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전문 번역가  

2) 부족한 시간 

3) 열악한 보수   

4) 역자의 게으름과 비양심

* 1), 2), 3)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오역이 나온다면 굳이 4)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충족되었는데 오역이 나온다면 4)일 수밖에 없으므로 번역자를 '인민재판'에 넘기거나 치매로 인정하여 은퇴시켜도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재호의 이윤기 비판에 대한 정혜용의 평가(번역비평 창간호 2007 가을, 27쪽)는 이중적이다. 정혜용은 "이재호가 지적하고 있는 이윤기의 오역 사례들 중 상당수가 사전만 잠깐 들춰 봤어도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 번역계를 대표한다는 번역자가 게으른 손이 저지른 불성실을 타고난 글재주로 때우려고 든 것에 대한 분노 섞인 실망감과, 번역자 개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듯한 번역비평가의 비이성적 비평방식에 대한 절망감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번역계 전반에 대해 만정이 떨어지고 만다"고 실토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번역비평을 본 후 번역계 전반에 만정이 떨어졌다고 말한다면 그 번역비평을 쓴, 성마를지 모르지만 정직한, 노학자를 비하하는 것인가, 비하하지 않는 것인가.  

** 이재호의 <문화의 오역> 리뷰 중에서 '노교수의 분노'가 참 잘 쓴 글같다.   

(http://arina.tistory.com/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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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이 나머지 이유를 모두 커버하는 듯 한데요 --;;

Sati 2009-02-03 16:03   좋아요 0 | URL
시간도 중요하죠... 사전과 관련자료를 참조할 시간이 없다면 제대로 번역할 수 없는 건 당연하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2-03 21:37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가벼운 목숨 (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5090.html#)

 

며칠 전 이스라엘은 그동안의 무자비한 가자 폭격 끝에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했다. 길이 640킬로미터, 높이 8미터의 분리장벽에 둘러싸인 이 세계 최대의 감옥에서 휴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린탄 고문을 잠시 중지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아녀자와 노인만 남은 일가족 사살을 잠시 연기하겠다는 뜻인가? 75만명분의 식량으로 하루에 겨우 트럭 4대만 허용했던 종전의 ‘인도적’ 배식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인가? 수도도 전기도 가스도 의약품도 모두 끊긴 뒤, 수감자의 절반 이상이 아이들인 이 감옥에 휴전이 선포된다고 해서 이들의 절망까지도 정말로 잠시 멈추게 될 것인가? 
 

이스라엘의 건립을 약속한 밸푸어 선언 후 1937년 처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개가 오랫동안 여물통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 여물통의 최종 권리가 개에게 있다는 생각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1969년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부터 그 땅에 없었다고 했고, 베긴 총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두 발 달린 짐승들”로, 샤미르 총리는 “벽에 뭉개야 할 메뚜기들”이라고 불렀다. 곤충이나 짐승들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오랜 점령과 봉쇄, 상습적인 폭격으로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들 정치가들의 말대로 되었다. 그들은 개처럼 쫓겨나 메뚜기처럼 몰살되었다. 흰 깃발을 흔들며 집에서 뛰쳐나오는 민간인들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은 총질을 하고, 유엔 깃발이 휘날리는 보호구역에 이스라엘 폭격기는 폭격을 했다. 아버지는 한줌 무게도 안 되는 아이의 주검을 들고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고, 아이는 쥐의 먹잇감이 된 어머니의 주검 곁에서 울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백린가루에 온몸이 타들어간 아이들은 마치 장난으로 앞다리, 뒷다리가 부러진 메뚜기처럼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곤충이나 짐승들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만큼 소박한 일상과 평화로운 잠자리를 갈망했으나 비정하게 봉쇄당한 채 자기 땅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국에서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이후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는 존 버저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과 절망에 귀를 기울였다. 노구를 이끌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던 그는 검문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검문소에서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손을 머리에 얹고 발을 내디딜 다음 자리를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 정확하게 계산된 보폭으로 자기들을 향한 총구 앞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서두르면 의심을 사게 되고, 너무 쭈뼛거리면 초병들의 오랜 지루함을 덜어줄 게임을 자극하게 될 테니까.” 점령이란 이런 것이다. 하루하루 짐승처럼 취급되고, 언제든 강제로 게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언제 집이 무너질지, 언제 아이들이 죽을지, 언제 빵을 구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절망만 있을 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 내일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버저는 팔레스타인의 민족시인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무덤을 둘러보고 유럽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한 일을 목격한다. 알프스 자락이 눈보라에 휘감기자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로빈새 한 마리가 그만 자동차 유리창에 부딪힌 것이다. 그는 아직 살아 퍼덕이는 로빈새를 손 위에 올려놓고 살펴본 뒤 다시 자동차에 올라탔고, 그 후 약 반 시간 뒤 새는 죽었다. 죽은 새를 다시 손바닥에 올렸을 때 그는 신비롭게도 새의 무게가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마치 살아 있을 때의 생기가, 혹은 살려는 몸부림의 무게가 몸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새는 가벼워져 있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망은 그처럼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생기는 내일이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그 무게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약속할 수 없을 때, 어디에서도 하루를 보장할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없을 때 절망은 삶의 방향감각을 잃은 이들의 영혼에서 살려는 몸부림의 무게를 덜어내게 된다.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어딘지 성자의 눈빛을 띠게 되고, 결국 자라서 성전에 몸을 던지는 자살테러리스트들이 된다. 그래서 테러리즘은 가난한 자들의 전쟁이고, 전쟁은 부자들의 테러리즘인 것이다.

절망은 어떻게 멈출 수 있는가? 존 버저는 이미 2006년에 〈우리는 발언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전세계 작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 운동을 제창했다. 60년 넘게 서안과 가자지구를 불법적으로 점령해온 이스라엘에 대해, 사람을 짐승으로 몰고 가는 중동의 잔혹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입을 열자고 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초청을 하면 거부의사를 밝히고, 이스라엘의 부도덕성에 대해 글을 쓰자는 주장에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 켄 로치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아이들이 내일을 기다릴 권리까지 빼앗음으로써 팔레스타인을 세계 최대의 무덤으로 만든 이스라엘에 대해 또렷하고 우렁차게 저항의 말을 쏟아냈다. 작가들이 저항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약자들의 삶에는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은 짐승의 말을 하지만 작가들은 심장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존 버저가 사랑한 팔레스타인의 시인 다르위시는 이렇게 읊었다. “내 말이 밀알일 때/ 나는 대지가 되고,/ 내 말이 분노일 때/ 나는 폭풍이 된다./ 내 말이 바위일 때/ 나는 강물이 되고,/ 내 말이 꿀로 변할 때/ 내 입은 파리 떼로 덮이게 된다.”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 한편 며칠전 모스크바에서는 이스라엘 지지 시위가 있었다. 링크된 블로그의 댓글을 보면, 99% 이스라엘 지지자로... 역시 러시아에 유대인이 많기는 많은가 보다.  

(http://drugoi.livejournal.com/2838023.html?thread=183183623#t18318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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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이념의 광우병으로 뇌송송 구멍탁! 반신불수 되다 
 - 신자유주의 프레임 자체를 버려라

심상정, 제발 오바(over)마!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가 (획기적인 변화와 개혁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오바마 당선자가 그 소리를 듣는다면 '버락' 화를 내며 '오바(over)'마!"라고 할 것이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런데  자칭 진보 개혁을 표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동관 보다 훨씬 심한 '오바'를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미국의 금융위기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면서, "한미FTA 훈수가 아닌 '고해성사'"를 요구한 것은 오바 중의 오바라고 할 수 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심상정은 노무현에게 "내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은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 국민 여러분들께 사죄드린다"는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심상정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미FTA를 결사 반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한 것은 나의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과 한미FTA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면서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0~9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간혹 돌출하는, 민족/민주/민중 운동의 과격한 행위를 빌미로, 사건과 상관이 있건 없건 그 조직과 가치들을 용공이라면서(공산주의를 닮았다면서) 싸잡아 탄압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심상정 비롯한 적지 않은 진보 좌파들이 미국 금융위기와 오바마 당선을 계기로 인과관계나 상관성을 찬찬히 따져보지도 않고, 참여정부가 추구해 온 가치가 신자유주의를 닮았다면서 고해성사와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심상정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했던 무모함을, 금융자유화를 제도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하고 "구국의 심정으로 한미FTA는 역사적 오류였다고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라고 한다.

 

이는 침소봉대, 거두절미, 인과무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수법으로 '용공(공산주의)'조작을 당할 때의 경험을 살려서, 비슷한 방식으로 '용신(신자유주의)'조작을 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용신'조작의 결론은 금융허브 전략과 한미FTA협상의 폐기이다. 이로써 시장의 자리에 정부를, 자유의 자리에 규제를, 민영화의 자리에 큰 공공부문을, 선진적 금융기법의 자리에 박정희식(좋게 보면 1960년대 독일.일본식) 금융통제를 앉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이것이 성공한다면 주관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시장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명백한 실패 국가를 만든 조선노동당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사상이념적 광우병은 반신자유주의 프레임

 

심상정의 헛소리 내지 헛발질을 연출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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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착각과 무지다. 대표적으로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한국의 과잉 충격의 원인에 대한 무지와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무지이다. 결정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이다.(그런데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한국의 과잉 충격 문제는 논지 전개상 꽤 필요하지만 너무 길어서 독자들이 지칠 것 같아서 글(2)로 떼어냈다.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05)

 

둘째는 미국과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국과 개방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심리라고도 할 수 도 있다. 이는 미국과 개방의 의미를 몰라서만이 아니다. 과거의 혹독한 체험의 잔상이 많이 남아 현재 바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불에 한번 데인 아이가 한 동안 불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는 미국처럼 쎈놈과 협상하면 우리가 무조건 당하며, 미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장벽을 낮추어도 우리가 무조건 당한다는 예단으로 나타난다. 심상정은 한미FTA를 '미국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불평등협정'이며 '미국의 법과 제도를 일방적으로 이식'하는 계기라고 본다.

 

자동차 관련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망한다고 본다. 이는 과거 한국을 미국의 '괴뢰'나 '식민지(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나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인식하던 사고의 관성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심리적 장애가 있기에 심상정이 자신은 무조건적인 개방 반대론자가 아니라고 해도 감성은 이를 거부하게 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찬성할 개방이나 FTA협상은 별로 없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는 규제완화, 민영화, 정부의 규모나 권능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주된 지지층의 이해관계이다. 사실 나는 한때 반신자유주의 기치아래 시장주의, 자유주의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업, 교육, 재정, 보건의료복지, 공공부문 등 바닥현실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는데,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물질적 이익(이해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는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참여정부 류가 주타격 방향이기 때문이다. 즉 심상정과 그 일파들에게는 참여정부 추종(?) 대중들은 전취해야 할 대상이기에 지금은 참여정부의 반동성과 후진성을 폭로, 고립시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과 참여정부와 철학, 가치, 정책을 공유하는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세뇌되어 한국의 대외의존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존재들이 맞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지층들이 그 본질을 모르고 추종한다면 노무현과 참여정부류를 줄기차게 공격, 폭로, 고립시켜서 그 지지층들을 전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심상정 류의 반동성과 후진성이 폭로되어 그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위에서 말한 헛발질의 세 요소를 인류 역사상 최고(最高, 最古)의 심리학 이론인 불교식으로 정리하면, 첫째는 무지, 어리석음=치(癡)이고, 둘째는 증오심, 분노=진(嗔)이고, 셋째는 이해관계, 탐욕=탐(貪)이다. 불교에서 탐. 진. 치 삼독을 떨쳐내면 열반에 든다고 하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삼독에 너무 쩔어 있으면 곤란하다. 심상정 등 상당수 진보 좌파는 삼독에 쩔어도 너무 쩔어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무지와 착각, 피해의식, 물질적 이해관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신자유주의 반대를 진보의 총노선으로 삼는 이념이 하나 만들어졌다. 민주노동당 전 대표 권영길은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2002. 1. 14, 178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시기 진보정치의 핵심적 요구는 '反신자유주의(反약탈주의)'여야 한다. IMF가 요구하고 있는 일방적 금융개방, 대기업의 해외매각, 공기업 사유화, 대량해고 등을 반대하는지가 이 시대 진보의 기준이다.'

 

이는 지금 상당수 진보 좌파 세력에게 상식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유력한 창이자, 안경이기도 하다. 나는 심상정과 상당수 진보 좌파 인사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이념적 광우병에 결려 뇌에 숭숭 구멍이 뚫리면서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안전망, 고용안정, 시장 폭력 완충 등 진보 개혁의 왼쪽 팔다리에서 나오는 힘만 쓸 뿐 시장주의, 자유주의라는 오른쪽 팔다리에서 나오는 힘을 거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왼쪽 반신만 쓰는 중풍환자의 힘은 온전한 사람의 절반이 아니라 그 1/10, 1/100도 안되듯이, 왼쪽 가치만 부르짖는 진보, 개혁 세력의 힘은 왼쪽, 오른쪽을 자유자재로 쓰는 온전한 진보 개혁 세력의 힘의 1/10, 1/100도 안된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버려라

 

나는 신자유주의라는 불량 안경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주도권 경쟁의 승패는 '신자유주의'와 '친북좌빨'이라는 각자가 사용하던 오랜 흉기 내지 불량 안경을 누가 먼저 쓰레기통에 버리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미국, 일본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거의 공공의 적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그 많은 보수 인사 중에 신자유주의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 같이 개별 정책으로 말한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신자유주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공공의 적이자 만악의 근원이다. 신자유주의 개념 규정도 제각각이다. 노무현과 심상정의 개념도 다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 사상'을 핵심으로 한 부자를 위한 정책,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으로 규정하였다. 심상정, 정태인은 신자유주의가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라는데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작은 정부 사상은 '70년대의 시카고학파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초기에 나온 학설'이라고 일축하고, 신자유주의의 핵심 내용은 개방과 규제완화, 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미FTA는 워싱턴컨센서스를 실현하는 경제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전형이라고 하였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고, 신자유주의로 통칭되는 정책 중에서 아주 극단적인 정책에 한해서만 시장만능주의, 시장근본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최용식 21세기 경제학연구소장은 드물게도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해석, 도입'할 것을 강조한다.

 

"그동안 국내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낙인찍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즉 개방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추구하지 않고 경제가 번영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수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 사회적 혼란이나 국제적 분쟁을 초래하거나 오늘날과 같은 금융위기를 부르곤 하지만,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 사회 안정과 국제 평화 속에 경제번영을 누린다는 것이다(미래창조포럼 국민 대토론회 토론문, 2008.11.19)."

 

그는 그 예로 영국 토니 블레어 정권, 미국 클린턴 정권, 아르헨티나  메넴 정권, 브라질의 까르도수와 룰라 정권, 호주와 뉴질랜드의 노동당 정권, 중국 공산당을 들었다. 요컨대 최용식에게 신자유주의는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작은 정부와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시장만능주의도 아니다. 한국 진보가 현 시점에 주체적으로 해석, 도입해야 할 경제 정책 패키지라고 한다. 최용식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 역시 "신자유주의의 산물도, 파생금융상품이 빚은 산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최용식과 대동소이 하지만 나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의 폐기를 주장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사민주의적 가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빨갱이라는 개념을 세분화하여 엄밀히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 개념 자체를 폐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심상정은 신자유주의자를 세분하려는 시도를 한다. 노무현은 그냥 신자유주의이고, 이명박은 막가파식 토건형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심상정 눈에 최용식은 무슨 신자유주의일까? 줄.푸.세를 내세우는 박근혜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박세일은? 사회(민주)주의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과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을 옹호하는 김대호는 무슨 신자유주의 일까? 나는 안다. 좌파신자유주의!

 

실체도 모호한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시비가 유독 한국 진보 진영에서만 넘쳐나는 이유는 한국 진보의 지적 나태 내지 지적 오퍼상 전통과 관련이 있다.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박세일 교수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에는 신자유주의가 옳으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미국의 이야기이고 유럽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자기 할 일은 잃어버리고 남의 집 싸움에 나서는 셈이다. 그 동안 한국의 전통적 담론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허구와 허구의 싸움이었다. 신자유주의도 올바로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사회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을 해도 제대로 성공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찾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 학자들이 자기들 상황에서 이야기 하는 것 가지고 떠들 것은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신자유주의도 하고 사민주의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사민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문제를 풀 '능력과 구조와 주체'가 없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문제이다. 그래서 중진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흔들리고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한겨레21, 제736호(2008.11.21))"

 

박세일이 지적한 한국 지식사회(국가 경영담론)의 오퍼상 전통과 더불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복잡다단한 현실을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경향도 신자유주의 시비를 확산하는데 일조했다고 보아야 한다(차베스는 국내 유가를 1리터에 20~30원으로 유지하여 미국의 온갖 폐차장 차를 다 들여오게 만들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 끊임없이 반미, 반신자유주의를 고창하는 등 한국 진보 좌파와 정서와 용어가 정말 비슷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 나라 보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후졌을테니까. 한국의 후진 진보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처럼....).

 

이는 중세 시대에는 만악의 근원으로 사탄과 마녀를 지목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우파는 공산주의를, 좌파는 자본주의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지목한 심리의 연장이다. 확신컨대 진보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사용하면, 다시말해 시장 만능주의에서부터 (오바마는 물론 북유럽 사민당도 채택하는) 건강한 시장주의, 자유주의까지를 다 포괄한다면, 결국 대중적으로 거부당해서, 15~20년 전쯤 진보가 한창 써대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나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개념처럼 이념의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 볼 수 있는 퇴물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론의 진짜 패악

 

내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 든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놈의 편광 안경이 국정과제 내지 진보, 개혁 과제의 우선 순위를 완전히 뒤바꿔 놓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럽, 미국, 일본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저성장-고인플레이션에 봉착한 케인즈주의/복지주의에 대한 반동(Anti these)으로, 이론적으로는 시카고학파가, 정치적으로는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구현된 경제사회 정책패키지로 간주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컨셉은 대처리즘으로 정식화되었는데 요약하면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정책의 주요 지렛대는 엄격한 통화관리(통화주의), (공급중시 경제학에 기초한) 소득세와 법인세 등 직접세 감면,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과도한 노조의 권능 약화, 복지 지출 억제 등이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교조는 아니다. 당장 대처와 레이건 시기부터 달랐다. 대처는 실업 증가의 후과로 GDP대비 복지지출을 많이 늘렸고, 레이건은 현상 유지했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핵심 컨셉에 흐르는 정신이다. 이는 첫째,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면서 전향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찍이 아담스미스가 역설한 시장과 경쟁에 대한 믿음과 유사시 국가의 조정통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여기에는 자유와 풍요의 대가로서 시장과 경쟁이 초래할 충격과 불안을 어느 정도는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셋째, 개인(민간)의 자율 책임성과 창의성에 대한 믿음과 자본 운동의 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자본운동에 물려진 재갈(규제)을 가능하면 느슨하게 해야 경제와 사회의 활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이다.

 

이제 한국에서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옥죄는 존재, 자본 운동을 옥죄는 재갈이 무엇인가 따져보자. 복지병인가? 절대 아니다. 노조인가? 대기업, 공기업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재갈은 따로 있다. 대부분의 벤처. 중소기업에게 물어보면 재벌.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내부자 거래를 지목할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에게 물어보면 무수한 독과점과 너무 허술한 소비자 보호조치, 너무 취약한 소비자 정보를 지목할 것이다. 똑똑한 납세자에게 물어보면 재정이 쓸데없는 도로, 공항, 건물(SOC 건설) 짓는데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재정, 특히 지방 재정 관련 감시.통제가 너무 느슨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에 활력을 가져오는 도전자, 비기득권자들에게 물어보면 기득권자들이 쳐놓은 진입장벽, 경쟁제한 장벽이 너무 높고 강고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정부의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교육, 보건, 의료 분야 종사자들에게 물어보면 지키기 힘든 법규, 시행령이 너무 많고, 공무원들의 자의적 권능(규제, 단속, 처벌권, 결정권 등)이 너무나 크다고 할 것이다. 원래 교통 법규나 정치자금 법규처럼 대부분이 지키기 힘든 법규가 많은 곳에서는 처벌(단속)권의 위력이 더 커지는 측면이 있다.

 

자본운동의 활성화 측면에서 창의와 열정이 뛰어난 청년 인재의 배분 상황을 보면, 한국 공공부문의 처우는 너무 높고 안정적이어서,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전문직, 민간 재벌대기업과 더불어 청년 인재의 진공청소기로 되어 있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자산, 소득의 흐름으로 보면 부동산 소유자에게 너무 많은 가치(불로소득)가 쏠리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국제적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땅값(공장 용지 등)이 너무 높고, 주거비, 교육비, 식비가 너무 높은 현실이 보일 것이다. 이 역시 독과점, 진입장벽, 땅값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시장경제와 반드시 동반해야 할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헌법재판소, 법원, 검찰 등 사법기관은 민주적 통제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가운데, 사법고시를 통과할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활력(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옥죄는 너무 많은 강고한 재갈들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작은 정부론은 한국에서 GDP대비 조세부담률 및 재정규모 시비를 일으켰고, 인구 천명당 공무원 숫자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한국은 봉건-식민통치-전쟁-냉전-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조세부담률은 대체로 낮았고, 공무원 숫자는 적었지만 결코 작은 정부가 아니었다. 규제, 처벌권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성격)이 문제였지만 신자유주의라는 편광안경은 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작은정부 사상을 가지지 않았으니 신자유주의와 상관없다고 한 노무현의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후진국에는 정부 규모는 작아도 민주적 통제력은 약한 가운데 자의적 권능이 크고, 서비스맨쉽이 취약한 정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아프리카 후진국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지금 검찰의 행태를 보라! 참여정부의 순진성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측면을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노동의 양,질이 비슷하면 처우가 비슷하지만, 한국은 그 소속이 공공부문, 대기업, 자격증 부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영국, 독일의 축구 1부 리그 팀과 2부 리그 팀처럼, 실력(성과)에 따라 소폭이라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맛도 없다.

 

대기업, 공기업에서 아무리 일 잘하는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일 못하는 정규직이 아래로 내려오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승자독식 사회보다 더 나쁘다. 승자도 아닌 줄 잘선 놈이 독식하고, 승자를 가리는 방식도 공정하지 못하고, 패자나 줄 잘 못 선 사람들에게 재도전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과 경쟁을 비껴가는 곳이 너무 많아서다.

 

대기업/공기업 노조원의 처우나 한나라당, 민주당의 특정 지역 독식 현상, 아니 이것을 보장하는 선거제도가 그 전형이다. 그런데 반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승자독식 현상을 거의 시장과 경쟁의 과잉 탓으로 돌린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나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독과점 철폐, 소비자 보호, 세련된 규제.감독, 패자부활전 활성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갈 소중한 정치사회적 에너지를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듯이 시장과 경쟁 자체를 적대시 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반신자유주의라는 편광안경은 기본적으로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정부론이 공공부문과 대기업 쪽으로 밀고 들어오나 안오나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기능을 한다.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정부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쇠파이프를 들고 지키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공공부문과 대기업 종사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이데올로기다.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사상이라고 하고,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한 노무현의 생각은 이들의 공작이 반쯤은 먹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체와 소비자에 대한 약탈은 신자유주의가 데려온 '규제완화' '민영화'라는 놈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국가안보, 유치산업보호, 수출장려, 경기부양, 균형발전 등)의 미명하에 만들어진 국가의 규제, 촉진권도 못지않게 심각한 약탈꾼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두 부류의 약탈꾼을 다 풀어놓았다.

 

한국 사회의 속살은 신자유주의라는 안경보다는 도적 정치라는 안경으로 보면 사회가 훨씬 잘 보인다. 한국은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상벌을 시행해야 할 공공적 존재(정치, 관료, 언론 등)들이 약하다 보니, 아니 스스로가 사익 집단화 되다 보니,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든 힘 있는 존재들이 자신의 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훨씬 많은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리려는 사실상 도적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한국 노블레스를 포함한 사회적 강자들의 도적질은 현 세대 내에서는 사회적 약자(하청 중소기업, 비정규직, 실업자 등)를 향한다. 도적질은 세대 간에도 벌어져 현 세대 전체가 미래 세대를 약탈한다. 이것이 바로 지독한 청년 실업으로, 대기업.공기업 노조원의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전반적인 저출산 고령화로 나타난다. 물론 다음 세대 몫조차 앞 다투어 약탈하는 상황에서 말없는 자연 환경을 그냥 둘리 있겠는가?

 

그래서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리모델링 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우상을 숭배하다가 야훼의 진노를 사서 탈출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40년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다 죽어버려서 결국 단 한명도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진보, 개혁세력 앞날에 드리운 먹구름이 보았다. 내가 이 글에서 비판한 상당수 진보 좌파 세력은 수십년간의 민주/민중/민족 투쟁을 주도하여, 권력과 자본의 전횡으로부터 탈출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정말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견인차이자,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공동체 전체와 진실과 진리를 섬기지 않고, 탐. 진. 치 삼독에 쩔어 반신자유주의 우상,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노동의 우상을 섬긴다면 향후 15년간 보수 정권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1980년 광주의 피로 잉태되어 1987년 유월항쟁의 단비를 맞으면서 자라난 소중한 자식들이 모조리 정치적으로 사망한 후에 비로소 그 자식세대에 의해 진보의 시대가 열리는 비극이 탄생할 수 있다.

 

한국 보수가 공공적 마인드라도 좀 있으면, 또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약진 등 거대한 도전을 받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그 때까지 온전하기만 하다면, 광주와 유월의 아이들이 정치적으로 사장되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한국 보수 대부분은 평생을 사익이나 권력이 주는 이권만 추구해 온 도적 집단이기에, 또 너무 무능하기에, 진보, 개혁 세력의 환골탈태와 정권 조기 탈환에 대한 미련을 결코 꺾을 수 없다. 이 집착만은 버릴 수 없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04)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대호 / 2008-11-27)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오늘 처음 이분 글을 읽었는데, 그동안 이해불가였던 몇가지 정치이슈들을 시원시원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품고 애독하리라 마음먹었다.   

   
  참여정부는 그 어떤 정부보다 사심없이 의욕적으로 부지런하게 개혁을 추진했지만, 예상외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김영삼 정부의 '외환금융 자율화'처럼,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 자율화,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의약분업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한 많은 개혁(선진화)이 낡은 연관 시스템(법, 제도, 관행)과 국지적으로 선진화된 시스템의 모순(충돌)을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때론 시스템 전체의 퇴행과 거의 예외없는 사용자의 왕짜증을 초래하였다.  
   

www.goodpol.net/inquiry/statistics.board/entry/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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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Text of Obama’s Inaugural Speech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 전문(cafe.daum.net/grace5467/5cvc/2027)
Речь Барака Обамы(www.echo.msk.ru/programs/beseda/567411-echo.phtml)
 

My fellow citizens,
국민 여러분,
Дорогие сограждане!

I stand here today humbled by the task before us, grateful for the trust you have bestowed, mindful of the sacrifices borne by our ancestors. I thank President Bush for his service to our nation, as well as the generosity and cooperation he has shown throughout this transition.
저는 우리 선조들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제게 보내준 신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진 책무를 겸허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부시 대통령이 정권 인수 과정에서 보여준 아낌없는 배려와 협력, 그리고 그가 그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Я стою перед вами сегодня, полностью сознавая грандиозность стоящих перед нами задач, испытывая глубокую признательность за оказанное мне доверие и вспоминая жертвы, которые принесли наши предки. Я благодарен президенту Буша за его служение нашей стране, а также за его великодушие и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на протяжении всего периода передачи власти.

Forty-four Americans have now taken the presidential oath. The words have been spoken during rising tides of prosperity and the still waters of peace. Yet, every so often the oath is taken amidst gathering clouds and raging storms. At these moments, America has carried on not simply because of the skill or vision of those in high office, but because We the People have remained faithful to the ideals of our forbearers, and true to our founding documents.
이제 저를 포함해 마흔네 명의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게 된 셈입니다. 많은 선서들은 떠오르는 번영의 조류와 잔잔한 평화의 물결의 시대에 행해졌지만, 때로 어떤 선서는 먹구름이 잔뜩 끼고 성난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대에 행해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잘 꾸려져 왔습니다. 오로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기술이나 비전 덕분이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 스스로가 선조들의 이상과 건국 문서들의 이념에 충실했었기 때문입니다.
Сорока четырем американцам выпала честь принести президентскую присягу. Ее слова звучали в периоды растущего процветания и мирного затишья. Но были времена, когда присяга звучала во времена сгущающихся туч и бушующих бурь. В эти моменты Америка продолжала двигаться вперед не только благодаря таланту или видению тех, кто занимал высшие посты, но и потому что «Мы, Народ Соединенных Штатов», хранили верность идеалам своих предшественников и составленных ими основополагающих документов.

So it has been. So it must be with this generation of Americans.
지금껏 그래 왔듯이 현 세대의 미국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Так было до сих пор. И так должно быть в нынешнем поколении американцев.

That we are in the midst of crisis is now well understood. Our nation is at war, against a far-reaching network of violence and hatred. Our economy is badly weakened, a consequence of greed and irresponsibility on the part of some, but also our collective failure to make hard choices and prepare the nation for a new age. Homes have been lost; jobs shed; businesses shuttered. Our health care is too costly; our schools fail too many; and each day brings further evidence that the ways we use energy strengthen our adversaries and threaten our planet.
우리 모두 현재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물처럼 폭넓게 뻗은 폭력 및 증오와 전쟁 중입니다. 우리의 경제는 일부의 탐욕과 무책임,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어려운 결정들을 내리는 데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 매우 약해졌습니다. 가족들은 집을 잃고, 근로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기업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의료비용은 너무나 비싸고, 학교들은 거듭 실패하고, 우리가 힘을 사용하는 (그릇된) 방식이 우리의 적들을 강화시키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더 많은 증거들이 매일같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Тот факт, что мы переживаем кризис, хорошо понимают сегодня все. Наша страна находится в состоянии войны против широкой сети насилия и ненависти. Наша экономика серьезно ослаблена вследствие алчности и без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отдельных лиц, но также из-за нашей общей неспособности сделать трудный выбор и подготовить народ к новым временам. Потеряно жилье, сокращены рабочие места, закрыты предприятия. Наше здравоохранение обходится слишком дорого, наши школы часто не справляются со своей задачей, и каждый день приносит новые подтверждения, что наши способы пользования энергией укрепляют наших врагов и угрожают нашей планете.

These are the indicators of crisis, subject to data and statistics. Less measurable but no less profound is a sapping of confidence across our land - a nagging fear that America's decline is inevitable, and that the next generation must lower its sights.
이러한 것들은 바로 각종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한 위기의 신호입니다. 자신감의 고갈은 측정하기 힘들지만 매우 심각합니다. 쇠락을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 다음 세대는 목표를 낮추어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미국 전역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Все это признаки кризиса, подтвержденные фактами и статистикой. Труднее измерить ослабление уверенности по всей стране, жителей которых снедает гнетущая тревога того, что упадок Америки неизбежен, и что следующее поколение должно снизить свои ожидания.

Today I say to you that the challenges we face are real. They are serious and they are many. They will not be met easily or in a short span of time. But know this, America - they will be met.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처한 도전들은 현실이고, 심각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도전들은 쉽게 또는 짧은 기간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우리는 결국 해낼 것입니다.
Я говорю вам сегодня: стоящие перед нами вызовы - реальны. Они серьезны, и их много. Их не удастся решить легко за короткий период времени. Но я хочу, чтобы Америка знала – мы с ними справимся.

On this day, we gather because we have chosen hope over fear, unity of purpose over conflict and discord.
오늘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선택했고, 갈등과 불화보다는 목적을 위한 단결을 선택했기 때문에 여기 모였습니다.
В это день мы собрались потому, что предпочли страху надежду, а единство целей – конфликту и раздору.

On this day, we come to proclaim an end to the petty grievances and false promises, the recriminations and worn out dogmas, that for far too long have strangled our politics.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정치를 오랫동안 옥죄어 왔던 사소한 불만들과 거짓 공약들, 상호 비방과 낡은 도그마들에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В этот день мы пришли, чтобы провозгласить конец мелочным обидам и фальшивым обещаниям, взаимным обвинениям и устаревшим догмам, которые слишком долго душили нашу политику.

We remain a young nation, but in the words of Scripture, the time has come to set aside childish things. The time has come to reaffirm our enduring spirit; to choose our better history; to carry forward that precious gift, that noble idea, passed o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 God-given promise that all are equal, all are free, and all deserve a chance to pursue their full measure of happiness.
미국은 여전히 젊은 나라지만 이제는 성서의 말씀대로 유치함을 버릴 때가 왔습니다. 우리의 인내심을 다시 확인할 때가, 더 나은 역사를 선택할 때가, 세대를 지나면서 물려받은 소중한 선물인 고귀한 이상을 계속 앞으로 넘겨줄 때가 왔습니다. 즉 만인은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또한 모두 충분한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천부의 약속 말입니다.
Мы остаемся молодой страной, однако, как сказано в Писании, настало время избавиться от инфантильности. Пришло время вновь подтвердить стойкость нашего духа, сделать выбор в пользу лучшего будущего, привнести в него тот бесценный дар, ту благородную идею, которую мы передавали из поколения в поколение: завет Всевышнего, что все мы равны, все мы свободны, и все заслуживаем права на стремление к счастью.

In reaffirming the greatness of our nation, we understand that greatness is never a given. It must be earned. Our journey has never been one of short-cuts or settling for less. It has not been the path for the faint-hearted - for those who prefer leisure over work, or seek only the pleasures of riches and fame. Rather, it has been the path for the risk-takers, the doers, the makers of things - some celebrated but more often men and women obscure in their labor, who have carried us up the long, rugged path towards prosperity and freedom.
미국의 위대함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우리는 그 위대함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의 여정은 결코 지름길이나 작은 성과에 안주하는 길들 중의 하나를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결코 일보다는 여가를 선호하거나 부와 명예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소심한 자들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길은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 행동하는 이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길이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유명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유와 번영을 위한 길고 험난한 길을 우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Подтверждая величие нашей страны, мы понимаем, что величие не дается даром. Его необходимо добиваться. На нашем пути мы никогда не искали легкого выхода и не довольствовались малым. Этот путь был не для слабых духом – тех, кто предпочитал труду праздность и удовольствия, связанные с богатством и славой. Это был путь для тех, кто готов рисковать и действовать, кто умел делать дело. Некоторые из них получили признание, но чаще эти мужчины и женщины трудились в безвестности. Однако благодаря им мы с честь прошли долгий путь к процветанию и свободе.

For us, they packed up their few worldly possessions and traveled across oceans in search of a new life. For us, they toiled in sweatshops and settled the West; endured the lash of the whip and plowed the hard earth.
우리를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얼마 안 되는 재산을 꾸려 새 인생을 찾아 대양을 건넜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들은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서부에 정착해서 채찍질을 감내하며 황야를 일궜습니다.
Ради нас они собрали свои нехитрые пожитки, и пересеки океан в поисках новой жизни.
Ради нас они трудились в потогонных цехах и осваивали Запад, выносили удары кнута и пахали целинные земли.

For us, they fought and died, in places like Concord and Gettysburg; Normandy and Khe Sahn. Time and again these men and women struggled and sacrificed and worked till their hands were raw so that we might live a better life. They saw America as bigger than the sum of our individual ambitions; greater than all the differences of birth or wealth or faction.
우리를 위해, 그들은 싸웠고, 또 콩코드와 게티스버그, 노르망디와 케산 같은 곳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런 분들은 자신들의 손의 살갗이 벗겨질 때까지 분투하고, 희생하고, 일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미국을 각 개인들의 야망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나라, 태생과 빈부와 당파의 차이를 뛰어넘는 더 위대한 나라로 생각했습니다.
Ради нас они сражались и погибали в Конкорде и Геттисберге, в Нормандии и Кхесане.

This is the journey we continue today. We remain the most prosperous, powerful nation on Earth. Our workers are no less productive than when this crisis began. Our minds are no less inventive, our goods and services no less needed than they were last week or last month or last year. Our capacity remains undiminished. But our time of standing pat, of protecting narrow interests and putting off unpleasant decisions - that time has surely passed. Starting today, we must pick ourselves up, dust ourselves off, and begin again the work of remaking America.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계속 걸어가고 있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되고 가장 강력한 나라입니다. 우리의 근로자들은 이 위기가 시작됐을 때와 다름없이 생산적입니다. 지난 주, 지난 달, 아니 지난해와 다름없이 여전히 우리의 정신은 창의적이고 우리의 재화와 용역을 모두가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역량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견을 고집하거나 편협한 이익을 보호하거나 불쾌한 결정들을 뒤로 미루는 그런 시기는 분명히 지나갔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추스려 힘을 내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 미국을 재건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Этот путь мы продолжаем сегодня. Мы остаемся самой процветающей, самой могущественной страной в мире. Люди труда в нашей стране работают так же эффективно, как работали до начала кризиса. Наш разум так же изобретателен, как и прежде; потребность в производимой нами продукции и услугах не меньше, чем неделю, месяц или год назад. Наша способность трудиться велика, как раньше. Но время, когда мы могли позволить себе медлить, отстаивать узкие сиюминутные интересы и откладывать неприятные решения в долгий ящик, - это время, безусловно, осталось позади.
Начиная с сегодняшнего дня мы должны собраться и начать перестраивать Америку.

For everywhere we look, there is work to be done. The state of the economy calls for action, bold and swift, and we will act - not only to create new jobs, but to lay a new foundation for growth. We will build the roads and bridges, the electric grids and digital lines that feed our commerce and bind us together. We will restore science to its rightful place, and wield technology's wonders to raise health care's quality and lower its cost. We will harness the sun and the winds and the soil to fuel our cars and run our factories. And we will transform our schools and colleges and universities to meet the demands of a new age. All this we can do. And all this we will do.
어디를 둘러 봐도 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경제 상황은 대담하고 신속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만들기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상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를 보다 가깝게 묶어줄 도로와 교량, 전력망과 디지털 통신망을 건설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의료 체계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비용은 낮출 신기술들을 활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과 바람, 토양을 이용해 자동차에 연료를 제공하고 공장을 가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각종 학교와 대학을 개혁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할 수 있고 또 할 것입니다.
Работа найдется для каждого. Состояние нашей экономики диктует необходимость действовать быстро и решительно. Так мы и будем действовать – не только ради создания новых рабочих мест, но и для того, чтобы заложить фундамент нового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подъема. Мы построим дороги и мосты, линии электропередач и системы телекоммуникаций, питающие нашу экономику и связывающие нас в единое целое. Мы сделаем так, что наука вновь заняла подобающее место в обществе, и применим самые современные технологии, чтобы повысить качество здравоохранения и понизить его стоимость. Мы заставим землю, солнце и ветер служить нам, приводя в движение моторы наших автомобилей и станки наших заводов. Мы преобразуем наши школы и университеты, чтобы они удовлетворяли требованиям новой эпохи. Все это нам по силам. И мы этого добьемся.

Now, there are some who question the scale of our ambitions - who suggest that our system cannot tolerate too many big plans. Their memories are short. For they have forgotten what this country has already done; what free men and women can achieve when imagination is joined to common purpose, and necessity to courage.
그런데 우리가 밝힌 포부의 규모에 대해 우리의 시스템은 그렇게 많은 거대한 계획들을 감내할 수 없다며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짧은 기억력을 탓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나라가 이미 해낸 일들, 즉 상상력이 공동 목표와 결합했을 때, 그리고 필요와 용기가 결합했을 때 자유인들이 해낸 일들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Кое-кому наши притязания кажутся чрезмерными. Им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что наша система не выдержит столь масштабных планов. У этих людей короткая память. Ибо они забыли, чего этой стране удалось достигнуть в прошлом, чего могут достичь свободные люди, если способность мечтать соединилась в их сердцах с мужеством действия на пользу общему делу.

What the cynics fail to understand is that the ground has shifted beneath them - that the stale political arguments that have consumed us for so long no longer apply. The question we ask today is not whether our government is too big or too small, but whether it works - whether it helps families find jobs at a decent wage, care they can afford, a retirement that is dignified. Where the answer is yes, we intend to move forward. Where the answer is no, programs will end. And those of us who manage the public's dollars will be held to account - to spend wisely, reform bad habits, and do our business in the light of day - because only then can we restore the vital trust between a people and their government.
냉소주의자들은 자신들 아래에 위치한 근본적인 기반이 변했다는 사실과 우리를 오랫동안 소모적으로 이끌어왔던 진부한 정치적 주장들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 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가족들로 하여금 타당한 보수의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여유가 되는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또는 품위 있는 은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라는 대답이 있는 곳을 향해 우리는 전진할 것입니다만, ‘아니오’라는 대답이 있는 곳에서는 우리는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끝낼 것입니다. 공공자금을 관리하는 이들은 책임지고 돈을 현명하게 지출하고 악습들을 개혁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비로소 국민과 정부 사이에 중요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Циникам не понять, что даже земля у них под ногами – уже не та, что раньше, и что устаревшие аргументы, которыми мы вынуждены были довольствоваться так долго, больше не имеют силы. И сегодня мы спрашиваем себя не о том, не является ли наш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лишком громоздким или, напротив, слишком ограниченным, но о том, является ли оно работоспособным, – помогает ли оно семьям в поисках достойно оплачиваемой работы, медицинского обслуживания, которое они могут себе позволить, а также достойного обеспечения в старости. В тех случаях, когда мы можем ответить этот вопрос утвердительно, мы будем двигаться вперед. Там, где ответ будет отрицательным, программы будут отменены. Те из нас, кто несет ответственность за расход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средств, будут находиться под постоянным контролем с тем, чтобы деньги тратились разумно, дурные привычки исчезали, а дела вершились при свете дня – ибо лишь в этом случае можно восстановить необходимое доверие между народом и правительством.

Nor is the question before us whether the market is a force for good or ill. Its power to generate wealth and expand freedom is unmatched, but this crisis has reminded us that without a watchful eye, the market can spin out of control - and that a nation cannot prosper long when it favors only the prosperous.
또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시장이 선을 위한 힘인지 악을 위한 힘인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부를 창출해내고 자유를 확산시키는 시장의 힘은 비길 데 없이 막강합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감시의 눈이 없을 때에는 시장이 통제를 벗어나 추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한 나라가 부유한 이들에게만 호의를 베풀 때 지속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Для нас не существует вопроса – добрую или злую силу представляет собой рыночная экономика. Могущество рынка, его способность создавать богатство и расширять границы свободы, уникальна. Однако переживаемый кризис напомнил нам, что без должного надзора рынок может вырваться из-под контроля и что нация не разбогатеет, если будет поддерживать лишь преуспевающих.

The success of our economy has always depended not just on the size of our Gross Domestic Product, but on the reach of our prosperity; on our ability to extend opportunity to every willing heart - not out of charity, but because it is the surest route to our common good.
우리 경제의 성공은 항상 국내총생산의 크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에 기인하지 않고 공동의 선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에, 의욕을 가진 모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기회를 확장시키는 우리의 능력과 번영을 골고루 누리는 범위에도 우리 경제의 성공 여부는 달려 있습니다.
Экономическое процветание всегда определялось не только объемом валового национального продукта, но и тем, насколько процветает общество в целом; оно также зависело от нашей способности открыть возможности каждому, кто проявляет стремление преуспеть, и не из благотворительности, а потому что это - самый верный путь к всеобщему благу.

As for our common defense, we reject as false the choice between our safety and our ideals. Our Founding Fathers, faced with perils we can scarcely imagine, drafted a charter to assure the rule of law and the rights of man, a charter expanded by the blood of generations. Those ideals still light the world, and we will not give them up for expedience's sake.
안보에 관해서 우리는, 안전과 이상 사이에서 한 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으로 간주하고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위험과 맞닥뜨리곤 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권과 법률을 보장하는 헌장을 기초했고 이 헌장은 세대를 거치면서 흘린 피에 의해 신장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상들은 여전히 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으며 우리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В вопросе нашей обороноспособности мы отвергаем ложную альтернативу: безопасность или идеалы? Отцы-основатели, сталкиваясь с опасностями, которые мы едва ли можем себе представить, оставили нам Хартию, утверждающую главенство закона и права человека, и эта Хартия поистине написана кровью целых поколений. Провозглашенные в ней идеалы не потускнели и сегодня, и мы не предадим их из оппортунистических соображений.

And so to all other peoples and governments who are watching today, from the grandest capitals to the small village where my father was born: know that America is a friend of each nation and every man, woman, and child who seeks a future of peace and dignity, and that we are ready to lead once more. Recall that earlier generations faced down fascism and communism not just with missiles and tanks, but with sturdy alliances and enduring convictions. They understood that our power alone cannot protect us, nor does it entitle us to do as we please. Instead, they knew that our power grows through its prudent use; our security emanates from the justness of our cause, the force of our example, the tempering qualities of humility and restraint.
그리고 대국들의 수도에서 제 아버지가 태어난 곳과 같은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오늘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다른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평화와 품위 있는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나라와 남녀노소에게 미국은 친구라는 사실과 우리 미국이 다시 한 번 앞장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선 세대들이 미사일과 탱크가 아닌 견고한 동맹과 영속적인 신념들을 통해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제압했던 사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들은 힘만으로는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며 또한 힘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그분들은 우리가 힘을 신중히 사용함으로써 힘이 더 커진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가 가진 대의의 정당함과 본보기로서의 힘과 겸손과 절제의 유연한 자질로부터 우리의 안보가 확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Мы заявляем всем народам и правительствам, которые смотрят на нас сегодня, от столиц мира до крошечного селения, в котором родился мой отец: знайте, Америка является другом любой страны, каждого мужчины, каждой женщины и каждого ребенка, стремящихся к мирному и достойному будущему, и мы всегда готовы отстаивать этот принцип. Вспомните, что наши отцы и деды сокрушили фашизм и коммунизм не только с помощью ракет и танков, но благодаря прочным союзам и твердым убеждениям. Они сознавали, что сила сама по себе неспособна защитить нас и не дает нам права действовать, как нам заблагорассудится. Они знали, что наше могущество растет, если применять силу осмотрительно, и что справедливость нашего дела, сила примера, скромность и самоограничение – источники нашей безопасности.

We are the keepers of this legacy. Guided by these principles once more, we can meet those new threats that demand even greater effort - even greater cooperation and understanding between nations. We will begin to responsibly leave Iraq to its people, and forge a hard-earned peace in Afghanistan. With old friends and former foes, we will work tirelessly to lessen the nuclear threat, and roll back the specter of a warming planet. We will not apologize for our way of life, nor will we waver in its defense, and for those who seek to advance their aims by inducing terror and slaughtering innocents, we say to you now that our spirit is stronger and cannot be broken; you cannot outlast us, and we will defeat you.
우리는 그러한 유산의 수호자들입니다. 다시 한 번 이런 원칙들에 의해 인도됐을 때 우리는 세계 각국들의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협력과 이해를 요구하는 새로운 위협들에 대해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 있게 이라크를 이라크 국민들에게 넘겨주고 어렵게 얻어낸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도 굳건히 벼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된 우방들은 물론이고 과거의 적국들과도 함께 손을 맞잡아 핵위험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의 망령을 쫓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방식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한 방식을 고수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테러를 유도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진전시키려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력은 그들보다 더 강력해서 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가 없기에 결국 우리는 그들을 패퇴시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Мы храним это наследие. Как и прежде, вдохновляемые нашими принципами, мы способны противостоять угрозам, требующим от нас еще больших усилий, еще более тесног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и взаимопонимания между народами и государствами. Мы приступим к осторожному и ответственному выводу войск из Ирака и продолжим трудный путь к миру в Афганистане. Вместе с нашими старыми друзьями и нашими бывшими врагами мы будем неустанно трудиться во имя уменьшения ядерной угрозы; продолжим мы и борьбу с угрозой глобального потепления. Мы не станем ни просить прощения за наш образ жизни, ни заискивать перед кем бы то ни было. Тем, кто намерен наращивать вооружения, развязывая компании террора и проповедывать гибель ни в чем не повинных людей, мы можем сказать одно: мы сильнее духом, чем вы; вам нас не сломить. В борьбе с нами вы потерпите поражение.

For we know that our patchwork heritage is a strength, not a weakness. We are a nation of Christians and Muslims, Jews and Hindus - and non-believers. We are shaped by every language and culture, drawn from every end of this Earth; and because we have tasted the bitter swill of civil war and segregation, and emerged from that dark chapter stronger and more united, we cannot help but believe that the old hatreds shall someday pass; that the lines of tribe shall soon dissolve; that as the world grows smaller, our common humanity shall reveal itself; and that America must play its role in ushering in a new era of peace.
다양한 뿌리에서 기인한 우리의 전승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유대교도와 힌두교도 그리고 무신론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 곳곳에서 온 다양한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남북전쟁과 인종차별의 쓰라림을 실컷 맛보았고 또한 보다 강하고 단결된 모습으로 어둠을 가르고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된 증오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과 종족적 혈통의 끈이 멀지 않아 해소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세계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공통된 인간성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 미국이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안내하는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Ибо мы твердо сознаем, что главное наше достояние – это сила, а не слабость. Мы – нация христиан и мусульман, иудеев, индусов и неверующих. На нас оказали влияние все языки и все культуры, принесенные в нашу страну со всего мира. Испытав ужасы гражданской войны и сегрегации, выйдя из испытаний более сильными и едиными, чем когда-либо прежде, мы верим, что старая ненависть рано или поздно исчезнет, что племенные различия скоро растворятся, что мир станет еще меньше, что нам откроется единство рода человеческого и что Америке предстоит открыть новую эру мира.

To the Muslim world, we seek a new way forward, based on mutual interest and mutual respect. To those leaders around the globe who seek to sow conflict, or blame their society's ills on the West - know that your people will judge you on what you can build, not what you destroy. To those who cling to power through corruption and deceit and the silencing of dissent, know that you are on the wrong side of history; but that we will extend a hand if you are willing to unclench your fist.
이슬람 세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미국이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진전된 방식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분쟁의 씨앗을 뿌리거나 이슬람 사회 내부의 병폐를 서구의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전 세계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들 여러분, 여러분의 국민들은 여러분들이 파괴한 것이 아닌 여러분들이 건설한 것을 기초로 여러분들을 판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패와 협잡 그리고 반대자들을 침묵시킴으로써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은 현재 자신들이 역사의 그릇된 쪽에 서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먹을 펴고 철권통치를 포기하려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Мусульманам во всем мире мы обещаем искать новые пути движения вперед, основанные на взаимных интересах и взаимном уважении. Лидерам, которые стремятся посеять семена конфликта, или обвинить Запад в проблемах, существующих в их странах, мы говорим: ваши народы будут судить вас по тому, что вам удалось создать, а не разрушить. Тем, кто держится за власть с помощью коррупции и лжи, путем подавления несогласных, – знайте, что вы окажетесь за бортом истории, но если вы готовы разжать кулак, мы готовы протянуть вам руку.

To the people of poor nations, we pledge to work alongside you to make your farms flourish and let clean waters flow; to nourish starved bodies and feed hungry minds. And to those nations like ours that enjoy relative plenty, we say we can no longer afford indifference to suffering outside our borders; nor can we consume the world's resources without regard to effect. For the world has changed, and we must change with it.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의 농장을 번성케 하고 깨끗한 물을 흐르게 하며 굶주린 몸과 허기진 마음에 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당신들과 나란히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처럼 비교적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국경 밖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더 이상 세계의 자원을 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변했고 또 이에 발맞춰 우리도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Народом бедных стран мы обещаем работать совместно, чтобы их земли были плодоносными, чтобы они имели доступ к чистой воде, чтобы они были сыты и имели пищу для размышлений. Тем странам, которые, как и наша страна, живут в относительном достатке, мы говорим: нельзя больше проявлять безразличие к страданиям за пределами границ, нельзя больше потреблять мировые ресурсы, не думая о последствиях. Поскольку мир изменился, мы должны меняться вместе с ним.

As we consider the road that unfolds before us, we remember with humble gratitude those brave Americans who, at this very hour, patrol far-off deserts and distant mountains. They have something to tell us today, just as the fallen heroes who lie in Arlington whisper through the ages. We honor them not only because they are guardians of our liberty, but because they embody the spirit of service; a willingness to find meaning in something greater than themselves. And yet, at this moment - a moment that will define a generation - it is precisely this spirit that must inhabit us all.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을 생각할 때면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머나먼 사막과 산악지대에서 순찰 활동을 하는 용감한 미국인들을 감사하며 기억합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영웅들이 시대를 아우르며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속삭여 주듯 오늘날의 그들 또한 우리에게 뭔가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단지 자유의 수호자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보다 더 위대한 무엇으로부터 의미를 찾으려는 봉사정신을 몸소 체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한 세대를 규정지을 만한 순간인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의 마음에 깃들어야 할 정신이야 말로 정확히 바로 이 봉사정신입니다.
Глядя на путь, лежащий перед нами, мы вспоминаем с почтительной благодарностью тех мужественных американцев, которые в этот час несут службу в далеких пустынях и горах. Им есть, что сказать нам сегодня, так же как и павшим героям, покоящимся на Арлингтонском кладбище. Мы чтим их не только потому, что они охраняют нашу свободу, но и потому, что они воплощают идею служения стране, готовность искать смысл в чем-то большем, чем они сами. И, тем не менее, в этот момент – момент, который станет определяющим для нашего поколения, – именно это должно нас всех вдохновлять.

For as much as government can do and must do, it is ultimately the faith and determination of the American people upon which this nation relies. It is the kindness to take in a stranger when the levees break, the selflessness of workers who would rather cut their hours than see a friend lose their job which sees us through our darkest hours. It is the firefighter's courage to storm a stairway filled with smoke, but also a parent's willingness to nurture a child, that finally decides our fate.
정부가 최대한의 역량으로 일을 해야만 하고 또한 해낼 수 있기 위해 우리나라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신뢰와 결단입니다. 제방이 무너졌을 때 낯선 이를 집안에 들이는 친절함이나 친구가 직장을 잃는 걸 보기보다는 자신의 근로시간을 줄이려 하는 무욕의 마음도 우리로 하여금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날 수 있게 하는 덕목들일 것입니다. 연기로 가득 찬 계단에 뛰어드는 소방관의 용기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 또한 결국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Что бы ни делало – и не должно было делать правительство, - страна, в конечном итоге, полагается на доверие и решимость американского народа. Доброта, которая позволит приютить в своем доме незнакомца, пострадавшего от наводнения при прорыве дамб, бескорыстие рабочих и служащих, которые скорее сократят свои рабочие часы, нежели позволят другу потерять работу, – именно такие качества помогают нам пережить самые сложные времена. Мужество пожарного, который пробивается сквозь пламя и дым на лестницу, готовность родителей растить и воспитывать детей – именно эти качества, в конечном счете, определяют нашу судьбу.

Our challenges may be new. The instruments with which we meet them may be new. But those values upon which our success depends - honesty and hard work, courage and fair play, tolerance and curiosity, loyalty and patriotism - these things are old. These things are true. They have been the quiet force of progress throughout our history. What is demanded then is a return to these truths. What is required of us now is a new era of responsibility - a recognition, on the part of every American, that we have duties to ourselves, our nation, and the world, duties that we do not grudgingly accept but rather seize gladly, firm in the knowledge that there is nothing so satisfying to the spirit, so defining of our character, than giving our all to a difficult task.
새로운 도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도전들을 맞이할 때 사용할 도구들도 새로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공이 달려 있는 덕목들, 정직, 근면, 용기, 공정성, 관용, 호기심, 충성, 애국심과 같은 덕목들은 오래 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진실된 것들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면면히 내려오며 이러한 덕목들은 진보의 조용한 힘이 되어 왔습니다. 필요할 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런 진실된 덕목들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시대의 책임감, 즉 모든 미국인들이 자기 자신과 조국 그리고 전 세계에 대한 의무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무란 마지못해 응낙하는 의무가 아닐뿐더러 어려운 책무에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정신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기질을 정의하는 데 있어 이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함께 기꺼이 그리고 단호히 받아들이는 그런 의무를 말합니다.
Проблемы, стоящие перед нами, могут быть новыми. Способы решения их могут быть новыми. Но те ценности, от которых зависит наш успех – трудолюбие и честность, отвага и справедливость, терпимость и интерес к миру, преданность и патриотизм – известны нам давно. Это - подлинные ценности. Они были той движущей силой, которая обеспечивала прогресс на протяжении нашей истории. Нам необходимо вернуться к ним. Необходимо, чтобы настала эра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каждого гражданина Америки перед самими собой, перед страной и перед миром; обязанности, которые мы принимаем не скрепя сердце, а с радостью, с уверенностью в том, что нет ничего более насыщающего душу, более важного для нашего национального характера, чем полностью посвятить себя решению трудных задач.

This is the price and the promise of citizenship.
이것이 바로 시민권에 대한 대가이자 약속입니다.
Это обязанность и право гражданина.

This is the source of our confidence - the knowledge that God calls on us to shape an uncertain destiny.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신감의 원천이자 신이 우리들로 하여금 불확실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Источник нашей уверенности в том, что мы знаем – Бог призывает каждого определить свою судьбу.

This is the meaning of our liberty and our creed - why men and women and children of every race and every faith can join in celebration across this magnificent mall, and why a man whose father less than sixty years ago might not have been served at a local restaurant can now stand before you to take a most sacred oath.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유와 신조의 의미이자 인종과 신념에 상관없이 모든 남녀노소가 이 거대한 취임식 행사에 참석할 있는 이유, 그리고 불과 60년 전 동네 식당조차 출입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둔 제가 여러분들 앞에 이렇게 서서 신성한 선서를 할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В этом смысл нашей свободы и принцип нашего существования – и именно поэтому мужчины, женщины и дети, представляющие все расы и все религии, могут объединиться в праздновании на этой великолепной эспланаде. Именно поэтому человек, чьего отца менее 60 лет назад могли не обслужить в местной закусочной, сейчас стоит перед вами и готовится принять самую священную присягу.

So let us mark this day with remembrance, of who we are and how far we have traveled. In the year of America's birth, in the coldest of months, a small band of patriots huddled by dying campfires on the shores of an icy river. The capital was abandoned. The enemy was advancing. The snow was stained with blood. At a moment when the outcome of our revolution was most in doubt, the father of our nation ordered these words be read to the people:
다 함께 우리가 현재 누구이며 또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여행해 왔는지를 기억하며 오늘을 표시해 둡시다. 미국이 건국되는 해의 가장 추웠던 달에 한 무리의 애국자들은 얼어붙은 강가의 꺼져가는 모닥불 옆에 몸을 움츠리고 모였습니다. 수도는 버려졌고 적군은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눈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혁명의 결과에 대해 가장 강한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음 글을 국민들에게 읽게 하였습니다.
Так давайте же отметим этот день, вспоминая тех, кто жил до нас, и долгий путь, который мы проделали. В год рождения Америки, в самый холодный месяц в году, небольшая группа патриотов сгрудилась у затухающего костра на берегах ледяной реки. Столица была покинута. Враг наступал. Кровь пятнами лежала на снегу. В тот момент, когда исход нашей революции был непредсказуем, отец нашей нации распорядился, чтобы следующие слова были прочитаны народу:

"Let it be told to the future world... that in the depth of winter, when nothing but hope and virtue could survive... that the city and the country, alarmed at one common danger, came forth to meet it."
"오직 희망과 미덕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한겨울이었지만 공동의 위험에 놀란 도시와 농촌이 모두 그 위험에 맞서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을 미래 세대에게 들려 주도록 합시다."
«Пусть узнают наши потомки… что в разгар зимы, когда могли выжить только надежда и достоинство, города и селения -все как один встали перед лицом надвигающейся угрозы».

America. In the face of our common dangers, in this winter of our hardship, let us remember these timeless words. With hope and virtue, let us brave once more the icy currents, and endure what storms may come. Let it be said by our children's children that when we were tested we refused to let this journey end, that we did not turn back nor did we falter; and with eyes fixed on the horizon and God's grace upon us, we carried forth that great gift of freedom and delivered it safely to future generations.
이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공동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경의 겨울에도 불구하고, 이 불멸의 구절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희망과 미덕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살을 에는 듯한 조류에 용감히 맞섭시다. 그리고 어떤 폭풍우가 다가오더라도 참고 견딥시다. 우리가 시험에 들게 됐을 때 우리는 이 여정을 끝내기를 거절했다고, 결코 등을 돌리거나 뒷걸음치지 않았다고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합시다. 그리고 신의 은총과 함께 지평선을 꿋꿋이 응시하면서 전진해 나갔기에 자유라는 위대한 선물을 미래 세대들에게 안전히 전달해 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합시다.
Америка! Перед лицом общей угрозы в зиму наших трудностей давайте вспомним те бессмертные слова. С надеждой и достоинством давайте еще раз справимся с ледяными потоками и выдержим бури, которые ожидают нас. И пускай дети наших детей скажут, что в час испытаний мы не позволили нашему пути закончиться, что мы не повернули вспять, и мы не дрогнули. Устремив глаза к горизонту и с верой в Бога мы сохранили этот великий дар свободы и донесли его до будущих поколений.

Thank you, God bless you,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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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버섯 (세르게이 코즐로프의 동화집 '안개속의 고슴도치' 중에서) 

 

정말 멋진 가을날이었어! 푸르디 푸른 하늘에 빨강 노랑 잎사귀들, 그리고 햇빛이 따사로운 날이었다구. 그런데 저녁때가 되자 아기 곰이 울기 시작했어. 

"왜 울어?" 아기 고슴도치가 물었어. 

"모르겠어", 아기 곰은 대답했지. "울고 싶어졌어." 

"주변을 좀 봐..." 

"봤어", 아기 곰이 말했어. "그래서 눈물이 나." 

"울 일이 뭐가 있어? 좋기만 한걸", 아기 고슴도치는 말했어. 

"기뻐서 눈물이 나", 아기 곰이 대답했어. 

"기뻐서 눈물이 나는 수도 있어?" 

"물론이지!", 이렇게 말하고는 아기 곰은 울음을 터뜨렸어. 

"자, 울지 마!", 아기 고슴도치는 한 발로 아기 곰을 쓰다듬었어. "내일이 오면 다시 해가 뜨고 다시 잎사귀들이 날아다니고 철새가 날아갈 거야." 

"날아가버린다고?", 아기 곰은 흐느끼더니 이젠 아예 목을 놓고 울기 시작했어. 

"하지만 다시 돌아올 걸", 아기 고슴도치는 말했어. "항상 돌아오는 걸. 겨울이 가고 눈이 녹으면 돌아올 거야." 

"겨울이 오잖아", 아기 곰은 구슬프게 울고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어. 

"응, 겨울이 올 거야. 하지만 겨울도 지나가. 그럼 모든 게 다시 돌아올 거야." 

"싫어! 싫다구, 알겠어?" 

"뭐가 싫다는 거야?" 

"모든 게 없어지고 날아가버리는 게 싫어!" 아기 곰이 외쳤어. 

"겨울은 금방 지나는 걸", 아기 고슴도치는 말했어. "너도 알잖아. 게다가 겨울은 정말 멋지단 말야!" 

"겨울이 오면 또 울거야." 

"겨울에? 그건 왜?" 

"겨울이 지나가는 게 불쌍해." 이렇게 말하고는 아기 곰은 아주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어. 아기 고슴도치는 말로는 친구를 도와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 

"이리와봐!" 아기 고슴도치는 소리쳤어. 

"어디 가려구?" 울어서 두 분이 퉁퉁 부은 아기 곰이 고개를 들고 물었어. 

"이리와 보라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아기 고슴도치는 아기 곰의 앞발을 잡고 숲으로 끌고 갔어. 

"어딜 끌고 가는 거야?" 

둘은 오래 전에 부러진 자작나무 옆을 뛰어 지나 시냇물 위에 놓여진 썩은 다리를 건너서 톱으로 잘린 사시나무를 넘고 불에 타버린 나무밑둥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산 위로 올라갔어. 

"자 봐!" 아기 고슴도치는 아기 곰에게 살구버섯을 가리켰어. 

조그마한 금빛 버섯이 무릎을 구부리고 어둠 속에서 이끼 위에 앉아 있었어. 

"보이지?" 아기 고슴도치는 말했어. "얘한테는 아빠도, 엄마도, 아기 고슴도치도, 아기 곰도 없어. 정말 외톨이지. 그런데 울지 않잖아." 

 

 

 

http://files.erizo.ru/audio/03_lisichka.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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