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9년만이었다. 일본어를 그렇게 오래, 바로 옆에서 듣게 된 것은. 그때, 나는 일어를 필수교양으로 수강해야했던 스무 살의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알라딘에서 인문․사회과학․과학․역사 분야를 담당하는 MD가 된 오늘, 우연히 일본어를 사용하는 두 명의 저자를 인터뷰하게된 것이다. 9년 전 ‘D+’를 기록했던 일어실력은 말라버린 개천처럼 얕은 바닥을 보인지 오래건만… 겁도 없지.

먼저 만난 것은 <성난 서울>(아마미야 카린․우석훈 공저, 송태욱 옮김, 꾸리에북스)의 아마미야 카린이었다. 낯선 이름이지만 활발한 저술활동과 사회참여로 일본 내에서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precarious+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신조어) 운동의 아이콘으로 불린다고 한다.

어린 시절 왕따를 경험, 비주얼 록그룹의 그루피 생활과 반복된 자살시도로 10대를 보내고, ‘프리터’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20세에는 ‘유신적성숙維新赤誠塾’이라는 극우펑크밴드를 조직, 천황을 찬양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가진 것 없는 프리터의 기댈 곳 없는 불안과 불만을 극우가 제공하는 천황이라는 거대한 심볼에 의지해 표출하던 그녀가 오늘의 모습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좌파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우연한 만남. 훈계도, 동정도 없이 그저 그녀에게 비디오카메라를 건넨 그의 손길이 그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그것 참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실제로 만난 그녀의 외모도 꼭 그만큼 드라마틱했다. 로리타 복장의 그녀는 영락없는 ‘불량공주 모모코’.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잠시 후, 또박또박- 분명하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D+’의 이방인에게도 통역 없이 전해지는 진심 같은 걸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결코 젠체하거나 현학적인 수사를 사용하지 않는 그녀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순하고 명쾌한 말로 누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핵심을 짚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허울 좋은 이론이나 공허한 이상이 아닌, 스스로의 삶에 충실히 발 딛고 있는 이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성난 서울>은 그런 그녀가 바라 본 2008년 여름, ‘우리’의 모습이다. 일하는 사람 두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인 나라,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워킹 푸어’의 나라, 군대 아니면 감옥이라는 답을 제시하는 나라. 하지만 그 나라는 또한 시청 앞 광장에 운집한 수많은 이들이 소리 높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나라이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따로, 또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분명 우리가 발붙이고, 숨쉬며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그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서울은 꽤나 새롭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지레 판단해버린 것, 신경도 쓰지 않던 것들을 그녀는 찬찬히 들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프리터(와 오타쿠)의 천국’이라고,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던 ‘바다 건너’ 일본의 오늘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 그래서 그녀는 연대를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만 국경을 넘으란 법 있나!

어느덧 촛불 1주년이 지났고, 여기저기 후일담이 들려온다. 이런 말, 저런 말 많지만 곰곰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는 몹시 화가 나 있었고, 지금도 그 화는 풀리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닐까.

아마미야 카린은 인터뷰 말미에 한국의 친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조금 더 난폭해지세요. 조용히 참고 있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10년 동안 참았어요. 그러는 동안, 내 친구가 홈리스가 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좌절 끝에,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라고. 자찬도 자학도 없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성난 서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PS 1. 그렇다고 <성난 서울>에 ‘촛불’ 얘기가 가득한 건 아니다. 2008년 여름, 그녀가 돌아 본 서울의 ‘구석구석’이 담겨 있다.

* PS 2. 서두에 잠깐 언급했던 다른 한 명의 저자는 바로 <고민하는 힘>(이경덕 옮김, 사계절)의 강상중이다. 지면관계상 눈물을 머금고 이름만 언급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두 명의 저자를 만나며 “고민 끝에 성내자!”를 올해 목표로 세워야 하는 걸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 월간 인물과 사상 2009. 06



성산2동 동사무소 언덕에 자리한 '영화*을' 아르바이트 출신으로 말하건데
미셸 공드리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주는 교훈은 노골적이다.
비디오를 반납할 땐 되감아 줘야한다는 것.
동양에서는 이를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한다.

지난 일년간 여기저기 썼던 글들을 모아볼까, 생각했다.
카테고리의 이름으로는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적절하다 싶었다.
첫 글의 제목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된 건... 물론 단순한 우연. (하하)

아마미야 카린을 만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햇살이 참 눈이 부셨고, 문득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D+의 일본어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모든 것이.

아마미야 카린처럼 살지 못해서?
아니,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인터뷰를 마치고 맞은 4월의 햇살은 참 눈이 부셨고,
그늘 속을 걸어 회사를 돌아오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을 뿐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부끄러움.

이 글은 구체적으로 부끄럽다. (웃음)
제목 그대로, 성난 얼굴로 돌아보게 되는 글. (특히 세번째 문단이 엉망이다! ㅜ_ㅜ)

인물과사상사에 죄송할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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