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3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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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전격으로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한권을 제외하고 원작자가 쓴 순서대로라면 그랜드 펜윅 시리즈 2권에 해당하는데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한국에선 시리즈의 3편이 2편으로 먼저 출간되고 이게 그 다음에 번역되어 나왔음. 

책 말미에 번역자의 변이 있으니 그 이유는 그걸 보고 각자 납득을 하던가 말던가 하면 되고...

몇년 전 황당하게 미국을 점령했던 그랜드 펜윅 사람들이 다시 잊혀질 무렵 중세에 머물고 있는 펜윅성에 온수가 공급되는 상수도 시설 설치를 위해 마운트조이 백작이 우주 개발에 뛰어들겠다는 이유로 미국에 차관을 요청한다.  그의 속셈을 눈치챈 미국에선 역시 정치적인 계산으로 요청한 500만불이 아니라 5천만불을 무상 제공. 

그렇게 서로서로 행복하게 진행이 될 일이 고지식한 공녀의 남편 털리와 펜윅에 사는 천재 코긴츠 박사 덕분에 진짜 진행이 되기 시작. 이런 류의 소설들이 다 그렇듯 적당한 우연과 납득이 안 될 것도 없는 상황이 엮이면서 결국 그랜드 펜윅은 미국과 소련을 젖히고 달에 가장 먼저 착륙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적당히 교훈적인 또 기적이 반복되지 않도록하는 양념이 곁들여지면서 상황 종료.

한권을 읽는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이 책이 나오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자기 시대를 꿰뚫는 통쾌감을 느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렇지만 40년이 흘렀음에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재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곳곳에 배치된 위트 넘치는 대화와 표현들은 냉전라는 이미 낡아버린 배경을 갖고 있음에도 이 소설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인 것 같다.  

냉전의 끝자락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과 연결되어 더 한 재미를 주는 책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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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번역가들
쓰지 유미 지음, 송태욱 엮음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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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번역자인 쓰지 유미라는 저자가 자신이 만난 번역자들에게서 각자의 번역작업과 어려움, 번역자가 된 과정과 동기 등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을 취재해 엮은 책으로 일단 읽기가 쉽다.  번역자 개개인이 길어야 10쪽 내외로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 들려주는 형식때문이기도 하지만 막연히 알고있던 번역자의 작업과 나름대로 독특한 그들의 배경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지만 신변잡기적인 단순한 토로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국적과 언어를 갖고 있는 번역자들이 각자 속한 자신의 국가와 사회에서 문제와 장단점을 토로하고 있고 또 각자의 작업 -원저자가 살아있는 경우 그들과 얽혔던- 에 관한 내용과 번역 과정을 꽤 전문적으로 얘기해준다. 

번역이라는 작업과 그 일에 종사하는 전세계 번역자들의 기본을 훑을 수 있는 책인 동시에 각기 다른 개개인임에도 갖고 있는 번역에 대한 인식이 일맥상통함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어도 겨우겨우 쓰는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현란한 이중언어사용자인 그들이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서 하는 얘기가 진정한 이중언어사용자는 없다이다.  한쪽 능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고 그건 단순히 언어에 관한 맥락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전반에 대한 이해와도 연관된다는 요지의 얘기를 모두들 하고 있다. 

수십명의 번역자들의 글이 모여있기 때문에 일관된 흐름이나 깊이는 없지만 종사자들의 모습을 엿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번역자들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음. 

1999년에 경쟁적으로 나왔던 1000년 어쩌고 하는 수많은 책 중에서 지난 2000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의 석학들의 글을 모은 책이 있었다.  그때 꽤 많은 사람들이 활자술과 책을 들었는데 지금 나도 그 대답에 절대 공감하고 또 번역이라는 걸 생각해낸 인간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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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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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먹먹함. 

책을 읽고난 내 감정은 이 단어로 요약이 되겠다.  사람에 따라 건드려지는 감정선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는 그 건드려지는 깊이가 아주 깊고 넓은... 후유증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처음 읽어나갈 때는 엄마의 말뚝을 반복해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초반부는 엄마의 말뚝과 거의 쌍둥이에 가까울 정도로 흡사하다.  하지만 엄마의 말뚝에서는 세련되게 치장하고 문학적으로 정제됐던 부분들이 이 싱아~에서는 날 것에 가깝게 드러난다.

박완서 선생 자신이 토로했듯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 단어와 표현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놓고 싶었다는 그 의도에 걸맞게 내가 전혀 몰랐거나, 혹은 기억 저 아래 깊숙이 파묻혀서 거의 완전히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여기선 정말 풍부하게 살아서 생동하고 있다.  한 백년 쯤 지나면 문학이 아니라 언어학에서 1990년대에 쓰여진 한국어 어휘의 보고로 연구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하게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고 했다는 게 정말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로 표현 하나하나가 날 것인 양 보이면서도 아주 정교하고 또 신선하다.  쓰고 싶은 걸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작가의 공력이랄까. 

굳이 비유를 하자면 경지에 다다른 무림 고수의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검무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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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8-2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십 년도 전에 읽었던 책인데 눈물 뚝뚝 흘리면서 감탄하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나온 책들은 사실 좀 많이 실망하고 있지만....(너무 말랑말랑해)

popy1 2009-09-01 13: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노작가의 연륜이 배어나는 글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차분하고 조용조용하고...
 
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픽션을 즐기는 내게 아주 오랜만에 묵직한 책이 떨어졌다.  현대사는 감정이입이 심해서 질색이지만... 그래도 때때로 취향과 상관없이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래된 정원이 바로 그것.

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던 오현우라는 남자가 18년만에 출소한다.  그에겐 도피 막바지에 그를 숨겨줬던 한윤희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건 3년 전에 죽은 그녀가 죽기 전에 보낸 편지.  그녀와 함게 도피해 살았던 갈뫼라는 곳으로 간 그는 둘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한윤희가 남긴 그림과 공책을 발견한다.

그 공책에 적힌 건 둘이 함께 살았던 시절의 불안하면서도 행복했던 기억과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가 살았던 시간의 기록.  그녀의 흔적을 둘이 함께 했던 갈뫼에서 6일 정도에 걸쳐 훑으면서 오현우는 그녀가 낳은 자신의 딸 은결을 만나러 서울로 돌아온다.

전체적인 느낌은... 먹먹하다. 

한국의 순수문학 작가들은 비극을 순수문학의 정석으로 보는 것인지 이렇게 읽고 난 뒤에 항상 후유증을 남긴다.  더구나 아주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이 안에서는 어렸다는 이유로 내가 운좋게 비껴나간 유신, 5.18, 6.29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역사 안의 개인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줬는지에 대해 어떤 웅변보다 더 크게 외치고 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생회관 건물과 그 주변 바닥을 채우던 그 비장하고 전투적인 걸게 그림들은 절대 주지 못하던 동요과 공감을 끌어낸다고 할까?

이 소설은 서간문이라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글쓰기 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적인 황석영의 소설로선 드물게 촉촉하니 감성을 자극하는 여성의 시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고.  황석영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기존에 읽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작품을 낼 때마다 매번 다른 시도를 하고 그게 늘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황석영이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변화, 시대를 관통하며 곰삭여낸 글에 대해서는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독일, 프랑스, 영어, 일어로 번역이 다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사용한 우리말의 표현과 전라도 사투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함.  이 비교는 소위 바이링궐만이 가능한 거겠지.  

단기전에서는 칼이 펜보다 강하지만 장기전에서는 확실히 펜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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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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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돈까밀로 신부님과 같은 류의 뭔가 가볍게 읽을 풍자소설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ㅈㅅ일보 만평과 같은, 나와 정치색이 전혀 맞지 않은데다 수준까지 낮은 풍자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은 고로 원하는 수준의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오랜 갈증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수작.  50년이 지난 글이고 당시의 냉전정치상을 나름대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낡거나 구닥다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편의 잘 짜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유쾌한 웃음.  소설에서 확실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뭐 이런 유치뽕이냐!'라는 분노를 자아낼지 모르겠지만 그 그랜드 펜윅과 주변 환경을 일종의 판타지로 봤을 때 이 소설 안에 구현된 세계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벌어지는 얘기 역시 절대 얼토당토하지 않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논리와 사건 구조를 이뤄나가고 있다는데 찬탄.

그리고 번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트가 넘치는 대화와 문체 역시 책장을 빠르게 넘기도록 하는데 일조.  이건 번역자를 칭찬해줘야할 부분인 듯.

그랜드 펜윅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약소국가의 국민이기에 갖는 대리만족도 컸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또 우울할 때 한번씩 다시 집어들 것 같다.

시리즈가 3편이 더 있다는데 카드비 결제가 다음달로 넘어가는 이달 20일 이후에 주문 예정. ^^   유쾌한 독서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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