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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꽤 멋져 보이는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있는 흠은 전기작가가 가리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과학자들 덕분에 나는 지금 막 진짜 연구자가 되려는 참이다. 물론 나는 성격적으로도 문제투성이인대다가 실패가 닥쳐올 때는 그냥 넘어지는 게 일인, 좋게 말하면 ‘생화학자로는 3류, 생물리학자로는 6류’쯤 되는 인간이 되었다.
David Bodanis는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전기의 원리와 씀씀이를 쉽게 설명하려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겠지만 어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기보다 사람에 관심이 갔다. 쓸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주파수로 성을 남기고 간 하인리히 헤르츠의 초반부 일기는 마치 내가 쓴 것 같다! ‘우울, 어느 하나 잘 되는게 없음’ 이라든지, ‘올해가 끝나서 다행임. 내년은 제발 올해 같은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음.’ 이라니. 100여년 전에도 이런 인간이 있었다. 넘어지는 건 너만이 아니야. 헤르츠씨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조금 더 슬프다. 지적이고 사회에 어울릴 수 없는 동성애 취향의 최초의 컴퓨터 고안자는 정말 슬프게 인생을 마쳤다. 전쟁 중에 암호를 풀거나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했을 때는 행복했을 거라고, 나는 애써 생각해 본다. 튜링이 나에게 주는 말은 조금 더 진지하다. “고립된 인간은 지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사람은 타인들이 가득한 환경에 몸을 담는 경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인생의 처음 이십 년간 그는 그들의 기술을 전수 받아야 한다. 그 뒤에야 자신만의 연구를 조금이나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P.295)
세계대전 중의 레이더 개발과 실리콘 밸리의 태동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인간의 능력이 놀랍고 기술이 일으킨 새로운 물결이 놀랍다. 잘 읽히고 재미있으며 연구자를 미화하지 않는 점이 좋은 책이다.
오자 탈자 지적.
더 읽을 거리에 책이 출판된 곳, 출판사, 년도 표시가 어색한 점이 있다. NJ와 MA는 뉴저지, 메사추세츠 주를 말하는 것일텐데 국내 독자가 쉽게 알지 모르겠다. 케임브리지는, 케임브리지, 캠브리지가 섞여 쓰이고 있고 347쪽에는 케임브리니,라고 잘못 표기된 곳이 있다. 옥스포드, 케임브리지의 경우는 영국이 병기되었으나 런던의 경우는 아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