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국화 곁의 여인]
-캔버스에 유채, 73.7*92.7cm
-Havemayer Collection,New York,USA

부인의 초상화에 꽃을 배치하는 것은 예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드가처럼 화면의 중앙, 가장 중요한 부분에 커다란 국화를 배치하고 인물을 바른쪽 구석으로 몰아 넣은 변칙적 구도는 흔하지 않다. 물론 이는 드가의 의식적 시도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방법을 꾀하고 있는 것인다. 일반적으로 모델은 에르테르 부인이라고들 하는데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드가의 <1860년경의 에르트레부인>이라는 데생과 대조해 보면 서로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은 화려한 꽃과 배경의 식물 무늬 벽지 그  리고 인물의 뛰어난 묘사는 감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무대위에서의 발레 실습]
-1874
-캔버스에 불투명수채, 66.0*82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 그림은 선회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과 빛, 광채들이 전체의 구도 속에서 보다 완만한 선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는데 모네, 르느와르, 세잔, 피사로, 시슬레의 작품과 함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드가는 사실 그의 젊은 동료들 처럼 반항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진 않았지만 신문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신이상자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작품에 대한 평이었다.


출연대기 중의 무용수들]
-1878~80
-캔버스에 유채, 175*108cm
-보스턴 미술관
세사람의 무용수가 의상의 통일된 색상에 의해 하나로 되어 있다. 의상은 약간 회색을 띠고 있지만, 전체로서는 밝은 색조가 넘치고 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르고 바른쪽 아래로 무용수들을 배치하고 무대 안쪽에는 동양풍의 짙은 무대막을 그려 넣었다. 곁에 있는 무용수들은 토우 슈즈를 신은 발의 윤곽이 확실하다. 이러한 방법은 드가가 수업 시대에 익힌 신고전주의 전통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테라스에서]
-1881
-캔버스에 유채, 100.3*81cm
-시카고 미술관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1881년 여름,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르느와르의 그림에 인물과 배경을 맺는 호흡이 불가사의한 조화점에 달한 듯한 한 시기가 있었다.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빛과 개개의 형상 표면에 떠도는 빛이 서로를 부르며, 미묘하게 빛나는 조용함이 화면위에 나타나 있었다. 르느와르의 생애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이 작품은 그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채에 이르는 빛의 효과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러한 인상파 화가들의 본질을 나타낸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전경의 형상은 모두 착실한 실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뺨의 장미빛, 그리고 털실 뭉치의 푸른 빛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서도 개개의 형상은 자신의 빛을 잃는 일 없이, 어디까지나 질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색채의 교향곡에 참가한다. 그런데 후경은 일변해 있다. 그러면서도 전경과 후경이 이상할 정도로 융화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부인]
-1875년경
-캔버스에 유채, 93.4*74.3cm
-시카고 미술관
마르셀 프루스트는 르느와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딸들>을 보고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작품속에서야말로 후세 사람들은 상류 사회의 실내 생활과 귀부인의 전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초상화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여기엔 있다.]
바로 그런한 점이 이 작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레이스로 된 리본으로 테를 두른 실크 가운, 잘 닦여진 피아노 위의 금으로 된 촛대, 그리고 중후한 맛을 주는 주단, 이러한 것을 모두에서 19세기 파리의 부유한 가정의 생활양식 속에 시정(詩情)을 발견하고 있던 반면에, 상류계급측에서는 르느와르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르느와르 측에서도 계급의식이나 사회적 장해에 대한 자각이란 것이 없었던 것같다. 이 그림의 모델은 호가의 젊은 아내 알리스이다

 

[첫나들이]
-1875~76
-캔버스에 유채, 63.5*50cm
-런던 국립회화관
이 작품은 르느와르가 한창 젊은 시절에 그린 것 중의 하나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한사람의 여성이 된 딸이 모친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러 나온 첫나들이 장면이다. 이처럼 처녀에서 한 여성으로 자라고 드디어 결혼할 무렵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이와 같이 축하하는 뜻에서 나들이를 한다. 그것을 첫외출 또는 첫나들이라고 한다.
여기 있는 이 처녀도 축복을 받으며 새로 마춘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모습으로 극장을 특등석에 들어온 장면이다. 그 처녀의 옆모습을 그림의 근경으로 삼고, 아래층 객석이나 무대를 슬쩍 보는 장면을 원경으로 삼은 점 등은 매우 교묘한 구도이다. 거기에 처녀의 모자나 꽃다발의 화사한 빛깔에 의하여 아름다운 빛깔의 부조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화면 전체가 조화 속에 알맞게 감싸여 있어서 매우 상쾌한 감촉에 넘쳐 있다. 모자와 의상은 푸른 색조가 특히 아름답다.

[조로를 든 소녀]
-1876
-캔버스에 유채, 100*73cm
르느와르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언제나 인간을 주제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모네나 피사로 등이 외광을 바탕으로 풍경을 그리고 인간의 모습은 희박해져 가는 경향이었던 것에 반해, 르느와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을 주제로 삼아 그렸다. 인상파가 만들어낸 새로운 외과의 세계에 즐겁게 살아가는 신선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75년 경은 인상파의 양식이나 기교가 이룩되었던 시대여서 이 작품에 안정감이 있는 자신이 넘친다. 젊은 시절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졌던 그는 촉감적인 터치에 능했다. 귀여운 소녀가 조로를 들고 뜰에서 놀고 있다. 애무하는 듯한 터치가 우리들로 하여금 어린이와 가깝게 하고 동심으로 이끌어간다. 르느와르는 인간과 공감하는 것을 그의 그림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가 인물을 감싸가고 있는 빛의 필촉은 터치 하나하나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전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캔버스에 유채, 81x65.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별들이 반짝이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92cm
-뉴욕 근대미술관
이 작품은 밤 풍경을 그린 것으로, 장소는 아를르가 아니라 생 레미이다. 레이 의사가 있는 정신병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의 작품이며, 제작 시기도 그의 편지로 보아 1889년 6월임을 알 수 있다.
생 레미 마을은 약간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 보인다. 왼쪽 전경에 높이 솟아 있는 삼나무와 중경 중앙에 있는 교회의 첨탑과 대조가 교묘하게 넓은 공간을 나타내며, 그 건너편에 멀리 언덕이 보인다. 하늘에는 달과 수많은 별들이 거대한 빛을 발하고 있고 꿈틀거리는 성운과 같은 것의 엉킴이 화면 전체에 비현실적인 장대한 운동감을 부여해 준다.
이 그림은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진 펜화와, 같은 장소를 다시 멀리 떨어진 높은 언덕에서 데생한 연필 데생화가 이 <별들이 반짝이는 밤>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브레멘 미술관에서 분실되고 말았다.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93*73cm
-런던 국립 미술관
반 고흐는 1888년 여름 아를르에서 몇 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꽃송이가 3개인 것, 12개인 것, 14개인 것 등이 있다. 그는 고갱과 함께 쓰게 될 자신의 아틀리에을 해바라기의 그림만으로 장식하려고 한다고 그 무렵의 한 편지에 쓰고 있다. 몇몇 해바라기 그림 중에서 가장 우수한 그림이라고 보이는 이 작품에는 잘 헤아려 보면 꽃이 15송이가 있다. 꽃봉오리인 채로 있거나 활짝 피었거나 하는 차이는 있지만 꽃송이만은 분명히 15송이이다.그러나 그의 편지에서는 15라는 숫자는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 그는 아무래도 14송이의 해바라기 그림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1889년 1월의 편지에는 해바라기 그림의 복사판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 반년 동안에 7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어느 것이 여름에 그린 것이고, 어느 것이 겨울에 만든 복사판인지 확실치 않다. 반 고흐의 작품의 총 목록(1970년)에 의하면 이 그림은 겨울에 만들어진 복사판으로 되어 있다

[반 고흐의 침실]
-1888
-캔버스에 유채, 73*91.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 그림이 그려진 1888년은 아를르에 와서 고갱이 함께 생활하며 제작 활동을 하던 해였다. 공동 생활은 이윽고 정신병의 발작, 귀를 자르는 사건등 비극적인 종말로 끝나지만, 그런 것을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고흐에게는 기대에 부푼 나날이었다.
침실 그림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고갱에게 보낸 편지속에서 새로 실내 장식을 하기 위해 침실을 데생했다고 쓰고 있다. [침실 데생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평탄한 면을 만들면서 두텁게 칠한 붓을 크게 움직여갈 뿐...나는 이들 여러 가지 색으로 여기에 절대적인 평화를 표현하고 싶다.]
점묘나 선묘를 억제한 평평한 칠의 시도, 이것은 같은 해 여름에 그려진 <아를르의 햇볕>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고흐에게는 저적으로 실험적인 것이다. 침실 그림은 그 후에도 고흐의 마음을 끈 것 같다. 생 레미의 정신 병원에서도 침실의 그림을 두 장 그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곡마사]
-1931
-캔버스에 유채, 100*82cm
-암스테르담 미술관
샤갈은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가선 서커스를 주제로한 연작을 그리게 되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이다.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고 꽃다발을 입에 문 백마가 있고, 그위에 올라탄 빨간 부채를 든 빨간 옷의 여인과 초록색 상의의 연인이 있다. 오른쪽 밑의 멀리로는 러시아의 마을과 곡마단이 있고, 그와 대각선을 이루는 화면 왼쪽 위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사나이가 보인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사랑의 찬가인데, 샤갈의 독특한 환상인 이 찬가는 주제 요소의 매혹적인 중첩과 꿈속 같은 색조 분위기로 인해 무한한 변주를 보인다. 샤갈은 만년의 많은 작품에서처럼 유년 시절의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그에게 있어 그러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상상력에 의해 여러번 되풀이되고 그모습도 달리하고 있으나 긴 생애 동안 그의 마음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러시아, 암소, 그리고 다른 것들에게]
-1911
-캔버스에 유채, 156*122cm
러시아 태생으로 1910년에 파리로 간 샤갈은 맨 먼저 야수파의 강렬한 원색 구가(仇家)에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스는 입체주의의 영향도 빋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롭고 다이나믹한 공간 취급의 방법을 자신의 환상의 세계에 결부 시키는 형식으로 입체주의를 소화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당시 레제, 들로네, 모딜리아니, 수틴 등이 살고 있던 몽파르나스 근처의 라 디슈(벌집이라는 뜻)라 불리던 보잘것 없는 공동 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세계에 전념했다.
거기에서 그는 시인 아폴리네르, 생드라르스 등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생드라르스의 시에서 힌트를 얻어, 구고 온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물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유태인 교회도 보이는 주택가, 자신을 길러준 러시아 대지를 상징하는 암소, 목이 달아나고 있는 여인, 무지개 빛이 비낀 하늘 등을 중첩시킨 화면 구성은 입체주의의 적용이라 할 수 있겠다.

 

[나와 마을]
-1911
-캔버스에 유채, 192.2*151.6cm
-뉴욕 근대미술관
파리에서 입체주의의 분석적 방법을 습득하고, 다시 들로네와 같은 화가의 빛을 동반한 색채 수법을 흡수한 샤갈은 그 새로운 여러 수법을 자기 것으로 하여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는 연작을 남겼다. 이 대작에는 멀리 교회와 집들이 나타나 있고, 농구를 짊어진 농부와 우유를 짜는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 아래쪽엔 꽃이 핀 한 그루의 나무가 서있다. 그리고 화면의 양쪽을 암소의 머리와 샤갈 자신의 얼굴이 점거하고 있다.
고향 생각의 여러 요소들이 원과 삼각형 및 대각선, 신비스런 색채, 이미지의 투명한 중첩, 파랑과 빨강과 초록의 대비 속에 마음껏 환상의 날개를 편다. [파리에 와 있는 나에게 고향 마을이 암소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이 그리운 듯한 암소의 눈과 나의 눈이 뚫어지게 마주보고, 눈동자와 눈동자를 잇는 가느다란 선이 종이로 만든 장난감 전화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출처:Grand collection of world ar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