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가 곧 개봉된다고 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는 보기 힘든 영화일 것임에는 틀림없다(<박하사탕>이나 <똥파리>가 그랬듯이).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라는 점에서 <도가니>는 다른 두 영화와 비슷하지만, 다른 종류의 생각을 하나 더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는 저런 류의 범죄에 왜 그토록 관대한가, 하는 것이다. 막가파와 인신매매가 극성이던 90년대 초 막가파 체포 장면이 TV뉴스에 나왔을 때 우리 윗집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런 놈들은 그냥 죽여도 안되고 TV에서 공개로 거시기를 잘라버려야 돼!" 나는 그건 너무 약해, 라고 생각했다. <도가니>의 범죄자들에 대해서 사형폐지론자들은 또 어떤 변호를 할까?   

작년인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20세기초 중국의 '능지처참'형 사진을 보고 상당히 오랜 기간 악몽에 시달렸다. 아- 차라리 참수형이 자비롭다고 생각될만큼 무지막지한 형벌의 잔혹함 때문이었는데... 과연 어떠한 죄를 저질러야 저런 형벌을 내렸을까. 최근에 읽은 <현장 서유기>에 7세기 당나라에서 누군가 능지처참형에 처해진 부분을 읽었는데, 뭣때문이었지 잊어버렸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기억나는데 상당한 중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때로 능지처참보다 더 참기힘든 범죄를 접하게 된다... 범죄자는 또 다른 범죄의 희생자일 경우가 많다는 범죄심리적 분석도 있지만, 한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죄의 수위와 처벌의 강도에도 납득할만한 여지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일례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면 같은 것은 정치적 의도는 이해하지만 참 납득하기 힘들었다.

* 심장이 약한 분은 동영상을 클릭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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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과 레이 황의 중국사 이야기

요즘 중국을 보면 저 나라가 공산당 나라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경제 제도에 자본주의의 요소들를 파격적으로 도입하고도 공산당은 엄연히 존재하고 평범한 서민의 집 벽에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있는 현상은 참 묘하다. 

러시아의 초기사회주의자들은 농노를 해방시킨 짜리를 암살했다. 러시아는 혁명초기에 마지막 황제의 가족을 총살시키고 암매장했다. 마지막 황후의 언니는 산 채로 우물에 던져졌다. 새 러시아에서 마지막 황제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공산중국에서 끊임없는 자아비판에 시달렸지만 자신이 살던 자금성의 마당을 쓰는 직업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다. 매우 상징적이다.

러시아에는 없고 중국에는 있는 것, 그것은 뭘까. 

중국 정치인들을 보면 언제나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를 잘 한다.  

 

* 원자바오의 업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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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르세니예프의 생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이희원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판매중지


끊임없는 시도 긑에 알렉산드르 2세가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아 사람들 마음과 정신 속에 신비로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황제에게 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 대해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이 예전에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는 지금조차 상상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할 때 역시 신비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말 속에는 엄청난 치욕과 끔찍함이 담겨 있거나, 모든 흉악함을 아우르는 개념이 담겨 있었다. 로가체프 형제와 수보친 처녀들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우리 지방에까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우리 집은 마치 마을에 역병이나 성경에 나오는 문둥병이 들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경악에 사로잡혔다. -136-137쪽

아아, 축제에 대한 러시아의 이 요구는 얼마나 끝없고 영원한가! 우리는 얼마나 예민한지, 얼마나 삶의 환희를, 단지 만족감이 아니라 바로 환희를 강망하는지, 끊임없는 취기와 폭음에 얼마나 매료되는지, 규칙적으로 계획된 노동은 얼마나 따분한지! 러시아은 내 세대에 이례적으로 풍요롭고 활기찬 삶을 살았고, 건강하고 건장한 노동자들의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하지만 정말로 우유가 흐르는 강과 끝없는 자유와 축제를 바라는 오랜 열망들이 러시아 혁명전신의 진짜 근원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러시아 개신교도, 반란자들, 혁망가들은, 사리분별과 상황판단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동은 가시적이지 않다며 추호도 감내하려 들지 않는 그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주지사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잘것없는 기여를 하는 것으로 말인가! 말도 안 된다! '마차를 줘, 내게 마차를 달라구!"-139-140쪽

"그래,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돼. 설령 바투리노에 집이 열 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을 거야. 심지어 톨스토이도 젊은 시절에는 그 무엇보다 결혼이나 가족, 가정살림에 대해 꿈꿨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지금은 모두가 '민중의 이익을 위한 사업'에 대해, '민중 앞에 진 빚을 갚자...'고 외치고들 있지. 하지만 나는 민중 앞에 그 어떠한 부채의식을 느낀 적이 없고 느끼지도 않아. 민중을 위한 그 어떤 희생도, 그들을 위한 '봉사'도, 지방의회의 정당에서 아버지가 말하듯, 그 어떤 배역도 나는 할 수 없고 원하지도 않아... 그래, 이제 드리어 무엇이든 결정을 해야만 해!"-271쪽

러시아의 과거의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믿음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단체에는 물론, 혁명성의 수준과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적'에 대한 증오심의 정도에 따라서뿐만 아니라, 외형적이고 내면적인 모든 면모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전반적으로 도량이 좁았고 직선적으로 참을성이 없었고,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을 선전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들과 '핍박받고 멸시받는' 이들만을 사람으로 취급했고, 모든 악은 오른쪽이고 모든 선은 왼쪽이라고 보았다. 또한 밝은 미래는 모두 민중 속에, 민중의 '기반과 희망' 속에 있으며, 모든 불행은 통치형태를 띠는 모든 것에 있으며, 아예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취급하던 악독한 통치자에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모든 구원은 혁명에, 헌법과 공화국 건설에 있다고 했다...-285쪽

소년 소녀들에게는 정치 경제서적을 읽으라고 주면서, 정작 그들은 코롤렌코, 즐라토브라츠키를 읽었고, 체호프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경멸하고, 톨스토이는 '가장 극악하고 해롭게 무위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또 그가 '장난감을 조르는 아이처럼 언제나 신에게 구걸'한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에 의하면 톨스토이는 농부나 제화공 노릇을 흉내 내면서,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척하는 야스나야 폴랴나의 농부는 '굶주림에 얼굴이 부어 있는데', 자신은 '사치스런' 식탁에 앉는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해서 그들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287쪽

무슨 일에서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데가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들의 논리대로 정당하게 '배신자'로 낙인찍었으며, 누구든 '중용과 신중함'을 말하면 끊임없이 비난했다. -288쪽

그러니까 자네는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말하자면 '이 속세'의 평범한 행복은 찾지 않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예를 덜어 나는 민중에 전혀 열광하지 않는다네. 민중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민중이 모든 지혜의 원천이자 근원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고, 또 내가 민중과 함께 땅의 권리를 주자해야만 한다고도 믿지 않는다네. 하지만 어쨌거나, 정말로 우리가 민중에 대해 아무런 의무도 없고 해줘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자네를 가르치고자 할 마음은 전혀 없네.-352쪽

아침식사 무렵에는 유모가 소년과 함께 산책에서 돌아왔다. 아빌로바는 현관으로 달려 나가 기쁘게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들의 흰 양털 모자를 벗겨주고 진청색 양털 코트를 벗겨주며 차갑고 빨개진 자그만 얼굴에 입을 맞추어댔다. 하지만 소년은 무심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며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그녀가 옷을 벗시고 키스하는 것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는 내 자신을 느끼곤 했다. 소년의 행복하고도 무의미한 생각을, 어머니로서의 아빌로바의 행복을, 유모의 노년의 평온을. 이른바 글을 쓴다고 하는 그 가장 두려운 인간적 작업을 위해 무언가를 고안해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된 일과 배려로 삶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나는 이제 부러워하게 되었다. 또한 삶에서 단순하고 정확하며 정해진 일들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래서 오늘 그것을 다 수행하면 내일까지는 완전히 평화롭고 자유로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부러워했다.-393-394쪽

써야 한다! 지붕, 덧신 그리고 사람의 등에 대해서 써야 한다. '횡포와 폭력에 맞서 싸우고, 억압당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선명한 인물을 제시하고, 공동체와 현대, 그리고 현대의 분위기와 흐름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혀 아니다. ... 삶은 끔찍하다! 그러나 '끔찍하다'는 말이 정확한 것일까? 어쩌면 삶은 '끔찍함'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며칠 전에도 나는 그런 부랑자에게 오 코페이카를 집어준 적이 있었고, 순진하게 외쳤다.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어쨌거나 끔찍하다!" 하지만 내 어리석음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한 경멸과 단호함과 증오심을 담아 그는 내게 목쉰 소리로 소리쳐 대답했다. "끔찍할 것 하나 없어, 젊은이!"-398-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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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황망하다. 오비이락이라고 오세훈 날아가자 곽노현 떨구기가 시작된 것부터 눈살이 찌뿌려지고 박민기 교수 변호를 맡은 법률회사가 무슨 일인가로 '유명'한 회사라는 것도 그렇고... 줘도 도덕성 운운하며 욕먹고, 안 줬어도 도리 운운하며 욕먹게 하는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내가 궁금한 건 저 상황에서 승자가 패자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가 과연 없느냐는 거다. 

향후 안철수 교수의 진로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나는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때 합법적으로 기백 억대에 달하는 선거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합의의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총명한 머리들이 힘을 합해주면 좋겠다.  

* 안철수의 '레드카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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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1-09-1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호 소장 글을 sati님 서재에서 몇 번 보았는데, 저는 이 글도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