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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으로, 발표 이듬해인 199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베스트10 중 6위에 선정되었다. 전반적으로는 서술자인 '나'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형식. 열두 편의 단편과, 이야기에 뜻밖의 의미를 부여하는 미스터리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느닷없이 사보 편집장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에게, '새로 창간하는 사보에 단편소설을 실을 것'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와카타케의 간절한 청탁을 받은 대학 선배는 자기 대신 실화에 의외의 해석을 부여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를 소개해 준다.
연재 조건은, 일기장을 뒤져서 일년간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써주되 작가의 이름과 신상은 일체 비밀에 붙인다는 것. 이렇게 해서 익명 작가 '나'의 단편소설이 4월호부터 이듬해 3월호까지 일년간 실리게 된다.
작품은 익명 작가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편지 세 통에 이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보에 다달이 실린 '익명 작가에 의한 연작 단편소설' 열두 편, 그리고 열두 편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외의 진상을 밝히는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와 '마지막 편지'로 구성된다.
이 단편집의 작가인 와카타케 나나미가 작품 속에서 자기 이름 그대로 사보 편집장으로 등장하는 것은 약간 기발하면서도 귀엽고 코믹하다. 그 외에도 이 작품 속에서는 잡지 안내 형태의 매달 발표되는 단편소설을 1년에 걸쳐서 소개하는 형식이며, 일년에 걸친 열두 편의 단편이 끝나고 편집장인 나나미가 미스터리의 작가를 직접 찾아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많은 의문들과 복선을 완전히 해결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생활 미스터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편집으로, 팥빙수, 케이크, 축제, 나팔꽃, 여행, 임신, 유령 등 평범하지만 다채로운 일상의 미스터리와 환상적인 비밀의 이야기가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잠시 취업을 보류한, 자발적 백수인 한 사내. 독서를 즐기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으며, 몸이 건강하지 않아 한약을 먹지만 일상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약간은 비범한 재능을 가진 남자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첫번째 작품인 <벚꽃이 싫어>는 재작년인가 추리사이트 <하우미스터리>에서 이벤트로 소개된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범인도 맞추고 상품 획득에도 성공했으나 약간은 떨떠름한 맛의 단편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지금 읽어보니 소박하고 깔끔한 재미가 있는 듯한 단편이었다. 본격 미스터리의 치밀한 구조나 살인이 등장하는 것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게 뭐야~>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소박하면서도 치밀한 얼개와 작품 전반에 걸친 복선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탄할 것이다. 실은 생활 미스터리라고 가볍게 읽으려 하였으나 가벼운 것 같지만 복잡한 트릭, 지명, 지도, <옥문도>에서처럼의 고유어나 한자, 하이쿠 등을 이용한 트릭을 사용한 이 작품군을 읽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함을 느낄 수 있다. 수수께끼 풀이나 작품의 이해가 약간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각 단편들은 매우 훌륭한 보석같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귀신>은 약간은 호러틱한 작품이지만 무서운 트릭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작가의 섬세한 필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눈 깜짝할 새에>라는 작품은 매우 귀여운 그림도 볼 수 있고, 먹음직스러운 시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단편이다. 이해는 약간 어려운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본격 미스터리나 홈즈의 <춤추는 사람 그림>못지 않은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상자 속의 벌레>도 기묘한 호러와 미스터리가 잘 뒤섞인 작품이다. 증발 트릭이라는 것이 등장하지만 그 실상은 매우 간단간단하다.
<사라져가는 희망>은 매우 공포스러운 작품이다. 꿈과 망상, 그리고 의문사가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더욱 깊어지는 미스터리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길상과의 꿈>에서는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겪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정신이상에 걸린 등장인물에 관련된 섬뜩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도 결말부분에 등장하는 해결편에 대한 암시와 복선이 적절하게 깔려 있으며, 다소 어려운 트릭이나 불교적 용어, 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읽는 재미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래빗 댄스 인 오텀>
매우 시시껄렁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름 맞추기 게임. 한국인은 물론 맞출 수 없는 고도의 한자놀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이다.
<판화 속 풍경>
위기에 몰린 인물을 주인공이 구해주는 담백한 단편이다. 고구마가 결정적인 힌트인데, 냄새에도 민감한 주인공의 모습이 재미있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속에 든 그 무엇에 대한 과거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다. 매우 사소한 서술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정월 탐정>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의뢰인을 추적하는 주인공. 극히 사소한 실수와 언행 등을 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명쾌한 작품이다.
<밸런타인 밸런타인, 봄의 제비점>
브라운 신부의 모 단편을 생각나게 만드는 코믹한 단편이다. <봄의 제비점>또한 교묘한 복선과 트릭이 깔려있다.
1년에 걸친 연재 끝에 나나미는 의문의 작가와 드디어 상봉하게 된다. 작품 전체에 수많은 복선과 트릭, 살인범이 숨어 있음을 나나미는 추리하여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작품 전체에서 간과하였던 많은 단서들이 종합되어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점과 복선의 종합을 결론 부분에 배치해 놓은 작가의 재주에 놀랄 수 밖에 없었으며, 꽤나 재미있는 결말과 진실이 끝에서야 밝혀지게 된다. 수많은 단서들을 간과해 온 본인으로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이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간만에 만난 갓 잡은 생선같은 단편집이었다. 발표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신비로웠던 걸작 단편집.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의 일상은 일상이 아닌 것처럼 늘상 매혹적이다. (물론 재미면에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이나 크리스티, 홈즈 등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