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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쨍-한 청량감 있는 겉표지에 끌려 클릭. 소설 제목이, 샤워? 시원하겠는걸?
그리고 이어지는 작품 소개.
어느 날부터 남편이 씻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잖아?????
샤워를 '안하는 남자'(이 글자 하나하나 위에 하루키식 방점 내 마음 속에 찍음)의 이야기라고???
아직 이 책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 책을 냄새에 민감하신 다락방님께 일단 추천 먼저 살포시... 드리고ㅋㅋㅋㅋㅋㅋ (https://blog.aladin.co.kr/pourkkahier/15663356)
나는 거의 끝을 달리고 있던 박민정 작가의 신간 <백년해로외전>을 다 읽고 어제 저녁 퇴근길에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날 자기 전에 다 읽어 버렸다. 으으..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
내용은 길지 않아 하루만에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었다. 이렇게 몰입해서 단숨에 다 읽게 만드는 책 아주 오랜만이야!!!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간사이 지방의 시골 도시에서 태어나 졸업 후 도쿄로 올라와 취업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쓰미. 작품에선 3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고, 비슷한 나이의 도쿄 출신 영업 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둘은 도쿄에서 그럭저럭 평범한 맨션에서 월세를 내며 애가 없는 맞벌이 가정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의 평범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맞벌이로 퇴근 이후의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부부는, 평일에 저녁밥은 각자 퇴근길에 먹고 싶은 것을 포장해와서 먹는다. 이런 삶을 보고 이쓰미의 시어머니는 이쓰미에게 '소꿉장난 같은 삶'이라고 비꼰다. 퇴근 후 남편을 먹일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 이쓰미를,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 이쓰미를 교묘하게 저격하는 말이리라.
어느날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회식 자리에서 직장 후배가 끼얹은 물에 맞아 물을 뚝뚝 흘리며 귀가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몸을 씻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쓰미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이를 대대적인 문제로 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냄새와 찌든 때가 심해지는 남편을 알아차릴 주위 사람들의 눈을 상상하며 신경쓰지만, 수돗물의 냄새를 거부하는 남편에게 그러면 생수로 씻어보자, 빗물로 씻어보자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 이후, 비 오는 날이 오면 남편은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빗물에 몸을 비비며 씻고 귀가를 한다. 도쿄 사람들은 점점 대담해져서 큰 대로변을 걸으며 양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빗물을 맞으며 몸을 비비는 남편을 보고도 그 누구도 제대로된 눈길조차,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다만, 가는 발걸음을 살짝 돌려 그를 피해갈 뿐이다.
이야기 중간부터는, 산골 마을에서 살던 이쓰미가 어릴 적 키우던 물고기 이야기와 현재의 남편 이야기가 병렬로 서술된다.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날, 박혀있던 돌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파인 땅에, 빗물인지 범람한 강물인지가 고이면서 그 안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어린 이쓰미가 발견한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곧 마를테고 그러면 곧 죽고 말테니까 이쓰미는 그 물고기를 집에 가져오고, 이쓰미 가족은 제대로 된 어항도 없는 수조같은 곳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죽을까봐 살려서 집에 데려온 그 물고기를 가족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죽지만 않게 금붕어 먹이를 사와 대충 물 위에 뿌려주는 게 물고기 케어의 전부다. 물 비린내가 너무 심해지고 물이 더러워지면 그때는 마당에 수조물을 버리고 다시 수돗물을 채워넣는다.
염소도 빼지 않고 수돗물을 그대로 넣어도 죽지 않는 물고기, 최소한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밥만 주고 그 외의 어떠한 관리도 안해도 죽지 않는 물고기. 마치 이쓰미 가족들은 "이래도 안죽는다고? 이렇게 해도 안죽는다고?" 이런 마인드로 물고기를 키우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은 상태로 가지고 있는다.
나는 어릴적 이쓰미가 방치하던 물고기와 이쓰미의 남편을 동일시하며 읽었다. 그 물고기가 이쓰미의 남편으로 환생한 건 아니었을까? 주어진 대로, 사회가 정상이라고 짜놓은 그 틀에서, 그 수조에 갇혀서 이 세상은 우리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환경을 짜놓은다. 이래도 견딘다고? 이래도 버틴다고? 이렇게 더러운 물 속에서도 네가 안죽고 베겨? 물고기 남편은 어느날 이 고립된 짜여진 물 속에서 살기를 거부한다. 샤워를 거부한다. 물이 싫어. 이젠 물에 몸을 안 댈거야. 냄새 때문에 물에 닿기도 싫다던 남편은 수돗물에서 생수로, 생수에서 빗물로, 빗물에서 이쓰미의 고향인 산 속의 청량한 강 상류에서 몸을 씻는다. (물론 씻는다...라기 보다는 육신과 물에 물리적인 접촉이 있었다...라고 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이쓰미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완전히 사회 속에 벗어나버린 남편 곁에 있어 주지만, 단 한번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 조차 전화로만 이쓰미를 (가부장제의 언어로) 닦달할 뿐, 자신의 아들에게 연락하는 대신 며느리인 이쓰미에게 전화해서 걱정과 잔소리를 퍼부을 뿐 자신의 아들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전화를 수시로 하면서도 반년째 씻지 않고 시골에 처박혀 사는 자신의 아들을 보러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책에서는 무관심한 현대인으로 상징되는 길거리의 도쿄 사람들의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결국 이 남자의(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이 소설 속에서 몇번 나오기는 하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인도, 엄마도, 방관한다.
어린 이쓰미는 졸업 후 도쿄로 이사를 앞두고, 물고기를 가져가라는 가족들의 말에 결국 '방류'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쓰미는 물고기를 강물에 풀어주는 대신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유수량이 많은 강가(혹은 바닷가 초입)에 물고기가 든 양동이를 그냥 '두고'온다.
나는 이 어릴적 태도에서 이쓰미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소극적 방관자. 어린 이쓰미는 물고기를 방류하기 전에 고민을 했다. '평생 수돗물에서만 살았던 물고기가 강에 간다고 살 수 있을까? 어차피 죽는 거 아닐까? 바닷물과 만나는 지점인 것 같은데, 이 물고기는 바닷물에 못사는 물고기 아닐까?'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백퍼센트 옳은 선택도, 백퍼센트 틀린 선택도 없다. 일단 선택을 하면, 그에 따르는 결과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지이다.
물고기를 풀어주지도, 제대로 가둬놓고 키우지도 않고, 그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이쓰미가 기껏 강에까지 가서 물가에 물고기가 든 양동이를 올려두고 도망친 이쓰미. 그 날 밤에 들이닥친 폭풍우. 다음날 그 장소에 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물고기. 사라진 물고기처럼 폭풍우가 내린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
어쩌다 바람에 날아온 돌이 만든 땅의 작은 홈 속에 갇혀버린 물고기. 그 안에 고인 탁한 진흙물 속에서, 그 물마저 증발이 되면 죽을 팔자인 물고기. 애초에 극복할 수 없는 삶에 갇힌 물고기, 우리.
짧은 소설이지만 여러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주제로 전혀 다른 감상을 펼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더 읽고 싶다.
나는 이 책을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현대 사회의 고립과 방관이라는 폭력. (물론 거기에 이제 냄새를 더한....)
책에서 여러번 등장하는 '소꿉장난같은 삶'이라는 단어 머릿 속에 하루 종일 맴돈다.
아,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냄새'에 중점을 두고 읽지는 않았지만, 악취와 불결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는 맞다.
악취와 불결함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니 비위가 정말 약하신 분들에게는 독서를 권하진 않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세상에 소꿉장난 같은 삶이 하나라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얘기하는 건,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과 얽히는 건. 이러쿵저러쿵 시끄럽다. - P104
설령 미쳤다고 해도, 뭔가 잘못돼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해도, 남편이 팔다리를 잘게 움직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손끝에서 튄 물방울이 주변 돌에 점점이 흔적을 남긴다. 그 점과 점을 시선으로 엮어나간다. 이러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틀리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있다.
자신의 결심이나 생각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어떤 순간에 결심했다기보다, 어느 사이엔가 결정했던 일을 시간이 꽤 흐른 뒤에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게 최종 결정이겠구나"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나열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듯 보이겠지만, 심사숙고해서 고르지 않았다고 다 틀린 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는 인생에서, 여기까지 쭉 더듬어가며 걸어온 이 당연해 보이는 길을 어느 누가 소꿉장난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편이 좋으니까 사랑했을 뿐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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