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묘촌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평점 :
(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드라마 팔묘촌 中. 2004년작.)
(77년 영화로 제작된 팔묘촌. http://dvdtopic.cine21.com/Articles/article_view.php?mm=007002002&article_id=31410)
전국시대, 8명의 패주무사들이 황금을 가득 싣고 한 마을로 몸을 숨긴다. 황금에 눈이 멀어 그들을 몰살한 마을 사람들은 연이어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자, 무사들의 시체를 극진히 매장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마을은 이후 '팔묘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세월이 지난 다이쇼 시대, 팔묘촌의 동쪽집이라고 불리는 세가 다지미 가문의 주인 요조가 미쳐서 마을사람 32명을 참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26년, 다지미 집안의 후사로 판명된 '나'는 팔묘촌으로 돌아오고,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팔묘촌>은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네 번째 장편이다. 장.단편 포함, 80여 편을 훌쩍 넘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인기만으로는 1, 2위를 다루는 작품으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영상으로 옮겨졌다. 1951년, 1977년, 1996년 영화화됐으며 1969년, 1971년, 1978년, 1991년, 1995년, 2004년 드라마로 제작돼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작품.
<팔묘촌>이라는 작품은 작년에 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의 팔묘촌과 저주를 받은 듯한 끔찍한 연속 살인들. 반 다인의 <그린 살인 사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뒤에 가려진 무시무시한 동기며 진실들.. 원작소설을 정말로 읽고 싶었는데, 마침내 올해는 소원성취를 했다. 드라마에서는 느끼지 못한 원작의 풍부함과,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등장인물이며 압축되지 않은 서스펜스며 어릴적 읽었던 <보물섬>이라는 소설과 같은 보물찾기의 흥미,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재미 등, 팔묘촌이라는 소설은 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이 들어있는 알이 꽉찬 제철 꽃게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 추리 소설의 역대 1위를 차지하는 작품인 같은 작가의 <옥문도>라는 작품과 더불어 혼징살인사건, 이누가미가의 일족, 악마의 공놀이 노래같은 걸작들과 놓고 볼때 항상 1, 2위를 다투는 작품이며,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최고 인기작이다. 일본인이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나카마 유키에, 아베 히로시 주연의 인기 드라마 <트릭>에서는 팔묘촌의 패러디로 심지어 <육묘촌>이라는 마을이 등장한다. 인터넷에서 77년 영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는데, 추리의 요소도 그렇지만 호러틱한 이미지가 강조됨을 알 수 있다. 본격 미스터리에 일본 특유의 공포 이미지를 더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그러한 장면이며 심리 묘사가 더욱 풍부하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마을에 저주를 내리는 무사들이며 그 저주가 현대까지 이어져 끔찍한 살인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전율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초현실적인 두려움. 실제사건(1938년 일본 오카야마 현 도마타 군에서 일어난 ‘츠야마 30인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 '나'의 아버지가 저지르는 참혹한 살인들.(영상의 이미지는 참으로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기괴한 쌍둥이 할머니들을 비롯한 애증에 몸을 떠는 인물들과 일본식 저택 특유의 구조를 이용한 비밀통로 - 그리고 보물찾기. 참으로 무시무시하고도 호화스러운 구성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으로는 탐정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1인칭 주인공인 '나' 타츠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내가 알게되는 기막힌 출생의 신비 - 내가 팔묘촌의 다지미 가의 후사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때부터 끔찍한 연쇄살인의 심연으로 빠져버린다.
추리소설로써 팔묘촌은 참으로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마을의 저주를 장식으로 하여 끔찍한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의미없는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살인 동기의 연막탄으로 삼는 교활함과 사건수사를 교란시키는 능수능란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화시키면 참으로 무시무시해서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범행이며, 배경이다. 섬세한 분위기 속의 기괴한 살인과 결말의 명쾌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사건 해결.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긴다이치는 작품 속에서 얼굴을 내비치는 거의 단역의 수준이라고 봐도 좋다. 드라마에서는 안 그랬는데... 오히려 주인공인 나와 그의 사랑 노리코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거의 해결해 버린다. 지나가는 탐정인 듯한 코스케는 이미 전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그렇게 말하다니, 작가 선생이며 이 명탐정이 이 작품에서는 무진장 얄미웠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작품의 전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크리스티의 걸작인 <끝없는 밤>이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등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희생자의 수에 있어서는 <그린 살인 사건>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그 기괴한 이미지며 전설과 살인 그리고 동기의 혼합 등에 있어서는 백점 만점을 주고도 넘치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수수께끼 풀이의 즐거움 - 보물지도, 비밀 통로, 훔쳐보기, 보물이 숨겨진 동굴 모험-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섬세한 심리 표현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순수하고 발랄한 나의 사촌동생 '노리코'와의 사랑과 로맨스는 작품을 읽는 또다른 달콤함을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작품들로는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 섬 악마>, 그리고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오히려 사족같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에 이어 계속해서, 학교도 재끼고 나이도 먹지 않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긴다이치 하지메의 사건부 중에서는 팔묘촌과 흡사한 분위기의 작품이 있다. 바로 <쿠치나시촌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 또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폭발적인 요코미조 세이시 붐을 일으킨 76년 영화 <이누가미가의 일족>의 이미지들. 마지막 할아버지의 사진은 영화에 여관 주인으로 나온 요코미조 세이시 자신이다. 2007년 30년만에 리메이크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