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 3. 3 평양~1950. 11 강원 원주 부근.

소설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일문소설(日文小說)을 썼다. 본명은 시창(時昌).


주물공장(鑄物工場)을 운영하는 보수적인 아버지와 가톨릭을 믿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광주학생사건의 여파로 일어난 반일시위(反日示威)에 연루되어 쫓겼었고,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벌이다가 1931년에 퇴학당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佑賀] 고등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제국대학 독문학과에 입학, 학우들과 함께 문학동인지 〈제방 堤坊〉을 펴냈다. 이 잡지 제2호에 평양의 빈민지대를 배경으로 일제의 수탈을 그린 〈토성랑 土城廊〉을 일본어로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일 조선인 연극단 조선예술좌에서 이 작품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 1936년 10월 2개월 구류처분을 받았다.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잠시 근무한 뒤, 1939년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모던 일본사의 부탁으로 조선어판 편집에 참여해 이광수의 소설 〈무명 無明〉 등을 번역하고, 1940년에는 강원도 화전민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때 예비검속으로 50일간 구금되었다가 1942년 2월에 귀국한 뒤 평양에 머물며 소설창작에 전념했는데, 장편 〈태백산맥〉(국민문학, 1943. 2~10)은 이때 쓴 작품이다.


1944년 평양에 있는 대동공업전문학교 독일어 교사로 근무했고, 다음해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노천명 등과 중국에 파견되었을 때 연안으로 탈출해 조선의용군에 가담한 이후에는 모든 작품을 우리말로 썼다. 8·15해방 뒤 북한에서 김일성대학 강사, 북조선예술가총연맹 국제문화국장, 평안남도 예술연맹위원장 등 북한문화예술운동의 주도적 인물로 활동했다. 1950년 종군작가로 참여했다가 남한강 근처에서 심장병이 발작해 낙오된 뒤 유격대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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