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5/200505150336.html

소설가 이적 “음반낼 때보다 더 떨려”
그룹 ‘패닉’ 출신… 소설 첫 출간
이적 “짧은 곡 쓰다 장편 쓰려니 막막함이란…” 소설가 김영하 “가수라고 음악만 하란 법 없어”

“가수면 음악, 소설가면 문학 안에만 갇혀 있을 필요가 있나? 다른 장르와의 소통은 예술가에게 필수적이야.”(김영하)

“그래도 쑥스러워요. 글 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출판사와 계약한 지 3년6개월 만에 책이 나왔지 뭐예요.”(이적)

지난 95년 그룹 ‘패닉’으로 데뷔, 사회에 대한 날 선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가수 이적이 소설집을 냈다. ‘지문사냥꾼’(웅진 지식하우스). 자신의 홈페이지에 팬들을 위해 올렸던 ‘희한한 얘기’들을 모았을 뿐 ‘소설’이 아니라고 하는데, 표지부터 마지막장인 188쪽을 닫을 때까지 꽉 찬 문자열이 ‘아마추어’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다.

13일 밤, 그를 만나러 강남구 학동의 한 술집을 찾았더니, 그는 ‘검은 꽃’으로 작년 말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영하와 함께였다. 작년 여름, 이적이 진행하는 KBS 2FM 라디오 프로그램 ‘이적의 드림온’ DJ와 게스트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팬이자 친구. 김영하는 ‘지문사냥꾼’에 이적에 관한 짧은 글을 썼다. 소설, 음악, 문화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

▲ 13일 첫 소설집‘지문사냥꾼'을낸 가수 이적(오른쪽)이 인기 소설가 김영하와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은 이날 4시간 동안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정경렬기자
◆‘지문사냥꾼’

“한국 작가들이 잘 쓰지 않는 괴기·고딕 소설 계통이야. 모파상, 푸슈킨을 연상시키거든.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하하) 훌륭해. 노랫말도 산문적이고, 말하는 걸 들어봐도 책 많이 읽고 문자를 사랑하는 사람인 걸 느꼈는데 결국 사고 치는군.”(김)

“과찬이세요. 아이디어 하나로 짧은 글 쓰는 건 많이 해봤는데 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장편소설을 쓰는 분들의 막막함이란…. 음반을 내고 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는데,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는 무척 예민해져요.”(이)

“3~5분 분량의 짧은 곡을 쓰던 호흡은 나도 느껴지더군. 앞으로 인터넷 책 사이트에 올라오는 리뷰들의 갑론을박을 보면 꽤나 신경이 쓰일 거라고.”(김)

◆책과 음악의 미래는?

“원래 적씨가 쓴 글이 인터넷에 소개됐던 것들이잖아. 하지만 책으로 나오면 사람들 반응은 엄청 달라질 거야. 책은 블로그, 인터넷 홈페이지 이런 것들을 다 이겨낸 매체라고. 웹에서 떠다니는 글은 처음과 끝이 없어. 읽고 소화하기 힘들지. 하지만 책은 스스로 완결성이 있거든. 읽고 나면 포만감을 준다는 것도 책의 장점이지.”(김)

“맞아요. 음악도 인터넷 때문에 확실히 존재가치를 많이 잃어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에 엽서 보내고 돈 모아서 LP 사고 하는 게 하나의 ‘리추얼(Ritual)’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쉽잖아요. 그래서 애착도 줄어들고.”(이)

“그러게 음악의 시대가 가는 게 꼭 시의 시대가 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아.”(김)

◆담론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20대에게

“솔직히, 지금은 담론이 사라진 시대 아닌가? 문화적 황금기였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한꺼번에 나왔던 르네상스였어. 어느 분야든 작가들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담론화됐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김)

“그래요. 또, 그 시절 대학생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학생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신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고. 한번쯤 ‘이 판을 내가 한번 엎어보겠다’는 무모한 패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을 텐데.”(이)

(최승현기자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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