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5/200505150336.html

소설가 이적 “음반낼 때보다 더 떨려”
그룹 ‘패닉’ 출신… 소설 첫 출간
이적 “짧은 곡 쓰다 장편 쓰려니 막막함이란…” 소설가 김영하 “가수라고 음악만 하란 법 없어”

“가수면 음악, 소설가면 문학 안에만 갇혀 있을 필요가 있나? 다른 장르와의 소통은 예술가에게 필수적이야.”(김영하)

“그래도 쑥스러워요. 글 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출판사와 계약한 지 3년6개월 만에 책이 나왔지 뭐예요.”(이적)

지난 95년 그룹 ‘패닉’으로 데뷔, 사회에 대한 날 선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가수 이적이 소설집을 냈다. ‘지문사냥꾼’(웅진 지식하우스). 자신의 홈페이지에 팬들을 위해 올렸던 ‘희한한 얘기’들을 모았을 뿐 ‘소설’이 아니라고 하는데, 표지부터 마지막장인 188쪽을 닫을 때까지 꽉 찬 문자열이 ‘아마추어’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다.

13일 밤, 그를 만나러 강남구 학동의 한 술집을 찾았더니, 그는 ‘검은 꽃’으로 작년 말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영하와 함께였다. 작년 여름, 이적이 진행하는 KBS 2FM 라디오 프로그램 ‘이적의 드림온’ DJ와 게스트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팬이자 친구. 김영하는 ‘지문사냥꾼’에 이적에 관한 짧은 글을 썼다. 소설, 음악, 문화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

▲ 13일 첫 소설집‘지문사냥꾼'을낸 가수 이적(오른쪽)이 인기 소설가 김영하와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은 이날 4시간 동안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정경렬기자
◆‘지문사냥꾼’

“한국 작가들이 잘 쓰지 않는 괴기·고딕 소설 계통이야. 모파상, 푸슈킨을 연상시키거든.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하하) 훌륭해. 노랫말도 산문적이고, 말하는 걸 들어봐도 책 많이 읽고 문자를 사랑하는 사람인 걸 느꼈는데 결국 사고 치는군.”(김)

“과찬이세요. 아이디어 하나로 짧은 글 쓰는 건 많이 해봤는데 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장편소설을 쓰는 분들의 막막함이란…. 음반을 내고 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는데,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는 무척 예민해져요.”(이)

“3~5분 분량의 짧은 곡을 쓰던 호흡은 나도 느껴지더군. 앞으로 인터넷 책 사이트에 올라오는 리뷰들의 갑론을박을 보면 꽤나 신경이 쓰일 거라고.”(김)

◆책과 음악의 미래는?

“원래 적씨가 쓴 글이 인터넷에 소개됐던 것들이잖아. 하지만 책으로 나오면 사람들 반응은 엄청 달라질 거야. 책은 블로그, 인터넷 홈페이지 이런 것들을 다 이겨낸 매체라고. 웹에서 떠다니는 글은 처음과 끝이 없어. 읽고 소화하기 힘들지. 하지만 책은 스스로 완결성이 있거든. 읽고 나면 포만감을 준다는 것도 책의 장점이지.”(김)

“맞아요. 음악도 인터넷 때문에 확실히 존재가치를 많이 잃어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에 엽서 보내고 돈 모아서 LP 사고 하는 게 하나의 ‘리추얼(Ritual)’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쉽잖아요. 그래서 애착도 줄어들고.”(이)

“그러게 음악의 시대가 가는 게 꼭 시의 시대가 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아.”(김)

◆담론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20대에게

“솔직히, 지금은 담론이 사라진 시대 아닌가? 문화적 황금기였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한꺼번에 나왔던 르네상스였어. 어느 분야든 작가들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담론화됐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김)

“그래요. 또, 그 시절 대학생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학생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신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고. 한번쯤 ‘이 판을 내가 한번 엎어보겠다’는 무모한 패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을 텐데.”(이)

(최승현기자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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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는 처음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유명한 책을 지은 양반이라고, 익히 들어만 왔다.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색기행,도 사서 읽을 엄두는 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우연히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서평단에 응모해서 읽게 되었다.

읽긴 다 읽었는데, 별 느낌이 없다.

유럽으로 반핵여행을 떠나다, 부터는 제법 재미있게 읽긴 했다. 인터뷰 형식도 괜찮았고 내용도 꽤 놀라웠고.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20여년전 일본 사람들만큼 나도 모르는게 많아서 아, 그렇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고도 남은 뉴욕에 가기 위해 헉헉대며 차 안에서도 책을 들고는 있었지만,

죽어가는 뉴욕을 돌아보고 나서는 아마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사색기행'이 아니라 '감성기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카시의 다른 책들도 다 그럴까?  꽤 단단해 보이는 그 양반,

지금의 나와는 좀 안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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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h21.hani.co.kr/section-021005000/2005/05/021005000200505110559136.html

글쓰기는 나의 힘!

디지털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글쓰기…대중적인 설득력 지녀야 성공한다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서울대 공대생들의 글쓰기 강의 모습. 빔 프로젝터를 통해 철저한 첨삭지도가 이뤄진다.

“지극히 평이하고 재미없는 글이군요.”
강의를 맡은 김영재 박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빔 프로젝터로 벽에 쏜 글에는 밑줄과 함께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바뀐 부분이 유난히 많았다. 색깔이 화려한 것은 첨삭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과학에 관한 관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쓴 학생은 나름의 분석을 덧붙였다. “제 글의 문제점은 몇개 문장 단위로 조각이 나서 전체적인 글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점인 것 같습니다.”

5월3일 오후 1시 서울대 61동 교수학습개발센터 지하 1층. 이 대학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과 글쓰기’ 강의의 풍경이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글이지만, 우리말은 술어 중심의 글이죠.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우리글의 매끄러운 맛을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글의 전체적인 구도도 보면서 문장 하나하나도 지적해주는 방식이다.

대학국어 작문 위주로 바뀌고 있다

강의 이후 취재팀을 따로 만난 김 박사는 “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 절반 이상이 글쓰기 능력이 자신의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서 “그나마 학생 수가 적고 첨삭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하나 건넸다. 책 제목이 〈scientists must write〉였다. 외국 대학들에서 쓰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교과서였다. 서울대에는 아직 글쓰기 교과서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이다. 학교 당국은 신입생들이 교양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국어’ 과목을 기존의 읽기 위주에서 글쓰기 위주로 바꿨다. 실제로 글을 써보고 첨삭을 하는 방식이다. 대학 국어교육이 근본적인 대전환의 길로 접어든 것은 30년 만의 일이다.

‘글쓰기 교육의 강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강현배 부원장(수리과학부 교수)은 이런 변화에 대해 “박사나 석사 논문에도 비문을 쓸 정도로 글쓰기가 엉망이라면 학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며 “현재 약대가 필수로 바꾸고 있고 공대도 2007년부터 글쓰기 강의를 필수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와 글쓰기가 분리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 최근 대학들에서는 '글쓰기교실' 이나 '글쓰기 강좌' 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글쓰기교실.

글쓰기 열풍은 다른 대학들에도 상륙한 지 오래다. 가톨릭대는 교양교육원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창우 교학부장(철학과 교수)은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 역량인 문제분석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할 언어능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며 “글쓰기는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기초능력을 키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맞춤법같이 기술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가장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대 이외에도 성균관대, 연세대, 숙명여대, 서원대, 서울시립대, 한림대 등이 글쓰기 교육 강화를 실천하고 있는 대학들이다. 영남대는 과학기술부 원자력 국장으로 재직하다 ‘대국민 공고문안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글쓰기 전문강사로 변신한 임재춘씨를 공대 객원교수로 초빙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임 교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라고 외치고 다니는 ‘글쓰기 전도사’가 됐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책까지 펴낸 그는 “이공계 출신들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하려면 글쓰기지수(WQ)가 높아야?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글쓰기가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노동인 글쓰기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화려한 빛을 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적 성공의 기준 또는 잣대의 하나로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가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체계적 글쓰기는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입시와 입사 과정에서 글쓰기를 요구하는 수준과 비율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언론사들에서는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토익시험처럼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과장 승진시험에서 논술시험을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 신기정 과장은 “종합사고능력을 평가하는 데 논술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면서 “시험 때마다 각 대학의 교수들한테서 복수의 시험문제를 받아 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 대학들이 논술을 본고사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한 직후부터는 또 다른 방향의 글쓰기 열풍이 불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 글쓰기의 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이라는 책을 준비해온 한미화씨는 “최근 출판계의 도드라진 흐름은 글을 맡길 수 있는 필자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생겨나 그 저변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점”이라며 “글쓰기의 전 분야에서 주체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쓰기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권력자들인 교수, 시인, 소설가 등이 힘을 잃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 글솜씨가 있는 이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라고 전제한 뒤 “인터넷이 일반화한 이후 역설적으로 글쓰기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메일에, 홈페이지에, 블로그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또는 쓰고 싶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글쓰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꼭 필요한 문화 유전자이자 문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글쓰기를 잘해야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대중과도 소통하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발언하는 것은 이제 전문가들에게 필수능력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더라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그의 글쓰기가 지닌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는 평범한 저술가로 머물렀을 것이고, 문화재 행정의 최고 사령탑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각각 30만부와 7만부라는 판매량을 기록한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이 성공한 뒤 두 책의 저자인 정재승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젊은 과학자에서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됐다. 글쓰기가 직업적 성공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질주


△ 글쓰기가 대학 국어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와 서울대의 대학국어 교재.

글쓰기와 애초부터 먼 것처럼 여겨지는 분야에서 글 잘 쓰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더욱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화가 김병종·한젬마·김점선씨 등과 이주헌·노성두·박영택씨 등은 미술 분야에서 꼽히는 글쓰기 전문가들이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책이 이름나 텔레비전에까지 진출한 경우다. 영화와 법 이야기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냈던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 문학을 하는 사람의 감성을 유지해 언론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 시사적 감수성과 대중적인 문체로 각광받는 차병직 변호사는 법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역사 분야의 치밀한 고증과 해석을 재담꾼의 수준으로 풀어내는 한홍구식 역사 글쓰기법 역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곳에 언급된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영역을 보여주되 그 고갱이에서부터 주변부까지 두루 보여주는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설득력과 소통력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지 않고, 그것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녹록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승헌 변호사는 “전문가들은 일부러 글쓰기에서 ‘구획 짓기’를 하기도 하는데 판사들의 글쓰기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문가의 글쓰기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통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봄이 와도 새는 울지 않는다”는 시적 표현으로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이 인류 최고의 생태학자는 아니지만, 그는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대한 생태학자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남쪽 비전향 장기수들의 감옥 안 역사는 우연히 동료 양심수가 된 소설가 김하기가 <완전한 만남>가 쓰지 않았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기록될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정리하고 생각을 기르는 데 글쓰기 지수를 높이는 것은 생활인의 필수덕목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글쓰기 시대다.


글 못 쓰는 이공계, 보따리 싸라

설득력 있는 글로 성공한 최재천 교수… “과학 분야일수록 쉽게 풀어 쓰는 고도의 능력 필요”


△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 대중과 소통하기 → 사회적 발언력 확보하기’에 잇달아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5월4일 연구실에서 취재팀을 만난 최 교수는 “디지털이 아무리 새로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내용을 아날로그로 구상하고 채워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게 글쓰기로 통한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폈다.

그는 지난해 여성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동물들의 세계와 비교해가며 호주제의 비과학적 측면을 비판한 점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져 결국 호주제 폐지에 도움을 줬다는 게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요즘도 양성평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회적 발언력이 커졌다.

그는 “문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은희경, 김형경, 공지영 등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소설가들이 신간을 써낼 때마다 빠짐없이 책을 보내올 정도”라고 했다. 최 교수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인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2001)가 나온 뒤로는 ‘문학적 형상화 능력까지 갖춘 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과학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인문학적 토대와 함께 정확성·구체성을 추구하는 문장 스타일은 그의 글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글쓰기 능력을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글쓰기가 더 필요한 분야인데도 아직 사회적 편견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외국에는 자연과학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게 공식인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글 좀 쓴다고 하면 문과 가라고 하고, 못 쓴다고 하면 이공계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학 분야에 더 높은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쉽고 설득력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세계적인 과학 논문도 설득력 있게 쉽게 잘 써야 잘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드는 사례는 DNA 이중나선 이론을 만드는 데 함께했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경우다. “사실 크릭이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뛰어났지만,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해요. 그 사람이 쓴 <이중나선>이라는 책 때문이죠. 대중적이고 솔직담백하고 멋지고 후련한 책입니다. 과학자가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죠. 그것 때문에 왓슨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기록됩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죠.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은 또 어떻습니까.” 적어도 보여줄 게 있는 과학자 가운데 글을 잘 쓴 과학자들이 가장 유명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생들 중에도 “‘나는 글을 못 쓰니까 이공계 왔다’는 얘기를 하면 나는 당장 ‘보따리 싸라’고 호통친다”고 그는 전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그의 서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책이 많았다. 족히 수천권은 돼 보였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나 볼 법한, 바닥에 바퀴를 단 이중책장도 있었다. <법과 문학 사이> <담배와 문명> <다시 찾은 우리 역사>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등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기장을 탐하지 마라

글쓰기의 적들은 누구인가… 한줄짜리 댓글, 일률적인 논술시험, 일기장 검사


글쓰기 지수를 계량화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의 평균 점수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글을 쓰기보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열광하고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다는 한줄짜리 댓글에 더 열심인 젊은 세대를 봐도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은 ‘획일적인 글쓰기를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실시되는 논술시험이 대표적인 경우다. 논술 수준은 본질적으로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와 생각을 얼마나 깊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의 논술은 천편일률적으로 테크닉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현배 부원장은 논술시험을 채점한 경험을 털어놨다. “수백명의 글을 읽는데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의 글을 쓰는지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리고 그런 글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쓰기는 개성적인 생각을 자기 식대로 펼치는 데서 출발하는데, 적어도 현재의 논술 대비 공부는 그것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타계한 국어학자 고 이오덕 선생은 이 때문에 “글짓기를 할 생각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권위 권고 조처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일기장 검사’도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일기는 대표적인 자기성찰적 글인데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첫 경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중한 경험을 망쳐놓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일정한 분량을 몇번 반복해서 베껴쓰는 글쓰기 숙제도 생산적인 글쓰기를 망친다. 개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개입할 여지를 처음부터 막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글쓰기를 체질화하자는 취지의 교육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지난 5월6일 서울 청파동 한 주택가에서 취재팀이 확인한 가정방문형 글쓰기 수업의 경우 ‘생활 속 경험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이력서 쓰기를 수업 내용으로 삼아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이런 방식의 글쓰기 교육을 해온 ㅅ교육 관계자는 “아이들과 교사들보다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점수로 환산하지 못하는 글쓰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는 이런 시험문제가 나온다. 꿈은 필요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가 진짜 높아지려면 고등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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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강 1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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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꽤 멋져 보이는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있는 흠은 전기작가가 가리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과학자들 덕분에 나는 지금 막 진짜 연구자가 되려는 참이다. 물론 나는 성격적으로도 문제투성이인대다가 실패가 닥쳐올 때는 그냥 넘어지는 게 일인, 좋게 말하면 ‘생화학자로는 3류, 생물리학자로는 6류’쯤 되는 인간이 되었다.

David Bodanis는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전기의 원리와 씀씀이를 쉽게 설명하려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겠지만 어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기보다 사람에 관심이 갔다. 쓸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주파수로 성을 남기고 간 하인리히 헤르츠의 초반부 일기는 마치 내가 쓴 것 같다! ‘우울, 어느 하나 잘 되는게 없음’ 이라든지, ‘올해가 끝나서 다행임. 내년은 제발 올해 같은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음.’ 이라니. 100여년 전에도 이런 인간이 있었다. 넘어지는 건 너만이 아니야. 헤르츠씨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조금 더 슬프다. 지적이고 사회에 어울릴 수 없는 동성애 취향의 최초의 컴퓨터 고안자는 정말 슬프게 인생을 마쳤다. 전쟁 중에 암호를 풀거나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했을 때는 행복했을 거라고, 나는 애써 생각해 본다. 튜링이 나에게 주는 말은 조금 더 진지하다. “고립된 인간은 지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사람은 타인들이 가득한 환경에 몸을 담는 경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인생의 처음 이십 년간 그는 그들의 기술을 전수 받아야 한다. 그 뒤에야 자신만의 연구를 조금이나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P.295)

세계대전 중의 레이더 개발과 실리콘 밸리의 태동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인간의 능력이 놀랍고 기술이 일으킨 새로운 물결이 놀랍다. 잘 읽히고 재미있으며 연구자를 미화하지 않는 점이 좋은 책이다.

 

오자 탈자 지적.

더 읽을 거리에 책이 출판된 곳, 출판사, 년도 표시가 어색한 점이 있다. NJ와 MA는 뉴저지, 메사추세츠 주를 말하는 것일텐데 국내 독자가 쉽게 알지 모르겠다. 케임브리지는, 케임브리지, 캠브리지가 섞여 쓰이고 있고 347쪽에는 케임브리니,라고 잘못 표기된 곳이 있다. 옥스포드, 케임브리지의 경우는 영국이 병기되었으나 런던의 경우는 아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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