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이 부드러워졌다. 서슬이 시퍼렇게 한국 사회 여기저기를 메스 들이대듯이 읽어대던 강준만의 독해가,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에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밖으로 향하던 외침이 이제 지방 내부의 구조를 향한 잔잔한 울림 같은 것으로 바뀌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힘이 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으니, 부드러움을 느낀다.

이 '광야의 외치는 사나이' 같은 사람의 부드러운 속삭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강준만은, 지방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는 한국의 거의 유일한 학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강준만의 책은 김병준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김병준, 참 골치 아픈 인간이다.

연초에 김병준을 비롯한 참여 정부 시절의 정책실장들을 비교하는 장 하나를 단 글을 '사회비평'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실명비판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절 하나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한 적이 있다.

노무현 시절,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 두 명을 꼽으라면, 김병준과 이헌재라고 할 수 있다.

황금박쥐의 바로 그 김병준이고, MBC PD 수첩에 외압을 했던 청와대 당사자로 지목받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지, 혹은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지지하는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한 때 '분권론'의 맨 앞에 서 있던 학자였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꽤 긴 시간 동안,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분권론의 선두주자는 김병준이었다.

이제 김병준도 사라지고, 누구도 지방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려고하지 않는 기이한 침묵이 흐르고 있는 지금,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리들을 환기시켜주고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강준만이 유일해보인다.

책은 전반적으로 따스한 느낌이고 - 예전의 서슬 시퍼렇던 강준만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비교적 최근에 나왔던 강남공화국에서의 투박하면서도 노도와 같던 글과 비교하면 확실히 - ,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어쨌든 '성찰'의 향취 같은 것이 풍긴다.

이 정도 얘기에는 조중동에서도 서평 한 줄 정도는 써줄 법도 할 것 같지만, 뭐 쌩까는 것은 여전하다.

요즘 사회과학 시장 분위기로 봐서, 강준만의 이 신작이 제대로 읽히거나 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 생각에는, 비록 엇박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강준만의 질문에 대답했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늘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을 것 같다.

흠이라면... 너무 단문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SKY 문제와 패거리 문제, 그리고 지역의 문제 같은 것들이 겹치면서, 예리하면서도 야리야라한 면도날 같은 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리로 읽기 보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좋은 책일 것 같고, 답을 구하기 보다는 질문을 구하는 책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부드러워진 강준만, 낯설지만 싫지는 않다. ('쿨 에너지'의 황당한 얘기보다는 발도 훨씬 더 땅바닥으로 내려온 것 같다. 이제쯤은 진보신당 같은 곳의 '지역발전위원회' 같은데 위원장 해도 좋을 것 같다.)


* 본 서평은 우석훈 박사의 개인 블로그에 개제된 글을 동의 하에 재개제 한 것입니다.
* 원고를 제공해주신 우석훈 박사님, 개마고원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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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방은 식민지다! (강준만 지음)
    from 성실히 살았으면 2009-09-08 00:51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공감이 갔습니다. 이 책도 지금은 폐지된 "tv 책을 말하다"를 보고 알게 된 책입니다. 그때 제목을 알았는데 요즘에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칼럼식의 짧은 글들이 큰 장 아래 모여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서울에 살았더라도 책 제목에 공감을 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경북에서 태어나서 약 1개월 동안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와 인천 지역 유초중고를 나왔습니다. 대학도 인천 지역 대학에 다니다가 대학 친구들과 인천 지역을..
 
 
안티크 2008-12-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교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의 재등장은 요즘 같은 시기에 반가운 일 같아요. 그런데 우석훈 교수님의 서평을 읽다가 순간 멈칫했습니다. 이 책이 부드럽다고요? 저는 이 책이 굉장히 숨 가쁘다고 생각했거든요. 통계치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머리 아픈 독자에게 어찌나 하고 싶으신 말이 많으신지 몰고 가는 기분이 좀 들더라고요. 가벼운 주제도 아니고 쉬운 주제도 아니고 (지방에서 단 한번도 살아 본적 없는 저 같은 인간에게는) 익숙한 주제도 아닌지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우석훈 교수님 말대로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을 마음으로 읽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래도 앎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언젠가 지방에 내려가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제가 사실은 그것이 '기득권을 놓고 가겠다'라는 것과 동일시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정도의 앎도 지금 저에게는 중요했거든요. 강준만 교수가 마뜩치 않아하는 방향의 지방 찬양론자 중 한명이었던거겠지요. ^^ 언젠가 지방으로의 이동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이동의 의미만을 갖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란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면 제가 지방으로의 이동을 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란 생각도 동시에 들더군요. ^^

활자유랑자 2008-12-20 15:3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따스하단 데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부드럽다'는 말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뭐랄까, 예전에 작업에 비한다면 비교적 부담없이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지방에서 살건, 서울에서 살건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