한데 휩쓸리고 맙니다. 이렇게 때문에 선비가 한번 조정에 서게 되면, 모두 낚시에 걸린 고기 꼴이 되는 것입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출사의 길 즉 진로(進路)는 존재하면서도 물러나는 길, 퇴로(退路)가 막혀있는 것이 조선의 정쟁을 발화시킨 근본 문제점이라는 인식이다. 이것이 기묘사화의 구조적 원인이었다. 이어서 퇴계는 기묘사화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조광조가 임금께 올린 글들을 모아 요약한 것을 보내니, 한가한 때에 시험 삼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글을 본 뒤, 마치 취한 것도 같고 깬 것도 같은 상태로 근 한 달을 보냈습니다만 아직도 낫지 못한 형편입니다. 가만히 헤아려보니 이 사람은 어려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잘못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잘못 믿었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물러나려 했지만 길이 없어서 결국 그렇게 된 것입니다.'(良由求退無路而致之可知)"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여기 마지막 구절에 지적된 '물러나려했지만 길이 없었다'(求退無路)라는 인식이야말로 차후 퇴계 이황의 정치적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다. 요컨대 퇴계는 당시 끊임없이 연속되는 정치적 참화 즉 사화(士禍)의 근본 원인이 나아가는 길만 있고 물러나는 길이 없는 데 있다고 인식했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과제를 이 구조를 해소하고 퇴로를 뚫는 데 있다고 자임하였고 또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퇴계, 율곡의 관계에서 주목할 점은 율곡이 자신의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퇴계가 개탄한 사실이다.

3

이렇게 볼 때, 퇴계는 단순히 정치적 현장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은 학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퇴계 스스로는 자신이 정치사상가요, 정치적 판단을 실천으로 옮긴 행동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데 대해 율곡과 생각을 달리 했던 것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상소문'을 통해서는 퇴계의 정치적 고민과 결단, 그리고 실천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퇴계에게 상소문이란 고작 '정책적 대안'(개혁안)의 제시에 불과하다. 퇴계는 상소문을 통한 의견의 개진은 효과적인 정치적 실천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 처방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도리어 그에게 문제는 정치적 구조를 재편할 실제적 행동이었던 것.

그러므로 상소문을 통해 '퇴계와 율곡 가운데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를 찾으려는 <퇴계 대 율곡>의 야심찬 기획이 평범하고 기계적인 서술로 끝나버린 이유도 다른데 있지 않다. 퇴계에게 상소문은 그의 정치적 사유를 펼치는 좋은 재료가 아니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막상 상소문을 가지고 두 사상가를 비교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소상하게 글을 쓴 율곡 쪽으로 편향하게 되어 있다.

(여태 한국 인문학계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의 정치관을 비교해왔기 때문에, 율곡은 실학적이고 실무적이며 실천적인데 반해, 퇴계는 퇴영적이고, 관념적이며, 고작 서원을 통해 후진을 기르려고 한 교육자 정도에 머물고 말았던 것이다.)

문장의 길이에서도 '무진육조소'는 '만언봉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상소문을 해설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퇴계 대 율곡>의 내용 구성 역시 분량 면에서나, 해설의 소상함에 있어서나 퇴계의 것은 율곡의 것에 비해 소략하게 마련이다. ('무진육조소'를 다루는 분량은 59쪽, '만언봉사'는 126쪽이다.)

어디 한번 눈길을 오늘날로 가져와서 두 정치가를 살펴보자.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누가 더 '정치적 성공'을 거둔 사람일까? 저자도 해설 속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 율곡의 상소문 속에 든 제안들은 거의 현실화되지 못했다. '만언봉사' 속에 그의 정치사상은 유감없이 담겨있지만, 또 그의 개혁에 대한 절실함이 후세의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지만, 그러나 그의 조언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병조판서를 맡아 분주하다가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즉 율곡은 조정(서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생각을 끝까지 견지했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보잘 것이 없었다.

반면 퇴계는 퇴로의 개척을 통해 당대 가장 큰 정치적 문제였던 연속된 사화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논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그의 정치적 성공은 1000원 권 지폐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니, 앞면 말고 뒷면이 특별히 그러하다. 1000원 권 뒷면에는 명종의 명령으로 그려진 도산서원의 풍경이 모사되어있다. 이것은 궁정에 걸려서 군주가 '퇴계를 사모한다'는 뜻을 천명한 정치적 그림이다. 즉 이 풍경화는 퇴계가 당대 정치의 핵심(군주)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성공한 극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물러나려는 데도 오히려 정치적 영향력이 더 커지는 사태, 이 '역설적 힘'이야말로 유교가 꿈꾼 덕치(德治)의 동력이다(졸고, "덕이란 무엇인가", <녹색평론> 2010년 11-12월(제115호) 참고)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퇴계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 더욱 깊숙이는 '유교의 정치적 이상'을 성취한 사람이다. 퇴계가 개척한 '퇴로'는 정치적 현장으로부터 은퇴하는 길이 아니라, 정치영역을 확장하는 건설의 길이었으며, 이 길을 뚫음으로서 그의 정치적 비전을 당대 조선에 실현했던 것이다.

끝으로 평자 나름대로 퇴계와 율곡을 비교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율곡은 상소문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데서 상징되듯, '개혁적 정치가'로 칭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 개혁이란 기존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다만 그 체제 내부의 개량을 도모하는 일련의 정치적 행동을 뜻한다.

퇴계는 성리학 연구로부터 획득된 정치적 판단을 몸소 실천으로 옮겨 성공한 '혁신적 정치가'로 평가하고 싶다. 여기서 혁신이란 기존의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려는 사유와 실천을 의미한다. 오늘날 식으로 끌어와 비교한다면, 나는 율곡보다 퇴계가 더욱 래디컬하고, 진보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도 더 성공적인 정치가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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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의 당혹스러움

의학에 '왜?'라는 질문이 등장하면 그 때부터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20세기에 확립되어 오늘날 주류 의학의 위치를 차지한 생물의학(biomedicine)의 관점에서 '왜?'라는 질문은 사실상 별 의미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즉, 의사나 의학자의 입장에서 이 '왜'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며, 따라서 엄밀하게는 의학의 영역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의학의 영역은 지금도 여전히―적어도 원칙적으로는―질병 발생의 자연적 '원인'과 이에 따른 '결과'라는 인과율이 엄격히 적용되는 물리적 무대일 따름이다.

게다가 의사나 의학자들은 이 '왜(Why)?'라는 질문을 흔히 '어떻게(How)?'라는 질문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왜 아픈가?'라는 질문은 곧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아프게 됐는가?'를 의미한다. 사실 생물의학의 관점에서 '왜'는 '어떻게'와 동의어다. 다시 말하면 '왜'와 '어떻게'를 서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폐결핵 환자의 경우, '그 발병 원인이 결핵균이라는 특정 세균의 감염이고 결핵 발병의 위험 인자로서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다'라는 의학적 사실은 중요하지만, 도대체 왜 이 환자가 이러한 질병에 걸렸을까 혹은 걸려야만 했을까 하는 실존적 질문은 생물의학의 영역에서 중요하지 않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 폐결핵에 걸렸을까는 곧 폐결핵에 걸린 의학적 원인이 무엇일까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대리언 리더와 데이비드 코필드의 <우리는 왜 아플까>(배성민 옮김, 윤태욱 감수, 동녘사이언스 펴냄)에 대한 서평 의뢰를 받았을 때 도서의 부제목("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을 미처 살피지 못한 채 본제목만 듣고는 근래 하나 둘씩 번역돼 나오기 시작한 진화 의학(evolutionary medicine) 관련 도서이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해 버렸다.


▲ <우리는 왜 아플까>(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 지음, 배성민 옮김, 윤태욱 감수, 동녘사이언스 펴냄). ⓒ동녘사이언스
생물학을 포함하여 의학의 영역에 최초로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진 학문 분야가 바로 진화 의학이기 때문이거니와 이미 이와 관련하여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랜덜프 네스·조지 윌리엄즈 공저, 최재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라는 유사한 제목의 번역서가 시중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물의 진화는 질병 발생의 궁극인(窮極因)이다.

그러나 웬걸? <우리는 왜 아플까>는 진화 의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제목 그대로 딱 '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을 여러 임상 사례들과 더불어 상세히 논해 놓은 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 역시 몸과 마음의 상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즉 어떤 방식으로 질병에 걸려 아프게 되는가를 의미하는 질문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들의 입을 빌려 이 질문에 답을 해 보면, "주요 질병 가운데 오직 마음의 문제 때문에 걸리는 병은 하나도 없다. 마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질병도 없다. 결국 몸과 마음은 잠재적으로 얽혀 있다."(16쪽) 그리고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기제를 한 가지로 단정 짓거나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17쪽).

데카르트주의와 정신신체 의학

이렇게 정신과 신체라는 두 개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 방식에 따라 어떠한 질병이 발병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저자들은 누가 뭐라 하든 진정한 데카르트주의자임이 확실하다.

이들은 그 규명의 무대로서 정신신체 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을 상정하고 있는데,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정신신체 의학 또한 정신과 신체를 두 개의 실체로 인정하고 그 상호 관계를 병리적 측면에서 접근해 들어가는 분야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신체 의학은 데카르트의 적통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정신신체 의학은 정신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정신신체 의학의 일반적 범주보다 포괄적이며, 따라서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여 상당히 혼잡스럽다. 가령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의 경우 미국의 정신 질환 분류 기준인 '정신장애진단 통계편람' 최신판(DSM-Ⅳ-TR)에서는 정신신체 질환과 전혀 다른 범주로 분류하고 있지만, 저자들은 이를 정신신체 질환의 일종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모호성은 저자들이 채택한 전략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정신신체 의학이란 관련 질병들을 분류하고 진단하기 위한 정신 의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일종의 "질병을 다루는 방식"(385쪽)이다. 즉, 몸과 마음이 상호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신체 질환의 치료에 심리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는 그러한 '방식'이 곧 정신신체 의학이다.

따라서 독립변수로서의 정신신체 질환 또는 정신신체 장애가 가지는 독자적 영역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질병 단위가 아닌 온갖 임상 증상의 사례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러한 정신신체 의학 사례들의 화려한 축제 속에 파묻혀 중도에 자칫 길을 잃어버릴 염려마저 있다.

이쯤에서 이러한 책이 나오게 된 동기를 짐작할 수 있다. 주류 의학인 생물의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함이라는 것. 사실 생물의학은 그간의 인상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 질환의 원인만을 규명해 냈을 뿐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질환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근래에는 리처드 윌킨슨 같은 사회의학자의 저서가 번역·소개되면서 질병의 원인으로서 생물학적 요소가 아니라 불평등, 가난, 계급, 사회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요소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거시적인 사회 이론은 의사와 환자가 일대일로 만나는 임상 현장에서의 실천 행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400년 전의 데카르트에 매몰돼 있는 정신신체 의학을 무대로 한 이 책의 심신상관 담론이 돌파구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상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는 유감스럽게도 저자들의 시각과 달리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물의학이 지배하는 현실 의료와 의학의 영역에서도 상식 수준에 속하는 진부한 것이다. 다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상식이라는 점에서 '고매한' 상식에 머물 따름이지만….

정신분석학의 효용 가치

주류 생물의학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저자들은 정신신체 의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 다음으로 이들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정신분석학,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채택하고 있다. 철학 용어로 바꿔 말하면 데카르트주의를 배경으로 치료적 실천 행위의 구체적 도구로서 정신분석학을 택한 것이다.

"주의 깊게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하게 대답하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정신분석"(433쪽)이라면 왜 저자들이 생물의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택했는지 그 이유를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다. 요컨대 생물의학의 치명적 약점인 환자 소외 현상을 정신분석이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은 생물의학과 동일한 사상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근대의 자식이다. 특히 뉴턴 역학과 기계적 결정론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저자들의 주장대로 라캉주의 정신분석이 환자의 증상 설명에 치우치기보다는 경청을 통해 "환자가 전기(biography)를 구성하도록 돕는다"(385쪽)고 할 것 같으면 저자들이 정신분석학에 갖는 친밀함과 기대감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생물의학이 정신을 무시하는 수위만큼이나 육체를 무시해 버리는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의 치료 방식이 진정한 데카르트주의자로서 정신과 신체의 상호 영향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지론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이론 체계와 달리 임상 현장에서의 정신분석은 한층 유연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주의자들의 오판과 달리 정신분석의 임상적 효용 가치는 오늘날에도 충분하다. 물론 생물정신의학의 대성공으로 정신의학의 영역에서 역동정신의학, 즉 정신분석학의 위치가 협소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정신분석은 치료의 도구로서 꽤 오랜 기간 살아남게 될 것이다.

과학적 생물의학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임상의학이 일반적인 자연과학과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즉, 임상의학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는 인간, 곧 살아 숨 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천 분야라는 것. 요컨대 치료 효과가 과학적 정합성에 우선한다.

저자들은 결론적으로 라캉의 견해를 빌려와 "정신분석이 의사라는 고유한 자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실천"(434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다. 여기서 고유한 자리란 경청자로서의 전통적인 의사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상당히 암울한 편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진정한 데카르트주의 콘텍스트는 몸과 마음이 단절된 상태로 변질되어 버렸으며, 의사들은 동서를 불문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환자와 대화하며, 환자를 존중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해 가고 있다. 환자들 역시 의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의학의 변화

저자들은 최종적으로 대화를 통한 이야기의 복원을 꾀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 동물이다. 인간의 이러한 서사적 전통은 인간이 삶을 이해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지침 역할을 해 왔다.

의학에도 역시 질병 체험을 재구성하여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서사적 전통이 존재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통해 환자에게 접근해 들어가는 전통이 그것이다. 그러나 진단 기술의 발달과 의료의 기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서사적 전통은 점차 망실되어 가고 있으며,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배제되는 일이 아주 흔해졌다. 이런 이유로 책의 저자들은 라캉의 입을 빌려 "정신분석이야말로 전통 의학의 마지막 유물"(433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의료계 및 의학 교육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간의 이야기적 정체성의 중요도가 재평가를 받게 되면서 이른바 '서사 의학(narrative medicine)'이라든가 '의료 커뮤니케이션'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진료의 시작이자 끝이랄 수 있는 '환자-의사 관계'의 중요성도 재부각되고 있다.

의학 교육에서도 의료인문학이 중요해지면서 문학, 영화 등 서사적 장르를 의학에 접맥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의대생들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성 교육을 강화해 나가는 추세에 있다. 여전히 생물의학 중심의 질서가 굳건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가 상호 교감하는 서사 가운데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누구나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복원되면 환자는 병이 나을 권리뿐 아니라 혹시 병에 걸릴 권리까지도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저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환자의 권리란 병에 걸릴 권리를 말한다. 환자는 다른 영역에서 나타나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피하려고 신체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정말 이런 사례가 있다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까?" (417~418쪽)

덧붙임

사소한 번역상의 오류가 하나 눈에 띄어 부기해 둔다. 119쪽의 '토머스 윌리스'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17세기 영국의 유명한 의사이다. 물론 이것이 전체 논지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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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원주로 내려가며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카이스트(KAIST)에서 네 번째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였다.

사태 자체도 심란하였지만 원주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 사건을 토론할 자신이 없었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과 함께 주로 토론하고 있는 주제가 '동시대인과 동료'였다. 어떤 사건을 보며 우리가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발견하지 못한다면 왜 발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학기 초부터 생각을 나눠왔다.

학생들은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서 어떤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목숨을 끊은 친구들을 동시대인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토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애써 감추고 있던 마음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만 같았다. 만약 학생들이 "그게 저희와 무슨 상관이에요?" 하고 대답하거나 혹은 아예 냉소적인 침묵을 날린다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밤새 이걸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은 하자고 결정을 봤지만 두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네 번째 자살이 있고 난 다음 언론이건 트위터에는 카이스트에 대한 글이 넘쳐나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온갖 비판과 대책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두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지금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슬픔이 묻어나는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남표를 공격하고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성토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읽는 내내 어떤 찝찝함 같은 것들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건 단지 정서의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사건에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예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글은 아무리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동시대인의 글은 아닌 셈이다.

다른 하나는 이 수많은 글들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 진보 논객이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가끔 우리는 우리글을 읽지 않아도 이미 우리 편인 사람들을 향해서 말을 한다. 일종의 팬들에게 말을 거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글이 자기 동아리 안에서 맴돌다 소비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글은 읽지 않아도 될 사람과 유대감을 재확인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을 동시대인으로, 동료로 초대하는 행위가 아닌가. 글이란 결국 동시대인을 동료로 초대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그 정치적 행위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교실에서 만나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꿈꾸는 것은 그들과 내가 동시대인이 되는 것이다.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이 시대에 너와 나의 운명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논평만이 아니라 그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공명해야한다.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는 사건이란 사건으로서 무의미하며,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어주지 못하는 글이란 글로서 가치가 없다.

비판하고 성토하는 수많은 글에서 바로 이런 '초대'를 느낄 수 없었다. 비상한 주장은 많았지만 누구를 초대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럼 나는 어떤가? 교실에서 나는 학생들을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그 언어가 나에게는 있는가?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이 토론을 통해서 나는 학생들과 어떤 기억을 서로 꺼내고 연결함으로써 비로소 이 사건을 사건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일단 부딪쳐야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에 도착하고 나서, 약속된 학생 세 명을 만나 아침을 같이 먹었다. 학교 다니는 고충이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학생이 먼저 불쑥 대답하였다. "우리 학교에서도 2~3년에 한 명이 자살하는데……."

먹먹했다. 카이스트라서 특별하게 다뤄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인가 싶었다. 몇 년 전에 원주 캠퍼스에서도 학생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 사건은 지역 신문에 아주 조그맣게 실렸다고 한다. 소속도, 이름도 그냥 아무개 대학생이라고. 죽어서도 이름을 얻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불쌍하죠. 우리도 등록금 때문에 고생 많이 하고 경쟁도 치열하고 하니까요. 뭐, 카이스트 학생이라 더 알려지는 것도 있겠지만 이걸로 많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같이 밥을 먹은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평균이 의미 없는 무한 경쟁


▲ <문화의 해석>(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문옥표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수업을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이 죽음이 동시대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지, 동료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랑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지에 대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나랑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의외로 몇 명 되지 않았다. 동시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고, 몇 명은 동료의 죽음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그날 오후에 있었던 상지대학교와 다음 날 덕성여자대학교에서도 이 비율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수의 학생들은 이 죽음에서 아주 강한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죽음과 자신들이 어떤 강도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벌 중심 사회 그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인가? 죽기 살기로 공부와 경쟁을 해야 한다. 포기는 곧 패배자다. 어렸을 때부터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가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배워왔다. 배움보단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1등1등1등1등1등1등1등1등1등1등!'을 해서 최고를 향해 올라간다. 1등을 향해 갈수록 주위엔 낙오자가 생기고 점점 외로운 길로 간다. 나중에 뒤 돌아 보았을 때 그들은 전쟁터에서 혼자 살아남은 1인이 돼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는 한국 교육이라고 본다.

주위를 바라보는 것, 잠시 쉬었다 가는 것, 다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평균 소득 2만 달러가 넘었다고 얼마 전에 들었다. 하지만 평균이다. 이미 소득이라는 시소는 균형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기울려져 있다. 평균 소득 2만 달러는 개뿔! 이제 점점 균형을 맞춰야 생각한다. 1인이 아닌 다함께 성장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씀보, 상지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비록 그들이 영재 교육을 받고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인생의 궤도를 걸어온 친구들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에 시달려왔다는 것은 일등이나 꼴등이나 '딱 중간'이나 매한가지였다. 이 사태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경쟁의 강도와 목표와 방향이 달랐을 뿐, 한 명만 살아남는 그 외롭고 지옥 같은 경쟁을 통과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그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씀보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평균'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고 삶을 지배하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의 규칙이다. 카이스트와 상지대는 수능 서열 체제로 본다면 아주 먼 거리에 위치하였지만 그곳이나 여기나 서바이벌 게임장인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고, 이것이 학생들이 공유하는 동시대성이었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그의 책 <문화의 해석>(문옥표 옮김, 까치 펴냄)에서 동시대인과 동료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료란 시간과 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이들은 적어도 조금씩은 서로의 생활사에 포함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동시대인은 시간은 공유하지만 공간은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관계는 가지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만날 일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동시대인은 적어도 시간에 대한 감각은 공유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장치란 무엇인가?>(양창렬 옮김, 난장 펴냄)에 수록되어 있는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에서 동시대인의 의미를 동료에 아주 가깝게 몰아간다. 그는 동시대성이란 '거리를 두면서도 들러붙음으로써 자신의 시대와 맺는 독특한 관계'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히려 시대와 "너무 완전히 일치하는 자들, 모든 점에서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는 자들이 동시대인이 아닌" 것이 된다. 그들은 시대를 보지 못하고, 시대의 어둠을 보지 못한다.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시대의 어둠'을 보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씀보는 시대의 어둠을 본 동시대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GDP 2만 달러를 회복했다는 것에 환호하고 그 선전에 농락당하고 있을 때 씀보는 "개뿔!"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 시대에 그런 '평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아무 의미도 없다. 평균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어둠을 이렇게 명료하게 직시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실 평균은 의미가 있다. 평균은 바로 탈락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이 징벌적 장학금이다.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학점이 3.0 이하가 되면 0.01씩 떨어질 때마다 2010년 기준으로 약 6만 원을 다음 학기 시작 전에 내야한다. 2.0 밑으로 떨어지면 최대 600만원이다.

이 제도는 2008년에 서남표가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명목 하에 시작했다. 학점 3.0. 평균 학점 B이다. 고등학교라면 '우'에 해당한다. 아마 평균에 가까운 학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평균'은 '중간은 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균은 곧 탈락을 의미하고, 탈락은 징벌로 이어진다.

탈락에 대한 공포, 모욕 주는 사회


▲ <장치란 무엇인가?>(조르지오 아감벤 지음, 양창렬 옮김, 난장 펴냄). ⓒ난장
그렇게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의대, 약대, 한의대 등등을 포기하면서 자기가 배우고 싶은 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이렇게 학교에 왔지만 패자는 확실하게 짓밟히는……. 이미 학교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확실히 그렇다.

이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패자에게는 일말의 기회가 없는. 아니 기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에게 모독과 치욕감을 준다. 패자에게 박수? 그런 건 없다 무조건 학점 3.0이 넘지 않으면 카이스트란 집단 안에서는 무조건 패자가 되는 사회. 한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만약에 우리 학교에서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생겨서 등록금을 내라고 하면 ('아니, 자살하지 말고 그냥 자퇴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바로 그만둘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경국, 상지대)

이 징벌을 당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모욕감이다. 연세대 원주 캠퍼스, 상지대 그리고 덕성여대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에 대해 동시대성을 느낀다고 말한 친구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자살한 학생은 자신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늘 칭찬을 듣고 1등만 하던 아이들이 모욕을 당했을 때 그 상처를 회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욕 주는 사회, 모욕이 제도화된 사회. 이것이 학생들이 이 카이스트 사태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동시대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독은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1등, 꼴등을 정해놓고 비교를 해놓으면서 선의의 경쟁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경쟁이 아닌 모욕으로 변질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이다. 한참 사춘기로 민감한 시기일 때였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담임선생님은 자리를 나누어 버리셨다.

반 등수대로 일등부터 가운데 줄에 앉게 하고 나머지 성적은 양쪽으로 나누어서 자리에서 성적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짓궂은 친구들은 성적을 말 안 해주더니 왜 그런지 알겠다면서 놀리기 시작한다. 이런 불만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담임선생님은 그런 모욕이 싫으면 공부를 해서 다음 시험 때 성적을 높여서 자리를 바꾸라고 하신다.

가운데 자리를 빼놓고 양쪽으로 나누어진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이미 크게 벌어져 버려서 "공부도 못한다고 나눠서 앉힐 거면 공부 못하면 안 나오면 되겠네" 하며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오히려 약 아닌 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카이스트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쟁을 통하여 학생들을 더더욱 분발시키려 하였지만 그로인한 스트레스와 모욕감이 아이들을 벼랑으로 밀고 있는 것 이었다. 카이스트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는 미래의 아까운 인재를 하늘로 보내고야 만 것이다. (주섭, 상지대)

아비샤이 마갈릿은 그의 저서 <품위 있는 사회>(신성림 옮김, 동녘 펴냄)에서 바로 이 모욕을 다루고 있다. 모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다른 이를 모욕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이다. 마갈릿은 전자가 없는 사회를 '문명화된 사회'라고 부르고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decent) 있는 사회'라고 부른다.

품위라고 하면 교양과 도덕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decent'에는 '기준에 맞는', '예의바른', '상당한'이란 뜻이 있다. 'decent salary'는 상당한 보수라는 뜻이고, 'decent work'은 인간이 할 말한, 인권이나 노동권 등 다른 기준으로 보더라도 할 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과 같은 것은 전혀 'decent work'가 아닌 것이다.

마갈릿은 모욕을 "자존감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행동이나 조건"이라고 규정한다. 모욕은 인간의 명예나 자존감에 심각한 훼손을 가한다. 자존감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다. 마갈릿은 자존감이 없으면 가치에 대한 인식도, 인생은 의미 있다는 인식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인생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제도적 모욕이란 이런 모욕이 문자 그대로 제도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예를 들어 민권 운동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 차별 정책이 바로 그런 제도적 모욕이다. 흑인들은 버스에서 백인들의 자리가 비어 있어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반면 백인들은 언제든지 흑인에게 자리를 비킬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흑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전혀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마다 깨닫고 치욕감을 느껴야한다. 이게 바로 제도적 모욕이다. 주섭이 학교에서 당한 모욕이 바로 이런 제도적 모욕이다. 내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가 내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취급을 교실에서 당해야 하는지 훤히 다 말해준다.

고등학교 때뿐만이 아니다. 학점에 따른 이런 징벌 제도는 많은 대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덕성여대에서는 2.5 밑으로 학점을 받게 되면 다음 학기에 수강 학점에 제한이 가해진다. 너는 그만큼 많은 공부를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제도적 모욕이 인간에게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것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마갈릿은 버나드 쇼의 "구시대의 처벌 방식보다 현대의 처벌 방식이 더 모욕적"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모욕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구시대의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함으로써 한편에서는 구경거리로 삼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고통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처벌은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숨기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감옥을 경험하지 않는 한 그들의 고통에 절대 공감할 수가 없게 된다.

유령이라는 동시대인


▲ <품위 있는 사회>(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신성림 옮김, 동녘 펴냄). ⓒ동녘
제도화된 모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누구에게 절대 공개적으로 공감을 받을 수가 없는 모욕이다. 제도가 이미 모욕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징벌로 내야 하는 학생이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감을 얻어내기는 힘들다.

아마 대부분 학교의 제도를 탓하기보다는 '네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그랬냐?' 하는 핀잔이나 듣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제도적 모욕은 가장 고통스러운 모욕, 모욕스러운 고통이 된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수 없는 인간,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호소할 수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은 마치 자신이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고통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서야 비로소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숨겨야 사회에 '포괄'될 수 있는 인간, 이 인간이 바로 투명인간, 유령이 아닌가?

아픔과 외로움의 이면에는, 그것에 침묵하는 친구들이 있다. 고통은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것이겠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내밀하고 사적인 것'으로 만든 세력들, 그리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침묵을 폭로하는, 또는 그 당사자들에게 그 사실을 인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자살이다.

얼마 전에 카이스트에서 네 명이 자살했다.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도와줬었더라면'이라는 후회를 내비치고, 그 느낌을 서로 공유했다. 카이스트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그 후회를 '자살 방지 대책'이라는 좀 더 체계적인 것으로 말하지만, 그 본질은 남겨진 친구의 후회와 비슷했다. '여태까지 듣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듣도록 노력하겠다'가 그 본질이 아닐까.(정섭,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원주 캠퍼스로 청강 오는 학생)

학생들이 느끼는 동시대성의 세 번째 국면이 바로 이런 유령으로서의 공유이다. 우리는 모두가 유령인 셈이다. 유령으로서만, 내가 내 상처에 대해서조차도 침묵할 경우에만 비로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가 스스로를 유령으로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모욕이 아닌가?

마갈릿은 이것을 "사람이 간과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식민주의자들이 토착민에게 가하던 모욕을 상기시킨다. '훌륭한 아랍 사람은 보이지 않으면서 일해야 한다'는 식민주의자들의 주장은 바꾸면 자신들의 눈앞에 토착민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없는 존재로 치겠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로마의 '주인'들은 '노예'들이 보는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섹스를 했다.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수치심 같은 것을 느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없는 존재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모욕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카이스트의 문제이기 때문에 카이스트 학생들이 이 사태의 당사자들이며 가장 잘 알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된다. 오히려 유령들은 내부의 이방인이다. 이 내부의 이방인은 내부인에게 오히려 더 잘 안 보인다. "비록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학교가 그렇게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에요" 하고 말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말은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야한다. 그들이 동료의 죽음에 대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존재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유령과 동료가 아닐 뿐이었다.

유령의 속사정, 유령의 고통은 유령이 더 잘 안다. 덕성여대의 토론에서 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카이스트와 우리 학교는 다르지만"을 꼭 전제하여 말하자 정말 그렇게 다른가, 누구에게 다른가를 질문하였다. 카이스트보다 덕성여대가 더 자유스럽고 경쟁이 덜하다고 하지만 자기에게는 덕성여대도 숨 막히는 공간이기는 매한가지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걸 공유하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이 학생에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기는 카이스트의 사태에 대해서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학생이 말하는 것처럼 동시대인이란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위치가 무엇이고,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가 동시대인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카이스트의 것은 카이스트에게, 동시대인의 것은 동시대인에게" 돌려줄 줄 아는 지혜이다.

구체성도, 보편성도 없다!

카이스트의 것은 무엇이고, 동시대의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카이스트 사태를 카이스트 '제도'와 카이스트 '사건'으로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카이스트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카이스트의 특수한 제도에 대한 이야기에 묻혀있다.

그러나 지금 카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카이스트의 것과 동시대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카이스트라는 별난 대학에서 벌어진 별난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토론하는 와중에 대단히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시대인이라고 생각하다고 하던 학생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유보적인 입장으로 점차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카이스트의 제도를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자살한 학생의 고통이나 삶에 대해서도 짐작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카이스트 학생들에 대한 '르포'들도 하룻밤 휙 내려가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은 것들이 몇 개 있을 뿐 학생들의 심층을 다루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가 자존감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그래서 유령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는 우리 쪽에서의 짐작에 따른 동일시가 있을 뿐이지 고통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사건에서 보편성이 잘 이끌어져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와 무한 경쟁이라는 말로 사건의 보편성을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헐렁헐렁한 말이었다.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분명히 우리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인데 대부분의 기사와 칼럼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가 우리 사회에서 동시대성을, 동시대인의 형성을 방해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어떤 이야기가 카이스트의 것과 동시대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교실을 통하여 동시대인을 꿈꾸는 나에게 학생들이 다시 던진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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