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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김성종 미스터리 장편소설. 살인혐의로 억울하게 20여 년을 옥살이한 노인의 출옥과 함께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 사건을 뒤쫓는 엘리트 형사 오병호의 끈질한 집념은 그간 2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 뒤엉킨 사건의 전모를 헤집어나간다. 거기에는 한국전쟁의 비극이 탁류처럼 흐르고 있었는데…….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 수상작품.
한국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김성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읽는 김성종의 작품인데, 출간된지 30여년가량이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대단히 흥미진진해서 600페이지나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거의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최후의 증인》이라는 작품은 추리소설적으로 뛰어나지만, 이 작품을 단순한 살인사건의 범인 찾기 식의 단순한 소설로 치부한다는 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큰 결례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숨겨진 살인과 복수, 또 한 형사의 처절한 집념과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애절한 비극미적 승화, 역사라는 커다란 물줄기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겪는 삶의 상처와 비극에 대하여 애절할 정도로 잘 묘사해 놓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김성종이라는 거물이, 현재 출판시장에서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는 드라마로도 유명한 《여명의 눈동자》라는 작품외에도 수많은 추리 작품들이 있지만, 나 자신도 그렇거니와 많은 인터넷상의 추리소설 매니아며 사이트등을 돌아다녀도 김성종씨의 작품을 읽고 그의 작품을 논하는 장면은 거의 본적이 없다. 출판사의 판매전략과 홍보전략의 실패인가, 아니면 국내 추리소설시장과 문학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물론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오래되었고, 재판과 재수정, 홍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내의 대형 서점들을 돌아다녀도 오래된 구판의 작품밖에 구할 수 없어 아쉽다. 다행이도 최근에는 양장 형태로 다시 편집하여 책을 내주는 것 같지만.
이 작품은 몇 년 전의 영화 《흑수선》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본적은 없지만,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한 듯 하다. 또, 더 오래 전에 이두용 감독이 만든 영화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불암, 이대근, 정윤희가 주연한 영화로서,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지만, 아쉽게도 시대적인 검열과 삭제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아쉬운 대작이다. 1979년에 만들어지고 1980년에 개봉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사회적 이슈인 광주 민주화 운동의 처절한 죽음과 투쟁이 이 영화의 주제와 무엇인가 상통하는 바가 있었던지, 끝내 사장되어 버린 작품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20년간 한 황바우라는 인물의 석방과 함께 시작되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억울한 살인죄에 몰려 예순의 나이가 다 되어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차가운 겨울의 마을로 걸어가는 황바우의 모습에서는 마음이 저절로 아파옴을 느꼈다. 이 후 황바우는 사라지고, 서울에서는 유명 변호사가 피살되고 뒤이어 지방의 양조장을 하는 남자가 낚시터에서 살해된채 발견된다.
많은 경찰과 도경들에게 여러 살인사건들은 대단히 귀찮은 짐일 뿐이다. 그러나 형사 오병호는 낚시터 저수지의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밝혀지는 수많은 비밀들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인 비극.
죽은 피해자는 빨치산과 공산주의자들을 잡아들이던 청년단장이며, 그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갈등,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과 성욕, 전쟁에 의하여 표류하여 끝내 파멸을 향해 치닫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빨치산 토벌과 사상의 갈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소설과 잘 버무려 놓은 작가의 솜씨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용의자가 제시되는 그런 스타일인줄 알았는데, 이 소설은 탐정 역의 형사 오병호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헤치는 것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형사 오병호라는 인물은 그리 밝은 스타일의 캐릭터가 아닌, 현대사회의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근본적인 고독, 누군가에게의 쫓김, 정신적 불안, 자살,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소 암울해보이는 인물이지만, 진실을 밝혀내려는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이다. 작품에서도 그는 온갖 곤경에 처하지만, 여러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해결을 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결말에서 아내 곁으로 돌아감으로서, 읽는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 보다 진솔하게 생각할 기회는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손지혜와 황바우라는, 이 소설의 비극적인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슬픈 역사와 사상의 충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끝내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생의 근본적인 의미도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읽는 내내,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와 우리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우리의 슬픈 역사와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을 때리지만, 앞으로는 이런 슬프고 고통스런 역사는 우리민족에게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표추리 작가 김성종의 걸작으로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본질을 좀 더 상세히 알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지방적인 모습과 한국전쟁, 도시적 묘사, 오병호라는 인물과 등장인물들의 사상과 애증에 사로잡힌 인간관계들은 외국추리소설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황바우에게서는, 참으로 한국적인 순박함과 진득함, 사람에 대한 순정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숭고한 죽음으로 그 최후를 장식하는 '장발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