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책을 읽다 신기한 구절을 만나 여기에 옮긴다.



우리가 똥을 누면, 오줌도 자연히 따라 나온다. 똥 누기 직전에 오줌을 누었을지라도, 몇 방울쯤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방광과 직장은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거의 동시에 작용하여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다르다. 똥은 똥대로 오줌은 오줌대로 따로 눈다. 우리처럼 똥을 눌 때, 오줌이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똥만 누고 오줌은 나중에 다시 누는 백인종의 습관을 신기하게 여기듯이, 저들도 우리 쪽을 기이하게 생각한다.

일본인 야스가와 미쓰끼(安川實)의 경험담이다. 그는 1953년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 입학허가를 받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변기 20개가 칸막이 없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당연히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똥을 누게 마련이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물었다.

"어이 미쓰끼, 너는 똥 누기 전에 오줌을 누냐?"
"나는 둘 다 한꺼번에 하니까 편하다."

그러나 주위 학생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미쓰끼는 그 가능여부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

나는 40여명 가까이 모여선 학생들 앞에서 변기에 앉아, 나오는 것이 잘 보이도록 허리를 조절하면서 분명하게 '우쓰 자아, 보단 보단' 소리와 함께 똥.오줌을 함께 떨어뜨린 다음, 밑도 닦지 않은 채 눈앞의 30불을 거머쥐고 변소에서 뛰어 나와 달아났다(礫川全次, 1996:22).

유럽 사람들은 어떠한가? 독일의 한 대학교수에게 묻자,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으나, 나와 아들은 아침에 일을 볼 때, 똥만 누고 오줌은 뒤에 따로 눈다"고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미국 아리조나주 피닉스시 부근에 거주하는 원주민(아파치족)의 관습을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우리와 같았다. 멕시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몽골로이드와 코카소이드 사이에 나타나는 인종적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어떤지 궁금하다.

- 14장 '똥.오줌 누는 방법' 전문



40명 앞에서 똥과 오줌을 함께 눈 남자, 미쓰끼도 대단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저자 김광언과 독일 대학교수의 대화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벽안의 대학교수에게 "유럽 사람들은 똥을 눌때 오줌도 함께 누는가?"라고 묻는 학자의 모습이 미소짓게 한다. 대답은 또 어떤가. 유럽의 학자답게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으나'라고 운을 뗀 그는 "나와 아들은 아침에 일을 볼 때, 똥만 누고 오줌은 뒤에 따로 눈다"고 진중히 답한다. 아들의 배변까지 챙기는 아비의 마음이 애틋하다.

뒷간의 어원과 역사에서부터 각 지역별 뒷간의 특징, 절간과 궁궐의 뒷간, 그리고 뒷간과 연관된 속담에 이르기까지. <뒷간>은 우리가 매일 들락거리지만, 정작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뒷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뒷간 하면 '똥오줌'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니 '똥오줌의 문화사'라고 해도 좋겠다. 글로 채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을 수많은 도판들이 채우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매우틀'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되어 인터넷 검색을 하니 "왕이나 왕비가 사용한 이동식 변기"라고 나온다. 책에 따르면 "매우(梅雨)는 똥.오줌을 이루는 한자이다. 매는 큰 것, 우는 작은 것을 빗댄 향기로운 이름이다"라고 한다. 雨는 시적 표현이라고 해도,  梅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임금의 똥은 매실만큼 달콤하다는 걸까?

그런데 이 매우틀, 왕이 썼다고 하기엔 조금 조잡해보인다. 청자나 백자요강을 두고 굳이 임금이 거친 나무결에 엉덩이를 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왕실의 매우틀은 따로 있었다. (검색 결과와는 달리 상류층에서도 매우틀을 썼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임금의 매우틀. "귀인이 쓰는 것이라, 나무틀에 우단을 씌웠다"고 한다. 우단은 바로 벨벳이니, 생각만 해도 엉덩이가 부드러워지는 기분이다. 저런 곳에서 일을 보니 매실처럼 달콤한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여기서 우리는 지젝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신비에 싸인 X, 우리 존재 내면의 보물은 자신을 이질적인 침입자로서, 심지어는 배설물이라는 기형(奇形)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문과 연관은 충분히 정당화된다. 즉 내부의 무매개적 출현the immediate appearance of the Inner이 형태 없는 배설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배설물을 선사하는 어린 아이는 일면 자신의 X 인자의 직접적인 등가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로이트Freud가 배설물을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선사하는 선물의 최초 형태로, 가장 깊은 내부부터의 물체로 간주한 것은 외견만큼 소박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종종 간과되고 있는 사실은 타자the Other에게 제공된 자신의 조각은 근본적으로 숭고한 것the Sublime과 (우스꽝스러운 것the Ridiculous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 배설된 것the excremental 사이를 왕래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라캉에게,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특성들 중 하나는 인간에게만 배설물의 처리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 슬라보예 지젝,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 중에서

다시 말해, 매우틀에 싼 임금의 똥은 그것을 치워야 하는 이들(타자the Other)에게 '숭고한 것the Sublime'이 되고, 요강에 싼 범부의 똥은 '배설된 것the excremental'이 되는 것이다. 똥은 종종 농담의 소재가 되지만, 남편의 요강을 치워야했던 부인들에게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것the Ridiculous일 리 없다. 그것은 실재다. 그런 의미에서 지젝의 지적은 실로 적확하다.

그렇다고 모든 임금의 '매우'가 숭고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은 대신들을 뒤에 두고 요강에 오줌을 눈 경종의 일화.

   
  (전략)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대하여 몸을 조금 돌려 오줌을 누므로, 잠시 물러가려고 하자 막았다. (중략) 이거원이 아뢰었다. "한 나라 무제는 관을 쓰지 않고 급암(汲黯)을 만난 일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소피를 보실 때 하교도 않으셨고, 환시(宦侍) 또한 알리지 않았으니, 이는 신료(臣僚)를 대하는 도리에 부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경종실록> 2년 [1722] 6월 24일)  
   

임금이건 개건, 자고로 똥오줌은 가려야 하는 법. 똥오줌을 잘못 가리면 이런 일도 생긴다.

   
  옛적에 장길손이라는 거인이 있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 언제나 배가 고팠다. 돌.흙.나무 따위를 닥치는 대로 먹고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였다. 설사가 흘러내려 태백산맥이 되고, 똥 덩어리는 튀어서 제주도가 되었다.
 
   
 
똥과 관련된 속담 중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한살 더 먹고 똥 싼다"
- 나이를 먹어 가면서 철없는 짓을 더 한다.

"똥 누러 가서 밥 달라고 한다."
- 일의 순서를 모른다.

"적게 먹고 가는 똥 누어라."
- 욕심 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아라.

"빨리 먹은 밥 똥 눌 때 보자 한다."
- 서두르면 탈이 생긴다.

"똥도 못 누고 불알에 똥 칠만 하다."
- 목적도 못 이루고 도리어 낭패를 본다.

"무섭지는 않아도 똥 쌌다는 격이다."
-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한살 더 먹고 똥 싸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마지막 속담을 요즘 말로 바꾸면 이렇게 되겠다. "똥은 쌌지만, 무섭지는 않다" 과연... 신년을 맞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오래도록 음미할만 하다.


이외에도 책에는 과거에는 여성들도 서서 소변을 보았다는 이야기와 소변을 음복하고 대변을 습진에 약으로 썼다는 이야기 등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바로 한 장의 그림.


아프리칸_스타일.jpg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2010년에는 순리대로 삽시다!

-

여기까지 쓰고, 글을 올리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아, 프로이트!)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나 추가한다.

아무리 2010년에는 순리대로 살자고 마음을 먹어도, 인생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수많은 장애물들, 방해자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여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제안이 있다.


   
  똥포는 얼굴에 쏘는 무기이다. 성 안에 항아리 네 개를 두고 위, 아래 사람과 남녀가 따로 뒷간으로 쓰게 한다. 그 안의 똥에 때로 허드레 물을 섞은 다음, 잘 저어서 흙탕처럼 만들어 대나무 통에 담는다. 통 끝의 작은 구멍을 적에 대고 내용물을 쏜다. 통 안에 풀 뭉치는 넣어서 입구를 막으며, 둥근 나무로 만든 밀대를 통 안으로 밀면(풀 뭉치 대신 둥근 나무 끝에 삼 새끼를 동여매어도 좋다) 똥물이 튀어나간다. 힘이 있으면 대 여섯 걸음 밖으로 나가며, 또 얼굴을 맞출 수도 있다(풀 뭉치에는 끈이 달려서 쏘고 난 뒤에 다시 당긴다). 바가지를 쓸 수도 있지만, 허비되는 양이 많을 뿐더러 적중률도 낮다.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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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009-12-23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똥 이야기의 담당분야...를 따져보니, 역시 인문이 적격이군요. 광폭의 소재를 다루어 오시다 기어이 똥을 다루게 되셨으니 큰 성취라 일컬을 만 하네요. 축하드려요~

활자유랑자 2009-12-28 13:07   좋아요 0 | URL
똥도 못 누고 불알에 똥 칠만 하는 격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송구스럽습니다.

고랑이 2009-12-23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계속 똥, 똥 거리는 페이지를 읽으니까 기분이 묘한데요. 아프리칸 스타일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줄 것 같지만..물고기들까지 생각한 마음씨가 아름다워요(?) 왠지 저도 여기에 또 하나의 배설을 한 기분이네요ㅋㅋ 그래도 무섭지는 않아요..

활자유랑자 2009-12-28 13:08   좋아요 0 | URL
2010년도 그런 마음(?)으로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