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대한 몽골군의 정벌은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불안을 안겨주었고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서방 정벌을 '황화黃禍', 즉 '황인종으로부터의 재화災禍'라고 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한 성전聖戰'에 나섰다.
정수일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효형출판, 2002)
120여년 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 Richthofen이 고대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와 서북 인도를 거쳐 로마에 수출된 사실을 감안해 그 교역로를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영어로 Silk Road, 즉 '실크로드'라고 명명했다.-11쪽
이븐 바투타(1304-1368)... 21세에 홀홀단신으로 세계 탐험의 대장정에 나서서 30년간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 10만km를 답파하고, 불후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남겨놓았다. ... 우리나라에는 2001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완연본이 나왔다.-27쪽
파피루스(학명 Syperus papyrus)는 다년생 수초로서 수심 1m 이내의 진창에서 서식하며 키는 2-3m 가량이다. ... 영어의 'paper(종이)'는 파피루스에 그 어원을 둔다.-39쪽
함무라비 법전 한글 번역본바빌로니아 왕국을 창건한 함무라비Hammurabi(2850-2200 B.C.)가 제정한 최고의 성문법전인 이 법전(총 282조)에는 상업을 비롯한 경제행위에 관한 조항들이 절반이나 되는데, 이것은 교역을 통해 선진적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이 주변 여러 지역에 전파되었음을 시사한다. 기원전 17세기에 제작된 점토판에 약 3,000행의 설형문자로 새겨진 법전 전문을 조철수 박사가 한글로 옮겼다.-53쪽
마르티니의 <중화제국신도>에 실린 중국 전도1643년 중국에 온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니M. Martini(1614-61)는 1650년 대소인 자격으로 로마에 파견된 기간 중에 암스테르담에서 17폭의 지도가 수록된 이 지도첩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지도첩에서 처음으로 '진秦'이 'China(라틴어 Sina)'의 어원이라는 설을 제시했다.(1655)-164쪽
천당
푸르고 푸른 하늘 푸르고 푸른 호수 푸르고 푸른 초원 여기는 나의 집,
치닫는 준마 새하얀 양떼 그리고 처녀 여기는 나의 집
너를 사랑한다, 나의 집 나의 집 나의 천국이여.
...
크고 많고 화려하고 정교하고 유려한 것, 이것이 중국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놀랍고 굉장했다. 정말 기죽이는 대단한 문화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엄청나다'라는 말이 나오면서도 한구석에서 '느끼하다'는 말이 또 새어나온다. 굉장하면서 느끼한... 한데 이 느끼함을 상쾌하게 씻어주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은 전시장 한구석에서 불어왔다. 바로 중국이 흉노라고 부르는 초원문화였다. 그들의 금제 허리띠 장식을 기회 있으면 꼭 한 번 보기 바란다. 정말 뒤통수를 때리는 감각이다. 중원문화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형태였다. ... 중원문화의 조형물이 모두 정지되고 안정된 형태라면(달리는 말조차도), 흉노의 조형물은 모두 움직임을 담고 있었다. 늘 움직이는 생활이었기 때문이리라.그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옆구리를 후비고 들어오는 비수 같은 것이었다. 시원하다. ... 그것이 중원문화의 느끼함을 중화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는 다 각기 나름의 맛과 존재해야 할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흉노문화는 우리 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42-44쪽
서서히 '텡그리(Tengri)'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텡그리는 몽고를 비롯한 초원 유목민의 말로 '하늘'이라는 뜻이다(땅은 '야르'라고 한다.) 단군도 텡그리를 한자로 쓴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당골무당의 '당골', 단골집의 '단골', 또 전라도 방언의 당골레로 남아 있지만. 김영종 선생은 '칸'이라는 말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칸'은 물론 유목민의 수장을 부르는 호칭이다. 칭기즈칸, 마립간, 거서간, 각간, 대각간 등에서 볼 수 있는 '칸'과 '간'이 그것이다(신라는 초원에서 내려왔으니까). 대한민국도 대칸민국에서 나왔다는 것이다.-45쪽
대청지: 키르기스스탄 톈산 산맥 해발 1609미터 높이에 있는 대 호수 이식쿨 상온이 섭씨 8도이며, 14세기쯤 중앙아시아 일대에 대제국을 건설한 티무르 황제가 호수 한가운데 섬에다가 이궁을 지었는데, 지각의 단층운동으로 섬까지 송두리째 가라앉았다고 한다. 1958년 소련 아카데미 고고학자들이 잠수 탐색작업으로 티무르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견했다.
<현장 서유기>, 6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