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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파이 전쟁 - 간첩, 공작원, 인간 병기로 불린 첩보원들의 세계
고대훈.김민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3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남북 스파이 전쟁
📗 고대훈, 김민상
📙 중앙북스(books)

간첩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여전히 남과 북, 정보와 권력의 세계에서는 실체를 가진 존재로 작동하고 있다. 『남북 스파이 전쟁』은 ‘지금도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느냐’는 단순한 질문에 날카로운 현실로 응답한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분단의 민낯,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던 이들의 기록이다.

어린 시절 뉴스를 통해 익숙했던 ‘간첩’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풍화된 기억 속에서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그 단어가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남파 간첩 김동식과 블랙 요원 정구왕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단어가 얼마나 치열하고도 구체적인 존재였는지 체감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스파이 이야기나 국가 안보의 교본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도구’가 되고 ‘소모품’이 되는지를 조명한다. 김동식은 열여덟의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간첩 훈련에 끌려 들어갔고, 정구왕은 충성심 하나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도 조국에게 버림받았다.

김동식의 훈련 과정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칼 던지기, 총기 조준, 거리 암기, 그리고 말투 교정까지, 인간병기로서 철저히 만들어진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변신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인간을 어떻게 조작하고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의 남한 침투 경로와 활동 방식은 영화보다 정교하고 현실보다 무서웠다.

정구왕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준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귀환 후 의심과 배척을 받는다. 그의 존재는 ‘실패한 블랙요원’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버림받은 한 인간이다. 조국에 충성한 대가가 배제와 고립이라면, 우리는 국가라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묻게 된다.

책은 남과 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김동식과 정구왕, 양극단에서 출발한 이들이 결국 동일한 인간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두 사람은 마주치지 않지만,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스파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스파이의 세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종종 환상에 가깝다. 007이나 마타하리, 혹은 액션 히어로처럼 스파이를 소비한다. 하지만 『남북 스파이 전쟁』은 그 환상을 철저히 깨뜨린다. 이 책에서 스파이는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늘 죽음과 감시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저자는 ‘간첩은 없다는 말은 철없는 소리’라고 말한다. 기술과 AI가 모든 영역을 바꾸고 있는 지금, 간첩 역시 형태를 바꿔가고 있다. 책은 과거의 인간 간첩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디지털 정보전까지 언급하며 간첩의 개념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도 짚어낸다.

이 책은 남북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재를 비추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게 한다. 스파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는 체제, 충성, 국가,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남북 스파이 전쟁』은 스파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야 했던 인간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냉전의 유산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분단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 한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해왔는지를 본다. 책장을 덮고 나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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