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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6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런던의 한 부두에서 포도주 통을 끌어내리는 하역 작업중 줄이 흔들리면서 무거운 통 4개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 중 깨어진 한 통에서 나온 것은 금화와, 반지 낀 여자의 손!
현학적 탐정 <파일로 반스>의 작가 반 다인이 추리소설작가가 된 계기는 병상에서 2천 권의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의 작가인 크로프츠도 회복기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40대에 처녀작인 <통>을 발표하고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외에도 적잖은 작품과 수작들을 쓴 훌륭한 작가이다. 세계 3대 도서추리소설의 하나인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을 쓴 작가도 크로프츠이며, 프렌치 경감이나 번리, 타나 경감 등이 활약하는 작품들도 여러 편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가 만들어낸 탐정 중의 하나인 번리 경감이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사건을 활약하기 위해 힘쓴다. 증거를 분석하는 능력에 있어서 번리 경감은 홈즈 못지 않은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처음의 작품 전개부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화물 하역장에서 통이 깨지며 적잖은 금화가 반지 낀 여자의 손이 발견되고, 대단히 기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이에 의문을 품고 번리 경감이 수사에 나선다. 작품에서는 고전 추리소설에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증거와 복선, 암시가 풍성히 깔려 있다. 물론 독자는 그 추론에 약간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겠으나..;; 발자국이며 자물쇠며 금화며 알리바이 공작술에 이르기까지, 좋은 작품이었다. 또한 작품에서는 작가의 경험이 어느정도 묻어난다고 볼 수 있는 즉물적인 묘사와 섬세한 서술과 추론, 추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각지의 지명과 역명이나 소요시간등에서는 작가가 지향하는 리얼리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다소 지루하다면 지루할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참 재미있게 읽었으니 패스. 처음에 작가가 제시한 알리바이며 위장공작 등 이 작품에서는 참으로 떡밥이 풍부하다. 참으로 머리가 좋은 작가선생이다. 고로 집중하지 않으면 독서의 흐름이 참 깨지기 쉽다. 번역이 오래된다가 일역이니, 좀 시정되었으면 한다.
<통>에서 제시되는 범인은 단 두명뿐이다. 실은 범인을 바로 짐작한 뒤 맞추는 독자들이 적지 않지만, 이번에도 또 엉뚱한 사람을 지목했다. (대개, 수능언어영역에서 구사하는 심리적 트릭인 오지선다형 시험문제를 풀때 유력한 두개의 답안중 우리가 고르는 것이 꼭 오답이듯이) 초반부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알리바이나 트릭 등이 너무나 확고하게 그를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에...ㅡㅡ; 결말에서의 범인의 최후와 누명을 쓴 자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등도 상당히 극적인 멋진 작품이다. 즉 400페이지가 넘는 대작답게 대미 또한 화려하고 웅대하게 장식된 수작이다. 추리소설 마니아의 열 손가락에 뽑히는 필독서. 고전 추리소설의 그윽한 향기와 진정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걸작이다.
<통>외에도 국내에 크로프츠의 몇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이중 <크로이든발 ..> 또한 읽어볼 가치가 있는 대작, 수작이다.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은 사라진 보석과 시체, 열쇠에 대한 본격미스터리인데 사 놓고 묵혀놓은지 1년이상 지났다. 곧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