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내를 가진 남자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4
패트릭 퀜틴 지음, 심상곤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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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딩은 자신의 친구 찰스와 함께 유럽으로 달아난 아내 안젤리카와 뉴욕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허름한 술집에서 3년 만에 만난 그녀는 병색이 완연한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랑의 도피행을 함께 했던 찰스와 헤어진 그녀는 햇병아리 작가 제이미와 사귀고 있지만 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부호의 딸로서 자신에게 헌신적인 아내 베시, 자신을 버렸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가련한 안젤리카 사이에서 흠들리는 사이 빌 하딩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끔찍한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마는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패트릭 퀜틴의 장편추리소설이다. 패트릭 퀜틴은 엘러리 퀸과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팬네임이다. 휴 휠러와 리차드 윌슨 웨브 두 사람이 패트릭 퀜틴이었는데 이들은 다양한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매우 재미있을 것 같은 부부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퍼즐 시리즈에 대한 설명이 뒤의 해설에 있다.) 미국추리작가협회 특별상도 수상하였다. 작품경향은 명탐정이나 하드보일드한 사건이 아닌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사건에 자기도 모르게 휩싸이게 되는 휘말리는 형의 등장인물과 결혼 생활의 위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또한 주인공인 빌 하딩이 전처를 잊지 못해 전처와 그의 남자 친구가 뒤엉키게 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타 추리소설들과는 다르게 애거서 크리스티보다 휠씬 섬세하게 주인공인 빌 하딩의 심리와 심정을 감성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보다는 섬세하고 단아하고 잘 읽히는 문체를 주로 사용하였다. 안정적인 생활과 사랑스럽지만 외적으로는 그다지 출중하지 않은 아내와 아름답지만 퇴폐적이고 병약한 정신의 전처 베로니카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마음에 독자들은 크게 공감하고 감동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은 전처 베로니카와 아내, 아들, 장인과 처제, 베로니카의 남자 친구인 젊은 햇병아리 작가 제이미와 친구 부처 등이며, 이들 인물을 중심으로한 섬세하고 촘촘한 인간 관계망이 여타 일류 추리소설작가들 이상으로 잘 구성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일일연속극의 인간 관계를 보는 듯 했다. 주인공의 전처 베로니카의 아내의 연하 남자 친구인 제이미와 하딩의 처제가 얽히게 되며, 여기서 어린 소설가 제이미는 돈과 탐욕에 미친 인간으로 묘사되며, 지극히 이기적인 속물로서 묘사된다. 빌 하딩의 처제와 제이미의 관계는 결혼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여기서 기묘하게도 제이미는 자신의 집에서 총을 맞은채 시체로 발견된다. 게다가 그 시각 즈음에는 정신적으로 갈등하던 주인공 빌 하딩이 아내가 출장간 틈을 타서 전처인 베로니카를 몰래 끌어들여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지만, 그 장면을 가정부와 아내에게 들키고, 살인사건까지 겹쳐 주인공인 하딩은 크나큰 위기를 맞게 된다.

모든 추리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서도 살인사건의 동기는 알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이 작품에서는 콜롬보 빰치는 트랜트 경감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하딩과 주변 인물들, 그들의 알리바이를 철저히 조사하고 다니게 된다. 하딩의 심리를 잘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도서추리소설과도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제이미를 사귀고 있던 하딩의 처제를 위해 모든 가족들이 철벽같은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하딩의 장인인 CJ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하딩의 가정부를 매수하고, 수사하는 경찰권력에 까지 손을 뻗친다. 모든 가족이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추리소설적 기법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고, 감탄할 만한 요소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권력과 금전에 구속된 인간의 심리 또한 잘 묘사되어 있다. 끝내 엉뚱한 사람인 베로니카가 범인으로 몰리지만, 주인공인 하딩은 베로니카를 위해 가정의 파국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부부 사이의 심리와 애증, 음모 등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맛이 잘 묻어나며, 잘 짜여진 인간관계와 심리묘사, 알리바이 파괴와 의외의 반전들이 잘 어우러진 명작추리소설.; 역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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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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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으로 제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다카노 가즈아키의 두 번째 장편소설. 시한부 생명을 구하기 위한 24시간의 도주극을 그린 이야기로, 속도감과 서스펜스의 강도가 매우 높다.

험악한 인상 때문에 평생 범죄의 그늘에서 살아온 아가미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골수이식이라는 선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식 수술 하루 전날 터진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중요 참고인으로 수색 명령이 떨어진 아가미. 경찰에 붙잡히면 이식 수술은 받을 수 없게 된다. 진범인 연쇄 살인마와 정체불명의 사교 집단까지 합세하여 아가미를 추적해 오는 상황에서, 백혈병 환자를 구하기 위한 아가미의 목숨을 건 도주가 시작된다.

작가의 전작인 13계단에서 느낄 수 있는 긴박감과 함정, 최후에의 결말 설정과 반전이 전작을 능가하는 듯한 작품이다. 사회 비판적인 요소도 군데군데 담겨있지만 주인공인 야가미를 쫓는 미스터리의 괴집단 일당들과 경찰들의 추격과 제한된 시간내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고도로 증폭된 긴장감과 공포, 수수께끼가 잘 어우러저 최상급의 서스펜스를 이루고 있다. 먼저 주인공의 설정도 전작품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주인공은 야가미는 30대 초반의 겉늙어보이는 악당 범죄자. 돈때문에 아이들의 꿈을 짓밟는 짓도 서슴지 않았으며,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인간이다. 그러나 야가미가 얽히게 된 의문의 연속 살인 사건에 야가미의 유년시절을 잘 알고있는 후루데라 경장이 사건에 관여함으로써, 쫓기는 자인 야가미와 쫓는 자 중의 하나인 후루데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끈이 생기게 되고, 작품을 읽는 내내 긴장감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마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주인공인 야가미는 자기 명의로 설정해 둔 친구의 집에 갔다가 친구가 욕탕에서 살해당한 것을 보고 즉시 그 자리에서 달아나려 하지만 달아나려는 순간 의문의 사내들에게 추격을 당하게 되고, 야가미는 일련의 살인 사건의 중요 참고인으로 지명받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범죄자로서 악행만을 일삼아 온 야가미가 다른 사람을 위해 골수이식을 하기로 예정이 되있던 날이다.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된 야가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골수이식수술이 예정된 병원으로 달려가기로 한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위치와 병원의 위치는 극과 극이다. 수중의 돈도 부족하고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문의 사내들까지 자신을 추격중이다. 추격 씬이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야가미는 택시, 배, 수영, 강도질, 협박 등을 일삼아가면서(?) 병원으로 향하려 애쓴다. 반면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경찰들 또한 사건에 대한 일련의 단서들을 하나씩 추적해 나간다. 의문의 연속 살인과 마약, 정계에 얽힌 미스터리들을. 작가가 마치 사실처럼 꾸며낸 그레이브 디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단서가 하나 둘씩 제시된다. 바로 골수기증자들이 연속으로 살해된 것인데 결말부분에 가서야 범인의 실체에 대한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주인공인 야가미는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은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며, 연속 살인사건에 걸맞지 않는 훈훈함과 인간미를 이 작품에서는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에 나오는 여러 배경이나 호텔, 지명등은 거의 대부분 실제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니 사실감 또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올 여름 읽게 된 추리소설 중 최고의 작품으로, 13계단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작품에 더 큰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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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유희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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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과 함께 유일하게 국내에 번역된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탐정 역의 기타라이는 뇌과학 교수로 등장하고, 액자형 소설의 형식으로서 기타라이가 동료 교수들에게 자신이 해결한 살인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먼저 배경은 한적한 네스 호 근처의 마을 티모시이다. 이국적 배경과 더불어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더없이 효과적인 사건의 무대. 이 작품이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요소이기도 하다. 미타라이는 적극적으로 사건의 추리에 참여한다기보다는 조용히 핵심을 간파하고 의외의 범인을 약간은 비아냥거리며 잡아내는 다소 조용한 탐정이 되어 사건에 참여한다. 점성술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토막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점성술 살인사건에서처럼의 경탄할 만한 고도의 트릭이라기보다는 범인이 교묘하게 제시하는 암시의 제스처 수준이라고 이 작품에서는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의 수기가 계속해서 암시된다. 구약성서에 기반을 둔 인간의 세계관과 정신심리, 공포심리와 복수의식은 점성술 살인사건의 심리묘사보다 훨씬 적확하고 리얼하다. 그리고 계속되는 연속살인과 분리된 시체들의 암시, 과거의 살인은 김전일 시리즈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과거의 사건이 아닌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는 사건인지라 점성술 살인사건보다 훨씬 긴장감과 충격이 더했으며,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의 인간군상들의 갈등과 살인, 비밀 장소 탐색 등은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작가의 탁월한 지식으로 인간심리에 대한 심연과 트릭, 의외의 힌트들이 너무나도 적절하게 제공되는 또 하나의 수작이다. 밀실 살인이나 알리바이 트릭에 중점을 두지 않았으며, 인명을 지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작용하는데, 거의 마지막 살인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제시된다. 피해자의 다잉 메시지와 범인이 남긴 듯한 지문. 범인이 상당히 머리를 쓴 듯 하지만 이 단서들에서 미타라이는 결정적으로 범인을 지목하게 된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인 '로드니 라힘'의 심리 묘사는 이 작품에서 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살인의 배경이 되는 티모시에서 어린 시절은 보낸 인물은 로드니는 어머니가 마을의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 마을에서 떠난지 수십여년이 지났어도 그 마을에 대한 인상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적은 수기 또한 그가 범인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결말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실은 단서를 하나하나 조합하여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갑자기 등장하는 의외의 범인에 약간은 당혹스러움을 가지게 되는 구조가 바로 이 작품이다. 달리듯이 빠른 작품전개에 번개처럼 나타나는 범인. 점성술 살인사건에 비하면 약간은 비흡한 부분이 이 작품에서는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을씨년스러운 시골 마을의 분위기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연속살인과 숨겨진 과거의 분노와 복수는 <전설의 고향>을 능가하는 작가의 탁월한 공포성을 보여주며, 의미가 없는 듯한 범인의 행위에도 다양한 메시지가 깔려있다는 치밀한 추리와 논리로 포장된 작가의 재주를 맘껏 뽐내는 듯한 소설이다. 범행동기 또한 지극히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라고 독자들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말 부분에서 그러한 추리는 당연히 허물어지고 독자들은 놀라게 될 것이다. (물론 김전일 시리즈를 읽으신 분이라면 그다지..;;)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그런 설정이었다.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특히 구약성서의 해석이라든지,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 등.)이 유감없이 이 작품에서는 발휘되었으며, 이국적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그 모든 것이 대단히 생생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종교적인 색채와 환상적인 트릭, 그리고 마지막 결말이 대단했던 작가의 탁월한 작품이라고 아니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읽어본 작품은 두 작품 뿐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건 당시의 명탐정, 부검의에서 현재 뇌과학 교수에 재임중임 주인공 미타라이는 약간 코믹했다. 못하는게 없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직업과 사건을 가지고 독자들을 즐겁게 해줄지 몹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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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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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경 일본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탐정 및 형사들이 등장하여 수수께끼를 푸는 본격 미스터리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마쓰모토 세이초 등의 사회파 추리작가들이 크게 대두하여 그 흐름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이에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가 절필선언까지 하게 되는 사태도 발생한다.) 그러나 1981년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의 화려한 한 작품이 또 다시 일본 추리소설계의 판도를 뒤흔들게 되었으니, 그 시초가 된 작품이 바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다.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 상에 작가가 응모해 최종심까지는 올랐으나 낙선해 이듬해 제목을 바꾸어 본격 미스터리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은 작품이다. 1981년 본격 미스테리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죽음 이후 2개월 뒤 이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본격 미스터리 작가의 <환생>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이 작품은 당대를 풍미하고 신본격 시대의 시작을 알린 걸작이다. 물론 추리소설을 즐겨읽거나 추리만화를 즐겨본 분이라면 이 작품에서 쓰이는 트릭이 다소 진부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트릭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전일 시리즈의 모 작품에서 이 작품에 나오는 주요 트릭 한 가지를 그대로 차용하고, 당당하게 그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가지만으로는 이작품의 주요 부분을 다 알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며,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본격 미스테리의 명작이라는 사실을 읽게되면 누구나 확신하게 될 것이다. (특히 후반부의 탐정역 미타라이와 왓슨 역 이시오카가 단서를 찾아 발로 뛰는 장면이 좋았다. 수사반장 시리즈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트릭 및 수기, 살해방법 및 등장인물들 모두가 기묘하고 괴이하거니와, 작품 내에서 40여년이 지나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을 만큼 그 전체적인 상황은 대단히 미스터리하다. 그러나 천재적인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이름이 대단히 코믹한데, 작품을 읽게 되면 잘 알 수 있다.)가 왓슨 역을 자처하는 이시오카의 권유를 받아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이 오르게 된다.

처음 도입부는 살해당한 피해자가 죽기 전에 적어 놓은 기묘한 수기로 시작된다. 여섯 딸의 완벽한 신체 부위들을 모아서 가장 완벽한 육체를 만드려는 꿈을 가지고 피해자인 다이키치는 완벽한 살인 계획과 자살 또한 암시한다. (영화 '검은 집'에서 보았던 사이코패스가 생각난다.) 그러나 다이키치는 살해당하고, 그의 딸들도 그가 수기에 적어놓은 것처럼 살해당함으로써 사건 전체가 거대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탐정들과 경찰들이 사건해결에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하게 되는데 미타라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단서들을 종합하여 첫 단추부터 잘 끼워나가기 시작한다. 본격 미스터리의 정수는 여기에서 느낄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논리적 추론과 해결을 통한 단추를 차례대로 끼워맞추는 형식을 이 작품에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기묘한 밀실에 대한 추리가 시작되는데 상당히 난해하지만 미타라이는 피해자의 심리와 구두자국 등으로 매우 간단하게 추리를 벌여 놓는다. (밀실트릭이 좀 난해하긴 하다??) 이어서 후두부에 타박상을 맞은 피해자 사건을 추리하게 되는데 혈액형 등의 문제 또한 뒤섞여 사건 해결과 추리에 있어 극도의 난해함을 보여주게 된다. 물론 또 다른 인물의 적절한 조력과 편지가 제공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본 각지에 퍼진 딸들의 시체에 대한 단서가 하나둘씩 제공되고, 기묘한 트릭이 숨어 있음을 탐정은 간파해낸다. 후반부에 있어서는 주로 발로 뛰는 수사를 보여주고, 피해자의 과거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미타라이는 만나봄으로써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게 된다. 이때 아무것도 먹지 않아 신경쇠약에 빠진 탐정 미타라이의 모습은 마치 홈즈 시리즈의 <빈사의 탐정>을 보는 것도 같다. 작가가 홈즈를 약간은 의식했는지 이 작품에 나오는 탐정 미타라이의 모습은 괴짜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에,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홈즈 밖에 모르며,(왓슨역의 이시오카가 말하는 명탐정들을 하나도 모른다고 자부함으로써 명탐정의 '굴욕' 시리즈를 보여주고 있다.) 재즈나 클래식, 외국어에 능통한 천재가 이 탐정의 성격인데 다른 작품으로 갈수록 점차 성격이 바뀐다고 한다. 

작가는 두 차례에서 걸쳐서 마치 엘러리 퀸처럼 독자에게 도전장을 보낸다(고 하지만 이게 뭐냐??라고 본인은 생각했다.). 아쉽게도 김전일 시리즈의 모 작품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범인에 대해 대충 짐작을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확실히 덜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범인이 사용한 트릭은 참으로 놀라운 트릭. 말로 하기 힘겨운 트릭이지만, 미타라이는 다른 것에서 힌트를 얻어 그 솜씨를 뽐낸다. 등장인물들의 알리바이가 완벽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논리의 치밀함과 기발한 트릭, 작품 전체의 촘촘함에 대한 이만한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첫 작품인 이 작품이 얻은 애칭은 '전설', '토털 패션'.'본격 추리소설의 로마네 콩티' 등의 영광스러운 이름들이다. 이 한 작품으로 인하여 일본의 추리소설계의 난국은 확실히 평정되고 아비코 다케마루나 관 시리즈의 아야츠지 유키토 등의 화려한 작가군이 등장함으로써 다시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 피어나게 된다. (무슨 삼국통일 같다.) 작가의 작품으로는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나 <마신유희> 등은 다양한 작품이 있고, 작가인 시마다 소지는 지금까지도 사형 제도나 일본인의 정신에 대한 평론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요코미조 세이시와 더불어 꼭 정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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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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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으로, 발표 이듬해인 199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베스트10 중 6위에 선정되었다. 전반적으로는 서술자인 '나'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형식. 열두 편의 단편과, 이야기에 뜻밖의 의미를 부여하는 미스터리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느닷없이 사보 편집장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에게, '새로 창간하는 사보에 단편소설을 실을 것'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와카타케의 간절한 청탁을 받은 대학 선배는 자기 대신 실화에 의외의 해석을 부여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를 소개해 준다.

연재 조건은, 일기장을 뒤져서 일년간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써주되 작가의 이름과 신상은 일체 비밀에 붙인다는 것. 이렇게 해서 익명 작가 '나'의 단편소설이 4월호부터 이듬해 3월호까지 일년간 실리게 된다.

작품은 익명 작가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편지 세 통에 이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보에 다달이 실린 '익명 작가에 의한 연작 단편소설' 열두 편, 그리고 열두 편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외의 진상을 밝히는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와 '마지막 편지'로 구성된다.
 
이 단편집의 작가인 와카타케 나나미가 작품 속에서 자기 이름 그대로 사보 편집장으로 등장하는 것은 약간 기발하면서도 귀엽고 코믹하다. 그 외에도 이 작품 속에서는 잡지 안내 형태의 매달 발표되는 단편소설을 1년에 걸쳐서 소개하는 형식이며, 일년에 걸친 열두 편의 단편이 끝나고 편집장인 나나미가 미스터리의 작가를 직접 찾아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많은 의문들과 복선을 완전히 해결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생활 미스터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편집으로, 팥빙수, 케이크, 축제, 나팔꽃, 여행, 임신, 유령 등 평범하지만 다채로운 일상의 미스터리와 환상적인 비밀의 이야기가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잠시 취업을 보류한, 자발적 백수인 한 사내. 독서를 즐기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으며, 몸이 건강하지 않아 한약을 먹지만 일상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약간은 비범한 재능을 가진 남자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첫번째 작품인 <벚꽃이 싫어>는 재작년인가 추리사이트 <하우미스터리>에서 이벤트로 소개된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범인도 맞추고 상품 획득에도 성공했으나 약간은 떨떠름한 맛의 단편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지금 읽어보니 소박하고 깔끔한 재미가 있는 듯한 단편이었다. 본격 미스터리의 치밀한 구조나 살인이 등장하는 것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게 뭐야~>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소박하면서도 치밀한 얼개와 작품 전반에 걸친 복선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탄할 것이다. 실은 생활 미스터리라고 가볍게 읽으려 하였으나 가벼운 것 같지만 복잡한 트릭, 지명, 지도, <옥문도>에서처럼의 고유어나 한자, 하이쿠 등을 이용한 트릭을 사용한 이 작품군을 읽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함을 느낄 수 있다. 수수께끼 풀이나 작품의 이해가 약간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각 단편들은 매우 훌륭한 보석같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귀신>은 약간은 호러틱한 작품이지만 무서운 트릭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작가의 섬세한 필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눈 깜짝할 새에>라는 작품은 매우 귀여운 그림도 볼 수 있고, 먹음직스러운 시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단편이다. 이해는 약간 어려운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본격 미스터리나 홈즈의 <춤추는 사람 그림>못지 않은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상자 속의 벌레>도 기묘한 호러와 미스터리가 잘 뒤섞인 작품이다. 증발 트릭이라는 것이 등장하지만 그 실상은 매우 간단간단하다.
 
<사라져가는 희망>은 매우 공포스러운 작품이다. 꿈과 망상, 그리고 의문사가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더욱 깊어지는 미스터리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길상과의 꿈>에서는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겪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정신이상에 걸린 등장인물에 관련된 섬뜩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도 결말부분에 등장하는 해결편에 대한 암시와 복선이 적절하게 깔려 있으며, 다소 어려운 트릭이나 불교적 용어, 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읽는 재미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래빗 댄스 인 오텀>
매우 시시껄렁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름 맞추기 게임. 한국인은 물론 맞출 수 없는 고도의 한자놀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이다.
 
<판화 속 풍경>
위기에 몰린 인물을 주인공이 구해주는 담백한 단편이다. 고구마가 결정적인 힌트인데, 냄새에도 민감한 주인공의 모습이 재미있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속에 든 그 무엇에 대한 과거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다. 매우 사소한 서술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정월 탐정>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의뢰인을 추적하는 주인공. 극히 사소한 실수와 언행 등을 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명쾌한 작품이다.
 
<밸런타인 밸런타인, 봄의 제비점>
브라운 신부의 모 단편을 생각나게 만드는 코믹한 단편이다. <봄의 제비점>또한 교묘한 복선과 트릭이 깔려있다.
 
1년에 걸친 연재 끝에 나나미는 의문의 작가와 드디어 상봉하게 된다. 작품 전체에 수많은 복선과 트릭, 살인범이 숨어 있음을 나나미는 추리하여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작품 전체에서 간과하였던 많은 단서들이 종합되어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점과 복선의 종합을 결론 부분에 배치해 놓은 작가의 재주에 놀랄 수 밖에 없었으며, 꽤나 재미있는 결말과 진실이 끝에서야 밝혀지게 된다. 수많은 단서들을 간과해 온 본인으로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이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간만에 만난 갓 잡은 생선같은 단편집이었다. 발표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신비로웠던 걸작 단편집.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의 일상은 일상이 아닌 것처럼 늘상 매혹적이다. (물론 재미면에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이나 크리스티, 홈즈 등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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