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완성이란 고통을 피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의 역할을 "선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에 겪는 자연스럽고 또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인정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333쪽

우리는 첫번째 책을 쓰느라 10여 년을 비참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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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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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이고, 진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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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rugoi.livejournal.com/3021464.html#cutid1  

* 사고 직후 휴대폰 사진 http://nakaba.ru/forum/viewtopic.php?f=3&t=83418&start=165  

* 사고순간 휴대폰 동영상 http://www.kp.ru/daily/24344/534153/ 

 

 

 

http://www.ntv.ru/novosti/172155/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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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3. 3 평양~1950. 11 강원 원주 부근.

소설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일문소설(日文小說)을 썼다. 본명은 시창(時昌).


주물공장(鑄物工場)을 운영하는 보수적인 아버지와 가톨릭을 믿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광주학생사건의 여파로 일어난 반일시위(反日示威)에 연루되어 쫓겼었고,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벌이다가 1931년에 퇴학당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佑賀] 고등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제국대학 독문학과에 입학, 학우들과 함께 문학동인지 〈제방 堤坊〉을 펴냈다. 이 잡지 제2호에 평양의 빈민지대를 배경으로 일제의 수탈을 그린 〈토성랑 土城廊〉을 일본어로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일 조선인 연극단 조선예술좌에서 이 작품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 1936년 10월 2개월 구류처분을 받았다.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잠시 근무한 뒤, 1939년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모던 일본사의 부탁으로 조선어판 편집에 참여해 이광수의 소설 〈무명 無明〉 등을 번역하고, 1940년에는 강원도 화전민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때 예비검속으로 50일간 구금되었다가 1942년 2월에 귀국한 뒤 평양에 머물며 소설창작에 전념했는데, 장편 〈태백산맥〉(국민문학, 1943. 2~10)은 이때 쓴 작품이다.


1944년 평양에 있는 대동공업전문학교 독일어 교사로 근무했고, 다음해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노천명 등과 중국에 파견되었을 때 연안으로 탈출해 조선의용군에 가담한 이후에는 모든 작품을 우리말로 썼다. 8·15해방 뒤 북한에서 김일성대학 강사, 북조선예술가총연맹 국제문화국장, 평안남도 예술연맹위원장 등 북한문화예술운동의 주도적 인물로 활동했다. 1950년 종군작가로 참여했다가 남한강 근처에서 심장병이 발작해 낙오된 뒤 유격대로 전사했다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3g16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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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2008.겨울
한국번역비평학회 엮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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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어로 쓰는 순간 이미 조선사회나 환경에서 촉발된 동기와 감정은 일본적 감정과 감각의 화를 입게 된다" (김사량)

조선인의 감각이나 감정은 그 표현과 '불가리적不可離的'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예켠대 슬픔이나 욕과 같은 감정 혹은 직관의 표현은 매우 에둘러서밖에 번역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김사량에 따르면, 언어 선택이 결코 중립적인 것일 수 없으며, 언어에 의해 동기와 감정 자체가 굴절되게 된다는 것이다. -237쪽

"외국문학 수입에는 국어의 발달이 동반할뿐더러 모어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번역문학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로서 번역은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번역시기라는 것이 있는 것이요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발달된 때에 비로소 그 문학 범위가 넓어질뿐더러 세계적 비평안으로서 문학을 논하게 된다. 따라서 국어가 발달되고 창작 범위도 훨씬 넓어질 것이다. '가갸날'과 번역 - 이러한 문제도 상당히 중요성을 가졌다." 정인섭, <'가갸날'과 외국문학 연구>, <<동아일보>>(1927.3.19).-238쪽

주지하다시피, 번역은 의미와 말의 등가성이라는 전제, 상호 형상화의 도식을 통해 하나의 언어와 다른 언어가 완전한 형태로 이미 존재하는 듯 가정하며, 그렇게 어떤 지역과 정체성을 자연화한다. 번역 과정 자체가 서로가 서로를 본질적인 경제, 실체로서 확정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전라도 하급 계급의 사투리를 내지어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 자체로 언어 이면의 이질적 주체들을 상기시킨다.-239쪽

특정한 정치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번역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자신을 타자들과 연관시킴으로써 발신자의 언어와 수신자의 언어 모두에 공동체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가 바로 번역이기 때문이다. 등가와 대응이라는 번역 기준이 작동되는 순간 해석은 곧바로 행위화한다. 파롤과 파롤의 등가 교환은 즉시 두 개의 언어 체계라는 잠재성을 구성케 한다. 따라서, 번역이 비록 제국 내부에서의 '통합'을 그 목적으로 내세운다 할지라도, 번역은 언제나 이질언어적 분할 자첼르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239쪽

그것이 지역방언이든 사회방언이든 방언이란 그것이 한 사회 전체의 관계성 속에 존재하는 한에서, 거의 번역불가능한 언어이다.-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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