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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 까치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해리 포터가 한국을 강타하기 이전 이 책을 열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수많은 낯선 이름들에 황당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 같다. 그러나 히트한 동화 덕분에 여기 등장한 수많은 동물들은 이제 그렇게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 책에선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오랜 환상의 동물과 한때 있었겠지만 사라져서 이제는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동물들, 또 문학가들이 새롭게 창조해 세상에 들여보낸 동물들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여기 있는 존재들은 (제목에는 동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동물이라기 보다는 존재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듯 하다) 서구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도깨비나 처녀 귀신, 몽달귀신, 삼신할매 등이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문학에 등장할 때 별다른 부연 설명없이 상징이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여기 나온 바실리스크며 벤쉬, 브라우니 등도 그들에겐 마찬가지다.
때문에 서구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이런 존재들의 등장을 통한 암시를 이해하지 못해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이후 그런 것은 많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감사...
브론테의 소설 중에 남자 주인공의 죽음을 여주인공이 느끼는 부분에 밴쉬 요정이 미친듯이 날뛰는 듯한 바람 소리였다...는 류의 표현이 있다. 당시에는 그냥 폭풍을 묘사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영국쪽에서 밴쉬 요정이 울음은 가족이나 연인의 죽음을 예고한다고 한다. 이런 류의 상징적 표현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수없이 많다.
좋아는 하지만 읽으려면 부담이 가는 보르헤스를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만족스런 책이다. 수많은 서구 상상계(동양도 약간은 언급이 되지만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다)의 존재들을 짤막짤막하게 소개해서 진도가 빠르긴 하지만 이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쉽고 즐겁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서구의 환상문학과 신화, 전설 등에 입문하기 전에 봐두면 좋은 내용이다.
동양의 이런 동물(?)류에 관심이 있다면 산해경을 추천~ 서유기 등을 읽을 때 느낌이 또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