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글쓰기…대중적인 설득력 지녀야 성공한다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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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공대생들의 글쓰기 강의 모습. 빔 프로젝터를 통해 철저한 첨삭지도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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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이하고 재미없는 글이군요.”
강의를 맡은 김영재 박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빔 프로젝터로 벽에 쏜 글에는 밑줄과 함께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바뀐 부분이 유난히 많았다. 색깔이 화려한 것은 첨삭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과학에 관한 관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쓴 학생은 나름의 분석을 덧붙였다. “제 글의 문제점은 몇개 문장 단위로 조각이 나서 전체적인 글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점인 것 같습니다.”
5월3일 오후 1시 서울대 61동 교수학습개발센터 지하 1층. 이 대학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과 글쓰기’ 강의의 풍경이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글이지만, 우리말은 술어 중심의 글이죠.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우리글의 매끄러운 맛을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글의 전체적인 구도도 보면서 문장 하나하나도 지적해주는 방식이다.
대학국어 작문 위주로 바뀌고 있다
강의 이후 취재팀을 따로 만난 김 박사는 “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 절반 이상이 글쓰기 능력이 자신의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서 “그나마 학생 수가 적고 첨삭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하나 건넸다. 책 제목이 〈scientists must write〉였다. 외국 대학들에서 쓰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교과서였다. 서울대에는 아직 글쓰기 교과서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이다. 학교 당국은 신입생들이 교양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국어’ 과목을 기존의 읽기 위주에서 글쓰기 위주로 바꿨다. 실제로 글을 써보고 첨삭을 하는 방식이다. 대학 국어교육이 근본적인 대전환의 길로 접어든 것은 30년 만의 일이다.
‘글쓰기 교육의 강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강현배 부원장(수리과학부 교수)은 이런 변화에 대해 “박사나 석사 논문에도 비문을 쓸 정도로 글쓰기가 엉망이라면 학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며 “현재 약대가 필수로 바꾸고 있고 공대도 2007년부터 글쓰기 강의를 필수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와 글쓰기가 분리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 최근 대학들에서는 '글쓰기교실' 이나 '글쓰기 강좌' 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글쓰기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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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열풍은 다른 대학들에도 상륙한 지 오래다. 가톨릭대는 교양교육원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창우 교학부장(철학과 교수)은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 역량인 문제분석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할 언어능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며 “글쓰기는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기초능력을 키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맞춤법같이 기술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가장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대 이외에도 성균관대, 연세대, 숙명여대, 서원대, 서울시립대, 한림대 등이 글쓰기 교육 강화를 실천하고 있는 대학들이다. 영남대는 과학기술부 원자력 국장으로 재직하다 ‘대국민 공고문안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글쓰기 전문강사로 변신한 임재춘씨를 공대 객원교수로 초빙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임 교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라고 외치고 다니는 ‘글쓰기 전도사’가 됐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책까지 펴낸 그는 “이공계 출신들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하려면 글쓰기지수(WQ)가 높아야?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글쓰기가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노동인 글쓰기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화려한 빛을 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적 성공의 기준 또는 잣대의 하나로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가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체계적 글쓰기는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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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입사 과정에서 글쓰기를 요구하는 수준과 비율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언론사들에서는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토익시험처럼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과장 승진시험에서 논술시험을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 신기정 과장은 “종합사고능력을 평가하는 데 논술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면서 “시험 때마다 각 대학의 교수들한테서 복수의 시험문제를 받아 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 대학들이 논술을 본고사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한 직후부터는 또 다른 방향의 글쓰기 열풍이 불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 글쓰기의 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이라는 책을 준비해온 한미화씨는 “최근 출판계의 도드라진 흐름은 글을 맡길 수 있는 필자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생겨나 그 저변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점”이라며 “글쓰기의 전 분야에서 주체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쓰기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권력자들인 교수, 시인, 소설가 등이 힘을 잃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 글솜씨가 있는 이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라고 전제한 뒤 “인터넷이 일반화한 이후 역설적으로 글쓰기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메일에, 홈페이지에, 블로그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또는 쓰고 싶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글쓰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꼭 필요한 문화 유전자이자 문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글쓰기를 잘해야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대중과도 소통하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발언하는 것은 이제 전문가들에게 필수능력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더라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그의 글쓰기가 지닌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는 평범한 저술가로 머물렀을 것이고, 문화재 행정의 최고 사령탑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각각 30만부와 7만부라는 판매량을 기록한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이 성공한 뒤 두 책의 저자인 정재승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젊은 과학자에서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됐다. 글쓰기가 직업적 성공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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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가 대학 국어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와 서울대의 대학국어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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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애초부터 먼 것처럼 여겨지는 분야에서 글 잘 쓰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더욱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화가 김병종·한젬마·김점선씨 등과 이주헌·노성두·박영택씨 등은 미술 분야에서 꼽히는 글쓰기 전문가들이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책이 이름나 텔레비전에까지 진출한 경우다. 영화와 법 이야기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냈던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 문학을 하는 사람의 감성을 유지해 언론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 시사적 감수성과 대중적인 문체로 각광받는 차병직 변호사는 법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역사 분야의 치밀한 고증과 해석을 재담꾼의 수준으로 풀어내는 한홍구식 역사 글쓰기법 역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곳에 언급된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영역을 보여주되 그 고갱이에서부터 주변부까지 두루 보여주는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설득력과 소통력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지 않고, 그것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녹록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승헌 변호사는 “전문가들은 일부러 글쓰기에서 ‘구획 짓기’를 하기도 하는데 판사들의 글쓰기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문가의 글쓰기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통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봄이 와도 새는 울지 않는다”는 시적 표현으로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이 인류 최고의 생태학자는 아니지만, 그는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대한 생태학자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남쪽 비전향 장기수들의 감옥 안 역사는 우연히 동료 양심수가 된 소설가 김하기가 <완전한 만남>가 쓰지 않았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기록될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정리하고 생각을 기르는 데 글쓰기 지수를 높이는 것은 생활인의 필수덕목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글쓰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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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못 쓰는 이공계, 보따리 싸라
설득력 있는 글로 성공한 최재천 교수… “과학 분야일수록 쉽게 풀어 쓰는 고도의 능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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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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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 대중과 소통하기 → 사회적 발언력 확보하기’에 잇달아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5월4일 연구실에서 취재팀을 만난 최 교수는 “디지털이 아무리 새로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내용을 아날로그로 구상하고 채워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게 글쓰기로 통한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폈다.
그는 지난해 여성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동물들의 세계와 비교해가며 호주제의 비과학적 측면을 비판한 점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져 결국 호주제 폐지에 도움을 줬다는 게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요즘도 양성평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회적 발언력이 커졌다.
그는 “문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은희경, 김형경, 공지영 등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소설가들이 신간을 써낼 때마다 빠짐없이 책을 보내올 정도”라고 했다. 최 교수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인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2001)가 나온 뒤로는 ‘문학적 형상화 능력까지 갖춘 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과학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인문학적 토대와 함께 정확성·구체성을 추구하는 문장 스타일은 그의 글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글쓰기 능력을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글쓰기가 더 필요한 분야인데도 아직 사회적 편견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외국에는 자연과학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게 공식인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글 좀 쓴다고 하면 문과 가라고 하고, 못 쓴다고 하면 이공계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학 분야에 더 높은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쉽고 설득력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세계적인 과학 논문도 설득력 있게 쉽게 잘 써야 잘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드는 사례는 DNA 이중나선 이론을 만드는 데 함께했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경우다. “사실 크릭이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뛰어났지만,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해요. 그 사람이 쓴 <이중나선>이라는 책 때문이죠. 대중적이고 솔직담백하고 멋지고 후련한 책입니다. 과학자가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죠. 그것 때문에 왓슨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기록됩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죠.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은 또 어떻습니까.” 적어도 보여줄 게 있는 과학자 가운데 글을 잘 쓴 과학자들이 가장 유명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생들 중에도 “‘나는 글을 못 쓰니까 이공계 왔다’는 얘기를 하면 나는 당장 ‘보따리 싸라’고 호통친다”고 그는 전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그의 서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책이 많았다. 족히 수천권은 돼 보였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나 볼 법한, 바닥에 바퀴를 단 이중책장도 있었다. <법과 문학 사이> <담배와 문명> <다시 찾은 우리 역사>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등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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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기장을 탐하지 마라
글쓰기의 적들은 누구인가… 한줄짜리 댓글, 일률적인 논술시험, 일기장 검사
글쓰기 지수를 계량화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의 평균 점수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글을 쓰기보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열광하고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다는 한줄짜리 댓글에 더 열심인 젊은 세대를 봐도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은 ‘획일적인 글쓰기를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실시되는 논술시험이 대표적인 경우다. 논술 수준은 본질적으로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와 생각을 얼마나 깊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의 논술은 천편일률적으로 테크닉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현배 부원장은 논술시험을 채점한 경험을 털어놨다. “수백명의 글을 읽는데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의 글을 쓰는지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리고 그런 글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쓰기는 개성적인 생각을 자기 식대로 펼치는 데서 출발하는데, 적어도 현재의 논술 대비 공부는 그것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타계한 국어학자 고 이오덕 선생은 이 때문에 “글짓기를 할 생각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권위 권고 조처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일기장 검사’도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일기는 대표적인 자기성찰적 글인데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첫 경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중한 경험을 망쳐놓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일정한 분량을 몇번 반복해서 베껴쓰는 글쓰기 숙제도 생산적인 글쓰기를 망친다. 개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개입할 여지를 처음부터 막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글쓰기를 체질화하자는 취지의 교육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지난 5월6일 서울 청파동 한 주택가에서 취재팀이 확인한 가정방문형 글쓰기 수업의 경우 ‘생활 속 경험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이력서 쓰기를 수업 내용으로 삼아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이런 방식의 글쓰기 교육을 해온 ㅅ교육 관계자는 “아이들과 교사들보다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점수로 환산하지 못하는 글쓰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는 이런 시험문제가 나온다. 꿈은 필요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가 진짜 높아지려면 고등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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