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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늘의 추리소설 -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협회 소속 추리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김차애, 김유철, 서미애 등 작가 8명의 작품을 선별해 수록하였다. 정신과 수련의인 수연과 자신이 살해하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한 남자를 죽였다고 고집하는 최미연을 통해 여러 빛깔의 사랑과 섹스에 접근하는 표제작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이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성희의 작품으로, 차분한 어조로 사랑과 섹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밖에 김차애의 《다정다감》,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 황세연의 《보물찾기》, 김유철의 《황금의 집》, 김상윤의 《교차로에서 만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전히 국내 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나 작품 발표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단편집을 보고 우리 추리문학계에도 희망이 보이는 듯 하여 좋았다. 본격 미스터리나 도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올해의 《첫 섹스에 관한..》작품집은 작품의 질이나 독창성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다소 아쉬운 점들은 꽤 비싼 가격에(가난한 학생으로서 이 정도 가격이면 안습이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적고 가벼운 분량이라는 점, 국내 작가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독자로서 작가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이 작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뽑았고 심사위원들은 누구누구이며 이 협회가 과연 어떤 권위와 어떠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지고 이 작품을 뽑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미나 일본과 같은 권위는 없을지라도 앞으로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더 큰 발전과 권위를 가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협회의 작가들이 10년이나 20년 뒤에는, 한국에서 추리문학의 지위를 한껏 드높여 주었으면 한다.

첫 작품은 김차애의 《다정다감》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추리라기 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한 공포소설이라고나 할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보이는 여자와 죽음을 예술로 표현하는 남자의 심리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김유철의 《황금의 집》은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상한 사건에 주인공이 얽히고 이상한 인물들과 이상한 공간이 어우러지는 괴기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결말이나 반전은 평이한 편이다. 톡 쏘는 맛이 아닌, 밋밋한 다이어트 콜라의 맛같은 작품이다.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은 이 작품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한번 읽게 되면 끝을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라고나 할까. 자신을 배반한 남자를 납치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뒷 결말은 섬뜩한 것이다. 적절한 인물의 구도와 살떨리는 공포를 잘 빚어낸 작품이다. 인터넷 뉴스에서 본 작가의 모습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올리버 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여간 이 작품은 별 다섯개를 주어도 좋은 작품이었다.

《교차로에서 만나다》라는 작품의 김상윤은 학력이 대단한 엘리트인데, 의외로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인다. 저승사자와의 대결과 가슴뭉클한 결말에서는 휴머니즘도 느낄 수 있다.

류성희의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세밀히 해부한 흔적이 보인다. 인간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는 신경과 수련의와 살인은 저지른 간호사의 심리 게임이 돋보인다. 역시 어느정도 무섭기도 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의 초상은 개인적으로도 몹시 좋아하는 도서추리의 형식에, 전형적인 치정살인이다. 이 작품은 물론 좋았지만 질이 약간은 떨어지는 것 같다. 인물묘사와 심리 묘사는 만점을 주어도 좋겠으나, 귀납적 증거의 제시가 부족한 듯 하다. 좀더 섬세한 증거를 제시해 주면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 작품인 《보물찾기》도 읽는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낡아 빠진 시골집을 산 남자가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숨겨진 그 무엇을 찾는다는 흥미와 약간은 무서운 결말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비록 본격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재미없었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고, 질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룬 것 같다. 읽는 내내 흐믓하고 즐거웠으며 아리따운 책의 분홍색 표지에서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작품집이었다. 앞으로도 한국추리작가들의 일취월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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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Mystery Best 4
엘러리 퀸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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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황제 엘러리 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의 《Y의 비극》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이 작품도 그에 못지 않은 놀라운 결말과, 빈틈없는 작품의 구성과 전개, 깔끔한 퀸의 논리적인 추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Y의 비극 못지 않은 걸작이며, 총 9편의 국명(國名)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실은 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작품은 구입한지 별 이유도 없이 약 2년 가까이 읽지 않고 서재에 꽂아두었던 작품인데, 그 동안 《탐정학원 Q》라는 만화를 읽게 되었다. 이 만화에서는 추리의 힌트로 셜록 홈즈의 한 단편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한 장편, 또 엘러리 퀸의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힌트로 제시된다. 아쉽게도 나는 이 만화를 먼저 본 것이 상당히 후회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세 작품을 먼저 읽으시고 탐정학원 만화를 보시면 더 없이 좋을 듯.

T자 모양의 이집트 십자가에 매달린 목이 달아난 T자 모양의 시체와 모두 T자로 통일되는 주변환경들. 한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이 이처럼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엘러리 퀸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엽기적인 범죄라 할 수 있겠다. 영상물로 만들면 상당히 무시무시할 것 같은데. 작가인 엘러리 퀸의 박식한 이집트 십자가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만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범인을 지목해낼 결정적인 단서가 제시되지만, 작품의 초반부에는 수없이 제시되는 논리적인 단서들, 적잖은 등장인물들, 복잡다단한 범죄현장들이 어우러져 말그대로 상황은 미궁이다.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이후, 또 다시 백만장자 부호가 참혹하게 살해되는데, 본격적인 수사는 이 두 번째 희생자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현장을 조작하여 엘러리를 농락하는 범인의 교묘한 솜씨(?)도 느낄 수 있다. 실은 미친 듯 보이지만 범인은 최고의 두뇌 회전을 보여준다. 범인도 똑똑하지만 개성적으로 만들어 놓은 등장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다준다. 다들 한 가족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실은 믿는이의 뒷통수를 치는 것이며 그럴 듯해 보였던 이들이 숨겨왔던 어두운 과거등등, 모범적인 미스터리 작품이라 할 만 하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긴장과 공포의 연속이다. 마음이 약하신 분들은 처음의 자극적인 장면에 눈서리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끝을 보게 되는 것이 특히 엘러리 퀸의 소설인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까.
범인이 나올락말락한 결말 부분에는 작가인 엘러리 퀸의 독자에게 정정당당한 도전장을 내민다. 나름대로 적절한 추리를 해보았지만, 역시 헛다리를 짚었다. 그러나 도전장을 보내기 전의 범죄현장에서는, 범인이 결정적인 단서를 흘리고 만다. 결말의 탐정 퀸은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날카로운 추리를 이끌어내며, 또 달아나는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애마 뒤센버그, 비행기 등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끝내 잡아낸다. 이 추적의 순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상당한 양의 장편이라 집중력도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퀸의 추리는 더 없이 논리적이고 정정당당했다. 두 동갑내기 작가의 지혜에는 언제나 탄복할 수밖에.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장편이 39편, 단편이 78편에 이르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금은 절판되어 버린 시그마북스를 포함하여 기껏해야 스물 몇 권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구할 수 있는 것이 불과 10여 작품 뿐이다. 이렇게 괄시받는 대가(大家) 엘러리 퀸을 보면 국내의 추리소설과 추리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요즈음은 그나마 여러 출판사에서 적잖은 추리소설들을 출간해 주고 있다. 수년 전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붐이 일었을 때가 그렇고, 동서문화사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를 재출간 해준 것이 그렇고, 작년에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출판된 것을 보면 그렇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즐거웠지만, 국내 추리문학과 추리소설 시장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추리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들이 충실히 번역될 필요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도일 경의 작품 뿐만 아니라, 엘러리 퀸의 작품도 국내에 모두 번역되고, 또 많은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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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의 비밀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1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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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엘러리 퀸 시리즈. 그러고 보니 어제본 제시카의 추리극장 시즌 1 에피소드인 "Murder Takes the Bus" 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바로 리처드 퀸 경감..ㅋ)

경험 많은 리처드 퀸 경감과 그의 아들 엘러리 퀸이 활약하는 본격 추리물. 뉴욕 시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 묘지에서 미술품 중개상의 평범한 장례식이 거행된다. 장례가 끝나고 금고를 연 변호사는 고인의 유언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유언장이 든 쇠상자는 데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장례식 도중에나 식이 끝난 뒤에나 그 장소를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오페라의 전주곡이라도 되는 양,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하나둘 막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스 관의 비밀》은 국명 시리즈 최고의 걸작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 앞서 같은 해에 먼저 발표되었다. 《이집트》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그리스》의 박력이 다소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리스》 다음에 《이집트》라는 걸작이 나왔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문장과 트릭을 구사하는 젊은 두 작가의 넘치는 필치와 재능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진 느낌을 당대의 독자들은 충분히 느겼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 비해 《그리스 관의 비밀》에 나오는 탐정 엘러리는 남들에 비해 비범한 추리력을 보여주지만 조금은 부족하고 어슬픈, 얼치기 탐정의 면모를 보여준다. 라이트빌 시리즈나 다른 걸작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패를 모르는 패기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곧 자신만만한 자신의 생각이 크게 좌절되는 것을 통해, 자신감넘치는 청년 엘러리는 다소 상처입지만, 더욱 지적으로 성숙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의 틀린 추리도 물론 비범했지만, 자신의 부친은 퀸 경감이 대충 매듭지어 놓은 풀리지 않은 범죄의 끈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이라는 결론을 내놓고야 마는 엘러리의 모습은, 시련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 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다소 칠칠맞고 거만한 청년탐정의 모습도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라이트빌 시리즈의 더욱 사려깊고, 이성과 심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러리의 그런 모습이 더욱 멋진 것 같다.) 사건의 시작은 한 미술상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의 변호사가 보고 금고 속에 보관해둔 유언장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사건 때문에 난리가 일어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고 모든 공간을 샅샅이 뒤지지만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엘러리의 추리 덕분에 새로운 활로가 트여 조사방향을 돌리게 되지만, 예상치 않았던 살인을 접하고 만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사람들의 숨은 비밀과 생각, 동기와 다채로운 인간들의 성격이 나타나는 일종의 전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사건은 대가족 내의 완전범죄로 볼 수 있는데, 황소같은 집념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리처드 퀸 경감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그와는 달리 논리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분석해가는 엘러리 퀸의 모습. 부자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만, 지친 아들을 따스하게 위로해주고 함께 격려해주는 아버지 리차드의 모습에는 진한 부성애 또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초반부에 ‘범인을 다 알겠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추리를 늘어놓지만 결국에는 망신을 당하고 진범과 단서를 찾아내겠다고 절치부심하며 얼굴을 붉히는 엘러리의 모습도 보기 좋았고, 잘난 척 하던 녀석이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보자니 다른 한편으로는 유쾌하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보자니 머리가 아팠다. 등장인물들이라도 앞에 제시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평온한 듯 보이는 가정과 사람들,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이 벌어는 놀라운 행각과 논리적인 퀸의 추론. 작품 전체적으로는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대단히 강력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 또 그것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탐정, 또 그것의 좌절과 또 다른 도전. 그리고 연속해서 터지는 사건과 교직되는 등장인물들. 실은 결말부분의 처리가 썩 매끄럽지 만은 않아 보였다. 퀸이 지목한 범인이 약간은 황당하고, 동기면에서도 그럴 듯 하지만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와 작품의 결론은 만점을 주기에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두 작가는 이 작품의 부족한 2프로를 200프로로 채우기 위하여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걸작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최고의 걸작으로 보기에는 약간 부족했던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만, 논리적인 치밀함과 인물들의 구성은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생각된다. 신파극에서나 나올법한 남녀의 로맨스도 어느 정도 보아줄 만한 것이었고... 리차드 퀸과 엘러리 퀸의 공동수사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었다. 그러나 두 번 읽기에는 어느정도 망설여지는 약간은 불완전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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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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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미스터리 장편소설. 살인혐의로 억울하게 20여 년을 옥살이한 노인의 출옥과 함께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 사건을 뒤쫓는 엘리트 형사 오병호의 끈질한 집념은 그간 2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 뒤엉킨 사건의 전모를 헤집어나간다. 거기에는 한국전쟁의 비극이 탁류처럼 흐르고 있었는데…….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 수상작품.

한국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김성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읽는 김성종의 작품인데, 출간된지 30여년가량이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대단히 흥미진진해서 600페이지나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거의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최후의 증인》이라는 작품은 추리소설적으로 뛰어나지만, 이 작품을 단순한 살인사건의 범인 찾기 식의 단순한 소설로 치부한다는 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큰 결례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숨겨진 살인과 복수, 또 한 형사의 처절한 집념과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애절한 비극미적 승화, 역사라는 커다란 물줄기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겪는 삶의 상처와 비극에 대하여 애절할 정도로 잘 묘사해 놓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김성종이라는 거물이, 현재 출판시장에서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는 드라마로도 유명한 《여명의 눈동자》라는 작품외에도 수많은 추리 작품들이 있지만, 나 자신도 그렇거니와 많은 인터넷상의 추리소설 매니아며 사이트등을 돌아다녀도 김성종씨의 작품을 읽고 그의 작품을 논하는 장면은 거의 본적이 없다. 출판사의 판매전략과 홍보전략의 실패인가, 아니면 국내 추리소설시장과 문학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물론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오래되었고, 재판과 재수정, 홍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내의 대형 서점들을 돌아다녀도 오래된 구판의 작품밖에 구할 수 없어 아쉽다. 다행이도 최근에는 양장 형태로 다시 편집하여 책을 내주는 것 같지만.

이 작품은 몇 년 전의 영화 《흑수선》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본적은 없지만,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한 듯 하다. 또, 더 오래 전에 이두용 감독이 만든 영화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불암, 이대근, 정윤희가 주연한 영화로서,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지만, 아쉽게도 시대적인 검열과 삭제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아쉬운 대작이다. 1979년에 만들어지고 1980년에 개봉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사회적 이슈인 광주 민주화 운동의 처절한 죽음과 투쟁이 이 영화의 주제와 무엇인가 상통하는 바가 있었던지, 끝내 사장되어 버린 작품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20년간 한 황바우라는 인물의 석방과 함께 시작되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억울한 살인죄에 몰려 예순의 나이가 다 되어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차가운 겨울의 마을로 걸어가는 황바우의 모습에서는 마음이 저절로 아파옴을 느꼈다. 이 후 황바우는 사라지고, 서울에서는 유명 변호사가 피살되고 뒤이어 지방의 양조장을 하는 남자가 낚시터에서 살해된채 발견된다.

많은 경찰과 도경들에게 여러 살인사건들은 대단히 귀찮은 짐일 뿐이다. 그러나 형사 오병호는 낚시터 저수지의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밝혀지는 수많은 비밀들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인 비극.
죽은 피해자는 빨치산과 공산주의자들을 잡아들이던 청년단장이며, 그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갈등,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과 성욕, 전쟁에 의하여 표류하여 끝내 파멸을 향해 치닫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빨치산 토벌과 사상의 갈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소설과 잘 버무려 놓은 작가의 솜씨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용의자가 제시되는 그런 스타일인줄 알았는데, 이 소설은 탐정 역의 형사 오병호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헤치는 것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형사 오병호라는 인물은 그리 밝은 스타일의 캐릭터가 아닌, 현대사회의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근본적인 고독, 누군가에게의 쫓김, 정신적 불안, 자살,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소 암울해보이는 인물이지만, 진실을 밝혀내려는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이다. 작품에서도 그는 온갖 곤경에 처하지만, 여러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해결을 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결말에서 아내 곁으로 돌아감으로서, 읽는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 보다 진솔하게 생각할 기회는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손지혜와 황바우라는, 이 소설의 비극적인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슬픈 역사와 사상의 충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끝내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생의 근본적인 의미도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읽는 내내,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와 우리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우리의 슬픈 역사와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을 때리지만, 앞으로는 이런 슬프고 고통스런 역사는 우리민족에게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표추리 작가 김성종의 걸작으로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본질을 좀 더 상세히 알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지방적인 모습과 한국전쟁, 도시적 묘사, 오병호라는 인물과 등장인물들의 사상과 애증에 사로잡힌 인간관계들은 외국추리소설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황바우에게서는, 참으로 한국적인 순박함과 진득함, 사람에 대한 순정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숭고한 죽음으로 그 최후를 장식하는 '장발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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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 2007-08-09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쓰신거 같은데 출처를 밝히고 퍼가도 될까요?

포와로 2007-08-0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이십니다.ㅋㅋ 퍼가셔도 됩니다. ^^;;
 
베누스의 구리 반지 - 로마의 명탐정 팔코 3 밀리언셀러 클럽 28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희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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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이 소개할 탐정은 고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줄여서 그냥 팔코.)이다.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사후, 삼황제 시대의 혼란을 거친 뒤 정권을 잡아 겉으로는 평화와 번영을 구가해보이는듯 보이지만 살인과 음모, 서민층의 민생고가 넘쳐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건강하고 활기찬,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대의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이 사설 탐정은 종횡무진 활약하게 된다.

팔코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작가 린지 데이비스는 1989년 팔코와 그의 여자친구 헬레나가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인 '실버 피그(The Silver Pigs)'로 팔코의 탄생을 알리고, 이 작품이 대박을 터트려 지금에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6번째 시리즈인 '스캔들은 휴일에 일어난다(Scandal Takes a Holiday)'가 현재까지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도 꾸준히 번역이 되면 참 좋으련만.

《베누스의 구리 반지》는 읽는 내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해서 많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올해들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결혼하는 남자마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세베리나 조티카. 전 남편들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통해 부유와 사치를 누리던 그녀는 로마의 부도산 사업가와 약혼한다. 세베리나의 행적을 의심하던 탐정 팔코는 그녀의 뒤를 캐지만 그 사이 그녀와 연루된 사람들이 독살당한다. 팔코는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세베리나는 결백을 주장하며 오히려 팔코를 유혹하는데….》》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탐정 팔코는 치밀한 조사와 추리력을 발휘하여 활동하지만, 살인사건을 끝내 막아내지는 못하고, 팔코 본인도 생명의 위기를 여러 번 맞게 된다.
또한 길거리에서 무서운 사람을 만나 덜덜덜 떨기도 하고,적에게 얻어터져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감옥에 갇히고, 마지막 쯤에 가서는 거주하던 공동 주택까지 붕괴(ㅋㅋㅋ)되는 것을 보며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 못지 않은, 위험과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이 탐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명쾌한 진실을 밝혀내는 그의 굴하지 않는 성격이야말로 팔코 최고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정교한 추리소설들에 비해 팔코 시리즈는 다소 그 트릭이나 기교가 시들시들할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의 성격이라든지,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시대상황이 가져다주는 역사적 사건과 인간관계 등등. 역사추리소설이 가지는 미덕을 백분발휘한 작품이라 그러한 단점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범주에 속하지만, 풍속소설이라고도 볼수 있으며, 또한 여류작가의 아기자기한 성격이 반영되어 있는 연애소설로도 볼 수 있겠다.
특히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점은 고대 로마시를 콜린 덱스터 못지 않게 생생하게 묘사한 것. 로마사에 관심이 있지만, 직접 로마에 가보지 않고도 어느정도 고대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로마의 광장과 거리, 먹거리(인상적인 장면은 팔코 가족이 모여 진귀한 생선으로 티투스 황제까지 참석한 가운데서 서민적인 파티를 즐기는 것.), 당대의 풍속, 인간의 욕심과 허영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한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빈치 코드 같은 복잡다단한 수수께끼 풀이나 현란한 기교와 충격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개인적으로 이 말랑말랑한 역사소설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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